2019-06-13

알라딘: 죽음의 자서전

알라딘: 죽음의 자서전
죽음의 자서전 | 틂 창작문고 1
김혜순 (지은이)문학실험실2016-05-24





소설/시/희곡 주간 71위|
Sales Point : 3,913

9.1100자평(4)리뷰(2)
이 책 어때요?

160쪽
120*192mm
224g
ISBN : 979119562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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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틂 창작문고 1권. 2015년, 김혜순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세월호의 참상, 그리고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그녀의 고통은 육체에서 벗어나, 어떤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되면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써내려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여기,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49편 중 대부분이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미발표 신작 시로,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49제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목차


출근-하루
달력-이틀
사진-사흘
물에 기대요-나흘
백야-닷새
간 다음에-엿새
티베트-이레
고아-여드레
매일 매일 내일-아흐레
동명이인-열흘
나비-열하루
월식-열이틀
돌치마-열사흘
둥우리-열나흘
죽음의 축지법-열닷새
나체-열엿새
묘혈-열이레
검은 망사 장갑-열여드레
겨울의 미소-열아흐레
그 섬에 가고 싶다-스무날
냄새-스무하루
서울, 사자의 서-스무이틀
공기의 부족-스무사흘
부검-스무나흘
나날-스무닷새
죽음의 엄마-스무엿새
아 에 이 오 우-스무이레
이미-스무여드레
저녁메뉴-스무아흐레
선물-서른날
딸꾹질-서른하루
거짓말-서른이틀
포르말린 강가에서-서른사흘
우글우글 죽음-서른나흘
하관-서른닷새
아님-서른엿새
자장가-서른이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든 까마귀-서른여드레
고드름 안경-서른아흐레
이렇게 아픈 환각-마흔날
푸른 터럭-마흔 하루
이름-마흔이틀
면상-마흔사흘
인형-마흔나흘
황천-마흔닷새
질식-마흔엿새
심장의 유배-마흔이레
달 가면-마흔여드레
마요-마흔아흐레

시인의 말

感 / ‘죽음’이 쓰는 자서전_조재룡
접기


추천글

죽음의 미로, 사자死者들의 대해大海, 망자亡者들의 투망. 누군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침잠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고, 그것은 차라리 산자, 살고 있는 자의 책무라서, 제 하얀 백지로 매일 마주했다면, 그는 필경, 출구 없는 그곳으로 들어가기 이전이나 대해의 심연에 빠지기 전까지, 그렇게 온통 그물을 뒤집어쓰기 직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알아도 안 되는 죽음에 골몰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골몰’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이 꾸는 꿈을 기록해낼, 합당한 말의 형식을 발견하거나 차라리 고안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돌아 나올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자명한데도 빠져드는 일, 검은 저 바다에 제 언어의 부표를 꽂아보는 일은, 주위에 아무도 없어, 아무도 내딛지 않아, 그 내용과 형식을 누구도 벌써 알지 못하기에, 오로지 실천을 해야만 하는 일, 그렇게 과정으로만 가능한 제 일상의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마침내 그 일을 감행했을 저 자신조차 그 파장과 다가올 사태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까.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 참혹과 비극을 감당하며, 몸과 그림자를 함께 부여잡고 지내야 하는 지금-여기의 삶이라고, 그렇게 우리 모두의 순간과 순간이라는, 저 직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실천을 우리는 지금 보고 또 읽으려 한다. 차라리 외로운 일, 외로운 길, 외로운 정념이었을 것이다. 사방이 보이지 않는다. 출구가 없다. 지반이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다. 두 발을 내릴 수가 없다. 입을 놀릴 수가 없다. 공포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죽임을 당한 존재들과 죽어가는 존재들을 보고, 만지며, 그 안으로 침투하여, 그렇게 돌아든 다음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조금 환해지는 것이라 해도, 그에게 남겨진 것은 차라리 표현할 수 없는 무형의 실체, 그 덩어리였을 것이다. 이 덩어리를 기록하는 작업은 참혹한 일, 참혹을 겪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 조재룡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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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6년 6월 17일자 '문학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김혜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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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문학상을 수... 더보기


수상 : 2008년 대산문학상, 2006년 미당문학상, 2000년 소월시문학상, 2000년 현대시작품상, 1997년 김수영문학상
최근작 : <날개 환상통>,<시를 잊은 나에게>,<여성, 시하다> … 총 38종 (모두보기)
김혜순(지은이)의 말
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죽음을 선취한 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죽음이 정면에, 뒤통수에, 머릿속에 있었다. 림보에 사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가 갔다. 뙤약볕 아래 지구의 여름살이 곤충들처럼 고통스러웠다. 고통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죽음만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저 나무는 나를 모른다. 저 돌은 나를 모른다. 저 사람은 나를 모른다. 너도 나를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나는 죽기 전에 죽고 싶었다.
잠이 들지 않아도 죽음의 세계를 떠도는 몸이 느껴졌다. 전철에서 어지러워하다가 승강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올라 나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군가. 가련한 여자. 고독한 여자. 그 경험 다음에 흐느적흐느적 죽음 다음의 시간들을 적었다. 시간 속에 흐느끼는 리듬들을 옮겨 적었다. 죽음 다음의 시간엔 그 누구도 이름이 없었다. 칠칠은 사십구라고 무심하게 외워지는 것처럼,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이 시를 쓰고 난 다음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연구년 동안에 이 시들 중 대부분을 적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 죽어버린 옛 여자들처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먼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 안의 죽음으로 이곳의 죽음이 타격되기를 바랐다. 이제 죽음을 적었으니, 다시 죽음 따위는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김혜순 시인 신작 시집 『죽음의 자서전』
한국문학이 도달한 한 극점이자, 현대시의 정수를 만나다.
문명사회가 은폐한 타인의 죽음을 온몸으로 앓아 낸,
지독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서울 사자의 서’

죽어서 모두 환하게 알게 된 사람의 뇌처럼 밝은 편지가 오리라
네 탄생 전의 날들처럼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넓고 넓은 편지가 오리라
「백야」 중에서

한국문학의 독보적인 아이콘, 김혜순 시인의 미발표 신작 시, 문학실험실에서 시집으로 묶어

2015년, 김혜순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몸이 무너지며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병원을 찾았으나,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 놓이게 된다. 세월호의 참상, 그리고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그녀의 고통은 육체에서 벗어나, 어떤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되면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써내려갔다. 바로 그 결과물이 여기, 이 멀쩡한 문명 세상에 균열을 불러오며, 문학적으로는 고통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시편으로 묶였다. 49편 중 대부분이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미발표 신작 시로, 이 시집은 그 자체로 ‘살아서 죽은 자’의 49제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내 안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 죽음을 이토록 처절하게 다룬 우리 문학은 없었다.

끔찍한 살처분의 현장을 문명 내부의 문제로, 나아가 우리 자신의 문제로 승화해 문학적으로 앓아 낸, 󰡔피어라 돼지󰡕(문학과지성사)가 ‘죽음’의 문명 속에서 희생되는 타자(대상)의 처절한 죽음을 문제 삼는다면, 이 시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인 내 속에 살아 움직이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 시집은 ‘지금-여기를 떠도는 죽음의 외투를 입은 채, 공동체의 유령이 되어… 망각에 저항하고자 기억에 수시로 구멍을 내며… 보이지 않는 보임을, 그 순간의 광휘를, 달아나는 울음과 새어 나오는 비명을 담아낸 목소리의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타인의 죽음을 어두운 밀실로 밀어 넣고는 애써 밀봉하려는 사회, 조재룡은 계속해 다음과 같이 이 시집의 의미를 분석한다. “우리 사회의 한복판에 당도한 죽음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살점들, 죽음의 아우성을 매만지는 지금-여기, 죽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죽으려 하는 문장이, 망자-산 자의 구분을 취하하는 문자가, 너-나의 말, 사자死者가 된 여인의 절규가, 공동체의 폭력과 공동체의 신음이, 너-나의 참혹이, 세계를 노크하고, 검은 문을 열어 우리 곁에 사死-생生의 목소리를 피워낼 것이다.”

문학실험실이 준비한 <틂-창작문고> 시리즈의 첫 번째 책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은 2015년 한국문학의 질적 발전과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도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언어 탐구의 작업들을 기획하고 실천해나갈 독립 문학 공간으로 출발한 문화예술 공익 법인인 문학실험실에서 출간하는 첫 단행본으로서도 그 의미가 상당하다. 앞으로 문학실험실에선
실험 정신이 발현되는 창작 작업을 지속해 지원할 계획이며, <틂> 시리즈를 새로운 문학의 거주공간으로 구축해 장르를 나누지 않고, 시, 소설, 희곡, 텍스트실험 등을 출간해갈 예정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의 단편 3~4편을 묶거나, 중편 소설 등이 선보일 예정이고 장르를 극복한 ‘텍스트 실험’과 그간 문학 현장에서 외면받아온 ‘희곡집’도 문학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실험실의 <틂> 시리즈는 정성을 다한 양장 제본으로 꾸며졌지만 무겁지 않은 판형으로 가볍게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읽은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6월 중 김종호 소설가의 연작 소설집 󰡔디포의 디포󰡕가 출간 예정이며, 이후 김선재(소설), 김태용(텍스트실험), 성기완(시), 이준규(시), 진연주(소설), 한유주(소설) (이상 가나다순)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접기


북플 bookple


9.1





죽음의 자서전



흰 소복 같은 표지를 벗기면 관처럼 검은 표지가 숨어있다. 습관적 그리움이 솟기 시작한다.
죽음과 죽음의 이야기와 죽음의 형태와 죽음의 목소리, 죽음의 죽음에 대한 변주.
마흔 아홉개의 글은 하루, 이틀, 사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마흔아흐레로 마무리 된다. 49제를 마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울었다. 울며불며 노래했다.
"아이고~~이~ 세상에~ 나만 혼자 떨구고~~발길을 거두는~무정한~~사람아~아~아~ 살아생전에도~~무정하드니~~가는 길도 무정허네~~이 년의 팔자~ 어디 가서~ 한을 풀꼬~~누굴~ 잡고 원을 풀꼬~~아이고~~아~이~고~~~기다리지~마~소~이승일랑~잊어~먹고~ 이~년도 잊어먹고~ 자식들만~~기억하소~~자식들~~만 "
할아버지와 특별히 정이 없던 어린 손주년은 할미의 가락이 신기했다.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건지 꺼억꺼억 숨을 들이 쉬고 내 뱉고 눈물 범벅이 된 입은 오히려 웃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정말 슬픈걸까? 맹랑한 손주년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묻고 돌아와 한 이틀을 누워 앓던 할머니는 이틀 후 이른 새벽 밥을 짓고 겉절이를 무쳐 맛나게 한 그릇을 드셨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몸빼바지를 입고 밭에 나가 여느때와 다름없이 김을 맸다. 할미는 분명 슬퍼보이지 않았다.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보였다.
참으로 막걸리를 내오라는 말도 평소처럼 던져두고 가셨다.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할머니는 슬프지 않다.


시집을 읽으며 자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도 생각났다. 편안하게, 이기적이다 싶게 편안했던 아비의 표정을 용서할 수 없었던 어린 내가 생각났다.
내 기억 속에, 삶의 여백마다 여지없이 꽂혀있던 '죽음'을 발견했다. '죽음'은 언제나 화두였고 갈망이었고 최후의 목표였다. '꼭 죽고 말테야'라고 나는 사춘기무렵 결심했다. 죽음은 결코 끝나지 않는 지루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은 기록되고 저장되고 변이되어 사체가 썩어가듯 제 형체를 잃어가며 원망과 환상으로 조금씩 휘발된다. 아주 조금씩..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조금씩..
영생(永生)보다 어려운 영사(永死)를 갈망했다. 완벽하게 처리되는 삶의 흔적. 수천년이 지나서도 또 기억되고 또 떠올려지는 삶의 체취가 아닌 단 한번의 썩어문드러짐으로 끝나는 죽음. 더이상의 재생되는 기억도 찾아지는 흔적도 없는 죽음. 그런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목적이었다.
사춘기 무렵..나는 까뮈를 읽었다. 그게 다였다.


죽음의 소문과 죽음의 실체를 이렇게 적어내린 시는 새롭다. '꼭 죽어야겠다'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살아있음이 지루하고 덧없고 하는 패배적이고 회의적이며 염세적인 관념이 만드는 망상같은 죽음이 아닌, 실체로서의 죽음. 완벽한 멸절을 꿈꾸게 한다.
바로 이거야.
나는 비로소 말 같지 않은 말이라며 내 죽음을 조롱하던 입들에 대꾸할 근거를 만났다.


마요
- 마흔아흐레


공중에 떠가는 따스한 입김 하나가 너를 그리워 마요
너보다 먼저 윤회하러 떠난 네 어릴 적 그 입술에 살랑 닿는 바람이 너를 그리워 마요


무한 창공 떠가는 아파서 죽은 그 겨울 그 여자의 얼음 심장에
가느다란 바늘이 가득 꽂히면서 너를 그리워 마요

떨어진 이파리들이 언 강물 위에 지문을 가득 붙여가면서


1백 층 2백 층 건물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안경은 안경끼리 신발은 신발끼리 입술은 입술끼리
눈썹은 눈썹끼리 발자국은 발자국끼리 커다란 서랍 속으로 쓸려가면서 너를 그리워 마요


80센티미터로 강물이 얼어붙고, 그 위로 탱크가 지나가고, 그 얼음 밑으로 물고기들이 너를 그리워 마요


담배 가게 앞에 14년째 전봇대에 묶인 개가 거를 그리워 마요


커다란 바람이 미쳐서 죽은 여자 수천 명을 데리고 날아가는데


내 일생의 '너'들이 웃어젖히는 소리, 쏟아지는 머리칼


겨울 풍경 전체가 울며불며 회초리를 휘두르며 너를 그리워 마요


눈발이 수천 개 수만 개 수억만 개 쏟아지며 너를 그리워 마요


온 세상에 내려앉아서 울며불며 수런거리며 눈 속에 파묻힌 눈사람 같은 네 몸을 찾지 마요, 예쁘게 접은 편지를 펴듯 사랑한다 어쩐다 너를 그리워 마요


너는 네가 아니고 내가 바로 너라고 너를 그리워 마요


49일 동안이나 써지지 않는 펜을 들고 적으며 적으며 너를 그리워 마요.


마지막 시를 읽으며 유언처럼 적어두겠노라 생각한다. '너를 그리워 마요. 나를 기억하지 마요. 완벽하게 죽도록..해..줘..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맑은 물, 그 위에 덜어뜨린 검은 잉크 한방울이 번져가듯 수많은 곡선들이 춤을 추는 시집을 읽는다. 말랑하고 구불구불한 뇌를 가진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은 오랫동안 제가 머물 자리를 탐색하느라 고생할테고 삶은 더없이 지루하고 길어질 것이니까. 맛없고 양 많은 쫄면을 받아든 것 처럼..
말랑하고 구불구불한 머릿 속 어디든 눈치채지 못하게 스며들 수 있는 죽음이어서 다행이다.
모른척 하자면, 완벽하게 죽으려면 완벽하게 살아내야겠다. 죽음을 삶처럼, 삶을 죽음처럼..
김혜순의 송진같은 시를 씹는다. 짙다.


- 접기
나타샤 2016-06-13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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