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덕후라는 운명] 동방학 연구원의 마리안나 이바노브나 니키티나 선생님

[

덕후라는 운명] 제가 레닌그라드 대학에 있었을 때 저를 지도해주신 분은 그 근방... - Vladimir Tikhonov







Vladimir Tikhonov
10 hrs ·



[덕후라는 운명]

제가 레닌그라드 대학에 있었을 때 저를 지도해주신 분은 그 근방 과학원 산하 동방학 연구원의 마리안나 이바노브나 니키티나 선생님이었습니다. 모든 향가와 거의 모든 시조들을 다 러어로 번역하시고, <홍길동전> 등 여러 고전 소설 (그 중에서는 국내에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쌍천기봉> 등도 있었습니다)도 옮기신 니키티나 선생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기인'이었습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약간의 '기행'을 보이셨죠. 1987년에 국제학회 참석차 평양으로 가셨는데, 거기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에 음주를 거부하면서 "나는 전생에 평양에 있는 비구니 사찰의 비구니이었는데, 음주죄로 쫓겨난 적이 있다"라고 주최측에 선언 (?)해 우리 북조선 동지들을 좀 아연실색 (?)하게 만든 일화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금일 국내에 계시면서 여러 언어로 많은 학술적, 그리고 대중적 글들을 쓰시는 한 선생님 (그는 그 때 신진 학자이었습니다)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L 선생은 참...행운아네요. 그는 인간으로, 생을 누리면서 살 여유라도 있죠. 나 같은 사람이라면, 그런 인생이 없어요. 공부하면서 인간으로 살길 일찍 포기했어요."

​"나는 인간으로 살길 일찍 포기했다..." 저는 이 말을 자주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뭘까요? 니키티나 선생님에게는 남편도 있었고 딸도 있었지만, 그녀의 뇌를 독차지하는 것은 "오로지 고대 코리아 문학과 신화"이었습니다. 그녀의 저서 목록을 봐도- 예컨대 저나 위에서 언급된 "L 선생"과 달리 - 대중적 글들도 거의 없습니다. 상부 지시로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백화사전에서의 코리아 관련 항목 등 빼고요. 그녀의 말로는 그녀는 예컨대 휴가 때 흑해에서 수영을 했을 때에도 맨날 <찬기파랑가>에서의 '구름'과 '달', 그리고 <제망매가>에서의 '나무'의 상징성을 깊이 고민하다가 몇번이나 익사를 당할 뻔한 위기에 처하곤 했답니다. 그녀에게는 본인이 복원했다고 여겼던, 윗사람이 나무나 머리, 그리고 아랫사람이 나뭇가지나 팔다리 등에 해당됐던 고대 한/조선반도의 '상하 관계의 상징화된 모델' 등 기호학파적 코리아학 연구 이외의 세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 같으면 누가 제 연구에 대해 뭐라 해도 거의 상처를 받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그래도 상대화할 수 있지만, 니키티나 선생님은 첫째 서울행 했을 때에 서울대의 조동일 교수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다음에는 엄청난 상처를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녀에게 그녀의 학술적 앎의 세계는 인생의 "다"이었던 거죠. 그녀는 속칭 '덕후'의 범주에 속하셨습니다. 발자크가 이야기했던 '인간학'의 차원에서는 우리는 이 '덕후'라는 범주를 사실 좀 이해해야 합니다.

​근대적 '덕후'들의 전신은 아마도 고대나 중세의 수도승, 승려, 그리고 무당과 박수, 아니면 아정 이덕무 같은 약간 광적 박학가들이었을 것입니다. '덕후'는 대개 인간사회의 위계질서적인 구조, '권력'이라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요소에 대해 무한한 소외감이나 거부감을 느끼면서 자신과 어떤 특정 분야 사이의 '불이'임을 느낍니다.

음악의 '덕후'는 음악과 둘이 아닌 하나며, 니키티나 선생님 같은 학술의 '덕후'는 꿈에서도 월명대사나 죽지랑과 대화합니다. '덕후'는 권력뿐만 아니라 수도승의 후신답게 물질 그 자체에 대해서도 좀 거리를 둡니다. 보통의 '덕후'는 이재에 무능합니다. 돈을 벌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쓸 줄도 잘 모릅니다. '덕후'는 맛집에 다니는 일도 없고 아파트 평수 등에 마음 쓰는 일도 없습니다.

거기까지는 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할 수도 있는데, '덕후'는 동시에 좀 자기중심적일 수 있으며 그만큼 주위 사람들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자신만'의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이상 이외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쓸 신경이 없다고도 볼 수 있죠. 예컨대 니키티나 선생님은 한/조선반도의 근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혹시나 가도 <삼국유사>의 현장을 답사하거나 관련 논문 등을 읽느라고 모든 시간을 다 보내시고 '광주'에는 한 번도 가본 적도 없으셨죠.

이런 '자기 일에의 집중'은 때로는 안좋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덕후'에게는 일반의 재가자 (?)들은 좀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덕후'는 초민감하고, 그 만큼 '덕후'의 삶의 일분 일분은 세상 모르는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왜 '덕후'의 전형이라고 할 천재적 시인들이 다들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사회'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에 해당되고, 사회뿐만 아니라 몸이라는 자기 자신의 궁극적인 물질성부터 감옥처럼 느껴집니다. 시 창작 과정에서 '접신'과 같은 체험을 하는 시인에게는 죽음이야말로 해방이고 해탈입니다. 이건 '극한 덕후'고 모든 '덕후'들이 다 그렇지 않지만, 좌우간 성덕 (성공적 덕후질)이 지불하는 개인적 대가란 세인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에 유발들이 무발들을 존 대접했듯이 우리도 '덕후'들을 관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괜찮은 사회"에 대한 저의 개인적 정의 (definition)는, '덕후', 사회적 적응을 거부하는 기인들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관용 사회입니다. 사실 후기의 쏘련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나쁜 데도 아니었습니다. 니키티나쌤 이외에 예컨대 빅토르 최 같은 '명덕후'들이 '성덕'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빅토르 최는 만약 군에 징집 당했다면 그가 과연 차후 '성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지만, 실제로 빅토르 최는 정신병원에 약 한달 동안 자진 입원하여 '정신병이 있다"는 진단서의 힘으로 병역을 빼먹었습니다. 그 덕분에 군에서의 가혹 행위 등으로 진짜 (!) 미치지 않고 '성덕'이 된 셈이죠.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외에는 양심(뿐만) 아니고 그냥 체질, 온 마음과 몸으로 무리를 지어 이루어지는 남정네들의 강요된 살인 훈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니면 아예 그냥 강요된 합숙 생활에 적응이 불가능한 '덕후'들에게는 과연 살아남을 길은 이민 이외에는 있나요? 참, 슬픈 질문이고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BLOG.NAVER.COM

덕후라는 운명
제가 레닌그라드 대학에 있었을 때 저를 지도해주신 분은 그 근방 과학원 산하 동방학 연구원의 마리안나 ...



176박걸, Jeongho Park and 174 others

3 comments40 shares

LikeShow More ReactionsComment
Share

Comments


Dahée Zoé de Hanyan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 사회에 순응하는 척 하는 덕후를 춤추게하는 글이네요 😂❤️
3
Hide or report this


LikeShow More Reactions
· Reply
· 10h

Sugi Yoo ㅠ ㅠ
노자님 감사해요 좋은 글~~속속들이 지적하시네요.
네 .근데 이민도 쉽지 않아요. 좀 울고싶네요 ㅠ ㅠ.
Hide or report this


LikeShow More Reactions
· Reply
· 6h

김성수 '한/조선반도의 코리아문학'이란 명명법이 제 요즘 공부의 고민과 관련해서 눈에 밟히네요. 저는 '코리아반도의 코리아문학'이란 개념이 남북과 한겨레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용어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참고로 전 조동일 선생님 제자로, 코리아문학을 공부하는 한국의 학자예요. 북조선 학자도 이런 박노자 선생 글에 댓글 다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ㅋ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