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5

1906 개혁개방의 ‘어두운 그늘’…선전 노동 현장으로 간 중국 대학생들 - 경향신문



개혁개방의 ‘어두운 그늘’…선전 노동 현장으로 간 중국 대학생들 - 경향신문




개혁개방의 ‘어두운 그늘’…선전 노동 현장으로 간 중국 대학생들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에 위치한 ‘제이식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압적 통제를 참다 못해 노조 결성을 시도했으나 사측은 폭력 진압했고 노동자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대학생들은 ‘제이식 투쟁 성원단’을 만들고 이들 노동자와 연대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올봄까지 이번 투쟁의 주역이었던 대학생 여러명이 끌려갔고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중국 대학생들이 결성한 ‘제이식 투쟁 성원단’이 주먹을 쥐어보이며 의지를 표현하는 모습. 티셔츠에는 ‘굳은 마음이면 힘이 된다’고 적혀 있다. 맨 앞줄 가운데에 있는 여성이 지난해 8월 구속된 위에신이다. 제이식노동자성원단 제공
이우연2019.06.08



작년 열악한 노동 환경에 항의
노조 결성 시도한 ‘제이식 투쟁’
참여 활동가 수십명 연행·구금


농민공 피땀으로 일군 경제성장
되레 빈부격차·노동권 하락 등
신자유주의적 모순에 불만 폭발



한 달 전, ‘샤오하이’란 가명의 중국 활동가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4월29일 이른 아침 베이징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 치우짠쉬안, 쟈오보롱, 쑨지아옌, 리즈이, 왕한슈 등 대학생 5명이 베이징 근교 이좡에서 야간 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실종됐다는 소식이다. 이들 학생은 노동절을 맞이해 베이징 근교의 대형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밤샘 후 집으로 돌아가던 이들을 경찰 당국이 미행해 체포한 것이다.

하루 전인 28일 밤에는 같은 대학 의예과 4학년 션위쉬안이 끌려갔다. 늦은 밤 같은 과 친구와 자습을 하고 있던 그 여학생은 갑작스레 닥친 경찰과 학공, 보안요원에 의해 구타를 당한 후 연행됐다. 학공이란 일종의 ‘선도부’다. 학생들에 대한 상벌과 사상, 기숙사와 취업 등을 포괄해 관리한다.

이번 연행은 지난해 8월 광둥성 선전에서 끌려간 23세 대학원생 위에신의 구속 이후 무려 9개월에 걸쳐 이어진 ‘제이식 투쟁’ 탄압 국면을 종결지었다. 수개월간 정부 단속을 피해 이어져온 활동가들의 저항은 거의 종적을 감추었다. 왜냐하면 이 투쟁의 주역들이 죄다 끌려갔고, 지금껏 풀려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그토록 처절하게 저항했고, 끝내 연행된 걸까? 이에 답하려면 현대 중국이 안고 있는 역사와 모순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제이식 테크놀로지 노동자 투쟁이 시작된 건 지난해 봄이었다. 개혁·개방의 상징적 산업도시 선전에 위치한 제이식 공장에서 일군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강압적인 통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 결성을 시도했다. 중국에서는 단 하나의 공식 노조만이 허용되는데, 이를 ‘공회’라 부른다. 공회는 경우에 따라 노동자를 위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진 않다. 지역·기업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이고, 빈번하게 정부 관료나 사측과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중국 혁명 이후 생산력 증강을 위한 노력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공회 스스로 ‘더 많은 노동’이란 구호를 내걸기도 했었다.


문제는 개혁·개방이 이뤄진 지 40년이 지난 오늘, 빈부격차와 노동권의 하락 등 중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모순이 첨예해졌다는 데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2억9000만명에 달하는 농민공(농촌에 호적을 두고 있으나 대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피와 땀을 거름 삼아 이뤄진 것이었다. 이들 농민공은 저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에서 도시의 험난한 생활을 견디며 자신의 질긴 삶을 이어왔다. 문이 잠긴 채 일하던 인형공장 여공 90여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참사, 진폐증 산재 노동자들의 죽음, 외자 기업의 철수로 대량 해고에 직면한 해고자들의 거센 시위는 ‘개혁·개방’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이었다.




그러다 농민공의 불만이 폭발한 상징적 사건이 터졌다. 바로 2010년 여름 포산시 혼다자동차 공장에서 일어난 파업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신세대 농민공 수만명은 일시에 공장을 멈추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임금인상과 기업공회 지도부를 독립적으로 선출할 권리를 요구했고, 상당부분 쟁취했다. 이 파업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그해 여름 광둥성과 푸젠성 등에선 수많은 파업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곳에는 다수의 농민공이 거주하는 산업도시가 모여 있다.


사실 개혁·개방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은 생산성 증가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피해가 미국이나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됐듯, 중국에서 역시 농민공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실업이 급증했고, 실질소득은 예년보다 낮아지기까지 했다. 2010년에 발생한 폭발적 노동쟁의는 금융위기 시기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었다.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왔다고 자평해온 중국 정부의 통치능력은 크게 의심받기 시작했다.


세계는 중국 노동운동의 성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생적이지만 집단행동이 주를 이루었고, 정치적 요구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업장의 사례가 주변 공장들에 영향을 주었고, 연쇄파업으로 번졌다. 많은 공장에서 공회가 설립됐고, 임금 역시 눈에 띄게 올랐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공회 개혁에 대한 요구는 확산됐지만, 광둥성에서 기업공회 대표에 한해 민주선거를 허용키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그리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회 변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초과 착취의 모순을 극복하는 게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었다. 정치적 성격이 약해 경제적이고 개별 기업에 대한 요구에 갇혀 있다는 평가도 있다.


2018년은 이와 같은 모순적 상황이 첨예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점증하는 사회 불만에 대한 통제가 강화됐고, 노동자운동에 대한 탄압도 거세졌다. 노동절 당일의 전국적 타워크레인 파업, 택시 운전사들의 파업 등 눈에 띄는 흐름도 있었지만, 정부도 더는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만두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노동NGO에 대한 제도적 통제가 강화됐다.


제이식 투쟁은 이 한복판에 놓여있었다. 제이식 사측은 노조 설립 시도에 폭력 진압으로 맞대응했다. 주동자들은 경비원들에게 두들겨 맞아 공장에서 쫓겨났고,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항의하자 광둥경찰은 이들을 죄다 연행해버렸다. 며칠 후 노동자들이 석방될 즈음 제이식 노동자들의 투쟁은 마오주의 좌파 학생들이 가세한 ‘정치적 저항’으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제이식 공장 앞으로 모인 베이징대학과 인민대학 등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1000명 남짓의 공장에서 일어난 작은 싸움을 오랜 시간 움츠려온 마오주의 좌파와 자생적 농민공이 조우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만들었다.


필자가 이 ‘마오좌파’ 학생들을 만난 건 이들이 거센 학생운동 탄압의 한파를 맞고 있던 지난겨울이었다. 학생활동가들은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적 타락의 길로 가고 있으며, 엘리트 당관료들과 자본가들이 중국 사회를 끔찍한 양극화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중국 사회가 “다시 노동자·농민을 위한 나라가 되려면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을 견인하며 그 모순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농민공을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태일평전 읽은 신세대 좌파
연대하며 ‘정치적 저항’ 이끌자
공안 “흑악세력” 강력한 탄압


“잠시 움츠러들 수는 있지만
학생·노동자운동 계속될 것”
고군분투 중인 중국 변혁의 꿈


경기 침체·양극화 시진핑체제
직면한 사회 모순 해결 못하면
‘자본의 길’ 맞선 저항 계속될 것


<전태일평전>의 중국어판 표지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중국어판 표지

물론 덩샤오핑체제 이후에도 ‘자본의 길’에 반대한 급진파들은 계속 존재해왔다. 이 젊은 마오좌파들이 앞선 세대와 다른 게 있다면, 스스로 변화의 거름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에 있다. 대학마다 독서모임 형태로 존재하던 이들이 급격한 실천 노선으로 변화한 데에는 당대를 바라보는 진지하고 뜨거운 성찰이 있다. 주변국의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이들은 <전태일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택시운전사>나 <카트> 등 정치나 노동 문제를 다룬 한국영화들을 빠짐없이 보기도 한다. 이들을 만났을 때 나는 “지금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보다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지금 세대의 청년들에게 설득력이 약해보인다”는 아쉬움을 표하긴 했지만, 빈곤과 착취, 직장 내 성폭력 등 중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꾀죄죄하고 눈가엔 다크서클이 짙었던 학생 활동가들은 또박또박 자신들의 시각과 전망을 이야기했다. 운동의 규모와 수준이 높다고 할 순 없었지만, 시야의 폭과 역사적 이해만큼은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산당의 집정자도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알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일정한 소득분배 개선과 중앙집중적 공회 개혁을 통해 잠재하는 위기를 관리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위기관리’ 차원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농민공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 볼 순 없다. 더구나 현장에서는 노무관리를 강화하고, 통제되지 않는 노동운동가에 대해선 강력한 탄압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월 선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농민공 대안매체 ‘신세대’의 20~30대 편집자들이 늦은 밤 공안 당국에 의해 연행됐는데, 1년 사이 이처럼 부지불식 끌려간 활동가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농민공의 자생적 운동에 정치적 성격이 가미되지 않게 하려는 안간힘이다. 더불어 노동운동가들을 ‘흑악세력’이나 ‘경외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농민공 집단과 떨어뜨려 놓으려는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 선전 북부의 거대한 폭스콘 공단 앞엔 ‘흑악세력에 속지 말라’는 선전 문구가 즐비하다.


베이징대학의 페미니스트이자 마르크스주의자 위에신이 선전 시내 한복판에서 끌려간 지 어느덧 277일(6월8일 기준)이 지났다. 9개월간 연행된 이들만 50여명에 달하는데 농민공 활동가와 사회운동가 일부를 포함해 대학생이 주를 이룬다. 이들 중 일부는 재판과 면회도 허락받지 못한 채 구금되어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광둥성 선전시 도심에서 베이징대, 베이징과기대, 인민대, 난징중의학대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알리는 모습. 제이식노동자성원단 제공

오늘날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몽’을 꿈꾸고, 드론·5G 등 첨단기술을 통해 자본주의 상품시장을 주름잡는 강대국이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건 공산당 선전문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언론과 집회·결사에 있어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광둥성에서 만난 한 활동가는 “대안좌파의 성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이런 제약이 “자본가계급과 엘리트관료들에게만 좋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강력한 탄압이 존재하는 이상,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의 조우는 꿈꾸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통제가 중국 사회의 잠복된 열망을 영원히 잠들게 할 순 없다. 농민공과 청년 지식인들에게 새겨진 역사적 위치와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서 만났던 한 독립연구자는 말한다. “잠시 움츠러들 순 있지만,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의 활동가들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그의 말처럼 중국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사회운동은 자신이 직면한 처절한 조건 속에서 희미하나마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경기 침체, 무역분쟁과 빈부 격차, 사회도덕의 위기 등 집정세력 스스로 직면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자본의 길’에 맞선 저항은 계속될 것이다.


한 달째 연락이 두절된 샤오하이가 부디 무사하길….

▶필자 이우연

중국에 체류하면서 현지의 사회운동·학생운동 활동가들과 교류했었다.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국제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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