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해군아저씨들을 무척 동경했습니다. 하얀색 군복있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녹색전투복 입은 육군아저씨들하고는 뭔가 차별화된 멋이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나중에 군대가면 해군에 갈거야!'라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어릴 적 TV에 나오는 대한민국 해군은 작지만 강하고 유능한 이미지였습니다. 서해훼리호 사고때 해군잠수부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수습작업을 하거나, 림팩훈련이 나서면 강대국 해군들로부터 Cute Navy로 불리는 한국해군의 작은 군함이 거친 파도를 해치며 대양에서 원양항해를 하는 모습이나 한국의 209급 잠수함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는 승전보를 볼 때마다 꼭 해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고 1차시험에 합격했을 때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군사관학교가 부산에 있을 줄 알았는데 진해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에 설레임은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체력검정을 통과했지만 신체검사에서 그만 불합격 통보를 받고 말았습니다. 치아부정교합.. 치아가 약간 고르지 못하다는 것인데..저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탈락을 했고 우울한 마음으로 해군버스를 타고 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사관생도는 정말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이후에 수능시험을 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무역학과에 진학하여 잘 다녔지만 그때의 아쉬운 마음은 사실 대학재학 기간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시절 IMF의 여파가 학내에도 진동을 하던 시기였고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여건의 돌파구로 군장학생의 길을 택했고 일부는 3사관학교에 편입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던 시기여서 저도 해군장학생에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7년을 의무복무해야 한다지만 직업으로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크게 반대하셔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결국 저는 부모님의 일을 돕다가 졸업 후 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하여 육군에서 36개월간 짧게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전역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스컴에서 나오는 해군관련 기사나 군사사이트에서 해군관련 자료를 자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연평해전과 북괴의 천안함 폭침등 많은 해군장병의 희생을 격으면서도 눈부신 발전을 하여 2차대전때 쓰던 기어링 구축함을 운영하는 연안해군/ Cute Navy가 아닌 당당한 지역해군으로 성장했으며 대양해군으로 가기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정예해군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최신예 이지스함을 자체 건조하여 배치한 손꼽히는 해군이 된 모습에 육군예비역인 저도 가슴이 뜨거울 때가 많습니다.
퇴근하고 웹서핑하던중 해군관련 과거 포스팅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관련 내용을 구글링해보았습니다....
2010년 여름 림팩훈련을 마치고 개선하던 세종대왕함에서 한 수병이 복통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함내 군의관이 응급조치를 하였지만 이미 함내 장비로는 이 수병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서 이 어린 수병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함장은 가장 가까운 일본에 주일한국대사관 무관장교에게 연락을 하였고 무관장교가 일본정부에 협조를 공식적으로 요청하였습니다. 이 요청을 접수한 일본 정부는 해상보안청에 오더를 내립니다. 먼저 해상보안청이 헬기를 이용한 구조를 계획했습니다. 세종대왕함에는 헬기가 착륙가능한 갑판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1000Km 가까이 떨어진 망망대해까지 갈 항속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상보안청 자산으로는 구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해상보안청은 일본해상자위대가 구조를 요청하였고 해자대는 거리를 볼때 고정익기가 동원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동원가능한 항공기는 해상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신메이와 US -1A 이외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수상이착륙기는 파도가 거의 없거나 잔잔한 연근해에서 주로 작전을 하는 '항공기'이고 파도가 거친 태평양 한가운데서 이착륙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상자위대는 한국해군 수병의 구조를 위해 신메이와의 출동을 결정했고 이 기체는 단독으로 1000Km를 비행하여 세종대왕함을 망망대해에서 찾아내고 태평양 한가운데 수상착륙을 감행하여 소형 단정에 의해 이송된 수병을 구조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신메이와에 구조된 송모 상병은 일본 해상자위대 아츠기 기지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자위대가 외국군병사를 구조한 첫 사례이고 상당히 대형작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고 거의 기사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아시는 분들은 대부분 해군 예비역이시거나 군사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제외하시고 거의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언론사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기자들이 과거에 비해 필력이나 취재력, 또는 외국어 구사능력이 과거 저널리스트들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런 기자들이 쉽게 조회수를 올리고 이슈화를 하는데 반일정서를 활용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3.1절이나 8.15에 가까울 때 이미 사료에 의해 발견된 내용도 중복심화보도로 열을 올리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들은 철저히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수단이 주둔한 한국군 부대가 현지 무장조직에 의해 공격위협이 커지자 인근 일본육상자위대로부터 5.56mm보통탄을 빌려서 방위력을 강화하여 위기를 넘긴 사례까지 왜곡보도하고 현장 지휘관을 매도하는데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저널리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기레기'라는 신조어를 만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언론인들 그 자신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동해 바다에서 일본해상자위대는 UN군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핵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는 테러국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 대한 초계활동을 미국,호주를 비롯한 동맹군대와 진행중입니다. 여기에 동맹국인 한국해군의 적대적행위가 있었고.. 만약 우발적이라면 상호양해하에 군과 군이 협의할 문제이고 또 정치이슈화한 것은 유감스럽습니다. 국익에도 역시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정부는 더이상 수세적인 조용한 처리를 할 생각이 없을 것이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쉴드가 없는 이상 눈치볼 곳도 없는 상황이므로 장기간 집요하게 이슈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난장판에 일부 언론인들이 작은 부스레기를 줍겠다는 욕심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뿜어대고 있는 모습에 눈쌀이 찌부려집니다.
1940년 독일과의 싸움에서 굴욕적인 덩케르트 철수를 했던 영국은 강력한 동맹군대들과 함께 5년후 승전국이 되었고 소련을 적으로 돌리고 형편없은 약소국들과 빈약한 동맹을 가진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1/3에 달하는 영토를 빼앗기고 국토가 갈라지는 비극을 맞이하였습니다. 역사가 분명히 우리에게 신호를 주고 있습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