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7
박완서씨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박완서씨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박완서씨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등록 :2005-12-26 21:54수정 :2005-12-26 21:54
박완서씨 기행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
“본다는 것은 곧 책임진다는 것이더라”
작가 박완서(74)씨가 기행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을 내놓았다. 평소 문단 동료 및 지인들과 더불어 나라 안팎 여행을 즐기는 그의 길고 짧은 여행 기록들이 묶였다.
표제작은 여행지에서 잃어버린 가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 ‘문인 회유책’의 하나로 나가 본 유럽과 인도 여행이 작가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여행지였던 인도 뉴델리 공항에서 부친 짐이 김포공항까지 따라 오지 않았다. 그 짐은 끝내 되찾지 못했는데 작가는 거기서 삶과 죽음에 관한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63쪽)
중국 여행 초창기 역사학자 이이화씨와 소설가 송우혜씨가 함께한 연변 여행에서 세 사람이 각자 찾아낸 울음터 얘기가 인상 깊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한 송우혜씨가 먼저 두만강 건너 함경도 땅이 지척으로 보이는 투먼의 끊긴 다리 위에서 가히 전신을 동원하다시피 통곡한다. 좋은 말로 달래고 위로했음에도 끝내 울음을 그치지 않자 송씨에게 그예 호통을 치거나 모욕을 주기도 했던 작가 자신은 어떠했던가. 연길을 떠나 선양으로 향하는 날 기차역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연변의 지인들 모습을 보고 어릴 적 고향에서 경험했던 지극한 배웅을 떠올리며 새삼 눈물바람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이화씨. 압록강 유람선에 올라 강 건너 신의주 쪽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던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내어 울고 만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제목 아래 한데 묶인 재난 지역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 여행기는 여행이 무책임한 구경에 그칠 수는 없는, 타인(의 행복 및 불행)과의 만남임을 역설한다. 에티오피아 난민촌의 참경을 목격하고 작가는 쓴다: “다만 보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책임감이 되고 있었다. 책임을 다할 자신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긴 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보기가 잘못이었다.”(111~112쪽) 그렇다. ‘본다는 것은 곧 책임진다는 것’이다.
티베트 기행문 <모독>은 1997년에 나온 같은 제목의 단행본에서 뽑았다. 한족의 압제 아래에서도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가난하지만 순결하게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에 잠긴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215쪽)
책의 제1부는 남도와 하회마을, 섬진강 벚꽃길과 오대산 등 국내를 여행하고서 쓴 글들이다. 여기서 작가는 새삼 우리나라의 자연을 찬미하는데, 그것이 해외의 이름난 명승지를 두루 섭렵한 뒤의 소감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애국주의나 폐쇄주의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 나라의 자연처럼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운 자연은 지구상에 어디에도 없다. 신이 온갖 좋은 것을 다 모아다가 공들여 꾸민 정원 같다.”(26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0720.html#csidxfd9f0fe52281c5596d2567662ed8a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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