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7

[문학] 박완서씨 티베트-네팔기행문집 `모독' 출간 - 조선일보 > 문화



[문학] 박완서씨 티베트-네팔기행문집 `모독' 출간 - 조선일보 > 문화



박완서씨 티베트-네팔기행문집 `모독' 출간
기사 북마크 기사 공유 글꼴 크기
입력 1997.01.27 17:35

『고개를 넘을 때마다 성황당 같은 돌무더기를 만나는 것도 신기하
다. 돌무더기뿐 아니라 울긋불긋한 헝겊이 걸려 있는 것도 성황당하고
비슷하다. 돌무더기나 아무렇게나 뒹구는 돌 중엔 문자가 새겨
진 돌도많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그들의 진언이라고 한다. 「옴마니
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라고 한다.』.

소설가 씨가 와 네팔 기행문집 「모독」을 학고재에서 출
간했다. 「모독」이란 제목과 , 네팔의 저 원시성과 생명을 함축하
고 있는 대지와는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것일까? 육순을 넘긴 작가에게
백두산보다 1천m 가량 더 높은 의 라싸(표고 3천6백50m)와 5천m
나 되는 고원지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고산병 예방책으로 연신 물을
들이켰지만, 뙤약볕의 빨래처럼 몸은 금세 건조해졌다. 작가와 동행한
시인 민병일, 소설가 이경자 김영현씨 등은 만약을 대비해 산소통도 준
비했다.

작가가 찾아간 는 현재 중국 서장 자치구에 속한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지는 이번 여행에서 아쉽게도 제외됐다. 자치구의 중심 라
싸에 도착한 작가의 눈에 인들의 생김새는 우리와 닮았지만, 절
의 풍경은 별천지였다. 우선 참배객들이 바치는 게 초나 향이 아니라
버터기름인 탓에 절의 공기는 누릿한 냄새를 풍겼다. 게다가 부처상은
부처 위에 여인이 올라앉은 남녀합환상이었다. 그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인들.

작가는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
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라고 적었다.

황갈색의 풍경 속을 지나가는 작가 앞에서 메마른 흙바람이 자주 일
어났다. 『흙바람은 태초의 혼돈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연이 풍화되는 종
말의 과정도 동시에 상상케 한다』고 그는 썼다. 그의 발길은 9백99개의
방이 있다는 포탈라궁을 거쳐, 세계의 지붕이라는 초모랑마(
의 현지 이름), 카일라스산(수미산)으로 이어지면서 초월의 사다리를
올라간다. 고산 지대에 핀 들풀과 꽃들이 자꾸만 작가의 발목을 잡는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
는 사물들 속에 숨어있는 언어를 하나씩 불러낸다. 마치 인들이
옴마니반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을 외치듯 그는 풍경 속의 진경을 불
러낸다. 작가는 네팔로 넘어가기 전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
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랏
채(의 지명)를 떠나면서 남길 말은 그 한 마디밖에 없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