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9

전국진 - <반전의 시대> 이병한



디자仁

반전의 시대> 이병한

tigeryoonz|2016.11.04

"우리는 20세기 최대의 정치 주도가 최악의 관료제 국가(소련)의 출현으로 귀결되고만 역설을 알고 있다. 그래서 68혁명 이래 신좌파들은 경쟁적으로 국가로부터 철수했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탈중심적 하위 정치를 열어젖힌 것이다. 헌데 타자를 존중하고 소수자에 귀 기울이는 그 사려 깊음이 '세미나 좌파'의 습성을 강화시킨 측면도 있다. 결정과 결단이 없는 '탈정치의 정치'가 만연한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고, 주변성 소수성으로 탈주를 거듭하면서 ,정작 중심과 중앙은 공백 지대가 된 것이다. 그 정치 부재의 빈공간을 신우파가 잠식했다. 신좌파의 약진 기간이 곧 신보수주의(네오콘)와 신자유주의 전성기였음을 뼈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반전의 시대> 241p, 이병한,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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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계속 곱씹게 된다. 이런 탓에 최근 각종 계급주의(편가르기)의 망령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뒤를 받치고, 선동가는 대중을 끈다. 하지만 가치는 모호하며 미래는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 약속도 하는둥 마는둥 퉁치고, 선동당한 이들도 거짓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정치가 미래가 아닌 게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과거에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앎을 추구하던 자연철학과 소크라테스(인간 철학)가 대립하던 다원성은 어느새 플라톤의 올바름(다소 전체주의적)을 경유해 결국 삶의 태도로서의 철학으로 기울었다. 이들은 알렉산더에 의해 제국화된 정치 구조에서 즐거움(에피쿠로스)이나 고요함(스토아) 혹은 회의적(회의주의) 태도인 개인의 삶에 몰두했고 탈정치화 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으로 재편되면서 개인의 삶의 태도조차 의미를 잃고, 전체주의적인 법(로마법)과 말 다툼(수사학)으로 귀결된다. 앎이 삶이 되고, 삶은 말이 되었다. 법은 역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말잘하는 이들의 칼이 되어 서로의 소유 경계만을 가를 뿐이다. 중간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팽창을 거듭하던 로마제국도 팽창이 한계에 이르자 5세기가 되어 분해되었다.


이 거대한 흐름은 20세기에서 21세기 정치에 작은 패턴으로 흐른다. 구좌파의 계급이상은 신좌파의 다양성으로 그리고 21세기 공허한 논쟁으로 귀결된다. 논쟁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가치만을 따지고, 냉정하기 보다는 다소 감정적이다. 이성이 아닌 감성이 말을 지배한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바뀌었듯, 현대도 민주주의가 파쇼적 입헌군주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우리는 플라톤 시대다. 역사 패턴상 황제정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플라톤 시대가 그랬듯이 참주가 들어설 여지는 아주 높다. 중국과 북한은 일당독재로 민중이 개입할 여지가 좁다. 일본과 한국은 참주가 독재자일지 군주일지는 아직은 민중의 선택에 달려있다. 역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할까... 사람(리더)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모두가 소인인 시대에서 갑자기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군자는 리더만으로 충분하다. 민중이 역사에 관심을 두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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