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5

윤미향 "30년, 길 위에서 평화가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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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47 m ·



"30년, 길 위에서 평화가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 좀 긴 글입니다.

1992년 1월 8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첫 번째 수요시위를 시작한 이후 어느덧 오늘, 수요일로는 30주년이 되었고, 날짜로는 이번 주 토요일이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차 수요시위 때에는 피해자들은 참석하지 못하고 정대협 회원단체들 중심으로 진행했지만, 이후 수요시위부터는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요구하며 피해자들은 활동의 중심이 되셨습니다. 여전히 ‘성폭력’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올바르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수요시위에 나온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수요시위에 나오기를 계속하셨습니다.
피해자를 향해 여전히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의 손가락질이 향해 있을 때, 용기있게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본군‘위안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셨던 김학순 할머니,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일본 오키나와에 살면서 김학순 할머니보다 앞서 본인의 삶을 동포들에게 드러내시고, 목소리를 내셨던 배봉기 할머니 그리고 북녘의 피해자들,
한국의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용기를 내서 “나도 피해자”라며 목소리와 얼굴을 공개했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대만 등 아시아의 피해자들,
일본 여성으로 일본군‘위안부’가 되었던 삶을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다른 아시아 피해자들과 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전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했던 피해자들,
그 모든 분들이 19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무지와 침묵의 죄를 깨닫게 해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사실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 아시아 피해자들의 요구를 거부한 채 오히려 피해자들이 만들어온 인권운동의 역사를 지우고, 부정하며 탄압을 해 온 지난 30 년 동안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세상과 이별을 하시고, 우리 곁에 빈의자들로 남아있습니다. 그 빈 의자 옆에서 ‘위안부’는 가짜다,‘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확성기로 소리를 높이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안죽을거예요. 일본이 우리를 그렇게 독하게 만들었어요. 우리는 다 살아날 수 있고...” 1992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1997년에 돌아가신 강덕경 할머니께서 병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을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남기셨다고 생각합니다.
1992년에 활동을 시작하여 2019년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다시 희망이 찾아올 건가?”이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 길 위에서 연대는 편하지 않았습니다.

김학순의 용기로 시작하여 김복동의 희망으로 활짝 피운 지난 30여 년의 운동, 돌이켜보면 긴장감을 한시도 놓아보지 못한 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에 해결할 수 있을까, 70년 전 과거 문제를 어떻게 하면 2000년대를 사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관심 갖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너무 무겁지 않게 할머니들의 역사에 관심갖고 함께 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겪은 문제를, 아시아 여성들이 겪은 문제를 세계가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나라 혹은 그 지역의 문제로 안고 연대하게 할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들을 머릿속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전략가였던 김복동 할머니는 민중들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힘겹게 세상살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도 힘겨우면서도 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느 수요시위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을 향해“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다”“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말하며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희망을 입에서 놓지 않으셨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 할머니의 상황과 우리 사회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는 2008년,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때였고, 연일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 날도 회사에서 해고당한 십 수 명의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수요시위를 찾아왔습니다.
 
일본정부는 계속해서 ‘65년 한일협정’ ‘아시아여성평화국민기금’으로 위안부 문제는 해결했다고 반복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합의 이후에는 피해자들이 요구해 온 일본 정부의 범죄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요구는 묵살 당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이나 당시 정대협 사무처장과 대표인 저의 개인 이메일을 수시로 열어서 보며, 정보를 수집하고 탐지하다가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자 수사를 종료했다는 통지를 해오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행사나 회의가 잡혀 할머니들과 함께 혹은 저 혼자 일본을 방문할 때, 행사장 옆 공간을 일본 우익단체가 빌려서 맞불 집회를 하기도 하고, 행사장 입구에서 소란스럽게 떠들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인권을 훼손하고 폄훼하는 일을 서슴지 않던 때였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벽 모서리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나무 말뚝을 세워놓고 간 일본 우익단체 대표, 블로그에 자신의 행동을 올리며 ‘매춘부’ 박물관에 말뚝을 박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며 같은 행동을 할 ‘애국자’를 모집하고, 정대협 사무실에도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새긴 플라스틱 막대기를 우편물 속에 넣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윤미향 대표 앞으로 활동을 당장 중단하라는 협박성 편지가 일본에서부터 수차례 배달되기도 했고, 그 편지봉투 안에는 태극기 배경 밑그림 위에서 남녀가 성관계 하는 적나라한 모습, 태극기 위에 대소변 하는 여성의 그림이 들어있어 혐오감과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수요일만 되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I hate Korea” 등의 말을 하며 활동가들을 공격하는 일들도 반복되었습니다.
 
일본 시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나리타공항에서, 간사이공항, 히로시마 공항 등지에서 입국 수속 중 혹은 캐리어를 찾는 중에 이유 없이 조사실로 데리고 가 긴 시간동안 특정 공간에서 의미없는 심문을 하며 겁박했고, 총기류와 마약류, 거액의 달러 그림을 보이며 소지했냐고 가방 다 열어 속옷까지 들추어 내며 모욕하고, 범죄자 취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후원하는 등 지원 활동을 해오던 한 재일동포가 위급하게 찾아와 도쿄에 있는 주일한국대사관 영사가 자신을 불러 안기부에서 나온 영사라고 본인을 소개하면서‘윤미향이 대표로 있는 한 정대협을 도와주지 말라’, ‘만약 듣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끊어야겠다며 저를 찾아오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탄압이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이 일본 우익단체와 공안기관과 내통하여 제 방일 정보를 전달하고, 공항에서 ‘빤스까지 벗기라’는 지시를 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MBC 피디수첩 증언을 들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가로써 위험했던 삶의 자리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 활동의 자리에서 김복동은 ‘희망’을 이야기 하고, 길원옥은 평화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처절한 희망인지, 얼마나 아픈 평화인지, 물러설 곳이 없어 험난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 산을 넘기 위해 길 위에서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의 무게가 느껴져 오늘 그 빈 의자 앞에 더욱 더 큰 죄송함이 느껴집니다.
“길 위에서의 희망, 우연히 찾아오는 기적이 아니더라!” 하는 저의 고백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2019년 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는 이 세상과 이별을 하셨지만, 할머니가 병상에서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운 채“누가 뭐라해도 아베가 졌어. 우리가 이겼어”라고 하셨던 말씀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모르고 잘못된 과거에 멈춰있는 일본정부는 졌고, 잘못된 과거를 해결하기 위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세계를 누비며 외쳤던 피해자들, 자신들의 피해 만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향해 연대하며 세계의 여성들과 어깨동무 하였던 피해자들이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 곁에서,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함께 동행하며 30년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들! 그런 우리 옆에서 세상의 온갖 혐오스런 말들과 모욕적인 행동을 다 해대도 당당하고 더 힘차게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 우리들이 이겼습니다.
김복동에게 희망은 바로 그런 우리들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죽음 바로 직전에 “여기에도 희망이 다시 찾아올 것인가?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삶을 지키며 “김학순의 용기”를 기억하고, “길원옥의 평화”를 이루며, “김복동의 희망”으로 살아내는 우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우리가 열어갈 희망, 평화

지금 다시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그 분들이 품었던 평화와 희망을 품어 봅니다.
“내가 이왕 증언하러 나섰는데 기자회견을 못하겠느냐”김학순 할머니

“우리가 그렇게 나발을 불지 않았으면 이 문제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김복동 할머니, 정대협 “잊으면 안돼 절대로, 그녀들의 이야기” DVD, 2002년 인터뷰)
 
“우리가 안나가면 일본대사관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젊은 사람들도 힘이 빠지지 않겠는가. 우리 문제에 우리 피해자들이 당연히 앞장서야지” 어느 추운 겨울 수요일에 길원옥 할머니
“사죄없인 우리들이 다 죽어도 끝나지 않아” 2008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길원옥 할머니

“우리는 일본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한사람이라도 남을 때까지라도 싸울 것입니다.” 강덕경 할머니
 
“우리 문제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돕고, 우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함께 힘을 써달라”김순덕 할머니

우리에게 길이 되어준 할머니들, 이제 우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후세대들에게 어떤 길이 되어 줄수 있을까요?
 
바로 수요일의 평화!
오늘 함께 하지 못하셨다면,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수요일에는 언제나 정오 12시, 평화로에 평화의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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