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넘은 트라우마의 그늘…5·18 2세대들의 고통
입력 2022.01.05 (06:00)취재K

한 달 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유공자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평생 계엄군의 총격으로 인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온 분들이셨습니다. 부상당한 부위의 통증,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하는 수십여 개의 알약들. 두 사람에게 5·18은 몸속에 각인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영상] 5.18 피해자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
이들이 KBS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공통된 말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5·18 이후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 가장 노릇을 못했고, 당시 심리적 후유증으로 인해 술에 취해 가족에게 큰소리치거나 화풀이 한 적이 많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인 5·18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는 비교적 알려져 있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5·18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형편입니다. 5·18 피해자 2세대들의 삶을 들여다 본 이유입니다.
■ 5·18에 속박된 '5·18 둥이'의 삶

1980년 2월, 광주에서 태어난 기태현 씨는 이른바 '5·18 둥이'입니다. 기 씨가 태어나고 석 달 뒤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갓난 기 씨를 두고 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던 날 총에 맞아 숨진 겁니다. 기 씨는 곧장 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자랐습니다.
기 씨의 삶은 늘 5·18에 속박돼 있었습니다. 기 씨는 5·18과 자신의 삶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이 컸고,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조부의 원망을 견뎌야 했습니다. '빨갱이', '폭도'라는 왜곡된 사회적 시선에 상처도 받았습니다.

이런 '5·18 피해자 2세대'들은 5·18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에서 5·18로 인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트라우마 경험이 없음에도 그들의 부모와 유사한 트라우마 반응을 드러내는 경우, 이를 학술적 용어로 '트라우마의 세대 전이'라고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잠재돼 있다 정치·문화·사회적 자극에 의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진다는 개념입니다.
대물림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5·18 2세대들의 존재는,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멈춰야 할 이유와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 "태어나 보니 여기"…경제적 빈곤과 상처 견뎌야 했던 유년 시절

기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생계를 책임졌던 할아버지는 줄곧 무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마냥 원망스럽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어느 것 하나 기 씨 마음껏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기 씨는 "할아버지가 이력서를 내면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다니면서 취업을 방해했다는 말을 뒤늦게 5·18 유가족 모임에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가족 안에서 영원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기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맞는 것보다는 그런 게 힘들었다. '애비 잡아먹은 놈'이라는 말. 내가 태어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 보니 여기였는데 그게 좀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것도 기 씨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 자신의 자녀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기 씨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상실감이라기 보다는 결핍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악착같이 노력해 가정을 꾸렸지만,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여전한 고통입니다. 기 씨는 "우리 가족은 빨갱이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다. 광주 시민이 다친다, 죽는다, 싸우자 그 말 듣고 따라가신 건데..."라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 "5·18 시민군이었다" 2년 전에서야 알게 된 아버지 사연

또 다른 5·18 2세대인 임이랑 씨는 어린 시절 대낮에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걸 기억합니다. 크게 화낼 일이 아닌데도 큰 소리로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통금'이 엄격했습니다. 밤은 위험하다며 남동생은 물론 자신의 외출을 제한한 것입니다.

임 씨는 아버지가 2년 전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나 잡아가지 마"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당시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담했습니다. 임 씨는 아버지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오랜 시간 편찮으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버지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게 된 건 2년 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5·18 시민군으로 활동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홀로 감내해 온 고통을 털어놓은 아버지를 보며 임 씨는 해묵은 궁금증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 끊임없이 5·18과 대면하는 2세대...트라우마의 ‘전이’

유가족 2세대들의 부모는 5·18때 사망했거나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2세대들은 부모를 통해 5·18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부모가 겪는 트라우마를 동일하게 겪기도 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연구를 지속해 온 심리건강연구소 김석웅 소장의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의 집단 트라우마> 연구를 보면, 5·18 2세대들의 삶은 5·18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으며 그 사건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으며, 학대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열사’와 ‘영웅’이라는 수사와 ‘빨갱이’ 또는 ‘폭도’라는 양면적인 평가 속에 복잡한 감정을 느껴 왔습니다.
김 소장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5·18은 사건에 대한 왜곡, 부인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이를 직접 체험하지 않는 집단에게 전승된다"고 말합니다.
가정 내에서 5·18을 겪은 부모의 경험이 공유되고 간접적으로 그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성장 과정에서 이를 해석하며 트라우마가 재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즉 ‘가정’에서부터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에게 전승되고 있었습니다.
■ 트라우마를 넘어 이해와 희망으로

그러나 5·18 2세대들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5·18을 다시 기억하고, 가족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태현 씨는 여태껏 5·18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께서 5·18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늘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반발심 때문이었는지 더 보기가 싫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 씨의 생각이 바뀐 건 가정을 꾸린 뒤였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할아버지를 새삼 높이 평가했습니다. 기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5·18을 배우며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겪은 5·18과 아들이 보는 5·18은 다르구나"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미술 심리치료를 전공한 임 씨는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임 씨는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서가 아닌, 5·18을 겪은 청년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아오셨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긴 세월 자신의 시민군 활동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서도 "말 안 하고, 혼자 감당해야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의 방법이었던 걸로 생각된다"고 말합니다.

2세대를 넘어 3세대까지도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 그러나 5·18 2세대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도 못한 단계입니다. 김 소장이 강조하는 ‘트라우마의 전이’에 대한 치유 방법은 결국 억울함에 대한 해소입니다.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5·18 피해자들과 2세대들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고, 5·18에 대한 부인과 왜곡, 폄훼가 2세대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겁니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남은 이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5·18 민주화운동. 대물림되는 아픔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첫걸음은 5·18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5·18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김애린 기자의 기사 모음

한 달 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유공자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평생 계엄군의 총격으로 인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온 분들이셨습니다. 부상당한 부위의 통증,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하는 수십여 개의 알약들. 두 사람에게 5·18은 몸속에 각인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영상] 5.18 피해자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
이들이 KBS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공통된 말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5·18 이후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어 가장 노릇을 못했고, 당시 심리적 후유증으로 인해 술에 취해 가족에게 큰소리치거나 화풀이 한 적이 많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인 5·18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는 비교적 알려져 있는 주제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5·18의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형편입니다. 5·18 피해자 2세대들의 삶을 들여다 본 이유입니다.
■ 5·18에 속박된 '5·18 둥이'의 삶

1980년 2월, 광주에서 태어난 기태현 씨는 이른바 '5·18 둥이'입니다. 기 씨가 태어나고 석 달 뒤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갓난 기 씨를 두고 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있던 날 총에 맞아 숨진 겁니다. 기 씨는 곧장 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자랐습니다.
기 씨의 삶은 늘 5·18에 속박돼 있었습니다. 기 씨는 5·18과 자신의 삶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이 컸고,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조부의 원망을 견뎌야 했습니다. '빨갱이', '폭도'라는 왜곡된 사회적 시선에 상처도 받았습니다.

이런 '5·18 피해자 2세대'들은 5·18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에서 5·18로 인한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트라우마 경험이 없음에도 그들의 부모와 유사한 트라우마 반응을 드러내는 경우, 이를 학술적 용어로 '트라우마의 세대 전이'라고 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잠재돼 있다 정치·문화·사회적 자극에 의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진다는 개념입니다.
대물림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5·18 2세대들의 존재는,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멈춰야 할 이유와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 "태어나 보니 여기"…경제적 빈곤과 상처 견뎌야 했던 유년 시절

기 씨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생계를 책임졌던 할아버지는 줄곧 무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마냥 원망스럽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어느 것 하나 기 씨 마음껏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기 씨는 "할아버지가 이력서를 내면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다니면서 취업을 방해했다는 말을 뒤늦게 5·18 유가족 모임에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가족 안에서 영원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기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맞는 것보다는 그런 게 힘들었다. '애비 잡아먹은 놈'이라는 말. 내가 태어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 보니 여기였는데 그게 좀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돌봄을 받은 경험이 없다는 것도 기 씨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 자신의 자녀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기 씨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상실감이라기 보다는 결핍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악착같이 노력해 가정을 꾸렸지만,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여전한 고통입니다. 기 씨는 "우리 가족은 빨갱이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다. 광주 시민이 다친다, 죽는다, 싸우자 그 말 듣고 따라가신 건데..."라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 "5·18 시민군이었다" 2년 전에서야 알게 된 아버지 사연

또 다른 5·18 2세대인 임이랑 씨는 어린 시절 대낮에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했던 걸 기억합니다. 크게 화낼 일이 아닌데도 큰 소리로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통금'이 엄격했습니다. 밤은 위험하다며 남동생은 물론 자신의 외출을 제한한 것입니다.

임 씨는 아버지가 2년 전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나 잡아가지 마"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당시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담했습니다. 임 씨는 아버지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오랜 시간 편찮으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버지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게 된 건 2년 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5·18 시민군으로 활동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홀로 감내해 온 고통을 털어놓은 아버지를 보며 임 씨는 해묵은 궁금증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 끊임없이 5·18과 대면하는 2세대...트라우마의 ‘전이’

유가족 2세대들의 부모는 5·18때 사망했거나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2세대들은 부모를 통해 5·18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부모가 겪는 트라우마를 동일하게 겪기도 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연구를 지속해 온 심리건강연구소 김석웅 소장의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의 집단 트라우마> 연구를 보면, 5·18 2세대들의 삶은 5·18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으며 그 사건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으며, 학대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열사’와 ‘영웅’이라는 수사와 ‘빨갱이’ 또는 ‘폭도’라는 양면적인 평가 속에 복잡한 감정을 느껴 왔습니다.
김 소장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5·18은 사건에 대한 왜곡, 부인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이를 직접 체험하지 않는 집단에게 전승된다"고 말합니다.
가정 내에서 5·18을 겪은 부모의 경험이 공유되고 간접적으로 그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성장 과정에서 이를 해석하며 트라우마가 재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즉 ‘가정’에서부터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에게 전승되고 있었습니다.
■ 트라우마를 넘어 이해와 희망으로

그러나 5·18 2세대들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5·18을 다시 기억하고, 가족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태현 씨는 여태껏 5·18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께서 5·18 관련 서적을 쌓아놓고 늘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반발심 때문이었는지 더 보기가 싫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 씨의 생각이 바뀐 건 가정을 꾸린 뒤였습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할아버지를 새삼 높이 평가했습니다. 기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5·18을 배우며 할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겪은 5·18과 아들이 보는 5·18은 다르구나"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미술 심리치료를 전공한 임 씨는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임 씨는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서가 아닌, 5·18을 겪은 청년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아오셨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긴 세월 자신의 시민군 활동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해서도 "말 안 하고, 혼자 감당해야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의 방법이었던 걸로 생각된다"고 말합니다.

2세대를 넘어 3세대까지도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 그러나 5·18 2세대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도 못한 단계입니다. 김 소장이 강조하는 ‘트라우마의 전이’에 대한 치유 방법은 결국 억울함에 대한 해소입니다.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5·18 피해자들과 2세대들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고, 5·18에 대한 부인과 왜곡, 폄훼가 2세대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겁니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남은 이들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5·18 민주화운동. 대물림되는 아픔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첫걸음은 5·18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5·18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김애린 기자의 기사 모음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