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3

제국주의 아니라 ‘제국’이 길이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제국주의 아니라 ‘제국’이 길이다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제국주의 아니라 ‘제국’이 길이다

등록 :2016-07-21 20:16수정 :2016-07-2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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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4번째
동아시아인으로서 경험 반영

오늘날 문제 해결의 방법 제안
“제국, 고차원적으로 회복해야”
제국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도서출판b·2만2000원
일본의 문예평론가이면서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75)은 <제국의 구조>(2014)에서 1990년대 이후의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가 1930년대 대공황 시대보다는 1870년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와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렇게 예견한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의 자본 경쟁은 필사적인 몸부림이 될 것입니다. (…) 그리고 그것이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전쟁은 국지전이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1차 세계대전처럼 세계전쟁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그는 본다.
‘교환양식’ 개념을 토대로 ‘세계사의 구조’를 설명해온 가라타니한테서 듣는 이런 얘기는 몹시 불길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청일전쟁 시기에 있었던 일의 반복입니다.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즉 일본, 중국, 조선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 당시 미국과 일본은 결탁했으며, 이후 일본이 조선을 취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취한다는 밀약을 맺습니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은 오히려 현재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미국·일본 동맹과 중국의 갈등, 북핵과 남북대결 격화, 사드 배치 강행과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 등의 최근 동아시아 정세 변동 속에 가라타니의 말은 더 현실감을 띤다.
서구 역사 중심의 단선적 발전 사관을 거부하는 가라타니는, 세계자본주의 단계를 헤게모니 국가의 교체가 반복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예컨대 1750년대까지의 헤게모니 국가는 네덜란드였고 이후 영국(1810~1870), 미국(1930~1990)으로 이어진다. 특정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기간은 대체로 60년 정도. 다음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때까지 과도기도 대체로 60년이라고 한다. 세계자본주의는 자유주의적 단계와 제국주의적 단계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이후 지금 제국주의 단계에서, 저무는 미국을 대신할 다음 헤게모니 국가는 어디일까. 가라타니는 중국 내지 인도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발전은 세계자본주의 자체를 끝장내버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인도가 헤게모니 국가가 되려면 자연(자원)과 ‘인간적 자연’(새로운 프롤레타리아=소비자의 원천)이 무진장 있어야 하고 기술혁신도 무한히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이런 자원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국가 간의 필사적인 자본 축적 몸부림은 전쟁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일본의 문예평론가이면서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앞으로 세계시장에서의 자본 경쟁은 필사적인 몸부림이 될 것입니다. (…) 그리고 그것이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전쟁은 국지전이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1차 세계대전처럼 세계전쟁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그는 본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 변동 속에서 가라타니의 말은 더 현실감을 띤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행진하는 일본군(맨 위)과 2013년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전투기에 올라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지난 3월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참가차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존 C. 스테니스호와 전투기들의 모습. 미야기/AFP 연합뉴스, 김봉규 선임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의 문예평론가이면서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앞으로 세계시장에서의 자본 경쟁은 필사적인 몸부림이 될 것입니다. (…) 그리고 그것이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전쟁은 국지전이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1차 세계대전처럼 세계전쟁이 될 개연성이 높다고 그는 본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 변동 속에서 가라타니의 말은 더 현실감을 띤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행진하는 일본군(맨 위)과 2013년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전투기에 올라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지난 3월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참가차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존 C. 스테니스호와 전투기들의 모습. 미야기/AFP 연합뉴스, 김봉규 선임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서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싸우는 이 주권(국민)국가 중심의 제국주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초극)할 것인가. 가라타니는 그 실마리를 근대국가에 의해 해체당했다가 부활 조짐을 보이는, 근대국가에는 없는 요소를 지닌 옛 ‘제국’에서 찾는다. 제국은 유목민적 요소와 정주농민적 요소를 통합한 체제로, 그 속의 여러 공동체나 소국들에 평화·안전·번영을 확보해줌으로써 환영받는 존재다.
세계화폐를 발행하고, 두루 통용되는 법(만민법), 소속 부족·국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관용성과 다양성, 세계종교와 신앙의 자유, 세계언어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독재적 폭정이 아니라 복지국가 이미지에 가깝다. “요약하면 첫째로 제국은 다수의 민족·국가를 통합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국민국가에는 그것이 없다. 둘째로 그와 같은 국민국가가 확대되어 타민족·타국가를 지배하게 될 경우에는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된다.” 제국과 제국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제국의 원리’를 갖지 않은 헤게모니 국가는 반드시 제국주의 국가가 된다.
제국은 주로 아시아에 존재했다. 로마제국도 그리스 도시국가가 아니라 페르시아와 이집트 등 서아시아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은 것이며, 중국·인도·중앙아시아에는 일찍부터 제국이 존재했다. 그 전형은 몽골의 원 제국이었다. 청과 무굴, 이란, 러시아 제국이 모두 몽골제국의 후예들이며, 넓게는 오스만제국도 그렇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르네상스도 몽골제국이 만든 세계통상권의 주변에 있었기에 가능했고 서유럽 근대세계시스템도 거기서 탄생했다고 책은 설명한다.
가라타니는 교환양식을 토대로 이를 설명한다. 교환양식에는 A호수(互酬, 증여와 답례), B약탈과 재분배(지배와 보호), C상품교환(화폐와 상품), D(이들을 넘어선 그 무엇) 등 4가지 타입이 있다. A양식을 토대로 형성되는 세계는 수렵채집적·씨족사회적 ‘미니세계시스템’이고, B양식은 ‘세계=제국’, C양식은 ‘세계=경제’가 각각 대응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이래 근대 주권국가에 이르는 서구세계는 C양식 위에 존립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에 따르면 ‘세계=제국’과 그 ‘아주변’에서 번성한 ‘세계=경제’는 동시에 상관적으로 존재한 단일한 세계경제였으며, 유럽의 ‘세계=경제’에 대한 중국 등 ‘세계=제국’의 우위가 무너진 역전은 1800년 무렵에 일어났다.
가라타니는 근대 시기 제국에 대한 저항과 독립을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 서구 근대 주권국가들이 조장한 것으로 본다. 서구사회 내부질서 확립 과정에서 파생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류도 제국의 해체와 그들의 제국주의적 확장 및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만들어, (제국적인)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하고 (제국주의적인) 유럽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데 기여했다.
가라타니는 양식D를 토대로 한 근대국가 초극을 해법으로 제시하는데, 양식D는 “양식A의 고차원적인 회복”이다. 단순회귀가 아닌, 변증법적 지양이며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제국의 건설이다. 그것은 헤게모니 국가의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증여의 힘’이 지배하는 세계다. 가라타니는 칸트가 말한 세계공화국이 바로 그런 세계이며,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증여가 연쇄적으로 확대하면서 창설되는 영구평화 상태라고 본다.
동서양 역사를 제국(중심)과 그 ‘주변’, 그리고 ‘아주변’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문명이 앞섰기 때문이 아니라 미개했던 아주변이었기에 가능했으며, 영국과 게르만 사회, 일본의 번성도 아주변이었기에 가능했다. 가라타니는 특히 일본 특유의 천황제와 봉건제, 문자 가나의 탄생(한반도 ‘도래인’의 이두에서 파생), 무사정권, 도쿠가와 체제, 제국주의화, 이웃 나라들과의 불화 등을 아주변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주변이었던 한반도·베트남과 비교하는데, 설득력이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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