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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깁니다. ^^;; (월간조선 7월호 원고 무삭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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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동아시아에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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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동아시아에 남긴 과제
와세다의 추억 1
2000년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학생 중에 한국에 반감을 갖고 있는 보수 성향의 T군이 있었다. 反韓 성향의 일본인들이 그렇듯이 본인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한국인은 감정적이고 다혈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한국의 실체를 알겠다는 생각에 한국에 1년 동안 체류하며 한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한국의 장단점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를 심화하는 집요함이 있는 친구였다.
당시 한일관계는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한국음식 붐 등 우호협력의 기운이 싹트는 반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필두로 민족주의적 대중 캠페인이 약발을 발휘하기 시작하던 묘한 이중주의 긴장감이 감돌던 시절이었다. 일본 우익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오만주의 선언’이라는 만화책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꿈틀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시아국제관계론’이라는 수업시간에 결국 T군과 한 판 붙게 되었다.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토의하다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할 필요가 있느냐의 문제로 논의가 번졌는데, 이 친구가 ‘오만주의 선언’에서나 나올 법한 주장, 즉 ‘전쟁이란 것은 애초부터 善惡 개념이 없으며, 승자가 패자를 단죄하여 惡이라 규정하는 것일 뿐, 선악의 관점에서 전쟁을 재단하고 전쟁 수행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을 사과한다는 것은 불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방약무인(傍若無人)도 유분수라는 생각에 차분하게 그러나 조목조목 그 친구 주장의 논리적, 윤리적 오류를 지적했지만, T군은 주장을 굽히기는커녕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에 수차례 사과를 했지만, 그때마다 사과 요구의 강도가 더욱 높아질 뿐임을 똑똑히 경험했으니 한국에 대해서는 더욱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일본인 학생들은 갑작스런 날선 논쟁에 당황해 하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한다.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려 했는데 이런 친구는 손 좀 봐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졌다. “그러면 미국도 원폭 투하에 대해 일본에 사과할 필요가 없겠네요?” 순간 T군의 눈빛에 강렬한 적의가 떠오르다가 이내 낭패의 기운이 감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표정의 변화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T군의 입 주위가 씰룩거리더니 이윽고 힘없이 내뱉는다. “원폭 문제 얘기입니까?” 이후 T군은 나를 노려볼 뿐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원폭 문제는 이토록 일본인들에게는 민감하고 아픈 부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교차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무리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원죄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 줄기 섬광과 함께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반드시 그래야만 했나’ 하는 미국에 대한 원망을 지울 수 없는 처참한 기억의 상징이다. 우익, 좌익의 이념이 무의미한, 일본인이기에 느끼는 울분과 처연(悽然)함의 복합적인 심정이 있다.
이대로 넘어가는 것은 마음이 개운치 않아, 다음 날 A4 한 장 분량의 페이퍼를 써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역사인식의 문제는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민족자결, 주권평등의 원칙이 지도적 이념이 된 현재의 국제관계 속에서 전쟁의 비인도성,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을 굳이 당시의 시제법(時際法)을 들먹이며 정당하고 합법적이었음을 강변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인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군주의로 인해 가장 혹독하게 인권이 침해당하고 비참한 삶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인 자신들이다.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깊이 자각하고 굳은 결의를 해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 일본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일본이 과거 피해를 입은 주변국에 대해 가해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조금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를 완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본이 감내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아닌가” 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그 페이퍼를 돌린 이후 나는 일약 학교의 스타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알지 못하던 일본인 학생들이 먼저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넨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평소에 T군이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을 강변하는 것에 내심 반감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 하기도 뭐한 분위기여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가 나서서 그 친구 기를 꺾어주어서 통쾌하다고 느낀 학생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서양 학생들은 일본이 좋아 일부러 유학을 온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러한 논의에 개입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다만, 원폭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다수의 서양 학생들이 일본에 동정적이었다. 충분히 큰 표본집단이 되지는 못하지만 중국 절강성에서 온 Y군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부분에서는 내 의견에 동조하지만, 서양과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자기중심적 민족주의 성향은 T군보다 더 강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남긴 것
지난 5월 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많은 화제를 낳으며 히로시마를 방문하였다. 한국 내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저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아베 정권에 선물을 안기고 중국을 견제하는 정략적 제스처로 폄하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맹국 미일간의 해묵은 감정의 골이 메워졌고, 골이 메워진 만큼 동맹은 더욱 견고해졌다. 한 편의 잘 연출된 드라마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듯 두 나라 국민은 서로를 더욱 깊은 연민과 인간애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의 아픔을 超克하여 미래를 향해 더욱 단단해진 결합으로 승화시킨 역사적 이벤트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과거사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냉철하게 그 의미를 읽어내고 행간 속에서 한일관계, 나아가 동북아의 미래를 그려가는 단초를 구하는 전략적 독해가 필요하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의 발걸음을 히로시마로 이끈 것은 누구 또는 무엇일까? 국내 일각에서는 이번 방문을 아베 정권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한다. 아베 정권의 적극적 방문 유치 외교 노력이 주효하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2009년~2013년간 주일 미국대사로 재임한 John Roos 전대사는 방문 추진의 경위에 대해 신뢰성 높은 견해를 제시한다. Roos 전대사는 5월 중순 일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공개적으로 언명해 왔다”고 증언한다. Roos 전대사는 지난 2010년 현직 미국대사로는 최초로 매년 8.6일 개최되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위령제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여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Roos 전대사는 당시 미국대사의 원폭위령제 참석이 민감하게 다뤄질 수 있음을 감안하여 워싱턴과 긴밀히 협의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국무부나 백악관의 우려나 반대는 없었으며, 오히려 전폭적인 지지(tremendous support)를 받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최종 재가권자가 오바마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위령제 참석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도 “오바마 정권 초기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언질을 받아왔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함께 미국의 도덕성이 논란을 빚은 국가와의 관계를 전향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을 최우선적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특히 후자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을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포로’(imprisoned)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면서 재임 기간 내내 미국의 負의 유산(negative legacy)을 치유하는데 역점을 기울였다. ‘과거의 응어리를 넘은 여정(trips beyond old grudges)’으로 표현되는 쿠바, 미얀마, 베트남 방문 외교는 미국의 국익과 함께 오바마의 신념과 소신이 담긴 오바마 외교의 업적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권의 외교정책 방점과 개인적 신념에 비추어 봤을 때, 히로시마가 ‘과거의 응어리를 넘은 여정’의 종착지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외교의 승리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소신과 용기의 승리인 것이다.
두 번째로, 오바마 대통령이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간 대사가 되었건 대통령이 되었건 미국 고위 인사의 히로시마 방문 문제는 ‘사과’(apology)라는 민감한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사과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 정치적, 외교적 부담이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 된다. 자칫하면 좋은 의도가 오히려 논란만 낳을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방문의 성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앞서 말한 Roos 전대사의 2010년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위령제 참가였다. Roos 전대사는 같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위령제에 참석한 것과 관련) 여태까지 단 한 사람도 나의 방문에 시비를 걸거나 사과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가는 것(just going)’ 그 자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위령제 참가 과정에서 개인이건 일본 정부이건 누구도 나의 방문을 사과로 여기지 않았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일관계를 위해 그저 미국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것(presence), 말 한 마디(a word), 그리고 상징성(symbolism)이었다.”
Roos 전대사는 특히 위령제 당시 피폭생존자가 단상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향해 큰 박수로 환호(applaud)하는 것을 보고 마음의 큰 움직임과 함께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위령제 방문과 관련된 일련의 경험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반향(implications)을 검토하는 토대가 되었고, 자신이 확신을 갖고 이제는 미국의 정상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때(right time to go)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죄의 성격이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일본 정부는 국내적 비판 여론 우려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그러한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강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認容하고 어떠한 이의도 조건도 제기하지 않았다.
히로시마 방문 직전인 5.22 교도통신이 원폭 투하로 직접 피해를 입은 피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에 사죄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8.3%가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방문 직후 실시한 일반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8%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응답자의 74.7%가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투하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였다.
사실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느냐의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민감한 문제이다. 한 피폭자는 자신은 그런 끔찍한 무기를 사용한 미국을 용서할 수 없으며, 미국에 분명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언론에 말하기도 했고, 평생 후유증을 걱정하며 살고 있는 피폭자 3세는 “사과를 요구할 수만 있으면 요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복잡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 사회 전반이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본인들은 원치 않는 사과를 강요해서 제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향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내린 결단에 일본인들도 ‘사과는 사과하는 쪽의 몫이며 강요받아 하는 사과는 의미가 없다’라는 일본적 사죄관(謝罪觀)으로 화답한 것이다.
강한 반일감정의 발로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일본인이 무슨 권리로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는가? 미국이 사과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한국의 입장이고,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인식이 반드시 자가당착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이 사과를 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실제 방문이 끝나고 보니 별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명분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미국에 대해 사과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는 엄청난 파괴력의 비인도적 무기를 사용하여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한 것을 인정하고 그 희생자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해 달라’는 의미이다. 히로시마 방문이 사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누차에 걸쳐 강조한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매우 완곡한 표현이지만, ‘과학이 만들어낸 끔찍한 파괴력에 상응하는 윤리의 필요성, 원폭 투하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에 대한 애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人道의 정신에 바탕한 엄중한 책임’을 역설하였다. 사과(apology)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있건 없건 일본인들이 바랐던 반성과 애도와 위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과는 사과하는 쪽의 몫’이라는 일본인의 사죄관(謝罪觀)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히로시마의 땅을 밟은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라는 말이 들어가야만 사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화법으로 호응한 것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지만 사과를 하였고, 일본인들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과를 받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동아시아 역사 화해를 향한 여정은 가능한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한국에 던지는 의미의 독해는, 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탑에 참배하도록 하지 못했는가를 외교 당국에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전몰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이 유럽의 역사 화해를 이끌어 내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동아시아에서 역사 화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델이자 모멘텀(momentum)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와 국민이 영감을 얻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어떠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가? 먼저 가해국 정치지도자의 소신과 행동이 역동성(dynamics)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시 일본인들은 한 장의 사진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생존자인 모리 시게아키씨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어떠한 수사(修辭)와 웅변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인간애가 한 장의 사진에 담겨졌다.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이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바꾸고 입을 닫았다. 같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사이에 역사의 화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장면이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 현지에서 “미·일의 화해와 신뢰, 우정이라는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새기는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제국(諸國)과 진정으로 화해와 신뢰, 우정을 염원한다면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에 보낸 찬사의 의미를 스스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를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에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력해야 하는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20세기 전쟁의 시기에 많은 여성들이 존엄과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당했던 과거를 계속 가슴에 새기고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그러한 여성들의 마음에 항상 다가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상처받는 일이 없는 세기가 되도록 세계를 선도해 나아갈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런 강요와 구속이 없는 승자의 입장임에도 인간애에 기반한 성찰을 바탕으로 진심어린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소신과 용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영감은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사 치유를 위한 가해국 지도자의 언명(言明)은 진실되어야 하며, 그 진실성은 행동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애에 바탕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그를 통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은 정치지도자가 꿈꿀 수 있는 최대의 이상(理想)이고 업적이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실천력이 보여준 놀라운 역사 화해와 상처 치유의 힘을 현장에서 같이 목격하고 경험하였다. 정치지도자 한 명의 소신과 결단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어떤 형태로든 특별한 감상과 자각이 없지 않을 터이다. 우파를 지지 기반으로 하여 높은 인기를 얻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있어 운신의 폭이 가장 넓다고 할 수 있는 아베 총리이다. 가해국 정치지도자의 결단과 용기, 그것이 역사 화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역동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부디 인식하였으면 한다.
두 번째는 피해를 입은 쪽의 태도이다.
즉, 일본이 사과를 요구하였다면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자체가 무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이미 여러 차례 사과를 했는데 무슨 사과를 더하라는 말이냐’ 식의 사과무용(無用)론과 한국의 사과 요구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실제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비롯하여 수차례의 공식적 사과가 있었으나, 한국측에서는 그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아직도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죄’를 양국간 화해의 기초로 다시 주장하는 것은 어떠한 추력(推力)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무한공전(空轉)의 헛바퀴 톱니와도 같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서 볼 수 있듯, 서로가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한다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한일간의 역사 화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사과의 말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문제는 일본에만 있지 않다. 한국 내에는 의식적으로 조장된 반일 감정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본의 행동조차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 2005년 6월 아키히토 천황 부부는 戰後 최초로 사이판을 방문하여 한국인 위령탑에 참배하였다. 당초 예정에 없던 깜짝 방문이라고 언론은 보도하였으나,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을 뿐, 천황 자신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참배이다.
그러나, 당시 이를 보도한 한국 언론의 논조를 보면, 도대체 일본이 어떻게 해야 한국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범 재판을 부정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려는 우익 인사들의 망언이 부쩍 늘어난 현실과 맞물려 일황의 사이판 방문이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다시 자극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M방송)
“침략전쟁에 대한 진솔한 반성 없는 천황의 이번 사이판 방문을 두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국제사회에 오히려 전쟁 피해국인 것처럼 보이려는 속셈도 있지 않나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Y뉴스)
“그렇다면 일왕의 이번 행보에 대해 주변국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부정적 시각이 대부분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일왕이 헌법상 현실 정치에서 떨어져 있다곤 하지만 수적으로 훨씬 많고, 양식 있는 보통 일본인들과 주변국을 헤아리는 배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국민은 물론 주변국의 존경을 받기 위한 왕다운 처신이 아쉽다.” (S일보)
아키히토 천황은 戰前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해 깊은 반성의 마음과 주변국에 대한 미안한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피란 생활을 하며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경험하고, 청소년기에 미국인 가정교사에 의해 교육을 받으면서 평화주의, 인도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호시탐탐 평화헌법 개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아베 총리를 탐탁지않게 생각하고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스로 천황가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과 연결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기도 하다.
그런 천황이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담아 한국인 위령비에 참배해도 ‘군국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전쟁 피해국처럼 보이려는 속셈’이고, ‘주변국의 존경을 받기 위한 왕다운 처신이 아쉽다’고 논평되는 분위기에서 일본이 역사 화해에 어떠한 자발적인 의욕을 느낄 수 있을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노릇이다.
군대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오로지 ‘법적 책임’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비롯, 논리적 타당성과 현실성 여부를 떠나 다른 관점의 유효성과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압살되고 맹목적 반일감정이 도그마화(化)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역사인식의 현주소를 생각할 때 모든 비난과 책임 추궁의 손가락질이 일본으로만 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로 하는 사과는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는 ‘사과는 하는 쪽의 몫, 강요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는 그네들의 사죄관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일본의 행동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 사죄를 더 이상 요구할 필요가 없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더더욱 사죄를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지도자가 역사화해를 위한 소신이 있다면 그 소신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은 한국의 몫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역사 화해가 그러한 즐탁동기(啐啄同機)의 상호 호응이 필요한 작업이자 과정임을 실천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와세다의 추억 2
다시 와세다의 추억으로 돌아가서, 와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대표적 양심적 지식인인 고토 겐이치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일화가 있다. 2000년 일본의 천황 부처가 네덜란드를 방문하였을 때, 환영 인파에 섞여 “No Pearl Harbor, No Hiroshima”라고 쓰여있는 피켓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진주만도 반대, 히로시마도 반대”, 즉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영어 원어민들은 ‘no pain, no gain’처럼 “진주만 공격이 없었으면, 히로시마 원폭 투하도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함을 일본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인의 마음 속에 戰前 제국주의의 역사는 분명히 큰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그토록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던 극단적 전체주의 시기에 대해 美化의 감정을 가지고 옹호하는 일본인은 많지 않다. 한국에도 일베 추종 세력이 있듯이 그런 사람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반면, 전후 출생자가 80%를 넘는 현 시점에서 자기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에 대해 일본이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반발심을 느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잘못을 한 것은 알겠는데, 왜 조상이 한 일을 자기 세대에게 책임을 지우냐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심이 극단으로 치우치면 ‘정말로 잘못을 한 것인지 한 번 따져보자’는 심리로 전도(顚倒)된다. 문제의 근원점으로부터 시기적으로 멀어지면서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와세다에 유학 와있던 유럽 출신중에 네덜란드 여학생 C양과 독일인 여학생 K양이 있었다. 영문 스펠링만 다르고 발음은 똑같은 카트린이어서 이름을 부르면 항상 둘이 동시에 돌아보던 사이였다. 유럽 출신의 이 두 학생은 동양인이 보면 같은 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영어로 말할 때는 발음도 거의 비슷해서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독일의 과거사 처리가 일본에 비해 훨씬 잘 되었다는 중국 학생의 발언을 듣던 C양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동의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독일은 말로만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할 뿐, 피해국 및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배상하거나 물질적 보상을 한 적이 없어 유럽인들 사이에서 독일의 과거사 처리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는 없다는 것이다. 기왕의 과거지사이기에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여 향후 그러한 재앙이 재발하지 않도록 평화파괴행위 유인(誘因)의 싹을 자르는 협력의 틀을 제도화하고 공동의 이익 영역을 계속 발굴해 온 것이 2차대전 후 유럽의 과거사 처리 방식이지, 자신을 비롯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독일의 사죄를 받아들인다거나 독일의 전쟁범죄를 용서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독일의 戰後 세대는 나치 시대의 독일인과는 별개의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는 반감이나 선입견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러한 C양의 얘기를 듣고 나중에 K양에게도 넌지시 물어봤다. K양은 자신의 윗세대 또는 윗윗세대에서 벌어진 끔찍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분명한 반감과 비판의식이 있었다. 한 가지 개인적인 감상은 그러한 반감과 비판의식이 K양 본인과는 전혀 별개의, 마치 남의 나라에 대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를 나치로 타자화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독일이 사과와 배상을 할 필요가 있냐고 물었더니, 사과라기보다는 그러한 역사를 기억하도록 다양한 기념과 추모의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배상 문제는 독일이 EU의 역내 번영을 위해 건전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제 와서 굳이 별도의 배상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처럼 동양인이 보기에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외모도 사고방식도 유사한 C양과 K양조차도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미묘한 인식의 온도차가 존재한다.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고 자신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하거나, 역사의 다면성을 무시하고 일면적으로만 이해하여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한다면 역사 화해는 난망(難望)일 것이며, 역사 불화(不和)의 책임을 일방에게만 지우는 것도 온당치 않을 것이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소장을 역임한 신봉길 전대사(초대 한중일협력사무국 사무총장)는 얼마 전 국내 일간지 기고를 통해 몇 해 전 한중일협력사무국을 방문한 스탠포드大 아태연구소팀이 ‘한중일 세 나라에 미국이 포함된 4자 간의 역사화해 프로젝트를 함께 연구하자.’고 제의하였다고 한다. 미국도 동북아 과거 역사에 책임이 있으니, 먼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원폭 투하에 대해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아베 총리가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 식민지배 및 난징 학살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미국을 시발점으로 한 선순환적인 역사 화해를 모색하자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이번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으로 그러한 구상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편의 예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화해의 기술(art of reconciliation)’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머지 단추를 잘 꿰어 온전한 역사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느냐 못하느냐는 동북아 국가들의 손에 맡겨졌다. 유구한 빛나는 역사와 문화를 경쟁적으로 자랑해 온 동북아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의 평화 창출 사유력과 실행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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