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1

독일보다 더 나은 한반도 통일을 모색하기 : 네이버 블로그

독일보다 더 나은 한반도 통일을 모색하기 : 네이버 블로그

독일보다 더 나은 한반도 통일을 모색하기  북한경제 
2011.12.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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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에 대한 단행본"의 일부로 작성된 초고입니다. 많은 좋은 조언 부탁합니다. (좀 긴데, 줄여야 하고, 오탈자 수정도 안한 상태입니다).  

주요 함의 
"대부분의 내용은 흔히 볼 수 있는 통일관련 책과 대등소이합니다.  특별한 메세지가 있다면, "독일의 흡수통일은 동독이 갑자기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서독의 정치적 선택이었으며, 이 선택은 많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만약 북한이 동독처럼 무너져 내려도 꼭 흡수통일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입니다. 

독일 통일에서 배우는 
독일보다 더 나은 한반도 통일의 모색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연구위원 
유승경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체제가 와해되면서, 통일은 이제 민족적 당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실천적 과제가 되었다.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한반도는 대전환의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진영이 소멸한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독자적으로 존립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한국도 전세계로 확대된 정치외교적 공간에서 국익을 관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로 인해 남과 북이 서로를 단순히 응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위해서라도 대화과 협상이 불가피한 상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한의 대화는 통일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통일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과정이 되었다고 하겠다. 


   한반도 통일을 설계하는 데 있어 독일통일은 우리를 위한 사회적 실험과도 같다. 독일통일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한반도의 현실과 접목시켜 검토한다면 통일의 올바른 방도를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은 20년만에 통일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통일이 독일에게 가져다준 ≪ EU의 경제규모 1위국 ≫이라는 선물은 이제 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분단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한 것은 아니다. 통일 이후 동독의 산업은 빠르게 몰락했고, 아직까지 새로운 산업기반은 다지지않고 있다. 이로 인해 동서독 간의 1인당 GDP나 실업률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동독 재건을 위한 자금은 생산적 투자보다는 실직한 사람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데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동독 주민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했고 동독지역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젊은 이들은 활력을 잃은 고향을 떠나 서독으로 향하고 있다. 동독민들 중 일부는 동독공산당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후신인 좌파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이 글은 독일통일에서 가장 큰 문제점인 동독지역의 사회경제적 낙후성을 낳은 요인들을 검토하고 한반도 통일의 교훈을 찾고 있다. 

통독 20년, 통일 후유증 극복

독일 통일 10년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독일은 199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동독재건 비용 때문에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대외 경쟁력 저하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으며, 경제성장률도크게 하락했다. ‘독일식 발전모델’이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상황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독일은 2002년부터 경쟁력을 회복하기 시작해, 2003년부터  6년 연속 수출 세계1위를 차지했다.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에 EU평균을 밑돌았지만, 2006년 3.5%를 달성해 12년만에 프랑스를 앞질렀고,  2007년에는 4.4%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국가부채는 1991년 GDP 대비 40% 수준에서 2009년 약 73%로 증가했지만, 재정적자는 줄어들어 2007년에는 균형 재정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제 독일은 통일에 따른 부담 때문에  소진되어가던  경제역량을 회복하여 과거 서독의 명성을 되찾았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분단 후유증   

  독일이 동서통합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독 지역의 취약한 산업기반, 동서간의 1인당 GDP, 생산성, 실업률 등의 큰 격차, 동구의 주요 체제전환국에 못 미치는 동독지역의 성장률 등은 청산되지 않은 분단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통일과 함께 동독지역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 교육 등 모든 분야에는 서독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모든 제도적 인프라를 새롭게 정비해야 하는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동독은 서독이 발전시킨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많은 이점을 누렸다 

     또한 1991년부터 2009년까지 동독지역의 산업재건과 주민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매년 GDP의 4~5%에 달하는 재정이 이전되었다. 20년 동안의 총지원규모는 독일의 2009년 GDP와 맞먹는 1조4000억 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동독주민의 1인당 GDP은 서독지역의 68%에 불과하며, 2009년 서독지역의 실업률이 6.9%인 반면 동독지역은 13%에 달한다. 특히 동독지역의 경제성장은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와 같은 동구 체제이행국보다 뒤쳐져 있다.

동독의 과도한 인상으로 산업 와해 

     동독 경제가 부진한 까닭은 무엇일까?  구 동독의 산업기반은 통일과 함께 급속하게 무너져 내렸다. 동독 경제가 세계시장에 노출됨과 동시에 임금과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1990년 초 서독 노동자 임금의 약 8%였던 동독노동자 임금은1990년 말 36.8%로 급등하고 1991년 반에는 50%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임금은 계속 올라 1994년 69.7%까지 올랐다. (이후 수치) 

   동독 지역의 임금 급등을 야기한 첫번째 요인은 동서독마르크간의 1 :1 교환이다. 동독 마르크는 국제시장에서 서독 마르크의 1/2 ~ 1/3였지만 콜 총리는 교환비율을 1 : 1로 결정했다. 동독상품은 갑자기 2배 이상 비싸졌다. 동독 주민은 구매력이 2배 이상 높아져 당장 어려움에 봉착하지는 않았지만 동독 상품은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동독 기업은 파산하기 시작했고 실업자는 양산되었다.    

     콜 총리가경제학자들의 반대를물리치고 동독마르크를 높게평가해준 것은통일을 서둘러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때문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뒤 1년도되지 않아 독일은 통일되었다. 동독주민의 자유에 대한 열망, 동독 공산당의 통치력 상실, 자유선거로 등장한 동독정부의 신속한 통일 요구가 통일을 급진전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서독정부의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독일의 분할은 전범국이 군사대국으로 재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제재였기 때문에,  독일통일은 전승4국(미영불소)과 주변국에게 새로운 위협의 등장을 의미한다. 2차 대전을 직접 경험한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이 독일의 통일을 승인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콜정부는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했고,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통일에대해  정책적 혼선을 빚고 있는 당시의 시점이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고 통일을 강력히 밀어부쳤다. 이를 위해 동독주민들의  통일열망을 고양시켜야 했고, 그 방편으로 1 : 1의 교환비율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실제로 소문으로 퍼져 동독주민들은 서독 수준의 삶을 희구하며 통일의 열망을 키웠다. 이 결정은 통일을 단기간 내 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통일 이후 동독의 미래에 오랫동안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동독지역의 임금을 인상시킨 두번째 요인은서독 노동조합이동독 노동조합을장악하고 자신들의 집단적인 이해를 관철한 데있다. 통일과 함께 노동시장이 통합되면서 최저임금 등 노사관계제도도 동독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서독의 노동조합이 동독의 노동조합을 통합함에 따라 산별노조 단위의 단체교섭 관행도 동독으로 전파되었다. 
  
   서독 노동자들은동독 노동자를대신하여 단체교섭을 벌이면서자신들의 이해를관철시켰다. 서독 노동자들은 동독지역의 생계비 증가와 서독지역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임금인상을 강하게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실제 의도는 동독 노동자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임금 수준을 낮추지 못하게 하고, 서독 기업이비용절감을 위해생산기지를 동독으로옮기는 것을사전에 방지하기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임금은 계속빠르게 증가했고, 동독기업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약되었다.  기업들의 도산이 줄을 이었고, 생존한 기업도 감원이 불가피했다. 1990년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9%에 불과했으나, 1991년 11.1%까지 높아졌으며 1998년에는 18.5%를 기록했다. 

급진적 사유화 산업 파산으로이어져 
 독일은 동독 국유기업의 개혁 방안으로 이른바 충격요법(Bing Bang Approach)을 적용하여, 시장원리에 따라 단기간 내 사유화했다. 당시 서독의 정책담당자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호하고 있었던데다, 경제통합 과정이 역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동독의 경제제도와 조직을 시급히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독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고 임금은 계속 인상되는 상황에서 사유화된 기업들은  좋은 경영실적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쉽게청산의 길에들어선다. 

   독일정부는 1994년 말까지 400만명을 고용하고있는 약12만 개의 국유기업을 사유화하고  매각을통해 6천억 마르크의 자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부분매각되기보다는 파산처리되어성공적으로 사유화된기업의 고용인원은 110만 명에불과해, 사유화 대상기업 노동자의 3/4가 실업자로 전락했다. 더구나매각 수입은 370억 마르크에 불과했고, 신탁회사(사유화 관장기관)가 매각기업의 부채, 이자 등을부담했기 때문에최종적으로 약 2500억 마르크의적자를 기록했다. 

   독일의 사유화정책은 일자리만  줄이고 재정부담만 가중시키는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급진적 사유화는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기업을 파산으로 몰아  산업기반을 파괴해버렸다.   

기업 파산, 사회보장비 증가 초래     

국유기업의 급진적사유화는 동독주민에까지 서독의 사회보장체계를 확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동독 체제 하에서는 공식적으로 완전고용이었기 때문에 실업보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자 가계를 위한 의료 서비스와 같은 사회보장적 혜택은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소속된 기업이 담당했다. . 
    
 국유기업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도산과 감원에 의해실업자가 발생했고, 기업이 제공하던사회복지 서비스도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서독의 사회보험체계 내의 실업보험, 의료보험, 연금보험이 동독 주민에게도 확대되었다. 
     서독 복지제도의 도입은 동독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했지만, 동독 산업의 재건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기업의 파산이 계속되면서 실업은 계속 늘어나 , 동독 재건을 위한 기금들의 많은 부분이 연금, 의료보험, 실업자 지원 등사회복지부분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로 인해 동독 지원 자금 1조4000억 유로 중 인프라 개선 등 생산적인 부문에 투여된 것은3000억 유로에 불과하다.
   
  사유화에 의해시장원리가 도입되면경제가 역동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었지만, 급진적으로 진행된 사유화는 경제재건의 위한 기금의 대부분을 미래를 위한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소비성 지출로 돌려버렸다. 

동독에서 소외되는 동독주민 

     동독 주민들은 국유기업을 사유화하는것 자체는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동독 기업은 동독주민의 몫으로 남기를 원했다. 통일 직전인 1990년 초, 동독 정부는국유기업을 주식회사 형태로 재편하고 동독주민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는 방안을추진했다.  

    그런데, 서독 정부는 주민들에게 분산되어 있는 소유권은 사회주의적 형태로 간주하고 분명한 지배적 소유자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후자가 동독경제를신속히 서독체제로 편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를 압박하여 동독의 국유자산을 전체 독일의 것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통일 이후 국유기업에 대한 급진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독일 정부는사유화를 수월하게하고자 MBI(Management-Buy-In)방식을 도입하여, 경영 경험이 풍부한 경영진 출신들에게 대출과보조금 특혜를 주어 동독기업을 유리한 조건에서 매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소유자가 쉽게 될 수 있는 기회는 대부분 서독출신에게 돌아갔다. 

   국유자산에 대한 일정한 권리를 갖고자 했던 동독주민의  바람은 이렇게 외면당했다. 현재 동독 주민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서독 주민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은 이유이기도 하다.  .  

   유통업은 서독 출신이 동독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독 시절, 유통 분야는 단일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통일 이후 분할되어 대부분 서독자본으로 넘어갔다. 

    통일 초기에는  서독자본 소유의 유통업체들이 동독지역에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자 동독에 풍요를 가져다 주는 은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거대 유통업체가 박리다매로 상품을 공급하면서 점차 동독주민들이 어렵게 꾸려가던 작은 상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동독주민에게 서독지역은 풍요의 천국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미래의 주인이 사라진 동독지역 

    동독 경제가 활기를 회복하지 못하자 동독주민들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서독으로 이주했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주민은 240만 명으로 1000명 당 11명 이 이주한 셈이다. 이제 서독으로 이주하는 동독주민의들은 크게 즐었지만 20대~30대의 젊고 꿈 많은 고급인력들은 서독이란 기회의 땅으로 떠나고 있다. 

    동독지역에는 미래를 일궈갈 젊은 세대가 사라져가고, 실업자, 사회보조금 수령자와 노인들만 고향을 지킨다. 이에 반해 서독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서독은 다른 서구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동부의 젊은 층이 수혈되면서 고령화 문제는 크게 완화되었다.  

   동독지역은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활력을 상실한 지역으로 계속 전락해 갈 것이다. 동독과 서독 지역이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 간다면, 정치적 통일 뒤에 사회적인 분열이 일어나는 불행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마음의 분단  

통일 독일은 사회적 통합을 빨리 달성하기 위해 서독의 사회제도들을 동독지역으로 신속하게 이식했다. 삶의 방식은 오랫동안 몸에 배인 습관과 관행이라, 법규와 제도의 개혁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익숙한 일상을 바꾸라는 요구는 충격처럼 느껴질 것이다. 동독민들은 너무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동독주민들은 동서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에서 오는 소외감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2등 국민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다 동독시절에 대한 향수(ostalgie)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동독이 사라진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 통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공산당의 부활을 생각하며 그 후신인 좌파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조사에서 동독 출신 주민의 80%는 통일 이후의 삶이 좋아졌다며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회적 분열의 양상이 통일독일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통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많든 적든 마음의 상처가 있고 서독 출신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있다. 독일은 종국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한반도, 독일의 시행착오 피할 수 있다. 

동독은 인구는 서독의 약 20%였고, 소득수준은 약 40%수준이었지만,  북한의 경우 인구수가 한국의 50%에 이르는데다 소득은 고작 5%에 불과하다. 한국과 서독을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북한 인구는동독의 2.5배이며, 소득은 1/8에 불과하다. 

    단순계산에 따르면 남북한이 독일과 유사한 방식으로 통일을 하게되면 비용이 20배나 소요되며, 독일사례처럼 북한의 산업기반이 와해되는 부작용이 뒤따를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에 비춰보면, 감당하기에 벅찬 비용이 초래되기 때문에 흡수통일방식이 한반도 통일의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다.  

    한반도 통일이 어떤 과정을 거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통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우연같은 계기를 통해 현실로 다가올 수있다. 통일의 과정에서 상황의 제약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길을 따라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원칙과 정책적 판단에 따라 통일의 방식과 경로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독일이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들은 ‘어렵게 주어진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않기 위해서≪ 신속한 흡수통일 ≫을 선택한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은 독일과 달리 주변 강대국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통일 방식을 결정하는 데 그런 제약이 없다.  한반도가 독일이 겪었던 전철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  

    이하에서는 동독지역의 산업기반 와해와 그로 인해 발생한 여러 문제점들을 방지할수 있는 경제통합의 교훈들을 정리해 본다. . 

동북아 협력과 병행하여 점진적 통일 추진 

남북한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치렀을뿐만 아니라 그 후 60여년 간 이념적으로 반목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동서독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남북한은 상호협력의 기간을 두고 서로의 이질성을 줄여나가는 점진적 통일의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통일의 단계적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많은구체적인 논의들이있었는데, 화해 협력의 단계에서 출발하여, 국가연합과연방제적 통합을거쳐 완전통일을 달성한다는기본 구도에는큰 차이가없다. 점진적 통일 방안은 북한의 독자적인 경제발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동독지역처럼 이탈산업화와 급격한사회변동의 부작용을겪지 않을수 있다. 

     한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는세계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동북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는 한-미-일과  북-중-러 간의 냉전적 대립구도가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동북아 정치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은  이 같은 동북아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변 4대 열강은 판도 변화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있는 남북통일을 그리 반기지 않을 수있다. 하지만 통일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통일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여지도 충분하다. 따라서,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이 증진될 수 있다는 점을 주변국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 경제협력을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의 차원에서 진행시키는 방안은 한반도 통일에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경협을 동북3성과 북한 간의 협력과 연계하고, 한반도와 러시아의 철도망을 연결하는 한편,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 등과 같은 다국적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면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는상호협력의 결실을 나눌수 있을 것이다. 일본도 한-중-일 분업체계를 동북아 차원으로 확대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북 국유기업의 중국식 개혁 지원 

사회주의 경제에서 국유기업은 단순한 생산조직이 아니라 행정적, 정치적 조직이며 사회적 공동체이다. 노동자가 평생고용되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이며, 의료, 육아, 연금지급 등사회보장 서비스의 대부분을 공급한다. 

    동독 국유기업도 사회주의 기업의 일반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통일 이후 국유기업의  전면적 사유화를 실시함에 따라 기업이 담당한 복지체제를 대체하기 위해서 서독의 사회보장체계를 동독지역에도 확대했다. 그런데, 사유화가 대량의 기업도산과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자 동독 재건비용의 대부분이 소비성 지출에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국유기업을 중국과 같은 점진적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한다면 탈산업화와 실업의 폭발적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국내 시장을 자국산업의 경쟁력 수준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개방했으며, 국유기업의 개혁도 소형 기업은 초기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사유화를 진행했으나, 대형 국유기업의 경우에는 기존의 사회복지적 기능을 점차적으로  실업보험,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으로 이전하여 비생산적 기능을 줄여나감으로써 수익성을 개선했다. 

    그리고 사유화가 필요할 경우에는 시장 경쟁의 관행에 익숙해지고 경쟁력이 세계수준에 가까워진 산업분야부터 진행했으며, 국가 기간산업과 전략산업은 사유화 없이 정부의 강력한 금융적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북한도 국유기업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중국식 개혁을 모델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게 되면, 북한 국유기업은 취약한 경쟁력 때문에 생존할 수가 없고 대량실업을 낳을 것이다. 또한 시장은 법과 제도의 수립만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규범과 상거래의 관행의 정착을 필요하기 때문에, 급진적 사유화로 기업들의 활력을 되찾을 수는 없다. 

    국유기업의 개혁은 규모면에서는 소형기업에서부터, 산업영역 면에서는 소비재 부문부터 점차적으로 이윤동기를 부여하고 시장거래를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수정 필요 정확한 서술 아님).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해 단계적인 통일방안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북한지역을 경제특구화하는 방식을 통해 세계시장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북한 경제가 점진적으로 개혁 개방의 길에 접어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점진적 사회통합으로 사회문화적 갈등 즐여야. 

     한국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는 2011년 혀내 약 2만3천명에 이르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도적 차이와 사회적 이질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독일과 같이 남북한이 사회적 통합을 단기간 내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면 많은 사회적 충격과 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남북한 노동시장이 크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은 특별히 중요하다.  
 
    남북한의 인구 비율과 소득 격차를 고려해 보면 독일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북한 지역의 인구 감소와 남한 지역의 인구 과밀이 초래되고, 특히 한국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의 압력을 받게 되어,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더욱이 북한 지역의 임금까지 높아질 수도 있다.  북한 주민이 남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구할수 있게 되면, 북한 지역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해져 임금이 오늘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 산업이 자생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장애를 받을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이 2등 국민이라는 아픔을 겪거나 남북한 주민 간에 마음의 장벽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통합을 추진하는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남북한은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을 단계를 거쳐 완전 통일로 가는 것이바람직하며,  정치적 통일이 앞당겨지더라도 1국가 2체제 혹은 경제특구방식의 도입을 통해, 완전한 사회경제적 통합 이전에사회문화적 이질성과 경제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 . 

 점진적 통합으로 통일비용 최소화해야

한반도 통일로우리 국민들은많은 편익을누리게 될것이다. 우선 전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군사적 대립에많은 비용을지출하지 않아도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반도는 남북한의 자원을 결합하는 동시에 대륙과 대양을 반도 국가로서의 잠재력을 실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어 동북아의 주도국으로서의 비전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통일의 과정이 많은 비용을초래할 것이라는점도 분명하다. 먼 미래까지누릴 수있는 통일의혜택을 생각한다면, 일정 기간의통일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또한 통일이후의 사회경제적 목표와 과제를 분명히 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목표를 정해 미래의 통일비용을 줄여 나가야한다. 특히 주요 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인프라를 조성하는 집중된 투자를 통해 통일경제의 산업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들어 통일에 필요한 기금 조성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있다. 통일의 여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금을 미리 조성한다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어떤 구체적목표를 위한기금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적 합의를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독일이 급진적통일 방식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을 포용할수 있었던 것은 서독의 강한 경제력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력을 더한층 발전시키는 것이 통일기금 조성보다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통일의 청사진이 만들어지고 정책 목표가 구체화되면 여러 방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인프라개선 등 산업기반의 조성에 소요될 비용은 국공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는것이 적절할것이다. 국공채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지만, 산업기반의 조성은 그 혜택을 미래의세대가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삶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기금이라면 우리 국민들 모두가 분담과 나눔의 자세로  세금을 통해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로타 드메지어동독 총리가 말했듯이 ≪ 분단(Teilung)은 분담(Teilen) ≫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북한의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후계자인 김정은이 아버지와 확실히 구별되는 정책노선을 펼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직 김정은은 북한권력의 상징적 구심일 뿐, 정책적 방향은 아버지의 참모들이 많이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북한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있었다. 2002년 7 1 조치를 계기로 사적 경제가 크게 활성화되었고, 북한의 대외무역도 크게 증가했으며 남북경협에서도  개성공단이 정치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자신의 시기에 마무리지어 김정은에게는 대외적 고립에서 벗어난 북한을 물려준다는 목표 하에 외교전략을 추진해 왔고 실제로 북미관계는 상당히 진전된 상태에서 사망했다. 만약 김정은이 아버지의 정책을 계승하여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1993년부터 시작된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북핵 해결로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조건이 리 사회는 통일를 실현하기 위한 면밀한 설계도를 갖추고 남북 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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