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의 이론과 실제 북한경제
2016.04.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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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원래 전공은 현실 사회주의 연구이다. 나는 현실 사회주의가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여 조직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경제에 대해서 최근에 기고를 위해 쓴 글이다)
북한 경제의 이론과 실제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유승경
I. 전쟁동원경제로서의 북한 경제
북한 정권은 맑스-레닌주의와 그것의 ‘창조적’ 계승인 주체사상을 기초로 한 ‘사회주의’를 체제 이념으로서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한 국가 체제의 속성은 지배이데올로기의 내용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 국가 사회의 성격을 해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사상이라기보다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이다.
(1) 현실 사회주의는 평화 시의 전쟁경제
현실 역사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체제(이하 현실 사회주의)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험한 후발 산업국에서 등장한, 주권 수호를 최우선 전략으로 삼는 평화 시의 전쟁동원경제였다. 이 점에서 북한 체제는 예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레닌 시대에도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네프(NEP) 시기에 국유화된 것은 근대 산업부문뿐이었으며 농업은 여전히 개별 농가에 의해 경영되고, 수공업과 영세상업도 개인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한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원형을 제공한 소련 경제체제는 소련이 제국주의와의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 1928년부터 진행된 스탈린에 의한 ‘사회주의’ 공업화를 통해 등장했다. 1991년에 종국적으로 해체된 소련 경제체제는 1930년대 중반에 가서야 모습을 갖추었다.
스탈린은 체제에 힘입어 서구로부터 러시아를 분리시키고 서구와의 적대관계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소련은 중공업 위주의 산업화로 재무장할 수 있었고, 인프라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1933년 국방부문은 전체 예산에서 4%였으나 1937년에는 17%, 1940년에는 33%에 이르렀다. 따라서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는 궁극적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수립된 체제는 제2차 대전 중에 독일을 물리치는 역량을 발휘했다. 소련체제는 이후 다양한 변화를 보였지만 냉전 체계하에서 전쟁경제의 기본 틀을 유지했다.
이 경제체제는 10월 혁명이나 맑스에서 레닌으로 이어지는 이데올로기적 연속성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 기원은 오히려 10월 혁명의 이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비에트 경제체제는 « 짜르기의 국가주도 산업화의 제도 », « 제1차대전기의 러시아의 전시경제 » 그리고 « 독일의 전시경제»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전시 경제의 기획가들이 직접 소비에트 경제체제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소련 경제체제를 모델로 하여 구축된 여타 현실 사회주의 체제도 계획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고 생산되는 계획경제가 아니라, 자원부족의 상황에서 행정적 방식을 통해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국가전략상의 우선순위에 자원을 배분하는 전시경제와 같은 동원경제체제였다.
(2) 전쟁동원경제의 경제조직화의 원리
현실 사회주의를 특징짓는 기업 국유화, 농업 집단화, 일당 독재 등은 사회주의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내부 자본이 유일한 자본축척의 원천인 조건에서 강도 높은 자원동원의 논리가 낳은 산물 »이다.
국가가 자원을 동원한다는 것은 ‘행정적으로 결정된 가격에 따라 동원하려는 만큼의 생산물을 전부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동원경제에서는 경제적 동원이 자원 배분의 일반적인 형식이 되기 때문에 기업은 생산물의 판매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상품의 판매 보장’은 보통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법칙들을 낳는다.
국가가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가격 정책에 따라 부문간, 기업간 이윤율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조건에서 기업들에게 산업부문에 대한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허용하면 모든 기업은 이윤율이 가장 높은 부문으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국민경제가 하나의 생산부문에 의존해서 발전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는 자본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기업을 국유화하고 자본시장을 폐쇄한다.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에서 기업 국유화는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이 아니라 자본시장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 때문이다.
농업 집단화도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농업 잉여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출하기 위해 구축된 체제이다. 즉 국가가 통제가격으로 농민으로부터 농산물을 강제적으로 수매하고 농자재와 필수 소비재를 농민에게 판매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업의 집단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의 경제 관료의 첸윈의 언급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이뤄진 농업 집단화의 함의를 잘 드러낸다.
« 국가가 1억이 넘는 농가를 상대로 하여 계획 수매와 계획 판매를 시행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렇지만 농업의 기본조직을 수십만 개의 합작사 단위로 바꾸면 식량 공작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에서 농업 집단화는 농업 관련 상품의 유통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용이하게 하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다.
II. 계획경제의 이론과 현실
(1) 계획경제의 불가능성
경제이론상의 계획경제는 ‘중앙계획당국이 경제적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집중하여 전체적이고 일관된 계획을 수립하고 하부조직은 중앙의 명령에 따라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체제’를 말한다.
북한 당국은 스스로 ‘계획의 세부화와 일원화’의 원칙에 따라 북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외부의 많은 연구자들도 북한 당국의 주장과 같이 북한 경제가 전형적인 중앙계획경제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계획경제의 고유한 비효율성 때문에 곤란에 직면해 있다고 믿는다.
현실에서 계획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중앙계획당국은 모든 경제주체의 경제적 결정을 완벽하게 예상하거나 통제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결정이 초래하는 모든 결과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획 당국은 모든 경제단위의 상호·복합적인 거래과정을 단일의 계획안에 최적으로 짜맞추고, 계획에 따라 기업소간의 자재공급이 정확히 이뤄지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계획경제는 완전 정보와 완전 예측의 사회일 때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보는 경제행위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초래하는 모든 결과를 완벽하게 예상할 수 없다. 따라서 전체 경제가 계획에 의해 운영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전체 경제에 대한 일관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생산품별로 투입과 산출의 비율이 장소와 시간, 생산주체 등에 상관 없이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생산입지, 조직적 역량, 경영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장소와 시간에 따라 ‘투입과 산출의 비율’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일정한 투입에 대한 산출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계획경제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계획 당국이 생산기업의 활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획 당국은 국유화를 통해 기업을 철저히 통제하려 들지만, 기업소 지배인은 생산과 관련하여 감독기관보다 우월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통제에서 벗어나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다. 널리 인용되는 바와 같이 사회주의 기업의 지배인들은 생산 목표를 최소화하고 자재는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감독기관은 기업의 생산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개별 기업소의 계획지표는 대개 감독기관과 지배인 사이의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주의경제가 교섭경제로 불리는 이유이다.
북한 당국도 정권 초기부터 ‘계획의 일원화와 세부화’의 원칙을 부단히 강조해 왔지만 자재 공급의 난맥상은 전시기에 걸쳐 일상적인 것이었다. 개별 공장이 많은 물자를 지원받기 위해 원자재 등의 재고량을 축소 보고하거나 필요 이상의 기자재를 보유하는 문제, 자재 공급의 잦은 문제에 따른 생산 차질 등은 북한의 사회주의 공업화 초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사실상 사회주의 경제에서 국유기업의 주된 경제활동은 세부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재 공급의 불확실성에 사전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2) 계획 실패에 대한 대응 방식.
경제 결정의 분권화
사회주의국가들은 계획의 불가피한 실패에 대처하기 위해 우선 ‘경제결정의 분권화’를 시도했다. 산업별 행정부서들을 신설하여 산업부문별로 권한을 분권화하는 한편, 지역별로도 분권화를 추진했다.
북한을 비롯하여 사회주의국가는 행정부에 기계공업성, 화학공업성 등과 같은 산업부문별 행정부서를 두는 ‘경제적 분권화’를 실시했다.
부문별 경제부서들은 부서별 계획을 조율하여 생산 목표를 할당 받아서, 부서별로 독립적으로 작성한 계획에 따라 내부 생산을 조직했다. 경제 계획의 분권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행정부서의 급속한 증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소련의 경우 1932년 산업별 행정부서는 3개에 불과했으며, 1933년부터 1941년 사이에 29개의 행정부서가 신설되었는데 대부분이 산업부문별 행정부서였다. 이러한 산업부문별 행정부서체제는 사회주의체제의 고유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북한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제1차 내각(1948.9)에는 산업부문별 경제부서는 공업분야로는 산업성 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1954년부터 전후 복구와 함께 공업화가 가속되면서 화학금속성, 기계공업성 등 중공업을 중심으로 산업부문별 부서가 빠르게 늘어났다.
행정부서별 분권적 계획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산업연관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계획의 오류와 실패가 확대되자 부문별 행정부서는 원칙과는 달리 전문분야 이외의 제품을 생산했다. 즉 자재 조달의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산업관리부서들은 장비, 부품, 반제품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문 분야 외의 영역으로 생산을 확대했다.
기계공업성은 독자적으로 제철소를 운영했고 야금 분야로도 생산시설을 확대했다. 이 경향은 행정부처별로 원자재부터 최종생산품까지 완결적인 생산체계를 갖추는 경향을 낳았다. 이는 경제부서간의 협력체계를 약화시키고 생산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자본의 축적이 분권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중앙계획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취해진 부문별 분권화는 오히려 전체 경제를 산업부문별로 분할함으로써 전체 계획을 무효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각 산업부문이 자기완결적 생산체계를 형성해감에 따라 부문 간 협력이 단절되는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주의정부는 여러 부서를 아우르는 조정기구인 위원회 조직을 신설하여 부문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북한도 1960년에 와서는 여러 행정부서 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정기구로서 위원회를 두어 행정부체계의 중심 조직으로 활용했다. 중공업위원회를 신설하여 금속, 기계, 동력, 화학공업을 관장하도록 하고, 경공업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 소속 경공업기업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중공업위원회는 불과 2년 만에 행정적 조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금속화학, 전기석탄공업성 등으로 분할되었고, 이 부서들은 다시 금속, 화학, 전기, 석탄, 기계공업성 등으로 다시 세분화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가서는 다시 중공업위원회로 통합되는 등 현재까지 통합과 분리를 거듭하고 있다.
계획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분권화 조치는 지역별 차원에서도 추진되었다. 북한 당국은 1981년 도경제지도위원회를 신설하여 중앙 행정부처의 경제관리 권한을 대폭 분산하는 ‘새로운 공업체계’를 도입했다. 이후에도 지방산업공장들을 중앙공업공장으로 변경하고 다시 이를 환원하는 조치가 수시로 이뤄졌다.
산업부문만이 아니라 개별 기업들도 자재 공급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생산공정의 ‘수직적 통합’을 추진함에 따라 기업들은 점차 대형화되거나 기업연합을 형성했다.
북한의 경우 1973년 연합기업소 제도가 채택하고 1974년에 6개의 연합기업소를 조직하는 것을 시발로 하여 기업별 미니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을 제도화/양성화하여 1985년에 연합기업소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북한의 연합기업소는 전략적 의의를 갖는 중요 공장/기업소가 산하에 직접 원자재 공장/기업소를 거느리는 수직적 통합의 거대 기업집단이라 할 수 있다.
연합기업소 제도의 도입은 전국적, 지역적, 부분별 자재공급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않기 때문에 계획/생산의 이중적 단위인 연합기업소 차원에서 자력/갱생하라는 것이며 부족분은 최대한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 때문에 국가경제 전체적인 산업 연관 관계의 형성을 저해했다. 또한 필연적으로 연합기업소 간의 비계획적 거래를 낳았다.
북한 당국은 중앙계획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행정적 말단 기구에까지 이르는 분권화 경향을 전시를 고려한 조직적 대비의 필요성과 결합시켰다.
북한은 1960년대 초반부터 군(郡) 단위의 지역적 자립구조를 형성했다. 자립적 토대를 갖추기 위해 도시 행정구역에 농업지대를 포함시키고 농촌행정구역에는 공업지대를 편입시킴으로써 군을 자급자족적 행정체제로 편성했다. 그리고 인민소비품 등 경공업 제품을 지방경제의 자립적 생산에 맡김으로써 우선 분야로의 주요 자원을 집중했다. 즉 주요 자원을 국방 위주의 중공업에 집중시키고 인민 소비품 등은 지역적 유휴 자재와 인력을 활용하여 군 단위에서 자급자족하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유사시에 군이 독립적 단위로서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지리적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 경제는 모든 부분 경제가 중앙계획하에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행정부서별, 지역별, 기업별 등등으로 여러 차원에서 구축된 수많은 자급자족적 단위들의 결합물에 가깝다.
산업부문별, 지역별 분권화는 경제부서의 통합과 분리의 반복으로 귀결되며, 이로 인한 조직과 제도의 잦은 변경은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훼손한다. 따라서 계획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게 된다.
특수조직하의 생산체계구축
또 다른 계획 실패에 따른 대응방식의 하나는 5개년 혹은 연간 계획 내에 우선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특수 계획’을 마련하거나, 정부 내의 특별위원회나 공산당의 경제부서 하에 우수한 기업들을 독자적으로 조직하여 전략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특수 계획의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북한이 1988년 제13차 평양청년학생축전의 준비를 위해 벌인 200일 전투, 1990년대 들어 제기된 ‘90년대 속도창조운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특수계획을 추진할 때에는 ‘000 돌격대’와 같은 특수조직을 구성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체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특별위원회나 공산당이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꾸리는 방식이다. 북한은 군수산업의 운영에서 이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북한은 군수산업을 제2경제라 지칭하면서 제1경제인 민수경제와 조직적으로 분리된 생산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제1경제는 국가기구인 내각이 관리하지만, 제2경제는 노동당 산하 부서가 직접 통제·운영한다.
북한은 1966년 경제와 국방의 병진정책을 표방하면서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무원 산하에 군수산업 전담부서인 제2기계공업부를 설치했다가, 1970년대 초부터는 노동당 전문부서인 군수공업부 산하에 제2경제위원회를 설치하여 당이 직접 통제하는 체제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2경제위원회 산하에는 군수품 및 부품 등을 생산하는 수백 개의 군수 공장과 일용품 공장들이 있다.
이 군수산업은 북한 군사력의 중요한 생산기반으로서 모든 재원, 인력, 그리고 자원배분의 우선권이 부여되는 분야이다. 즉 경제전체적으로 생산자원의 부족이 만연한 상황에서, 특수 기구를 분리시켜 자원을 국가전략상 가장 우선적인 분야로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즉 생산 자재는 우선 분야의 필요를 충족시킨 후에 다른 분야에 배분된다.
군수부문 외에도 노동당의 주요 부서, 국방위원회, 정보 및 감시 기구 등은 산하에 기업소를 직접 두고 최고통치자의 국가 경영과 통치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적으로 관리/생산하여 조달한다(이는 당 경제로 불린다).
우선 부문에 해당하는 군수 경제(제2경제)와 당 경제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산액 기준으로 약 40~6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이 군수산업을 비롯한 전략적 프로젝트를 직접 통제·관리하는 것은 북한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소련 등 여타 사회주의나라들도 당의 특수기구 아래 유사한 체제를 꾸리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이 방식은 확실히 몇몇 전략적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소련은 우주개발계획과 첨단 군사무기 개발에서 성과를 이루었고, 중국은 대약진운동(1958~60)의 실패가 가져온 경제적 시련기 속에서도 1964년 핵 실험에 성공했다. 북한 역시 같은 방식을 통해 핵 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특수 산업부문에 대한 우선적 자원배분 방식은 불가피하게 후순위 분야의 계획의 변경을 강요하게 된다. 계획의 분권화와 마찬가지로 계획실패에 대한 대응이 다시 계획적 생산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계획적 영역의 묵인과 승인
사회주의체제에서 세 번째로 택하는 방안은 ‘비계획적 경제영역’을 묵인하거나 승인하는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모든 사회주의에서 사적 경제부문(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은 개인 소비재를 공급하는 핵심적 경제영역이었다.
● 보완관계로서의 국가부문과 사적 부문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는 초기단계에 농업을 집단화하였지만, 농민과의 정치적 타협의 하나로서 농민들이 자유경작을 할 수 있는 텃밭을 허용하였고, 텃밭의 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농민 시장’(kolkhoz market)을 합법적으로 보장했다.
북한도 이 면에서 예외는 아니다. 정권 초기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은 농민시장은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단절 없이 사적 생산물의 시장으로 기능해 왔다. 이것이 시장메커니즘의 도입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암시장이다. 구 소련의 경우,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이뤄지던 시기에도 비합법적인 암시장과 불법적 생산 단위는 존재했다. 북한의 비공식적 시장은 엄격한 사회통제와 배급제의 시행으로 다른 사회주의국가에 비해 발달이 저조했고 현재의 시장영역의 확대는 중앙관리경제의 마비에 따라 1990년대 들어서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개인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되었다고 선언한 1958년 이후에도 2차 경제라 불리는 사적 영역은 엄연히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시장과 함께 국가부문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까지 공식적인 농민시장으로서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당시의 농업 GNP가 공업GNP의 3배를 상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법화된 영역만을 고려해도 시장은 단순히 자본주의체제의 잔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일일 시장, 장마당, 야시장 등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가 아니라 북한당국이 시장거래를 양성화한 1984년 때부터이다.
북한당국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경우와 같이 경제위기 시에 통제를 강화했다. 사실상 배급제는 국가의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민의 식량수요를 통제하여 소비를 최저생존수준(Existenzminimum)으로 낮추기 위한 것이다. 1993년대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비합법적 시장거래를 허용한 것은 공식적 배급망이 마비된 상황에서 농민의 자구책을 용인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사적 경제영역’이 사라진 국가나 시기는 없었으며, 오히려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은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사회주의경제의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두 축으로 기능했다.
● 갈등적 관계로서의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
그러나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 사이에는 갈등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간부나 행정의 책임자들은 사적 영역의 확대를 통제능력의 약화로 인식하며, 특히 중앙권력이 체제 안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사적 영역에 대한 통제는 강화된다.
북한 당국도 7·1조치 직후인 2002년 7월 농민시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고 사적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며, 2005년부터 시장 억제책이 점차 강화되었고 2008년 말에는 2009년부터 종합시장을 농민시장으로 다시 되돌린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말, 화폐개혁 조치와 함께 종합시장을 폐쇄하고 개인영리기업을 몰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모든 사회주의에서 집권세력들은 사적 부문에 대해 통제와 완화를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북한이 취한 2009년 말의 조치도 2003년 이후 사적 경제의 양성화 정책이 중앙권력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는 집권층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2010년에도 인민경제계획법을 개정하여 과거 계획경제의 규율을 다시 강조하면서 주민에 대한 통제 강화하기도 했다.
III. 결론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자본주의로 분류되는 국민 경제에서도 경제 활동의 계획화는 나라 별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현상이며 자본주의에서 시장과 국가는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상호대체적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에서도 시장은 자본주의의 잔재로서가 아니라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소비재 공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근본적으로 이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 사회주의는 계획경제하에서 시장의 기본원리들이 전혀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경제체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상실했다»는 주장도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을 포함한 현실 사회주의의 경제의 형성, 발전, 위기의 과정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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