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6

(11) 운영위원회 - Messages

(11) 운영위원회 - Messages
  • July 12
  • Park Yuha
    7/12, 2:47pm
    Park Yuha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유희남 할머니께 할머님의 부고 소식을 어제아침에 들었습니다. 그 전날 저녁에 하필이면 제가 좀 바빠서 뉴스도챙겨보지 못한 탓입니다, 혹은 페이스북을 보았다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최근 며칠 페이스북에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탓입니다. 실은 어제 오전에 기자간담회를 예정하고 있었기에 고민했습니다. 할머님빈소에 먼저 찾아가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기자간담회는 연기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한 시간여 생각한 끝에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날 개최시간을 30분 연기한 탓에, 이미 혼선을 빚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례식장이 저를 반기지 않을 터였고(저는 고발직전에 돌아가신 배춘희 할머니 빈소를 찾아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마치 잘못 찾은 곳인 것처럼분위기가 싸늘해서 간단히 인사 드리고 복도에 오래 앉아 있다 나온 기억이 납니다), 저에 대한 적대가 어떤 것인지는 며칠 전에 직접 체험한 터라, 그런 빈소에 제가 찾아오는 것을 아마도 할머님도 말리셨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라는 책을 낸 이후 만난 분들 중 배춘희 할머니 다음으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분이셨습니다. 2013년 가을에 처음 뵈었으니 3년이 안 되는 짦은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눔의 집에 계신 할머님 중 가장 정정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병세가 악화되셨는지….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언젠가 현 사태가 종료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뵙고 말씀 나누고 싶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할머님께서 말씀하신 “할머님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의 사죄와 보상 방식”에 대해 제게 하셨던 말씀들, 2014년 4월에 제가 일본학자들,전 일본특파원이었던 언론인들과 함께 주최한 <위안부문제 ,제3의 목소리 >심포지엄에 나오시는 대신 제게 말씀하신 내용들을 새삼 다시 떠올립니다. 다음 날 말씀 드린 것처럼 동영상만 내보내게 되어 결국 할머님의 목소리는 세상에 내보내지 못했던 것이 다시금 죄송한 마음으로 남습니다.
    얼마전에 할머니께서 중심이 되어 미국에서 일으키신 재판에 패소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승소가 아니라 조정을 향한 것이고 1인당 20억은 받아야 한다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23/0200000000AKR20150623093700061.HTML?input=1195 하셨었지요. 작년 말 한일합의 직후에 “정부 뜻을 따르겠다”고 하신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51229005900038/?did=1825m 말씀을 저는 그 말씀의 연장선에서 들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시 말씀이 바뀌신 경위를 알 지 못하지만, 아무튼 결국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도록 한 것은 주변인 모두의 책임이고, 저역시 그 한 사람으로서, 저의 무력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고발 이후 두 주일쯤 지나서였을까요, 할머니와의 통화가 생각납니다. 직원이 와서 저의 책을 읽어 주었다고 하셨지요. 할머니는 눈이 불편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설명을 들으신 후 “그러게 왜 그런 얘길 책에 썼어..”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며칠 후 세종대 앞에서 “박유하를 파면하라!”고 시위했던 나눔의 집 관계자들과 몇분의 할머니들의 사진 속에서 저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지만 저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할머니께 전화 드리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저에 대한 고발 내용 중에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가처분 항목이 있었고, 그런 이상 연락을 드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니다. 가처분 판결에서 그 요구는 기각되었지만 이후로도 저어되어 연락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형사고발에서 조정문제로 제게 제안된 최종안 중에 “일본판도 일부삭제”를 요구받았기때문에 전화를 드렸었지요. 저는 사실 조심스럽게 전화 드렸는데 반갑게 받아 주시고,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해주셔서 기뻤습니다. 예상대로 할머니는 그 내용을 모르고 계셨고 할머니께 대한 사과, 한국어판 절판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본어판은 단순번역이 아니므르 그렇게 할 권리가 저에게 없다고 말씀드리자 “안소장에게 말해보라”고 하셨지요. 그 때 저는 다시한번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명석하신 할머니가, 재판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박유하가 20억을 일본정부로부터 받아주겠다고 했다”는 말씀을 법정에서 하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래서 슬프게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 모든 사태는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뜨거운 여름날 시위를 위해 세종대 앞에 나가셔야 데 대해, 할머니와의 대질신문에 나가지 못했던 데 대해, 아침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진 그 전날의 검찰조사로 다음날 몸살이 난 탓이긴 했지만 사과 드립니다. 자신들의 판단으로 저의 책을 재단해 할머니께 2차가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예상치 못한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도록 종용한 이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한데 대해 사죄말씀 드립니다. 우리사회는 70년 전이나, 오늘이나, 아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인 듯 합니다. 그런 사회를 살다 가시게 한 데 대해,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저의 무능을 다시 사과드립니다.
    이제 무거운 짐. 모두 내려 놓으시고,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소란을 봐야 했던 눈을 이제 진짜로 감으시고, 편안히 잠드시길 빕니다. 진작부터 할머니들께도 편지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느리고 못난 탓에, 이렇게 뒤늦게 쓰게 되어 진심으로 애통합니다.
    2016년 7월12일,박유하드림
  • Park Yuha
    7/12, 2:48pm
    Park Yuha
    오늘 우선 올릴 글입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 의견 있으시면 주세요.
    할머니의 고통..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 이권희
    7/12, 2:52pm
  • Park Yuha
    7/12, 3:24pm
    Park Yuha
    다시 읽어보니 또 오해받을 여지가 있어 보이네요. 자체수정하겠습니다. 수정되면 다시 연락 드릴께요
    이선생님, 이거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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