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논쟁 4라운드, 역사수정주의 논란
“본질 왜곡한 화해 담론” 비판… 박노자 교수 “‘친일파에 대한 적개심’을 ‘반일 민족주의’라는 극복 대상으로 파악”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6년 07월 09일 토요일
‘제국의 위안부’(박유하, 2013) 논쟁이 4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 1일 이 책을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출판기념 강연회가 열리면서다. 책의 저자인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수(역사학)가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이날 한국에 입국하지 못해 더욱 관심을 모았다.
한일 양국 학계 등에서 벌어진 위안부 논쟁의 중심에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어일문학)의 책이 있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 관계가 동지적 관계였다” 등의 구절은 법적 소송으로 책에서 삭제됐고,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논쟁이 격화했다. 그간 논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보자.
▲ 1일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에 대한 출판강연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 교수. 사진=장슬기 기자 |
‘제국의 위안부’ 소송으로 논란 시작
‘제국의 위안부’가 출간된 2013년 학계나 시민사회는 이 책에 큰 관심이 없었다. 2014년 6월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이 박 교수 등을 상대로 도서출판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내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박 교수가 사용한 증언과 자료가 편향적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운동방향이 문제다, 민족주의 관점이 문제다, 박 교수가 페미니즘 관점으로 가부장제를 지적했다, 박 교수 특유의 문학적 표현은 의도를 감춘다 등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논쟁은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됐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2라운드는 지난해 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34곳의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책을 판매·배포할 수 없다고 결정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동지적인 관계였다” 등 논란이 됐던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게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검찰이 지난 11월 박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3라운드가 시작됐다. 한국과 일본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박 교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우세했던 국내에서 박 교수는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 비슷한 시기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 보도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지국장에 대한 선고(무죄)가 나오면서 ‘표현의 자유’를 법의 힘으로 억압한다는 지적(법정이 아닌 광장에서 싸우자)은 더욱 힘을 얻었다.
▲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지음 |
박 교수 저작에 문제가 있더라도 민사에 이어 형사사건에 연루되는 건 과하다는 동정 여론도 생겼다. 민사재판부는 지난 1월 박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한 명당 1000만원씩 9000만원의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2·28 한일위안부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뚜렷하게 명시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지불하는 것으로 정부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안부 관련 논쟁이 지속됐고, 박 교수의 저작은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정영환 교수의 지적처럼 “검토 대상이 애매하고 이용된 개념이 이해 가능한 형식으로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 교수 책 발간으로 법적 소송과 무관하게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학문적 논쟁과 한일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정영환·김부자 “박유하는 역사수정주의자”
정영환 교수와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역사학)는 박 교수를 ‘역사수정주의자(수정파)’로 규정했다.
‘수정파’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행한 대량 민족학살을 왜소화하고, 나치에 관한 기존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정파는 주로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며 국제적인 네트워크까지 구축하고 있다. 주장의 핵심은 “희생자 수를 적다고 의심하게 해 ‘독가스를 통한 대량 살인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미지 전환의 시도’가 발생한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역사수정주의자인 하타 이쿠히코 전 니혼대학 법학부 교수는 박 교수에 대해 “자신과 비슷한 이해를 표했다”며 박 교수가 “강제연행과 성노예설을 부정했다”고 했다. 하타 전 교수는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조직적 강제연행 가능성을 부정한다.
김부자 “박유하, 일본 정부에 면죄부”
위안부 문제는 젠더 이슈이기도 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로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1월 박유하 검찰 기소에 항의하는 지식인 성명에 이름을 올렸고, ‘화해를 위해서’에 해설을 썼다. 그가 “박 교수의 대부분 논의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을 더욱 복잡하게 했다.
우에노 교수와 박 교수의 논의는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김부자 교수는 왜 두 학자의 주장을 구분했고, 왜 구분해야 하는지 밝혔다.
우에노 교수가 “‘성적 자기결정권’이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지만 피해자를 ‘순수한 피해자’와 ‘불순한 피해자’로 구분할 수 있고, 이때 후자가 정치적으로 나서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하자 박 교수는 ‘위안부의 자발성’(자발적 매춘부)을 강조했다. 우에노 교수가 “일본인 위안부와 조선인 위안부를 구분한 것이 ‘창부 차별’이고 가부장제 강화일 뿐 아니라 친일문제를 은폐하는 민족담론”이라고 비판하자 박 교수는 이 둘을 동일한 존재(동지적 관계)로 봤다.
▲ 평화비 소녀상. 사진=이치열 기자 |
김 교수에 따르면 박 교수의 주장은 “한국 출신 여성 지식인이 역사수정주의자인 하타씨와 ‘비슷한 이해’로 페미니즘 느낌이 나는 우에노 이론을 덧붙이고 ‘증거’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일본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위안부 담론”이다.
역사수정주의, ‘신냉전’ 논리인가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역사학)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정영환, 2016) 해제에서 “박유하의 초기 저서인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2004)와 ‘화해를 위해서’(2005)에서 이미 ‘친일파에 대한 적개심’을 ‘반일 민족주의’라는 극복 대상으로 파악하는 태도가 보였다”며 이런 논리가 “한·미·일 일부 유력자에게 유용할 수 있었다”고 봤다.
박노자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생산하는 담론들이 ‘한일 화해’ 담론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알맞은 한일 자본 간 관계설정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북한 혹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손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한일 화해론의 근거가 되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화해를 위한 사회적·외교적 담론일까, 과거사 청산 과제일까? 한일 화해론에는 냉전 논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박유하 교수는 한일 간 어떠한 합의를 기대하는 걸까? ‘제국의 위안부’가 학문적으로 논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많은 문제가 얽힌 상황에서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손종업 등,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정영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길윤형, ‘제국의 위안부 논쟁 2라운드…왜 이 책을 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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