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클로즈업 북한] 북한의 건축 ② 살림집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북한의 건축 ② 살림집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살림집이라는 단어는 남한에서도 종종 쓰이는 말인데요.



’살림집‘은 북한에서 주택을 일컫는 공식용어입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 에서는 ‘북한의 건축’ 두 번째 시간으로 북한의 ‘살림집’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북한은 지금 평양에 살림집 10만 세대를 짓고 있다.



시한은 강성대국 건설 원년인 내년까지다.



공사현장에는 밤낮이 없다.



<녹취> 조선중앙TV(2010년 12월 29일) : "군인 건설자들이 얼마 전에 맡은 살림집 골조 공사를 완성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주택 10만 세대는 분당 신도시와 맞먹는 규모다.



평양 낙랑구역에 5만 세대, 만경대구역 3만 세대, 대성구역 등에 2만 세대가 들어선다.



모두 초현대식 아파트들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주거단지는 천리마거리였다.



1967년 첫삽을 떠 1970년에 1단계 공사가 끝난 천리마 거리에 북한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8층 아파트를 기본으로 하고, 사이 사이에 5층, 10층, 12층, 15층짜리 현대식 아파트들이 배치됐다.



1970년대 들어 김정일 위원장이 건설부문을 총괄하면서 북한의 주택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건축도 예술이라는 그의 건축론이 주택분야에 처음 적용된 건 창광거리다.



평양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창광거리는 1980년에 1단계, 1985년에 2단계로 준공됐다.



1~2층에 상가가 있는 3~40층 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처음 선보였다.



층고가 높아지긴 했지만 직선 위주의 아파트였다는 점에서 창광거리의 주택 역시 천리마거리의 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조형주의 건축론이 적용된 대표적인 거리는 평양 서남부 관문인 광복거리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자들의 숙소로 만들어진 이 아파트들은 곡선을 기본으로 한다.



원통형 아파트, 바람개비형 아파트, S자형 아파트, C자형 아파트 등으로 아파트 외관 역시 다양했다.



강한 수평요소를 기본으로 하면서 입체적인 변화에 따른 수직요소가 적용됐다.



<인터뷰> 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김일성 체제에서 아파트를 짓던 것하고 김정일 체제에서 아파트를 짓던 것하고 굉장히 다른 양상을 띕니다. 김일성 체제의 아파트는 말 그대로 표준화 규격화 이런 것들로 해서 어떻게 하면 부재를 줄일 수 있느냐 층고를 낮출 수 있느냐 이런 부분으 로 가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건축예술론에 대한 기치를 내걸면서 형태가 다양해지고 시옷, 이응, 원통, 계단형 이런 것들이 나타 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취향이기도 하고요.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형태적인 과시 그런 것들로 해석될 수 있습 니다.“



북한의 건축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에 급속히 쇠락했다.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닥쳐공공건물과 주택 건설이 10여년 동안 모두 중단됐다.



북한의 건축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이다.



지난 2009년 완공된 만수대 거리 살림집은 고난의 행군 이후 10여년만에 평양에 공급된 첫 번째 대규모 신축 살림집이다.



재개발 방식으로 이뤄진 만수대 거리 살림집은 중층과 고층 아파트까지 32개동으로 이뤄졌다.



북한판 뉴타운이자 녹지공간도 충분히 조성된 친환경 아파트 단지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만수대 거리 살림집을 둘러보고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09년 10월 22일) : “김정일 동지께서는 만수대거리에 일떠선 모든 살림집들은 설계도 잘 되고, 시공도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만점짜리라고 하시면서.”



만수대 살림집의 내부는 남한에서 가장 보편적인 100제곱미터 아파트와 비슷하다.



방3개에, 거실과 부엌, 욕실, 발코니를 갖추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개인은 주택을 소유할 수 없다.



우리의 영구임대주택처럼 주민들은 사용권만 배정받는다.



대신 전체 생활비의 2% 정도를 사용료와 전기료, 수도료로 낸다.



북한의 살림집은 특호에서 4호까지 5등급으로 나뉜다.



특호주택은, 당과 정무원 부부장급, 인민군 소장 이상 고위간부들의 차지다.



고급 단독주택 형태로 면적은 150에서 200제곱미터에 이른다.



4호 주택은 100제곱미터 안팎의 신형 고층 아파트로 중앙당이나 행정부 과장급, 지방당 국장급 인민배우 등에게 배정된다.



2~3호 주택은 50제곱미터 정도로 3호 주택은 중앙기관의 지도원 등이 2호 주택에는 도급기관 지도원 등이 살게 된다.



일반 근로자와 농촌 지역 주민들은 문화주택으로 불리는 33 제곱미터 안팎의 1호 주택을 배정받는다.



주로 2~3층짜리 연립주택으로 공동 화장실과 욕실을 써야 한다.



특호와 4호 살림집은 모두 김정일 위원장의 선물로 하사된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선물용과 배정용이 있는데, 선물용인 경우는 당의 고급 간부나 문화예술인들, 대의원들, 노력영웅들 북한 체제를 위해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김정일 위원장 명의로 선물이 주어지고, 배정형은 평양시의 산업시설, 평양 시의 산업 단위별로 주위에 건설해서 배정 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 200만을 조금 웃돌던 평양의 인구는 그 사이 100만 명이 늘어 300만 명을 넘어섰다.



주택 신규 공급이 전면 중단된 동안 평양 인구가 급속히 늘면서 주택난이 극심해졌다.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들어가는 1집 살이, 2집 살이가 늘어났고, 심지어는 3집 살이까지 나타났다.



신혼부부들은 결혼한 지 3~4년이 지나야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집을 배정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주택 배정체계도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주민들은 은밀한 거래를 통해 주택 사용권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도 이를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공식적으로 매매되는 것은 아니지만 암시장 거래로 35평대 아파트가 실제로 미화 3만불, 우리나라 돈으로 한 4천만원 정도에 거래되 는 경우도 지금 왕왕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살림집도 철저한 체제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특히 평양의 고층 아파트들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실용성보다는 외관에 치중한 건축물이다.



평양시민의 편리나 주택공급의 원칙이 첫 자리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평양을 혁명의 수도라고 선전하고 외국에 카메라나 대표단 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비 행장 쪽과 가까운 거리에는 살림집을 많이 세워서 고층 건물을 형성하고 이렇게 선정 용으로 도시가 건설되고 가꾸어져온 그런 경향이 대단히 강합니다.



크고 높고 좋은 살림집은 평양의 주요 대로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따라서 대로에서 조금만 뒤로 들어가면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북한 당국 몰래 촬영된 평양의 뒷골목은 남한의 1960년대 풍경이다.



또 대로변 고층 아파트들도 곡선형 원통형, 바람개비형 등으로 외관만 멋드러졌을 뿐 실용성은 크게 떨어진다



<인터뷰> 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외부에서 보면 웅장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적으로는 공간을 쓰기 굉장히 불합리한 부분이 많고요. 채광이라든가 환기라든가 굉 장히 불리한 그런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극심한 전력난 때문에 초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엘리베이터가 전력사정으로 인해서 정상적 으로 운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까 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30층이나 40층에 살면 하루 24시간 땅을 밟아볼 수가 없습니 다.”



출신성분이 좋은 주민들로만 구성된 평양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농촌의 주택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인터뷰> 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50년대 60년대 지어진 건물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요. 그것이 굉장히 많이 낡고 거 의 손으로 벽돌을 집어서 만든 그런 수준까 지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현재 일반적으로 평양을 제외한 일반 도시, 농촌의 주택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북한은 1960년대부터 30년동안 속도전을 벌여가며 엄청난 세대의 살림집을 지어왔다.



그 결과 주택 보급률이 100%라고 선전했으며, 우리보다 20년이나 앞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으로 지은 주택은 부실 투성이었고, 북한이 자랑하는 초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전기와 물 공급 중단으로 재앙적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은 최근 주택난을 단숨에 해결하겠다며 평양에 10만 세대 살림집을 짓고 있지만 이는 엘리트들의 몫일뿐이다.



<인터뷰> 안찬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북한의 경제여건상 식량도 해결하기 어려운 데 살림집까지 해결해줘서 북한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높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도달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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