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이슈&한반도] 끝나지 않은 전쟁 6·25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이슈&한반도] 끝나지 않은 전쟁 6·25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앵커 멘트>

먼저 남북 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6월은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달입니다. 

현충일이 있고 6.25사변일도 이번 주에 있었죠. 

그러나 많은 분들이 6.25에 무관심한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는데요, 6.25의 의미와 교훈을 살펴봤습니다.

조아란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빛바랜 사진 한 장 6.25 참전 용사인 홍승복 할아버지에게 전쟁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입니다.

<인터뷰> 홍승복(6·25 참전 용사) : "소대 본부 안에 포탄이 떨어졌는데 거기 들어가서 환자를 꺼내야 하고.."

하지만 이제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인생이란 무대에서 하나둘 퇴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홍승복(6·25 참전 용사) : "모른 척 하거든요. 말로는 당신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삽니다. 말로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 안 알아줘요."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포격 속에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보름전인 6월 10일 우리 군 지휘부의 인사가 있었던 데다가 6월 23일 자정에는 군부대의 비상경계마저 해제 돼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에서 전쟁을 맞은 것입니다. 

<인터뷰> 안원홍(6·25 참전 용사) : "비 오고 바람 불고 안개 잔뜩 껴가지고 전방을 잘 주시할 수가 없는 이런 상황이었는데/ 일진에서 총소리가 나고 전쟁이 시작되더라고요. 그래 조금 있다 보니까 내 전면에도 전쟁이, 인민군이 공격을 해 오더라고.."

그렇게 시작된 6.25 전쟁은 3년이 넘게 계속 됐고,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의 포성은 마침내 멈췄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국토는 폐허가 됐습니다. 

<인터뷰> 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물적 피해도 크지만 정신적 피해가 훨씬 더 큰 게 아니었는가.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가 죽일 수 있다. 이념이라든가 이런 문제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이산가족이 되기도 했고. 이런 상황들이 남긴 어떤 정신적 트라우마. 이게 제가 보기에 훨씬 더 피해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60년 전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 땅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 다시 찾은 UN군 참전 용사들.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총을 들었던 그들은 6.25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녹취> 아든 로울리(미군 예비역 소령) :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백여 명의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참모였던 에드워드 로니 예비역 중장, 아리랑의 음률을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녹취> 에드워드 로니 미군 예비역 중장 (맥아더 장군 참모) : "1950년(인천상륙 직후) 전투중인 한국 병사들이 (아리랑을)노래하는 것을 들었고 나도 그들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UN 참전 용사들은 지난 6월 25일에 있은 6.25 전쟁 기념행사에도 참석했는데요.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개최하던 6․25전쟁 행사는 지난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계기로 정부행사로 격상돼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녹취> 정홍원(국무총리/지난 25일) :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과 UN군 참전 용사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국내외 6.25 참전 용사는 물론 각계 대표와 학생, 장병 등 6천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6.25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많은 국민들에게 6.25 전쟁은 점차 희미해진, 책에서나 봤던 그냥 그런 역사 속 이야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우솔(경기도 고양시 주엽동) : "평소에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최근 안전행정부가 실시한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6.25전쟁 발발 시기를 묻는 주관식 문제에 청소년은 52.7%, 성인은 35.8%가 정확한 답을 쓰지 못했다는 것.


<인터뷰> 고등학생 : "(6.25는 언제 일어났고, 언제 휴전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 시민 :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일부 청소년들은 6.25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어 더욱 충격을 안겨 줬습니다.

<녹취> 고등학생 : "(6.25 전쟁은 북침일까요 남침일까요?) 북침이요. 북한이 남한은 침입한 거니까 남침이요.. "

북침을 북한의 침략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일부 청소년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침이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 교육이 부실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김영호(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지금 우리 전체 인구 중에서 6.25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10%가 되질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올바른 역사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녹취>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지난 24일) : "역사 교육을 바르게 하고 보훈의식을 바로 세워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애국심을 심어주고 나라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전쟁 도발의 장본인인 북한은 6.25에 대해 어떤 교육을 하고 있을까?

<인터뷰> 김ㅇㅇ(2012년 탈북, 교사 출신) : "6월 25일을 맞으면 항상 외치는 게 있어요. 침략자들 소멸하자. 이런 거에서 전체 학생들이랑 직원들이랑 모여서 큰 광장에서 집회를 가져요.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수 침략자들에서 대해서 소멸하고 또 그 추종국가인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거든요. 그래서 6.25는 내가 알고 있기에는 그냥 남한이 북한을 6월 25일에 쳐들어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안한 상태에서 당했다. 이렇게 알고 있어요."

북한은 6.25전쟁이 미국의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준비 속에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조선 중앙 TV (지난 25일) : "1950년 6월25일 미제 침략자들은 마침내 이승만 괴뢰군을 내몰아 공화국 북반부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조선 인민에게 커다란 재난을 가져다 준 이 전쟁은 철두철미 미제에 의하여 계획되고 준비된 침략 전쟁이었습니다."

때문에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수호하고 남한을 해방하려 했다며 6.25 전쟁을 조국 해방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김영호(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북한은 6.25전쟁을 민족 해방 전쟁으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외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자기들이 식민지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왔다. 이런 잘못된 주장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이라는 외세를 물리쳤다며 전쟁 승리의 자부심을 북한체제를 유지시켜 온 원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미국과 남한이 먼저 침략을 했기 때문에 조국을 방위하려고 하는 전쟁이라고 하는. 이 관점이 되니까 결국은 자기들이 전쟁을 먼저 일으켜서 전쟁 목적을 달성 못해서 실패한 전쟁인데 북한에서는 성공한 전쟁이 되는 거예요. 방위를 했으니까."

6.25에 대한 남과 북의 인식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가운데 대한민국 땅에서 6.25는 서서히 잊힌 전쟁이 돼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6.25 전쟁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휴전상태가 60년째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인터뷰> 박태균(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정전협정 이후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정전 체제를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희가 6.25전쟁 전체에 대해서 한 번은 재성찰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말은 마치 한 단어처럼 항상 붙여 말하곤 하죠? 

전쟁이 남긴 상처를 교훈 삼아 소중한 평화를 잘 지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깊은 말인데요. 

우리 한반도의 평화는 바로 미래를 이끌어갈 우리 아이들에게 달려있습니다.

6.25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용산 전쟁 기념관. 이곳에선 6.25전쟁 당시의 음식을 먹어보는 이색적인 체험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터뷰> 이경은(전쟁기념관 홍보과장) :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고생을 하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어서 이 행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또 전쟁의 개념이 생소한 아이들이 직접 참전 용사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6.25전쟁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도 합니다. 

<인터뷰> 오소연(성산중학교) : "저희를 위해서 목숨바쳐주신 분들 많이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또 다른 곳에선 평화 교육도 이뤄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심코 쥐어줬던 장난감 무기들.

평화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책으로 바꿔 주는 자리도 마련됐습니다.

<인터뷰> 이성훈(서울영서초등학교) : "장난감 총보다는 책이 더 좋아서 바꾸러 왔어요."

북한 어린이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그림으로나마 표현하는 시간도 가져봅니다.

<인터뷰> 최예은(서울안산초등학교) : "남한이나 북한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에서 남한이랑 북한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여행할 수 있는 거 하고 싶어서 그렸어요."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남과 북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쳅니다. 

6.25전쟁의 교훈을 통해 평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아이들 스스로 안보의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이번 행사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인터뷰> 최혜경(어린이 어깨동무 사무총장) : "아이들이 6월25일을 전쟁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다짐하고 앞으로 내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 번 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63년, 전쟁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세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고 전후 세대에게 6.25는 빛바랜 사진 같은 아련한 역사일 뿐입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 기념관입구에 쓰여 있는 프리덤 이즈 낫 프리,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 글귀가 새삼 떠오르는 6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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