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8

1906 [김조년리] 함께 사는 세상을 바란다면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함께 사는 세상을 바란다면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함께 사는 세상을 바란다면서

금강일보
승인 2019.06.17 19:33
한남대 명예교수
한남대 명예교수




공동체생활, 다시 말해서 함께 사는 세상을 바란다면서 실제로 나는 건공중에 사는 듯한 느낌이다. 식구 말고 공간상으로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전혀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출입문을 함께 쓰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사람들과 ‘안녕하십니까?’ 하는 정도의 형식에 지나지 않는 인사를 하고 지낼 뿐, 서로 소통은커녕 이름도 성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파트에 살면서도 그러하고, 그 전 개인 주택에 살 때도 그랬다. 자라는 아이가 있을 때는 그 아이와 함께 노는 아이들 때문에 약간 오고가는 것은 있었지만, 그들이 다 장성한 다음부터 어른들끼리는 깊은 대화가 없고 소통도 없다.

주민회의에 가는 것도 아니고, 경로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노인회에 가입한 것도 아니다. 관리동 안에 있는 스포츠센터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과 얼굴만 낯설게 익히고 살 뿐 속사정을 전혀 모른다. 이미 오래 전에 건축된 이 아파트로 뒤늦게 이사해 와서 집집마다 떡을 돌려 인사하였을 때 얼핏 얼굴을 익혔을 뿐이다. 이 지역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서로 어떤 일을 할까 논의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하여 가끔 편의상의 의견을 제출할 뿐 주민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없다.


맘은 이러했다. 아파트에 살 때나 개인 주택에 살 때, 그곳에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실은 세계 여러 나라 전래동화책을 많이 준비하여 읽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화를 들려주겠다고 동네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초청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또 우리 사회에 인문운동이 필요하고, 그 소양들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시내에서 인문학공부를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여러 해 해오고는 있다. 맘으로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과 그런 기회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한 번도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해보자고 제한하여 보지도 못하였고, 누구를 우리 집으로 초청하여 그렇게 하여 보자고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또 시내 내가 쓰는 연구 공간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독서운동이나 사상 강좌를 계속하지만, 그 공간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러한 일을 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환경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 따위도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함께 하기는 했지만, 정작 터를 잡고 가까이 사는 사람들과는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같은 지역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좋게 만들고 고치려는 일을 함께 해 본 것이 없단 말이다. 그러면서도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맘을 놓고 산 적은 없다. 실제로는 함께 사는 것이 아니면서.

이제까지 내 삶은 한 곳에 살지만 거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관자나 국외자처럼 살았다. 공동체생활에 대하여 글을 쓰고 강좌를 열고 막연하게 불특정한 사람들을 초청하고 고차원의 생각을 나누면 그것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시내 여기저기에 갈 때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반갑게 인사도 하고, 어떤 동질감과 동지의식에서 서로 기뻐한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한 결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같은 생각과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운동을 내 친척이나 아웃 사람들과 함께 해 본 적이 없다. 서로 가깝게 오고갈 수 있는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는 멀게 살았다. 터를 잡지 못한 삶이다. 삶의 구체성이 없단 말이다.


사실 공동체를 꾸리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구체성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한 허공을 향해 휘젓는 손짓과 발짓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가꾸고 만드는 것은 어느 특정한 장소와 시간이 맞을 때 이루어진다. 대중을 향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여 가르치는 것은 보조역할이요 돕는 일은 될지언정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삶은 아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공동체생활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 역시 보조역할이지 직접 참여는 아니다. 삶을 변혁하는 것은 바로 직접 참여하는 데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 사회 안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직접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엉거주춤 변두리의 삶을 살아왔다.

나는 좋은 사상을 함께 공부하고, 고전을 읽으며, 매일 삶을 반성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에 대하여 성찰하며, 위로의 말을 주고받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막연하게 허공을 향하여 외쳤다. 그런데 내 집, 내 친척 사이, 내가 사는 마을이나 아파트단지에서 그 일을 전개하여 본 적은 없다. 적절한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다. 직접 참여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오늘 아침 반성하면서 바란다. 고전공부, 사상공부, 평화운동, 옛이야기나누기, 아름다운 삶 이야기나누기를 내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여기 경로당이나 사랑방에서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그런 삶의 절박함이 내게 다가와야 하겠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지. 함께 사는 세상을 꾸리는 보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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