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5

Jungsik Cha *유명 외국 신학자 초청의 지형과 구조



(3) Sung Deuk Oak

Jungsik Cha
2 June at 04:14


*유명 외국 신학자 초청의 지형과 구조

맥그라스든, 몰트만이든, 내년에 방문한다는 톰 라이트든, 해외의 유명 신학자들의 국내 초청을 주도하는 건 관련 전문학회나 신학대학의 해당 연구소가 아니라 대형교회 또는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기관들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며, 외국의 유명 신학자들이 학문적인 차원에서나 정치적인 차원에서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징후적인 현상이다.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룬 외국의 신학자들이 서구 학계를 순회 방문할 때 명예스럽게 여기는 기회는 제 전공영역의 최근 연구를 발표할 대학의 전통 있는 기념 강좌나 관련 학회의 특화된 섹션에서 동료 학자들에 둘러싸여 기조 발표를 하는 자리다. 그들이 일반교회에서 큰 무리의 대중신자들에 둘러싸여 대중적인 주제로 카리스마적 설교를 하는 장면을 서구 아카데미아 현장에서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서구의 유명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초청을 수락하여 방문하는 것은 한국 신학자들과 만나 그 앞에서 자신의 최신 연구를 발표하여 진지한 학문적 토론을 하려는 기대보다는 융숭하게 대접을 받는 외교적인 기회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청하는 한국 교회들 역시 그런 학자들의 전문적인 연구 내용을 경청하여 진지하게 배우려는 학문적 동기보다는 그들의 유명세에 편승하여 자기 교회의 고상한 위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데 더 큰 의도가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한국 방문은 깊이있는 학문적 교류의 장이라기보다 이미지 장사만으로도 수익이 쏠쏠한 시장인 셈이다.

먼 거리를 비행해 행차한 이분들의 동선은 한 차례 행사로 끝나지 않고 동원된 대중신자들에게 어색한 빤한 내용의 통역 설교나 강연, 인터뷰를 통해 서너 탕 이상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저자세로 이들을 과잉 환대하려는 제자들이나 지인들의 에스코트에 따라 이름값을 톡톡히 챙기는 재미를 맘껏 구가한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우리의 초청과 환대에 감읍하여 우리나라의 최대, 최고 목사나 한글로 풍성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국내 신학자를 초청해 동일한 수준의 활동과 외화벌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이분들의 출신배경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였거나 그 학문연구의 언어가 베트남어였다 해도 이러한 과잉 투자와 저자세 환대로 빈곤한 선물을 받는 비대칭의 구조와 불균형의 지형을 감수하려 할까 지극히 의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국내 신학자들이나 유명 목사의 머릿속에 지리정치(geopolitics), 언어정치(language politics),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 등의 긴요한 개념들이 제대로 자리잡아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준식민주의적 정치구조의 서글픈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비평감각과 학문적 자의식이 이렇게 취약하니 초청받아 오는 이른바 '세계적' 석학들이 자신과 인터뷰하는 최대 목사의 신학과 영성의 저변이 어떠한지, 자신이 참석한 행사가 어떤 정치경제적인 함의를 깔고 있는지 긴장하며 예습을 할 리 만무하고, 이 땅의 지적인 토양과 역사, 문화에 스민 아픈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 내가 속한 학회의 해외 석학 초청 건으로 시카고대학을 졸업 후 10년 만에 찾아 내게 좋은 학문적 스승이었고 오랫동안 책임있게 가르쳐준 교수님과 교섭하던 중 first class 항공권에 한국을 전염병이나 풍토병에 취약한 비위생적이고 미개한 나라로 의심하며 말씀하시는 얘길 듣고 이내 이런 시도를 단념하고 말았다. 한 세부적인 지형에서의 스승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스승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떠올린 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우리는 매일 보는 나의 소중한 이웃, 가난한 제 나라의 목사, 신학자들에게 너무 냉정하거나 가혹하고 먼 바다 건너 온 낯선 유명 신학자들에게 저자세로 굽신대면서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서구 학자나 작가 한 사람의 이름을 내세워 무려 "학회"까지 만들어 기리면서 100년 전 기지촌 지식인의 불우한 자의식을 속절없이 되풀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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