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5

자연으로 읽는 신학(마지막 회) > 문화와신학 | (재)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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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신학 (2015년 3월호)



밥으로 풀어본 한국 신학
탁사 최병헌과 신학사상가들



우리보다 앞서 길을 걸어간 한국 신학의 선구자들.
그분들의 신학을 밥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그분들의 논리라면, 이 사회의 밥의 문제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1. 최병헌(1858-1927)
1) 유교의 밥, 기독교의 밥 

최병헌은 조선 말기(철종 9년)에 충북 제천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에 돈을 내고 공부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신월리 일대 여러 한학자들의 문턱을 드나들며 눈동냥 귀동냥으로 공부했다.2) 조선시대 선비의 집에서 태어났으니 유교의 밥을 먹고 자라나야 했고, 과거에 급제하여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입신양명의 꿈을 품었다. 그러나 썩을 대로 썩은 조선 말기의 과거시험은 최병헌의 꿈을 짓밟고 상처만을 안겨주었다.3)
우연한 기회에 최병헌은 조지 존스 선교사를 만나 그의 한국어 선생이 되어 역사, 문화, 종교 등을 가르쳐줄 기회를 얻었다.4) 그러나 단지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초기 선교사들과 접촉하면서 성경, 기독교교리 등을 배우게 되었으며, 기독교에 입문하게 된다. 유교의 밥을 먹고 자란 최병헌, 그는 이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주는 밥을 먹게 되었다.

2) 탁사 최병헌 - “동양의 밥과 서양의 빵은 같다” 

1903년 “기서”(奇書)라는 글에서, 최병헌은 “동양지천즉서양지천”(東洋之天卽西洋之天)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5)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동양의 하늘은 곧 서양의 하늘”이다. 즉 “서양의 하늘이나 동양의 하늘이나 하늘은 다 같다.”는 말이다.
하늘을 하나님으로 새긴다면, 동양의 하느님이나 서양의 하느님이나 다 같은 하느님이라는 말이 된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할까? “기서”보다 앞서, 1899년에 기고한 “사람의 큰 병”이란 글을 보면,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선생은 “동양의 하늘이 곧 서양의 하늘이요, 서양의 상제께서 곧 동양의 상제이시니 그 사람들도 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백성으로 아오.”라고 했다.6) 이 글에서 선생은 서양의 상제와 동양의 상제가 같다고 천명하였던 것이다.
하늘이 동양의 하늘, 서양의 하늘이 다르랴. 하늘은 어디에서나 동일한 하늘이다. 하느님이 서양이라고 다르고, 동양이라고 다르랴. 하느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는 분이니 동서양의 구분이 있으랴.
그런데 “기서”의 의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원문장 전체를 보자. “대개 대도(大道)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안팎으로 모두 통할 수 있다. 서양의 하늘은 곧 동양의 하늘이며, 하늘 아래에 있음으로써 모두 동일한 무리로 볼 수 있으니, 사해(四海)는 가히 형제라 부를 수 있다.”7) 즉 동양의 하늘과 서양의 하늘이 같다는 천명은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모든 사람은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밥’을 보면 어떠할까?
서양은 빵을 주식으로 삼아 왔고, 동양은 쌀밥을 주식으로 삼아 왔다. 물론 다른 곡물이나 동식물을 주식으로 삼는 민족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주식으로 삼고 있든 밥은 밥이다. 빵을 먹든, 쌀밥을 먹든 밥을 먹어야 산다는 것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서양의 빵은 동양의 밥과 같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형제들이 배고파하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자매들이 목말라하고 있다. 배고픈 데는 동서양이 없다. 밥에는 동서양이 없다. 그러므로 “서양의 빵이나 동양의 쌀밥이나 모두 같은 밥이다.”

3) 구국(救國)의 밥, 민족계몽(民族啓蒙)의 밥 

최병헌은 외세침탈, 국론분열, 부정부패로 얼룩진 조선 말기에 태어났고, 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한일합방, 명성황후 시해사건, 일제통치 시대를 겪으며 살았다.
500년 동안 조선을 먹여 살린 유교체제, 그러나 이제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조선 사회는 더 이상 자신이나 가족, 당대의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밥을 제공할 힘이 없었다. 서구 열강의 쟁탈전이 된 한반도, 결국 일제에 의해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이야말로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사건이 아니었던가?8) 임오군란은 당시 집권층의 백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에 대해 항거한 대표적인 민중반란이었으며, 밥의 반란이 아니었던가?
나라를 잃고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 최병헌에게 기독교는 ‘구국의 밥’이었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유교 관료들은 타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최병헌의 초기 작품들은 이러한 세태를 풍자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고집불통”(1899. 3. 8.), “학자의 고명한 수작”(1899. 4. 5.) 등은 전통을 고집하는 유학자들에게 시대 변화를 따를 것을 충고하는 글들이다.9) 이러한 시대에서 최병헌의 눈에 기독교는 ‘구국의 밥’으로 비춰졌다. 기독교 문명이 서양을 강대국으로 만들었다고 믿은 최병헌은 기독교를 통해 우리나라도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 밥은 ‘민족계몽운동의 밥’이기도 했다. 최병헌은 교육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계몽의 밥을 먹이고, 교육의 밥을 먹여 민족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인지 최병헌의 초기 작품에는 교육이나 위인에 대한 글들이 많다. “정성의 열매”(1899. 4. 26.), “보는 것과 못 보는 것”(1900. 2. 7.), “학문의 아버지”(1900. 2. 21.), “산촌학장을 가르침”(1900. 4. 11.) 등이 그것이다.10)
이러한 세태 앞에서 최병헌은 “독립가”를 발표하였고,11) 「조선독립협회회보」, 「제국신문」, 「신학월보」, 「대한크리스도인회보」 등 각종 기관지에 창립자, 발간자, 주필로 참여하여 강연, 저술, 편집, 문서활동 등을 통해 민족의식, 신앙의식을 고취시켰으며,12) 의법회(懿法會), 독립협회, 흥사단, YMCA(황성기독교청년단회) 등의 단체를 통하여 민족운동, 구국운동을 펼쳤다. 그것이 나라 잃은 사람들에게 ‘구국의 밥’이 될 것이며, 민족계몽운동으로 민족을 교육시켜 미래 세대를 먹이고 살찌우는 ‘민족계몽의 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4) 삼합(三合) - 삼대관념 

음식에는 삼합(三合)이 있다. 전복삼합, 홍어삼합, 문어삼합 등 삼합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뜻은 3가지 종류의 음식이 만나 하나하나의 음식맛보다 한층 더 절묘하고 오묘한 맛을 이뤄낸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최병헌에게 삼합은 삼대관념이다. 선생은 “종교의 이치는 삼대관념이 있으니, 하나는 유신론의 관념이요, 둘째는 내세론의 관념이요, 셋째는 신앙적인 관념이라. 어느 교를 막론하고 이 삼대관념에 하나라도 이지러진다면 완전한 도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13) 라고 했다. 유신론, 내세관, 신앙은 종교가 갖춰야 할 3가지 덕목이다. 이 3가지가 갖추어짐으로써 종교는 완전체를 이룬다. 즉 선생에게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사람들에게 구원의 밥, 생명의 밥을 제공할 수 있는 완전한 종교일 수 없었다.

5) 삼대진미(三大眞味)- 삼위일체 

완전한 종교를 이루는 데에는 삼합이 필수인데, 선생에게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완전한 종교였던 기독교에는 절대적인 삼대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였다. 선생의 여러 글 속에는 다른 종교와 대화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통해 타종교를 설득해나가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선생은 “죄도리”(1901)에서, 인간의 원죄와 본죄를 논하면서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풀어간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그의 주저 『성산명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개된다.14) 선생에게서 기독교의 참맛은 삼위일체의 진미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최대의 맛이었다.

6) 변증(辨證)의 밥- 성산명경(聖山明鏡) 

『성산명경』(聖山明鏡)은 거룩한 산에서 한국 전통종교를 대표하는 유불선 3교의 대표자들과 가장 늦게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의 대표자 신천옹이 만나 대화를 하는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신소설이다.15)
여기서 신천옹(信天翁)은 세 종교의 사상을 가지고 갑론을박의 논쟁을 벌인다. 신천옹은 창조론, 인간론, 천당지옥론 등을 통해 각 종교의 난점을 지적하고 기독교로 귀의시키는 데 성공한다.16) 밥을 통해 한마디로 말한다면, ‘밥에도 불밥, 유밥, 선밥이 있으나, 기독밥이 최고라네.’ 라고 했을 것이다.
대화란 좋은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대화가 필요하며, 상대방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나의 주장을 설명할 수 있다. 이로써 서로 간에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대화는 때로는 다툼이 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일방적 주장으로 끝날 수 있다. “삼인문답”(1900)17)에서 실패했던 전도자의 과업은 세 종교 대표자가 모두 기독교에 귀의함으로써 『성산명경』(1909)에서 뜻을 이룬다.
개신교 최초 선교사들로부터 배타적인 신학을 배웠으나, 이웃종교와 대화를 통해 자기 논리를 전개했다고 하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선생의 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증적이다. 즉 기독교야말로 생명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종교요, 기독교야말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구원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선생은 변증논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밥을 먹여주려 하였던 것이다.

7) 만종일련(萬宗一臠)- 만합(萬合)과 일미(一味) 

기독교에는 삼위일체라는 삼대진미가 있고, 참 종교에는 삼대 관념이라는 삼합이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으며, 서로 다른 상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가 하나로 어우러져 맛을 내는 만합(萬合)은 없을까?
선생은 협성신학교 교수로 임용된 해인 1922년 『만종일련』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이 책은 어느 한순간의 관심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1908년에 탁사는 『예수텬주량교변론』을 번역 출판한 바 있으며, 1909년에는 “교고략(四敎考略)”을 번역하여 연재 형식으로 게재한 바도 있다.18) 그리고 1916년부터 약 4년의 시간 동안 13회에 걸쳐 “종교변증설”을 썼다.19)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종교변증설”에 기고한 논문들을 묶어 출판한 것이 『萬宗一臠』(1922)20)이다. 이 책에서는 유교, 불교, 선교, 회교, 파교(힌두교) 등 5대 종교와 천리교(天理敎), 파사화교(波斯火敎), 인도구교미신(印度舊敎迷信), 애급고교미신(埃及古敎迷信), 희랍고교도리(希臘古敎道理), 경천교(敬天敎), 청림교(靑林敎) 등 동서고금의 16개 기타 종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선생은 비교종교학적 입장에서 여러 자료를 모아 편집해 놓은 이 책의 제목을
『만종일련』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만종일련’이란 말을 담고 있는 원문장은 다음과 같다. “一臠者以萬宗知全鼎味也.” 이것을 풀이하면, “한 점의 고기는 (만종으로써) 그릇 전체의 맛을 알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사람들마다 구구절절한 여러 해석이 있다. 심지어는 여기에서 다원주의적 요소를 엿보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도 어조사 ‘야’(也)를 제외한 맨 앞글자와 맨 뒷글자만을 놓고 볼 때, ‘일미’(一味)가 되므로, 종교 진리의 상통성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바도 있었으나,21) 최병헌 사상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도, 또한 이 책의 앞부분에서 단호히 주장하고 있는 완전한 종교로서 갖춰야 할 삼대 관념을 피력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도, 이는 무리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한 솥에 끓여지고 있다는 발상은 이 뜻을 그리 쉽게 볼 수만은 없게 한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구라는 밥솥 안에 담긴 만종(萬宗)의 만합(萬合)일지도 모른다. 3가지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지는 삼합의 맛도 진미인데, 만 가지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진다면 어떠한 맛을 낼까? 그냥 잡탕국이 되어버릴까?
선생에게 이 한 솥에 끓여진 만종의 요리가 제맛을 내게 하는 것은 일련(一臠), 즉 고기 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선생이 ‘밥맛은 고기 한 점이 내는 것이라네.’ 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들이 다 각자의 맛을 내게 하지만, 그 각자의 맛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된 요리로 제대로 된 맛을 내게 하려면, 고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생에게 그 한 점의 고기란 바로 기독교였다. 예수가 말한 음식의 맛을 내게 하는 소금의 역할과 같은 뜻이었을까?
그러나 예수는 세상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되라고 했는데, 오늘의 기독교는 이 한 점의 고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만 가지 종교가 지구라는 한 솥에서 각자의 맛을 내고 있다. 이것이 한데 어우러져 일미(一味)가 될 수 있을까?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일품진미(一品眞味)의 밥이 될 수 있을까?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밥의 참맛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종교가 될 수 있을까?

8) 밥으로 정리해보는 최병헌의 생애와 사상 

최병헌은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유교의 밥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유교밥상은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는 먹을 수 없는 밥상이었다. 최병헌은 유교의 밥상을 새로 차려 내오려고 했다. 입신양명하여 썩은 밥상을 치우고 정갈하고 깨끗한 밥상을 내놓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밥상을 차리러 부엌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그는 이제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
그때 그에게 새로운 밥상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난생 처음 맛보는 새로운 밥상. 그 밥상은 처음엔 어색해서 먹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밥상의 새로운 맛에 이내 빠져들었다. 이 밥상의 밥을 먹으면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이 밥을 먹으면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대로 내려오는 다른 밥상들도 있었다. 유밥, 불밥, 선밥. 그들의 밥상을 대하고 보니, 좋았다. 그 밥들도 잘 차려 먹으면 몸을 튼튼하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지금 새로이 알게 된 이 밥을 먹어야만 빨리 기운을 차리고 힘이 세져서 일하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 이 밥상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밥에 대해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국에서 온 이 낯선 밥을 의심하며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외쳤다.
“이 밥은 외국에서 온 밥이오. 그러나 낯설어하지 마시오. 뭐 독이라도 들었는 줄 아시오? 그렇지 않다오. 모양이 다르고 재료는 다르지만 다 같은 밥이라오. 그 사람들도 이 밥을 먹고 힘을 낸다오. 유밥도, 불밥도, 선밥도 따지고 보면 다 외래에서 온 밥들 아니오? 밥은 다 같은 밥이라오. 서양의 밥이나 동양의 밥이나 다르지 않다오. 처음에는 낯선 맛이지만, 먹어보면 이 밥맛의 참맛을 알게 될 거요.”
“여러분은 지금 배고프지 않소? 시국이 어려운 때에 밥이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할 것이 아니오? 서양에서 온 밥이라고 먹어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소? 밥을 먹고 힘을 내야 이처럼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갈 힘을 기를 수 있지 않겠소? 자! 보시오. 이 밥은 구국의 떡이요, 민족갱생의 떡이요, 부국강병의 떡이요, 자주독립의 떡이요, 교육과 계몽의 떡이오. 한번 잡숴보시오. 눈이 번쩍 뜨일 것이요.”
“그 어떤 밥인지 먹어나 봅시다. 한번 줘 보슈!”
기독밥은 성부, 성자, 성령이 ‘따로 또 같이’를 이루는 삼대진미로 구성되었다. 그는 이 기독밥의 맛에 푹 빠져 이것 아니면 밥을 먹지 아니하였고, 유밥, 불밥, 선밥도 좋지만, 기독밥이야 말로 최고의 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밥상의 재료를 한데 모았다.
‘그래, 그래 맛있어~!’ ‘하지만 역시 음식 맛을 내는 데는 고기가 최고야!’
어쩌다 보니, 최병헌 선생이 육식 예찬론자처럼 비춰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개념과 사상을 가지고 논했을 뿐, 실제로 선생의 음식취향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배를 곯아야 했던 어린 시절, 유교의 밥을 통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려던 꿈은 기독교 밥상을 만나 민족과 나라를 먹여 살리는 꿈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그의 더욱 원대한 꿈, 그가 꿈꾸던 밥상은 선생이 말씀한 것처럼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형제요 자매”라고 했던 그 사람들을 먹이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2. ‘밥’으로 들려주는 한국 신학사상가들의 이야기 

한국 신학에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어디 최병헌 목사뿐이겠는가? 유영모, 함석헌, 이용도, 윤성범, 유동식,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 현영학, 길선주, 김재준, 김교신 등등. 이분들의 말씀도 듣고 싶으나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아쉬우니 이분들 중 몇 분을 초대하여 간단한 말씀이나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상공간의 공간이긴 하지만, 이분들의 대표적인 개념이 밥과 서로 어우러지는 행복한 상상을 통해서 말이다.22)

* 다석 유영모(1890‐1981) ― 일식, 일좌식, 비움의 밥상 

저는 평생 ‘다석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다석밥이 무엇이냐고요? 잘 아시다시피 제 호가 다석(多夕)입니다. 다석이란 제 평생의 신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평생 하루에 한 끼를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실천했지요. 다석이란 저녁만 먹는 일일일식을 말합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요? 글쎄요. 저는 일식(一食) 이외에도, ‘일언(一言), 일좌(一坐), 일인(一仁)’을 몸소 실천하려 했지요. 남들은 이를 두고, 수행이니 고행이니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도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한 일식(一食)이란 ‘밥의 비움’, 즉 ‘비움의 미학’인 셈이지요. 모든 것이 다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요? 채우려고만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니던가요? 하지만 저는 ‘비움’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인생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도 ‘없이 계신 분’이 아니실까요? 인간은 뭐든지 채우려고만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비워 우리를 채우시니 말이죠.
세상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배푼 오병이어의 기적이야말로 ‘비움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 바보새 함석헌(1901‐1989) ― 성서로, 뜻으로, 밥으로 보는 한국 역사 

저는 바보새 신천옹(信天翁)이었습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하늘의 소리만 듣고 하늘이 주는 밥만을 먹고 살려고 했지요.
저에겐 두 분의 큰 스승님이 차려주신 밥상이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기독교의 밥을 먹고 한의사인 아버지 덕에 좋은 학교밥도 먹고 자랐지만, 뭐니뭐니해도 오산학교에서 유영모 선생님이 차려주신 ‘씨밥상’이야말로 최고의 밥상이었습니다. 씨이야말로 밥 중의 밥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식민통치시절 일본에서 만난 우치무라 간조 선생님이 차려주신 ‘성경밥상’은 지적인 양식, 영의 양식이 되었고, ‘무교회밥상’ 역시 훌륭한 종교적·사회적 양식이 되었습니다. 또한 ‘두 개의 J(Jesus, Japan)’를 주요 재료로 삼았던 선생의 일본 요리는 귀국 후 ‘두 개의 C(Christ, Corea)’를 주요 재료로 삼는 한국적 밥상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저의 밥상에 변화가 찾아왔지요. 저보다 어리지만 안병무를 통해 독재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독재의 밥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밥상을 차리자는 밥상운동에 대해 들었고, 이에 참여하자는 권유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민중의 밥상’이었고, 유영모 선생님의 ‘씨’을 ‘민중의 밥상’으로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우치무라 선생이 물려준 밥상을 통해 ‘한국적 성경밥상’을 내놓았습니다. 특정한 이념, 사상, 교리, 집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독교가 주는 밥이 아니라, ‘성경말씀’이 주는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내 ‘성경’은 ‘뜻’으로 바뀌었답니다. 성서보다 하늘뜻이 더 크고 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바로 『뜻으로 본 한국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뜻이 무엇일까요? 그 뜻은 씨들의 배를 채워주는 밥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밥으로 보는 한국 역사!’ 하늘의 뜻은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이 땅의 씨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밥으로 보는 한국 역사’를 한번 써보아야겠습니다.

* 해천 윤성범(1916‐1980) ― 토착화 밥상, 한국적 밥상, 성의 밥상, 효의 밥상 

제가 추구했던 것은 ‘복음’이라는 생명의 밥이 어떻게 ‘한국인의 식탁’에 자리 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죠. 일명 ‘복음의 토착화 밥상’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단순히 그것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았죠. 복음이 서양 음식의 형식으로 한국인의 식탁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좀 더 한국적인 향취가 배어나는 식탁을 원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한국적 신학밥상’이었어요. 전 바르트의 말씀의 밥과 율곡 선생의 성(誠)의 밥을 잘 버무린 퓨전 요리를 생각해냈죠. 그러나 결코 융합은 아니랍니다. 겉보기로는 ‘감, 솜씨, 멋’ 등 한국적 냄새가 폴폴 나기는 해도, 어떤 밥상보다도 복음적이고 성서적이고 바르트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진정 복음을 한국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제 밥상의 핵심은 역시나 ‘성(誠)의 밥상’과 ‘효(孝)의 밥상’입니다. 성의 밥상이 뭐냐고요? 그것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밥상,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이지요. 효의 밥상이 뭐나고요?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생명의 밥이 된 예수의 밥상, 즉 부자유친(父子有親)의 효자밥상을 말하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멀리하지 않고 기꺼이 생명의 떡이 된 예수의 효심에서 착상해 만든 상차림이지요.
복음서와 성서가 말하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매일매일 기도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저는 우리네 정취가 풀풀 풍기는 한국적 토착화밥상을 차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만의 밥상, 우리들만의 잔치가 되기는 원치 않습니다. 이 밥상의 주요리는 ‘성의 밥상’, ‘효의 밥상’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의 참떡이라는 것을 말이죠.

아쉽게도 이번에는 세 분 선생님의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다른 선생님들이 더욱 좋은 말씀을 들려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기독교사상」의 연재는 이번 호로 끝났으며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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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 교수는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연구과에서 초빙외국인학자로 재직한 바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이며,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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