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알라딘: 나는 양심을 믿는다 -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인 후세 다쓰지의 삶



알라딘: 나는 양심을 믿는다 -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인 후세 다쓰지의 삶

나는 양심을 믿는다 - 조선인을 변호한 일본인 후세 다쓰지의 삶
후세 간지 (지은이),황선희 (옮긴이)현암사20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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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쪽
148*220mm
348g



책소개
강직한 ‘인권 변호사’ 혹은 ‘독불장군’ 후세 다쓰지(1880-1953) 변호사를 아는가? ‘나는 양심을 믿는다’는 신조를 따라 평생 정의를 좇고 옳음을 실현하고자 헌신한 일본인.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삶을 그의 아들 후세 간지가 쓴 평전으로 한일 역사의 뜨거운 고동(鼓動)을 생생히 전한다.

‘자유인’ 후세 다쓰지의 삶과 사상은 민족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에 헌신한 아름다운 인간의 초상으로서, 한일 역사의 소중한 고리이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의 한 전형으로 기려도 좋겠다. 이 책은 1부에서 한결같았던 후세의 삶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그가 겪은 변호사 징계재판 소송 기록을 요약했다. 그리고 '후세 다쓰지의 한국 인식'에 대해 연구한 경원대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이규수 교수가 해제를 덧붙였다.


목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17

1부 F씨가 살아온 길

01. 평생을 좌우할 세 살 버릇이 들다 27
02. 양심에 따라 고향을 떠난 F씨 35
03. 철학을 추구하는 인생 계획의 첫발 43
04. ‘철학’ 연구를 위한 법률학교 입학 49
05. 우연히 ‘천직’ 변호사로 등록하다 56
06. 혈기왕성한 애송이, 신진변호사 F씨 63
07. 톨스토이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72
08. 선거권의 꽃, 보통선거를 실시하라 79
09. F씨, 인권 변호사라 불리다 85
10. 조선인과 타이완인의 벗 93
11.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98
12.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투쟁 112
13. 일본공산당을 구하다 117
14. 인권 보호자로서 반격하다 126
15. 태평양전쟁 이후의 활동 133

2부 후세 변호사 징계재판 일지

1. 일본공산당 오사카 피고인단의 노랫소리 143
02. 검사와 F씨의 불꽃 튀는 치안유지법 문답 150
03. 국가 권력 측의 터무니없는 주장 154
04. 징계재판 법정 투쟁 각서 발표 158
05. 심리에 선입견은 금물 제1심 제1회 공판 164
06. 여전한 편들어주기식 심리 제1심 제2회 공판 170
07. 사상은 기소하지 않는다 제1심 제3회 공판 174
08. 오사카 공판의 진실은 무엇? 제1심 제4-6회 공판 180
09. 불리한 발언을 이끌어내려 하다 제1심 제7-9회 공판 188
10. 유죄 논리와 무죄 논리 제1심 제9회 오후-17회 공판 201
11. F씨, 기선을 제압하다 최종심 제1-3회 공판 209
12. 공판 기록을 깨끗하게 작성하고 싶다 최종심 제4-9회 공판 215
13. 오사카 공판 조서는 특별 고등 경찰의 작품 최종심 제10-12회 공판 226
14. 변론 없이 갑자기 최종판결을 하다 최종심 제13회 공판 234
15. 변호사 제명, 그 뒤 이야기 247

해제 _ 후세 다쓰지의 생애와 사상 | 이규수 250
후세 다쓰지 연보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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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후세 간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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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쓰지의 장남인 후세 간지는 《국민신문》의 기자를 거쳐 《일본경제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나는 양심을 믿는다』, 『후세 다쓰지 외전』이 있다.



최근작 : <나는 양심을 믿는다>

황선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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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대화의 맛》, 《별 볼 일 없는 인생 입문》, 《되는 사람들의 45가지 습관》,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라》 외 다수가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nij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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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일본의 양심 ‘후세 다쓰지’
정의를 위해 평생을 쟁투한 ‘일본의 쉰들러’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삶
민족과 권력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 인류애를 실현한 ‘곧은 사람’의 초상

강직한 ‘인권 변호사’ 혹은 ‘독불장군’ 후세 다쓰지(1880-1953) 변호사를 아는가? ‘나는 양심을 믿는다’는 신조를 따라 평생 정의를 좇고 옳음을 실현하고자 헌신한 일본인. 그는 2004년 일본인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조선의 독립운동을 옹호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항일테러조직 의열단 사건을 변호하고, 박열 부부의 일본천황 암살 혐의 사건을 변호하고,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등 조선인이 관련된 거의 모든 사건을 변호한 후세는 일본인임을 부끄러워하며 조선인· 타이완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다. 사람들은 그를 ‘일본의 쉰들러’라고 부르고,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은 각종 인쇄물에서 후세를 ‘우리의 변호사’라 지칭하며 아낌없이 존경심을 표현했다. 그의 아들 후세 간지가 쓴 『나는 양심을 믿는다』는 후세의 열정의 발자취를 좇은 평전으로 한일 역사의 뜨거운 고동(鼓動)을 생생히 전한다.

■ '조선인들이여, 당신들의 투쟁이야 말로 진정한 투쟁이다'

“조선 문제는 결코 조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조선 문제는 동양의 발칸 문제이다. 조선은 세계평화와 혼란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전 세계의 문제이면서 전 인류의 문제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부터 66년. 식민지 조선을 벗어나 세계의 주요 국가 ‘대한민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어쩌면 제국 일본의 식민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국제 관계를 맺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21세기 들어 민족주의적 태도와 언어, 즉 억압과 수탈·친일과 반일·이식과 내재적 발전 등의 코드를 넘어 적극적으로 한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이 시도되고 있으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20년을 넘기고, 최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독도 방문 시도 해프닝에서 보듯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모색은 답보하거나 정략에 의해 후퇴하고 있는 듯하다. 8·15를 맞아 잠시 한류의 환호성에 귀를 닫고서 지난 100여 년 한일 역사의 상흔을 되짚고 소통과 우정의 자취를 발견하는 일은 상호 이해의 실마리이자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는 양심을 믿는다』에서 소개하는 ‘자유인’ 후세 다쓰지의 삶과 사상은 민족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에 헌신한 아름다운 인간의 초상으로서, 한일 역사의 소중한 고리이자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의 한 전형으로 기려도 좋겠다. 이 책은 1부에서 한결같았던 후세의 삶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그가 겪은 변호사 징계재판 소송 기록을 요약했다. 그리고 '후세 다쓰지의 한국 인식'에 대해 연구한 경원대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이규수 교수가 해제를 덧붙였다.
인도주의, 양심에 따른 변호 활동, 특히 식민지 민중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실천한 후세 다쓰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인권·민중변호사로 이름이 높다. 후세가 변호 활동과 사회 운동을 벌인 시기는 대략 1905년부터 1953년까지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 제도를 확립한 시기까지 후세는 변함없이 조선인을 사랑했다.
후세는 2·8 독립선언과 조선 각지에서 전개된 3·1 운동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인 유학생들의 목숨을 건 투쟁에서 ‘인간의 고귀한 모습’ 그리고 곧은 진정성을 보았던 것이다.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유별나게 공감하던 ‘제국의 변호사’ 후세는 당시 가장 천대 받는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앞장서서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비난하고 조선인과 조선의 독립을 논의하기도 했다. 후세는 식민지 조선 농민들의 문제에도 깊이 개입하였다. 조선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착취가 ‘무산계급 해방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식민지 총독정치에 대한 비판에서 더 나아가 ‘세계 개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피력하였다.
후세의 실천은 단호하며 자기희생적이었다. 그의 3남은 가족까지 소홀히 했던 아버지를 배척하면서도 아버지의 신념을 좇았고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여 후세에게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이러한 자신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식민지 폭압 체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피압박 민족의 이익을 대변한 후세는 ‘일본 무산운동의 맹장’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일본인’으로 조선인의 기억에 새겨졌다.

■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폭력과 광기의 시대에 정의와 양심을 외치다

“조선 민중이 모두 이 재판을 주목합니다. 피고들의 향후 활동에 민족의 운명이 달렸기 때문입니다. 재판소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선 민중의 비통한 목소리를 들어주기 바랍니다.”

후세 다쓰지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자 무수한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사회운동가들에게 아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를 촉구했다. 톨스토이의 휴머니즘 사상에 깊게 매료된 그는 단지 연극의 배역처럼 권력의 줄에 매달려 재판을 연기(演技)하는 것에 분노하며, 자신이 알고 옳다고 믿는 바에 온몸을 던져 행동하는 것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자신을 ‘배우’로 만드는 국가권력의 부당함을 견디지 못한 후세는 1903년 검사 대리를 그만두면서 전통적인 변호사에서 민중의 변호사로 변신하겠다는「자기 혁명의 고백」을 선언한다. ‘법정에서 사회로’ 정의의 길을 넓혀나간 것이다.
1911년 3·1 운동 이후, 후세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선인을 돕는 데 본격적으로 나섰다. 톨스토이가 대지주임을 부끄러워했듯, 후세는 일본인임을 부끄러워하며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 것이다.
1923년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고 도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다. ‘조선인 습격’이라는 유언비어가 재해 지역에 퍼지면서 자경단은 떼를 지어 도로를 통제하며 3천 명이 넘는 조선인을 때려죽였다. 후세는 이 학살에 대해 당국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진상을 조사하고, 항의 활동에 주력했다. 후세의 연설문은 이 학살을 규탄하는 문장 중에서 가장 격렬했다. 후세는 조선인 구제책을 마련하려 이리저리 뛰었지만 결국 아쉬움과 슬픔이 그의 가슴을 채우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사죄의 글을 우송하여 조선인 학살문제에 끝없는 애도의 마음을 표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1924년, 후세는 의열단을 변호하기 위해 경성으로 향했다. 조선인 유학생들이 밤새 골방에 숨어서 나라를 구하고 독립을 이룰 토론에 쏟는 열정에 감복하여 망설이지 않고 의열단 변호의 먼 길을 떠난 것이다. 법정에서 당당히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과 함께 그는 타협이 아닌 ‘무죄’를 주장했다. 또한 후세의 활동 중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은 박열 열사 부부의 대역사건 재판의 변호다. 이 재판은 박열의 목숨뿐 아니라 후세의 목숨까지도 걸린 투쟁이 되었다. 후세는 3년여의 재판 기간 동안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했다. 후세는 박열 부부의 열정적인 발언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 법정에 섰다.
결국 법정소란죄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변호사 자격이 박탈된 후세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도 조선인들을 위한 변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그는 1946년 ‘조선건국헌법초안사고’를 조선인들과 공동을 집필한다. 해방 이후 ‘민족독립의 상징’인 신헌법을 구상할 수 있는 일본인은 후세 이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조선인이 관련된 거의 모든 시국 사건의 변호를 담당한 후세와 조선인의 관계는 한일 연대 투쟁의 거울과도 같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벗’으로서, 때로는 ‘동지’로서 영원히 한국인들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 사회주의자를 변호하면 사회주의자인가?! 법과 정의는 누구의 것인가?!

"판사 스스로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사법권의 독립을 지킬 수 있습니다. 가슴에서 울리는 정의의 목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명령하는 양심이 있다고 믿습니다."

1906년, 일본사회당은 도쿄 시가 전개한 전차 운임 인상에 반대하였다. 이에 수십 명의 당원이 기소되었다. 후세는 야마구치 요시조라는 사회주의자를 변호하여 큰 호평을 얻는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권력의 억압 대상, 사회적 약자인 공산당의 변호를 많이 맡아 그들의 곧은 투쟁을 지지했다. 도쿄 《아사히신문》 등은 후세를 ‘좌익 변호사계의 장로’로 지칭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공산당원’,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단지 양심과 정의에 따라, 누가 보아도 잘못된 일에 옳음을 외쳤을 뿐이었다.
국가의 주요 권력과 좌익 세력이 거세게 충돌한 1930년대 초반, 후세는 비합법 정당인 일본공산당의 피고인단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변호사 징계재판에 부쳐졌다. 그의 변호 활동은 국가의 주요 권력과 항상 마찰을 일으켰다. 표면상으로 재판부는 ‘사상은 기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곧 후세의 ‘공산당 변호’를 그의 ‘신념’으로 간주해버린다. 결국 재판소는 ‘법정 소란’이라는 트집을 잡아 후세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한다.
이 책의 2부는 바로 후세를 제명하기 위해 진행된 징계재판의 전말을 소개한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작성된 공판 기록은 국가권력의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드는 후세의 법정 진술과 공방은 생생함만큼이나 긴장감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부당한 잣대로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도 양심으로, 온 마음으로 정의를 외치던 후세의 모습은 독자의 뇌리에 남을 것이 분명하다.
법치에 대한 신뢰가 의심 받고,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등 국가 지도층의 위법과 탈법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검찰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이 격심한 한국 사회에서 후세의 행동은 법이란 무엇이고, 법조인이란 누구이며, 무엇이 정의인가를 질문하는 본보기 텍스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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