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좌도우기] 19대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1)
[이남곡, 좌도우기] 19대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1)
등록 :2017-03-30 18:17수정 :2017-03-30 21:10
이남곡
인문운동가
저는 전북 장수의 한 촌로입니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하신 것을 미리 축하드리며, 동시에 첩첩한 내우외환의 위기에서 국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잘 수행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외세에 의한 분단과 동족상쟁으로 남북의 극심한 불신과 대립 속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과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위대한 저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입니다.
선진복지국가 진입을 막고 있는 제1원인이 ‘분단’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실제로 대외정책의 난맥상과 내부의 편가름의 근원에 ‘분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통일’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러나 남북은 상대방에 의해 통일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것을 막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해왔습니다. 이 공포를 이용하여 비정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질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때 잠깐 볕이 드는가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지난 70여년 동안 동질성이 확대되기보다는 이질성이 심화된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제 남북의 국력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또한 국가적 과제의 성격이 전혀 다르게 되었습니다. 북한에 의한 통일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입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해도 아마도 최대의 목표는 지금의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도권은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저는 몇해 전부터 분단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통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대한민국이 북을 흡수통일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의 전쟁 위험과 통일 이후 내전 등에 의한 재분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 그것이 남북의 국민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남북이 국교를 정상화하여 일반국가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입니다. 상호불가침과 내정불간섭은 기본이지만, 그것으로도 불안하면 당연히 지금까지의 동맹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흥망은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북한을 다른 나라로 봐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내정과 흥망에 우리가 휘말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진심 어린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과도, 과거 교전국이었던 중국과도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동족이라는 이유로 전쟁 위험과 내정 개혁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두 국가로 평화가 정착되면 과거 햇볕정책 시대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인적 물적 교류, 유라시아철도 등 남북 모두에 이로운 일들이 훨씬 자유롭고 광범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오랫동안 지긋지긋하게 겪어온 지정학적 악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흔한 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 열강의 패권 다툼의 격투장이 되어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백성의 몫이었습니다. 우리가 동상이몽의 통일이라는 목표에 매달리는 한 남북의 적대와 불신은 결국 이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제 주체적으로 우리가 ‘한반도 대계’ ‘민족 대계’를 당당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잘 준비된 바탕 위에서 ‘한 민족 두 국가 시대’를 세계만방에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시련의 원인으로부터 영광의 조건으로 대전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국력은 더 이상 과거의 ‘새우’가 아닙니다. 북이 핵을 개발할 명분도 이유도, 미국이 사드를 배치할 이유도 사라지게 됩니다. 북-미, 북-일 수교 등 그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것을 한국이 주도함으로써 새로운 아시아 질서, 나아가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남북 두 국가의 내부 진화와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통일이 순리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아시아 연방이라는 더 큰 구도를 주도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30여년, 해방 100주년까지 두 국가 체제를 실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외세에 의해 휘둘려온 우리 정치를 일변시킬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8694.html#csidxb12de2e88bba50fb540c239d77b9c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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