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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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분단을 뛰어넘어》통일로 간다



글쓴이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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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취재진은 재미동포 통일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오늘의 통일운동 현황, 그리고 미래의 통일운동 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특집으로 《분단을 뛰어넘어》 통일로 간다라는 연재물을 쓰기로 해 그 두번째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이번에는 양은식박사에게 요즘에 일고 있는 최순실게이트에 관한것도 질문해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해 보려고 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사진]최근 민족통신 취재진과 대담하는 양은식박사




[사진]1984년 《분단을 뛰어넘어》출판기념식에서 인사말하는 양은식 박사




[사진]1981년 비엔나, 1982년 헬싱키에서 북녘동포들과 해외동포들간에 화해협력 모임이 시작되었다



[사진]왼쪽부터 쏘니아 선우, 공광덕박사와 그의 부인 조병옥선생, 선우학원박사, 최홍희선생, 양은식 박사



[사진]왼쪽부터 전순태선생, 재일한통련을 창립한 배동호선생, 곽동의선생, 양은식박사













[기획-2]《분단을 뛰어넘어》통일로 간다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편집위원] 민족통신 취재진은 양은식 박사 자택을 방문하여 그의 인생 발자취와 함께 통일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도서, 《분단을 뛰어넘어》를 출판하게 된 계기와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다. 그리고 요즘의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한 최근 한국내 정세와 움직임에 대해서도 질문해 보았다.



《분단을 뛰어넘어》라는 이 도서는 1984년 4월19일 406쪽 두께로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 도서가 발행하여 이영희 교수를 포함하여 임수경 당시 대학생, 한홍구 교수 등 남녘사회와 해외동포사회 각계에 던진 파문은 대단했다. 그것은 그동안 분단의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반증해 주었다. 남녘동포들은 말도 안되는 국가보안법으로 북녘을 갈 수도 없고, 갈 엄두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핏줄의 주소를 알아도 연락하지도 못하게 하였던 것이 남측 당국의 반북정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동포 양심학자들이 1982년 일본에서 열린 해외동포학자 통일심포쥼에 참석하였다가 이때 양은식 박사를 중심으로 6명의 학자들(선우학원, 송석중, 김동수, 최익환, 김기항)이 북녘학자들과 통일문제를 토론하기 위하여 평양행을 결행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통일운동을 국제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자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해외통일운동을 활성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1983년 7월에도 평양을 방문하여 북녘통일분야 학자들과 준비모임겸 교류모임을 가졌다.



1960년 박정희 5.16군사정변과

1980년 5월 전두환 군부의 학살만행



이러한 운동은 사실상 조국해방이후 우리민족이 외세에 의해 분단된 그 순간부터 잠재해 온 염원이었다. 그 염원의 수준과 정도는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고조되어 왔다. 그리하여 1960년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군사독재의 정권탈취에서 시작하여 전두환 군부가 또다시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빚어진 광주민중항쟁이후 그 변혁운동의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민중들이 흘린피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전두환군사독재 세력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 이후 미국문화원들이 불타기 시작한 그 원인과 본질적 문제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바로 분단때문이었다. 그 분단도 다름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 외세 가운데에도 가장 못된 외세가 바로 미제국주의라는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미국 지배세력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여 식민지로 만들던 그 순간에도 일본과 비밀리에 협약하여 일본에게 조선을 먹도록 음모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1905년의 ‘가쯔라-태프트 밀약’이다. 그리고 일본은 당시 미국에게 필리핀을 먹도록 음모하였던 관계고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요즘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막말을 해대고 있는 것도 그 뿌리가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



미국은 또 일본이 36년동안이나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고통과 고난의 지배로 말과 이름까지 빼앗아가며 탄압하였는데 일제로부터 해방하던 그 시기에 일제를 분할통치하지 않고 식민지로 고생한 조선을 둘로 갈라서 그 한쪽인 남녘 땅에 일장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달고 지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 분단의 시작이었다. 미 당국은 그 때 민족주의자인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 등을 거세하고 미국에서 못된 행위로 악명이 높았던 이승만을 내세워 또다시 미국식민지로 만들어 오늘날까지 지배해 온 것이다.



미국은 이승만을 내세워 북침을 부추겼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코리아 전쟁이 터졌다. 16개국을 동원하였으나 코리아전쟁은 미국의 패배로 돌아갔다. 그것이 1953년 7.27정전협정으로 나타났다. 조선은 이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로 정하여 매년 기념해 왔다.



이승만의 3.15부정선거로 정권이 위기에 몰리고 4.19학생의거가 김주열학생의 사망으로 터져나오자 이승만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피신해 버렸다. 당시 한국민중들은 민주화의 봄은 왔다고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미국의 등을 업고 등장한 박정희 군사독재의 쿠테타(정변)로 18년의 암흑시대가 되고 말았다. 1979년 부마항쟁에 이어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오른팔이었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자 이 때에도 민주화의 봄은 올듯하였으나 또다시 전두환 군사독재에 의해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학살되었고, 한국의 민주화는 또다시 군사독재에 의해 시달리게 되었다.



6.15시대와 10.4평화번영 시대를 파괴한 이명박과 박근혜



노태우 군부, 김영삼 정부에 이어 최초로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 시대에 들어와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시대로 돌입했고, 연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북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10.4평화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으나 또다시 미 당국에 의한 방해책동으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 들어와 남북관계는 유례없이 최악의 반목관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가장 잔인무도한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1980년대 초에 일어났던 해외동포사회의 조국통일운동이 시작되던 초두였던 1981년 여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무려 65명의 재미동포들과 유럽동포들, 그리고 북녘동포들이 역사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남북화해와 협력 그리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토의하며 실현하자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인 1982년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진행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83년 7월 해외동포 학자들이 평양에서 통일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참석자들 각자가 돌아가서 방북수기를 써 그 원고들을 지역신문에 싣기로 하였다. 그 반응들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양은식 박사가 책임자로 그 원고들을 모아서 묶어 도서로 출판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84년 4월에 이른바 방북기를 한데 묶어 발행한 도서, 《분단을 뛰어넘어》가 세상에 등장했다.



이 도서에 대한 반응들은 뜨거웠다. 양은식 박사는 이에 대해 “특히 남녘의 당시 지성인들 중에 주목을 받았던 이영희교수와 한홍구 교수를 비롯하여 당시 임수경학생과 청년대학생들간에 이 도서를 복사하여 돌리며 보기 시작하였고, 감옥에 있던 서승교수를 포함하여 다른 양심수들까지 이 복사본을 구하여 북녘소식들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말한다.



1980년대 국내외 동포들에게 가장 뜨겁게 읽혀졌던 도서가 양은식 박사의 편저로 된 《분단을 뛰어넘어》였고, 1990년대에는 재일동포 김명철박사의 《김정일 통일전략》으로 보인다.



양은식 박사는 재미동포 통일운동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김일성주석의 4차례(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접견을 받은바 있고 2차례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인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왔다. 그래서 그의 발자취는 곧 재미동포 통일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요즘의 한국정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양은식 박사는 이같은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하다가 “요즘 한국정세는 유태영 박사가 민족통신에 폭로하여 오던 최순실, 최태민에 얽힌 박근혜의 실정 내용들이 이제와서 한국의 일반 테레비죤 방송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시민단체들 80여개 대표들이 “박근혜는 즉각 대통령직을 사퇴하라!”는 공동성명을 10월26일자, 즉 박정희가 김재규의 손에 사살당한 바로 그날에 발표하여 국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라고 설명한 양은식 박사는 “박근혜의 사퇴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닌데 아직도 목을 걸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간다”면서 한국 시민단체들이 발표한 사퇴촉구 성명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는 박근혜가 즉각 대통령직을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국가 안보에 관련된 기밀들을 개인 최순실에게 알려 현행법을 어겼음은 물론이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얼토당토 않은 무자격자에게 위임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자격을 잃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사퇴해야 할 사유는 이미 지난 3년 8개월 동안 차고도 넘치도록 쌓여왔다. 대통령으로 처음 당선될 때부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부정선거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며, 수많은 선거공약들을 한마디 해명도 없이 백지화한 채 창조경제라는 허울 아래 경제를 파탄 내고 노동악법 추진 등을 포함해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또한 재임기간 내내 무능력 무책임 오만무도함으로 시종하며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 변란에 준하는 사안들 대응에 철저하게 무력함을 드러내왔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행방불명됨으로써 신속한 재난 구조활동에 지장을 주어 3백여 명이 희생되게 했으니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건국절 추진으로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데서 나아가 일방적으로 일본 아베 정권과 일본군 종군위안부 책임을 불가역적으로 끝낸다고 야합함으로써 국민들의 뜻을 거슬러 국가의 존엄과 역사를 수호하는 데 실패했다. 절차를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입주기업체들에 막대한 재산 손실을 끼치고 남북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으며, 국익을 외면한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전쟁 위협으로 내몰았다.

“급기야 종북몰이와 정당 해산을 불사하는 공안탄압으로 한국 사회가 수많은 희생을 거쳐 이뤄낸 민주주의를 그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독재 시대로 되돌리고자 획책한 것도 모자라,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던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조준 직사해 목숨을 앗아가고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는 정작 고인을 강제 부검해 사인을 조작하겠다고 지금도 유족을 괴롭히고 있다. 끝내는 청와대 비서관이 재벌들에게 최순실의 사유회사나 다름없는 재단에 출자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라며 진실을 호도하더니, 결국 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국민들을 소위 멘붕에 빠뜨린 것이다.”




(다음에는 양은식 박사, 그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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