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7

[기획-5]《분단을 뛰어넘어》통일로 간다(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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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31 10:29



[기획-5]《분단을 뛰어넘어》통일로 간다(동영상)



글쓴이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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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편집실]양은식 박사는 민족통신 취재진과의 기획대담을 통하여 지난시기 통일운동을 하면서 가슴아펐던 일, 상처받은 일들도 적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재미통일운동 진영의 향후 교훈으로 아로새겨 통일운동 미래에 거름이 되어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대신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 대담을 통해서는 조국통일 운동에 나서는 해외운동의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민족통신 편집실]




*관련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nzjEuoz9_3k










https://youtu.be/zENDZ4xqNus

















[기획-5] 《분단을 뛰어넘어》통일로 간다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편집위원] 민족통신 취재진은 양은식 박사에게 “조국통일운동에 나서는 해외동포 통일운동의 지위와 그 역할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알아보았다.



그는 《분단을 뛰어넘어》가 출판되어 세상에 소개된 이후 해내외 동포들이 바라보는 북녘동포사회에 대한 시각들이 많이 달라짐에 따라 그 변화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해외동포 통일운동이 갖는 독창적인 지위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재미동포 이민역사는 1903년 하와이 사탕농장에서 시작되었지만 재미동포 항일운동시기, 혹은 반일독립운동 시기에는 주로 민족주의자들인 안창호, 박영호, 리승만 등 일부 개인들이 단체를 조직하여 운영되었다.



재미한인50년사(1955년 3월 김원용 저)와 <미주동포 민족운동 100년사>에 의하면 초기 당시 재미동포 사회 반일운동은 1908년 친일파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결행한 장인환 구출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장인환 구출운동을 일종의 애국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그 당시 많은 조직들이 연합하여 <대한인국민회>를 창설한 것도 1909년 2월1일이었다.



그 후 1913년 6월27일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서 동포11명이 영국계통인 시몬의 살구농장에서 배척을 받는 사건이 터지자 이들이 일본인으로 오인받아 일본영사가 미국정부에 교섭할 때 그것을 거절한바 있었다. 대한인국민회는 1919년 당시 중국에 임시정부가 수립하자 이에 재정적으로 적극 지원한바 있었다. 이 때 국민회 내부의 리승만과 안창호 세력은 1921년 분열되었다. 1937년 일본의 중국본토 침략이 개시되던 시기에는 뉴욕에서 코리아타운 내 중국후원회가 구성되어 중국을 지원한바도 있었다. 1938년에는 이경선 목사가 로스엔젤레스에 오면서 침체상태의 흥사단과 국민회를 부흥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 선우학원, 최봉윤, 최영순이 학생신분으로 참여한 기록도 있다. 1939년 8월에 미국 헐리우드에서 재미동포사회 첫 시위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을 반대하는 조선인의 데모가 성공적이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1941년 12월7일에 헐리우드 집회실에서 ‘코리아나이트’라는 반일문화행사도 있었던 기록도 있다.



그 당시의 인물로 후대 통일운동진영에 알려진 인물은 선우학원으로 그는 이경선목사와 함께 활동했다. 그때 민족혁명당 북미주본부라는 독립운동 조직도 있었는데 이 조직은 1942년에 ‘독립’이라는 주간신문을 발행한바 있었다. 이것은 1952년까지 10년동안 출판되었다. 그 당시 재미동포사회에는 김일성주석이 이끌어 온 항일빨치산 운동과 김일성인민유격대에 관한 소식들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대부분 임시정부의 소식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 신문은 코리아전쟁이 터진 1950년 6월 김일성주석의 연설을 신문 전면에 소개했고, 미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한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미정부 당국은 이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재미동포 운동은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반일독립운동, 해방이후 분단시대에는 남녘사회의 민주화운동 시기, 그리고 1980년 광주항쟁이 터진 이후시기부터 조국통일운동이 태동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관련하여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재미동포들이 조국통일운동과유기적 관계를 갖고 통일운동을 본격화한 것은 1990년 8.15에 평양에서 열린 제1차범민족대회 이후가 된다.





조국통일운동의 3주체



양은식 박사는 조국통일운동이 조직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지적하고 이 때부터 조국통일운동의 주체를 구성하고 있는 3주체가 남측 주체, 북측 주체, 그리고 해외동포 주체이기 때문에 통일운동을 밀고 나가는 원동력과 그 힘도 3주체의 역량에 의해 규정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동포들의 주체도 조국통일운동에 있어서 주인의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조국의 환경이 분단된 조건에서는 해외동포들의 지위와 그 역할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분단된 조국의 그 어느쪽에서 일방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려운 것이 해외동포들이 갖고 있는 어려운 점이다. 이럴때 할 수 있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의 영역은 남과 북이 합의한 원칙들과 그 범위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양은식 박사의 생각이다.



그 원칙들은 이미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힌 (1)민족자주의 원칙, (2)평화통일의 원칙, (3)민족대단결의 원칙이 될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이뤄진 남북정상들의 6.15선언과 10.4선언이 바로 남, 북, 해외 동포들 3주체가 지켜야 할 원칙이며 역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우리민족의 성원이라면 그가 지구촌 어디에 거주하든지 조국의 분단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민족끼리 손을 잡고 우리민족 운명을 우리민족의 결집된 힘으로 개척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기본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러한 문제를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나라들의 힘을 빌어서 그들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자세를 지양하고, 민족자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우리 민족분단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우리민족의 통일은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처럼 한쪽이 다른 쪽을 먹는 방법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서로의 사상과 이념, 기존 제도를 존중하는 조건에서 연방통일 혹은 연합통일의 적절한 수준에서 양측의 합의하에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양측의 충돌이나 갈등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이 하나의 이념이나 하나의 제도로 되는 완전통일은 연방제도를 통하여 상호간에 신뢰가 쌓아지는 미래의 적절한 때에 연방의회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채택하자는 것이 평화통일의 1단계 순서가 되는 것이다.



민족자주의 원칙과 평화통일의 방법을 채택하여 나아가는 방도에 있어서도 남과 북 양측이 철저하게 민족대단결에 의해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강대국에 의해서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이 통합하는 경우에는 외세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 때문에 조국통일은 반드시 민족대단결에 의해 이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권과 결탁하고 그것도 부정선거로 불법적인 방법에 의해 정권을 탈취한 가짜 대통령인 박근혜는 최순실게이트, 즉 영생교 교주인 최태민 가문에 의해 굿놀이판에 휘말려 들어 한국 자체를 망쳐왔고, 남북관계를 최악의 수렁으로 빠뜨려 놓고 반민주, 반평화, 반통일의 길로 몰아가면서 조국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끌고오다가 이에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해외동포들의 지위와 역할



이러한 역사적 전환기에서 해외동포들의 지위와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 양은식 박사의 주장이다.



1단계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도 그러하지만 2단계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도 해외동포 주체는 남측의 입장이나 북측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남과 북의 공동이익을 위한 조건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조종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주체도 해외동포 주체가 될 수 있다. 해외동포 주체의 지위와 그 역할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존재가치가 부여된다.



그렇다. 우리민족 분단사에서 해외동포들의 지위와 역할은 중요한 몫을 차지해 왔다. 항일투쟁시기에도 그러했지만 조국해방이후 민족분단시기에도 해외동포들의 영향력은 남과 북 양측 모두에게 지대하였다. 특히 재미동포들을 위시하여 재일동포들, 재중동포들, 재러시아동포들, 재유럽동포들 및 기타지역의 해외동포들은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중재자로서 그리고 조국통일운동의 한 주체로서 그 지위가 보장되어 왔고,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같은 운동의 과정에서 한몫을 한 해외동포 원로들을 떠 올린다면 일본의 배동호 선생과 곽동의 선생, 재일총련의 한덕수 선생과 서만술 선생, 허정만 선생, 미국의 선우학원 박사, 임창영 박사, 차상달 선생, 양은식 박사, 유럽의 윤이상 선생, 정규명 박사, 이종현 선생, 재중동포사회의 이철재 선생, 양영동 선생, 최은복 선생, 카나다의 전충림 선생과 전순영 여사, 정학필 선생 등을 꼽을 수 있다.



해외동포 통일운동의 조직적 체계를 보면 1990년 8.15범민족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남과 북, 해외동포들의 통일운동은 유기적 관계를 갖지 못하고 분산적으로 진행하여 왔다. 그러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구성되면서부터는 해내외 통일운동이 조직적으로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통일운동의 통일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직에 참가하는 해외동포들의 규모와 범위가 폭넓지 못하고 제한된 단체들과 제한된 수의 해내외 동포들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이 운동의 지위와 그 역할에도 일정한 제한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특히 남녘 땅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이 조직이 뒤늦게 결성되었고, 남측 보수정권의 탄압속에 결성되었고, 제한속에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대중적 토대를 확보하는데 크나 큰 어려움이 조성되어 왔다. 이것은 해외동포사회에도 유사한 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2000년 6월 남북정상간의 역사적인 회합이 이뤄지자 이같은 성과로 탄생한 조직이 바로 6.15민족공동위원회이다. 이 조직의 산하에 북측위원회, 남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이 조직들은 대부분 보수와 개혁, 진보성향의 단체들이 함께 구성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광범위한 대중들이 결집된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조직들이 연대연합 운동을 진행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관들과 의견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규모와 폭은 넓고 깊었지만 그 대신 민족문제의 본질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청산해 나아가는 운동에 있어서는 일정한 제한성과 한계성으로 운동의 활성화에 문제점들이 노정되어 온것도 사실이었다. 이 조직이 결성된지 1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이 운동의 한계성이다.



이것은 특히 남측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시말하면 남한당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국이 아니고 미제국주의 세력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속에 갇혀 있음으로 하여 국가보안법 같은 비상식의 악법을 그대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 모순의 늪에서 탈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남녘사회의 현주소가 되고 있다. 최근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가 중국 심양에서 해외측 위원회 성원들과 북측 위원회 성원들과 만나 조국통일 문제를 의논하였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검찰에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조건과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분단을 뛰어넘어》라는 도서들이 수없이 많이 발행된다고 하여도 그 영향력은 대중사회 속으로 파고들지 못할 것이라고 양은식 박사는 안타까와 하면서 하루 속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서로 마음놓고 자유롭게 만나 통일논의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남녘사회가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양은식 박사의 우선적인 주장이다. 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양심적인 국민들의 소리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권을 강점하고 있는 외세의 입김에 의해 남녘사회가 춤을 추게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가 양은식 박사의 물음이다.



《분단을뛰어넘어》에서 통일로 가려면?



양은식 박사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청산한다든지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 배경은 도서, 《분단을 뛰어넘어》를 통하여 분단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아는 과정도 필수적이지만 그 그것을 파악한 뒤에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이 무엇이며 그 실천을 어떻게 수행하여 분단 자체를 극복하여 평화를 이룩하고 민족의 화해협력으로 8천만 겨레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는 통일국가를 이룩하는가에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생을 통일운동과 함께 보내면서 《분단을 뛰어넘어》에 관심을 갖고 그 원인 분석에 집중하며 노력하는데 그쳤다고 고백하면서 전략과 전술, 청산대상에 대한 바른인식과 그것을 위한 동력을 확대하고 재생산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통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을 다소 후회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인지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주권을 틀어쥐고 초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올라선 북부조국에 대하여 좀더 공부해야 하고, 많이 배워야 하고, 이제는 따라 배우기를 당당하게 외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그는 민족통신이 언제나 주장해온 “북부조국을 바로 아는 것이 통일을 앞당긴다”고 강조한 말이 옳은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상기시켜 준다.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며 오늘날까지 그 어느 한 순간도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투쟁하여 온 북부조국의 위상은 지금 전 세계 약소국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그만한 나라 조선이 핵보유국이 되어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미국을 향해 큰 소리 땅땅치는 모습을 볼 때 후련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한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쳐 온 양은식 박사의 속마음이기도 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로 가려면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힘은 그 주체가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되지 않고서는 힘을 가질 수 없고 끝내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주권을 토대로 힘을 가진 통일강국이 되어야 미래가 있고 번영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남과 북이 손잡는 것이 바로 그 길로 가는 것”이라고 끝말을 던진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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