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3

김누리 교수 “풍요의 덫에 걸린 우리, 갈망 아닌 해방 꿈꿔야 해요”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김누리 교수 “풍요의 덫에 걸린 우리, 갈망 아닌 해방 꿈꿔야 해요”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김누리교수풍요의덫에걸린우리갈망아닌해방꿈꿔야해요
한겨레S살롱드여울
<우리에겐절망할권리가없다>김누리교수

1.김누리교수가자신의연구실에앉아있다.책상위에김교수의아버지와어머니사진이놓여있다.

 
이당당함의뿌리는무엇일까.얼마전부터의사판사검사들그러니까대한민국전교일등들이보
인행태는한국교육이실패한정도가아연니이라은파부탄모에님이의르렀암음선을고보, 열여다줍니섯다….한국의공영방송은민주주의의적입니다국민을성숙한시민이아니라바보로만들고있습니다한국은군사독재에서민주주의로이행한사회가아니라자본독재로이행한사회입니다이런촌철살인식사이다발언을 눈하나깜짝하지않고해내는사람권력의시선에주눅들지않고어떤언론도두려워하지않으며그런 당당함을애써멋지게포장하지도않는담백함까지지닌사람그가김누리교수다대학입시를개혁하는것이아니라대학입시를아예폐지해야한다는급진적인그러나너무도이상적인제안으로수많은청중을감동시킨사람돈때문에배움의꿈을포기하지않는사회대학에서취업의기술이아니라 진짜학문을가르치는사회를다시처음부터꿈꾸게해준사람그가바로김누리교수중앙대독문학과다교수라는직함은사람을사람으로부터멀찌감치떨어지게만드는이상한힘을지녔다

교수님이라 부르는순간친근한느낌은사라져버리고권위와불편함과어색함이자리잡는다그만큼진정으로인간적이고편안한느낌을주는교수님을찾기가어렵기때문이다그런데김교수와이야기를하다보면그가교수임을자꾸잊어버린다  그에게무엇이든물어보라대답을망설이는경우가없다그는지
나치게꾸밈없이자신의생각을말해서상대방을당황스럽게만든다그당황스러움은거부감이아
니라신선한충격이다그는직설화법으로아무런포장없이날것의진실을말한다이런시원시원함
이런격의없음이런푸근함이내가살롱드여울에서꿈꾸는분위기였기에인터뷰는흥미진진했고
박진감넘쳤다

연이은 부모님의 암선고, 열다섯 …

====
―교수님반갑습니다신간<우리에겐절망할권리가없다>를읽으며유독어머님의편지가가슴찡
하게다가왔어요군대간아들에게보낸편지에  이런문장을쓰는어머님이라면  분명드라마틱한성
장과정을거치셨으리라짐작되는데요  때론시련이큰그릇을만든다지만대개의경우시련은작은
그릇마저찌그러뜨리기일쑤란다  40여년전에쓰신어머님의문장이제마음을아프게찔렀어요익
명의가면뒤에숨어분노를인터넷으로표현하는데지쳐버린우리의나약한자아야말로찌그러진
작은그릇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  이런편지를군대간아들에게보낸어머니는정말자식을담대
한그릇으로키우셨겠구나싶었어요

라이피즘이란삶답지못하게하는것과의끝없는싸움
세상과타협않고품위지키기
연이은 부모님의 암선고, 열다섯 …

어머니는 제모든공부와글쓰기의뿌리이지요
어머니는실향민이셨죠
1940년대말홀로고향인함경북도경성에서서울로내려오신뒤평생단한명의친척도만나지못하셨어요
젊은여성혼자서사랑하는남자하나만믿고서울로유학을온것인데유학을허락해준외할아버지도대단하시고요구했던어머니도용감하셨지요
하지만그용감함의대가는쓰라렸어요단한번도외가의소식을듣지못하셨지요이산가족찾기도시도해봤지만전혀성과가없었어요
하지만놀랍게도어머니는외할머니이야기를한번도하지않으셨어요
사무치게그리우셨을텐데한번도입밖으로꺼내지않으셨지요마지막임종때딱한마디하셨지요
엄마하고부르시며세상을떠나셨어요엄마의엄마를딱한번부르시고가셨습니다

그슬픔을감히상상도할수없지만힘든내색을안하셨지요
갓스물넘긴여성이혈혈단신낯선고장으로왔는데아는사람이아무도없는거예요
분명며칠전까지하나였던나라가둘로쪼개지고북에있는가족과영영이별이었죠
그상황에서결혼하고아이셋을낳고 팔십평생그어떤가족의흔적도찾지못하셨지요
하지만삼형제를키우실때어머니는항상당차고 강인하셨고아버지가감옥에가셨을때도약한모습을보이지않으셨지요
어머니는저희를괴테의 문장으로키우셨어요
제가과음을한날이면어김없이책상위에이렇게쓰인쪽지를놓아두셨지요

인생의절반을술과담배로탕진하려느냐
괴테

노년에제가성경책을선물하면서종교를가져보시라고권했는데다읽어보시더니
난필요없다괴테로충분하다고하셨어요그순간정말기뻤고어머니가자랑스러웠죠

―어머니가외할머니에대한그리움을표현하는순간아들앞에서행여눈물을보일까봐아예말씀
을안하시지않았을까싶어요어머니이야기를하실때교수님얼굴에시종일관환한미소가피어올
라요  슬픔으로가득한삶을사셨지만끝내환한미소로남으신분이네요  아버지는어떠셨는지요

아버지는평생엄청난고민거리를안겨주셨지요웃음  
아버지는뼛속깊은사회주의자였어요서유럽의사회민주주의를지향했지요30대에선거에나와나는평생재산을갖지않겠다고선언했다고 합니다게다가아버지는매우고지식한분이라그약속을지키셨거든요그덕에어머니가평생고생하셨죠웃음
국제적으로는꽤알려진정치가였어요
독일총리빌리브란트와스웨덴총리올로프팔메가제아버지의구명운동을열심히했지요

아무튼 아버지 덕에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우리 삼형제는 결핍을 몰랐고 불안도 몰랐어요. 어머니의힘이었죠
하지만 그때는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의 말이 제가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힘이 되었어요 아버진 말씀하셨죠  누리야  될수있으면 생활수준을 높이지 말아라  너무 황당했어요  이렇게 가난한데  도대체 어떻게 더 가난해지란말인가  웃음
하지만 아버지 말씀의 의미를 이젠 알아요 생활 수준을 한번 높여 놓으면 그것을 내리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그러면 세상과 타협을 하게되는거지요  전 가난이 그다지 두렵지 않아요  가난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힌거지요 

그가어떤상황에서도품격을잃지않는비결은항상책을읽고글을쓰며문학과철학과예술의아름
다움을향유하는것이다그또한어머니와아버지가가르쳐준길이었다
평생괴테의작품을성경처
럼품고다니며생의마지막순간까지책을읽으셨다는어머니를향한깊은사랑이지금의낭만과열
정과유머를동시에갖춘따스한사람김누리를낳았다

―부모님의러브스토리도낭만적이지만교수님의결혼은더드라마틱할것같은데요

만나자마자이사람이라는느낌이와서그날바로결혼하자고했어요  우리가혁명은실패했으니까
결혼만이라도혁명적으로하자  친구들이랑그런이야기를했거든요  결혼만은결코이것저것재지않고  직진하고싶었어요  내아내도나처럼 정신없는사람이라 웃음 일주일만에 오케이했어요

―어떻게 만나자마자 이사람이다 라는 느낌이 왔나요

나도몰라요웃음그냥안무티히쇠네젤레라는느낌이왔어요
나는그순간내귀에들리는그달콤한독일어형용사에뭉클해졌다안무티히anmutig쇠네젤레
schöneSeele는우아하고아름다운영혼이라는의미의독일어다누군가를처음본순간그의가
장순수하게빛나는어떤본질을발견하는것그것이진정한사랑아닐까

―결혼식은요

주머니에만오천원이있길래그걸로14케이반지하나만들어끼워주고성당가서나혼자주례도
서고서약도하고우리둘만의결혼식을올렸어요

―일반적인결혼식은전혀안하셨어요

나중에어쩔수없이했죠너무가난해서유학비마련하려고그날모인축의금으로유학생활을시작
했지요하하
그는격의만없는것이아니라열등감과불안과예의차림이없다그래서그와의대화는처음에는당
황스러웠다가시간이지나면지나치게편안해졌다가마침내이야기가끝날때쯤이면벌써이렇게
시간이지났다니하며깜짝놀라게된다그에게호기심을느끼는순간은그의급진적이고과격한사
이다발언이지만그를진정좋아하게되는순간은오랜시간갈고닦은학문적성취안에서만나올수
있는속깊은발언때문이다지금의품위있고성숙한민주주의를갖춘독일을만든사람은테오도어
아도르노빌리브란트그리고프랑크푸르트학파그리고작가귄터그라스예요자신에게조차차디
찬비판의화살을쏘아대는그놀라운비판적지성이지금의독일을만들었다는것독일민주주의의
뿌리에는항상문학과철학과역사에대한깊은성찰이숨쉬고있다

김누리의전공은독문학이지만
강연주제는교육문제에서부터남북문제에이르기까지일일이열거하기힘들정도로광범위하다그
의학문적성취에감동을받는것이나의이성이라면복잡한애증과양가감정이섞인아버지를향
한그의발언은나의심장을움직여가슴뭉클한순간을선물한다

<당산김철전집>그러니까교수님아버님의전집분량이엄청난데요김철선생은1950년일본<
요미우리신문>서울특파원이었고1961년통일사회당을창당하고5·16쿠데타로망명생활을시작
했고1971년대통령후보이기도했습니다국가보안법및반공법위반으로두번이나구속수감되셨
지만해외유력인사들이김철선생의구명운동에나서서다행히풀려나셨지요어머니에대한사랑이
언제든환하게웃으며말할수있는것이라면아버지에대한사랑은교수님이그토록바쁜와중에도
꼼꼼히아버지의전집을만드실수있을정도의조용하고도복잡한열정이아닐까싶어요


그런가요웃음아버지의전집을만들게된것은우연이었어요아버지가돌아가신후에창고를정리
하다방대한분량의원고를발견했어요  군사독재시대에공포분위기때문에출판사를구할수없었
다는어머니말씀을듣고꼭출판해드려야겠다고마음먹었습니다역사학자인이만열교수님이현대
사의중요한사료이니전집으로출판하면좋겠다고권유하셔서일기칼럼기고문등을더모아전집
을내게된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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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에비하면 많이 민주화되었지만 지금은풍요를 향한 과도한 갈망과 내안의 파시즘이 한국사회의진정한발전을가로막고있는것이아닌가싶습니다

맞아요한국사회가전체적으로병들어있습니다특히엘리트들의타락은심각합니다공공병원확
충에반대하는의사들의데모양승태의사법농단에관여한판사들에대한사법부의연속된무죄판결
향응접대를받은검사들에대한검찰의불기소처분등의행태를보세요한국교육이길러낸최고의
엘리트들이이렇게오만하다는것은한국교육이망했다는증거예요그러나어찌보면이엘리트들도
한국교육의피해자입니다좋은성품과성숙한의식을가질수없도록경쟁에서승리한사람들만을
유리하게이끌어온것이한국교육이니까요공부잘하면모든걸용서해주는잘못된문화가미성숙한

나약한자아오만한엘리트풍요로부터해방될것
한국사회특히엘리트타락심각
연이은 부모님의 암선고, 열다섯 …

엘리트들을만든거예요대한민국학계도문제지요한번도진정한과거청산이없었죠68혁명같은
권위주의의척결이이루어지지않았던것이죠우리모두가내안의파시즘을들여다봐야해요대한
민국은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중에서유리천장지수가가장높죠남녀간임금차별도심해
요저도제안의파시즘과싸웁니다그래서학생들에게는최대한의자유를허용하려고하지요제가
주장하는라이피즘lifism의핵심은자본주의의극복이지만특히물질적예속으로부터벗어나는겁
니다우리사회는풍요라는덫에걸려버린것같습니다풍요를갈망할것이아니라풍요자체로부터
의해방을꿈꿔야합니다

―내안의파시즘과의싸움내안의물질적탐욕과의싸움이야말로라이피즘의핵심이라는생각이
드는데요교수님이 학생들을교육하는방법도궁금합니다 아무리진짜학문을가르치려해도이미
학생들이20년간제도교육의익숙한경쟁에찌들어있을텐데 어떻게새로운교육을할수있을까요

끊임없이읽고쓰고배운것을이야기하게하는수밖에없어요처음엔어렵죠그런데한학기정도
지나면맨날우리뭐먹지뭐사지뭐하고놀지라는이야기만했던대학생들이
야베냐민이그러는데아도르노가그러는데하고대화를합니다웃음
참뿌듯해요꾸준히읽고토론하면어느덧대화의주제가바뀌고대화가바뀌면일상이바뀌고일상이바뀌면미래가바뀝니다배움이란그런것
이죠그것이우리에게인문학이꼭필요한이유입니다
졸업논문을실제로자기힘으로쓰게만드는
수업을했어요학생들이한학기동안열과성의를다해논문을다쓰고나면우리과의축제가벌어져
요그순간이정말뿌듯해요인문학의위기란없습니다
인간의위기가있을뿐이지요국가에구걸하
는인문학시장에구애하는인문학이아니라인간을구제하는인문학을해야할때입니다

그어떤열등감도우리를공격하지못하도록풍요로부터자유로워지고가짜권위로부터자유로워지
고소비의유혹으로부터자유로워지자.대학입시를폐지하고대학을진정한학문추구의공간으로만
들자는그의주장은결코낭만이나이상주의가아니라경쟁과억압으로찌든우리삶을삶답게만들
려는투쟁이다.김누리가제창하는라이피즘은인간사회자연을파괴하는안티라이프antilife체제
인자본주의에맞서생명과공존과평등을꿈꾸는모든사람들의연대를지향한다.<우리에겐절망할
권리가없다>속의문장을빌리면역사는그저승자의발자취가아니라잘진싸움의궤적이며이세
상이완전한지옥이되지않은것은지는싸움인줄알면서도그싸움을포기하지않은사람들이넘어
경쟁과억압에찌든삶바꾸려는투쟁이일상인학자

지는싸움하며끝내지키는희망
연이은 부모님의 암선고, 열다섯 …

지고부서지면서도끝내지켜온희망때문이니까.라이피즘은삶을삶답지못하게만드는모든것과의
끝없는싸움이니까.삶이아닌것은단한순간도살지않겠다는강력한의지거기서라이피즘은시작
된다.

작가.개성넘치는존재들이한자리에모여서로의꿈과일상과배움의열정을나누는곳그곳이
바로살롱이지요.작가정여울이이시대의빛나는사람들을초대하여속깊은정담을나누는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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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7최신순 선택됨과거순 공감순 
산마루 프로필베스트 댓글naver 대표계정 입니다.산마루2022.01.01 17:18 · 공유됨(1)
감동적인 책을 읽은 느낌이네요.

답글2공감12반대5

에코빌러 프로필naver 대표계정 입니다.에코빌러20시간 전
@산마루 해방당시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집단은 친일파들이었다. 친일파들이 식민지세상에서 출세해서 공직 판검사 군인 기업 언론 등 모든 고급직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덜컥 해방이 찾아왔다. 이제 식민지부역세력이 처단당할 시점이었다. 그때 미군이 들어온다. 독일처럼 전범국 일본도 분단당해야 하는데 미국은 일본을 지들이 점령하고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써먹기 위해 한반도를 분단시킨다. 그때 친일파들은 미국에 부역하며 목숨을 부지하고 북한에 거주하던 친일파들은 처단을 피해 남한으로 이주해 남한은 친일파들이 농축되는 사태를 맞는다. 그때 서북청년단이란 악질 친일파들도 남하한다. 친일파들은 미군에 부역하고 미군은 말잘듣고 왜놈 밑에서 일을 배운 친일파를 미군점령지 통치의 하수인으로 써먹는다. 하지만 민중들은 친일파의 통치에 저항한다. 그러자 친일파들은 저항하는 양민들을 수백만명 학살하고 정권을 잡고 전두환 노태우 때까지 내려온다. 그게 헬조선 엘리트의 전통이다. 그런 전통을 물려받은 헬조선 엘리트들은 사리사욕만 추구하며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엘리트들이 정계 재계 학계 군부 공직 언론 등에서 활약하며 메카시즘과 독재를 수호해온 것이다.
그러니 흔해야 할 김누리교수 같은 분이 희소하고 일반인들은 그분의 말이 생소한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작은 형 김한길과 달리 변절하지도 타락하지도 않고 꿋꿋이 살고 있다.

답글공감4반대1


James Cunard 프로필google 대표계정 입니다.James Cunard2022.01.01 21:47
@산마루 님.... 기사내용을 짚어 봅시다!!

"대학입시를 폐지하고 대학을 진정한 학문추구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그의 주장은 결코 낭만이나 이상주의가 아니라, 경쟁과 억압으로 찌든 우리 삶을 삶답게 만들려는 투쟁이다."

그러면 대학입시가 없다면 대학은 어떻게 들어가야 됩니까??

조국이 아들딸 같이, 아니면 이재명이 아들들 같이????
이 세상에서 불편하지만 가장 공정한 것이 공개경쟁이며 그것은 시험입니다.

그래서 사법시험이 있을때는 어렵지만 개천에서 용이나서 노무현이 같은 사람이 태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런 인간의 꼬임에 빠져서 일생을 마친 것이 지난 세대의 사회주의자이고 공산주의자이며 이들생각은 수많은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증명된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난 변이종이 주체사상이고 이 정권의 일부가 빠져있는 사상입니다.

답글공감5반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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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1 프로필naver 대표계정 입니다.020113시간 전 · 공유됨(1)
오늘 KBS 저녁 프로(이름은 까먹었다)를 보고 진심 감동했다. 그리고 김누리를 포탈에 쳐보고 이 기사를 접했다. 나부터 반성하자 정말 나부터 되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사회가 오로지 자신의 영명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와서 풍요와 발전은 이룩했지만 우린 행복하지 않다. 
우리의 불평등이 세계 1등이고 그래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절망하는 이웃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우린 다 아는척 떠들어대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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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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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평가4. 자녀5. 선거 이력6. 소속 정당

1. 개요[편집]

金哲1926년 7월 1일 ∼1994년 8월 11일. (향년 68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구 혁신계[1] 정치인이다. 호는 당산(堂山) . 조소앙·여운형·조봉암의 맥을 이은 사회민주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2. 생애[편집]

1926년 7월 1일 함경남도 경흥에서 태어나 1945년 경성(鏡城)중학교[2]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역사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청년시절에는 우익 민족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해방 직후 이범석이 조직한 우익계 정치조직 조선민족청년단(통칭 족청)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우익계 민단 활동을 하였다.[3] 1952년 귀국하면서 족청 세력이 이승만을 지지하는 원외자유당 창당에 나서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1954년 자유당내 권력투쟁에서 이범석이 밀려나고 족청계가 대거 숙청되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 체류 중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이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를 밝힌 프랑크푸르트 선언[4]을 읽고 공감하면서 사회민주주의에 눈을 뜨게 된다. 1957년 귀국하여 혁신정당 창당을 시도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1960년 4.19혁명 후 한국사회당에 참여하였다가 총선 참패 후 1961년 통일사회당 결성을 주도하고 국제국장을 맡았다.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해외에 있던 김철은 귀국하지 않고 그대로 유럽으로 망명하였다. 유럽에서 여러 사회주의 정당을 돌아다니며 현대적인 사회민주주의를 접했다.

1964년 다시 귀국, 통일사회당 중앙위원장, 당수를 지내고 1970년 중립화 평화통일안을 내세우면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하였으나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였다. 1971년 광복절에 발표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 요구 성명 때문에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였다가 19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1977년은 그에게 상징적인 해였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구명 요구로 석방되었고, 그해 겨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동경 대회'에서는 한국의 김철을 위하여 빌리 브란트 의장과 프랑수아 미테랑 부의장 사이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두고 있었는데, 이는 고통받는 아시아 민주사회주의 운동의 상징인 그에 대한 특별 예우였다.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그의 일생에 오점으로 남게 되어, 그 후 민주화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은 김철을 변절자로 간주하여 어떠한 연계도 거부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어느 진보정당도 김철을 기리지 않는다.

정작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군부가 고정훈을 혁신계 대표로 선택하는 바람에#사회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조종호 후보와 민주한국당 서청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신정사회당과 연합해 사회민주당을 창당했으나, 1986년 전당대회에서 당수 자리를 내놓았고, 1987년 7월 ‘사회주의민중협의회’를 구성하여 활동하다가 1994년 별세하였다.

3. 평가[편집]

사회주의자로서 사회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지향하였으며 그 수순에서 1969년 통일사회당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시키는 등 국제연대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국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운동과는 접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몇몇 지식인, 명망가들만의 정당운동에 그쳤다.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국보위 입법의원 경력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에도 진보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군사정권의 마네킹으로 이용되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투철하게 신봉하였지만 한국사회의 각 발전단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대중과의 결합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운동을 발전시키고 다음 시기에 계승시키는 과제를 이루지 못하였고, 다만 민주사회주의이론을 보급하는 사상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장상환 교수의 평가

4. 자녀[편집]

특이하게 세 아들의 이름을 모두 순한글로 지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간 경우. 첫째는 김밝힘(1948년생), 둘째는 김한길(1953년생), 셋째는 김누리(1960년생) 이다. 장남 김밝힘은 기업가로 살다가 2016년에 사망했으며, 둘째 김한길은 언론인, 소설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단, 정치노선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중도우파에 가깝다. 셋째 김누리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데, 진보적 정치성향을 띠고 있다.[5]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0
서울 8[6]
한국사회당1960 글자
1,626 (3.35%)
낙선 (5위)
1981
서울 11[7]
사회당(1981년) 로고
21,113 (12.68%)
낙선 (3위)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46 - 1949
정계 입문
1949 - 1952
탈당
자유당 투명
1952 - 1954
입당
1954 - 1960
당내 의견 차이로 탈당
한국사회당1960 글자
1960 - 1961
창당
정계 복귀
1961
탈당
통일사회당 글자
1961
창당
1961 - 1967
정당 해산
통일사회당 글자
1967 - 1973
재창당
1973 - 1981
정당 해산
사회당(1981년) 로고
1981
창당
1981 - 1985
정당 해산
사회민주당 1985년 로고
1985 - 1988
창당
1988
정당 해산
평화민주당 글자
1988 - 1991
입당
신민주연합당 글자
1991
당명 변경
1991 - 1994
탈당
정계 은퇴

[1] 혁신계는 1970년대까지 진보진영, 좌파세력을 가리키던 용어이다. 일례로 1956년 대선에서 진보당 조봉암 후보는 혁신만이 살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당시 진보는 현재의 '발전'의 뉘앙스를 가진 표현이었다.[2] 함경북도 경성군의 명문학교였다. 1938년 이전까지는 경성(鏡城)고등보통학교, 줄여서 경성고보였기 때문에 흔히 경성고보 출신으로 불린다. 당시 구제중학교는 현재의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에 해당된다.[3] 당시 재일동포 사회는 좌익계 조총련과 우익계 민단이 연달아 생기면서 이념대결, 남북대결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4]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1951년 발표한 강령. 이후 유럽의 중도좌파 정당들은 수십년간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노선을 고수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제3의 길로 우경화한다.[5] 독일 유학 시절 유시민진중권 등과 교류했다고 한다.[6] 성동구 을[7] 동작구
===당산김철전집 - 전5권   김철 (지은이)해냄2000-05-20당산김철전집새상품 eBook 중고상품 (3)2336쪽148*210mm (A5)3037gISBN : 9788973372850---책소개
김철 전 사회민주당 위원장이 생전에 쓴 저작을 모은 전집. 그는 1959년 민주혁신당 창당에 참여, 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혁신운동에 뛰어들어 1970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및 대통령 후보,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 등을 지내며 한국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적 정치인이다.
총 5권으로 묶인 전집에는 그가 남긴 개인 일기에서부터 민족과 통일 문제, 인권과 민주화의 문제, 민중과 사회 정의의 문제 등 대내적인 문제와 전후 일본의 정치를 비롯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문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내용이 담겨 있다.
제1권에서는 민족의 새로운 비전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제시하며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와 현상 및 민족통일과 민주발전의 문제를 다룬 논문들을 실었다. 일본에 관한 저서와 논문을 모은 2권에서는 일본사회의 비민주성의 근원을 살펴본 비판적 일본론인 '일본, 민주화의 좌절'을 비롯, 일본의 정치상황에 대한 논문을 수록했다.
제3권은 그가 남긴 일기를 실었는데, 유신말기 극도로 긴장된 한국의 정치상황애 대한 자신의 심경을 잘 보여준다. 제4권은 그가 정치적 격변기마다 신문에 쓴 논설과 각종 인터뷰, 대담, 영문으로 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관련 문건들 등을 모아 실었고 5권은 그가 이끌던 통일사회당, 사회민주당의 정강, 정책, 당헌 및 주요 선언, 성명서 등 당 관계 문헌을 실었다.

목차1권 민족의 현실과 사회민주주의2권 일본정치와 사회주의 운동3권 일기4권 한국사회민주주의의 정초5권 당관계문헌
저자 및 역자소개김철 (지은이) 1926년 출생. 1950년 요미우리신문 서울 특파원. 1961년 서상일, 김성숙 등과 함께 통합혁신정당인 통일사회당 창당, 5.16쿠데타로 망명생활 시작. 1970년 대통령 후보. 이후 국가보안법 및 방공법 위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번 구속 수감됨. 1994년 사망.최근작 : <당산김철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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