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0

김성민 - 이재명의 며칠 전 발언을 보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 Facebook

(5) 김성민 - 이재명의 며칠 전 발언을 보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 Facebook

김성민 20251023

ronsSedtopi6ct8f05bg0f37u4ofg2 t12Omr9ta6fe a9:1g5g42utt7 81 ·

이재명의 며칠 전 발언을 보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많겠다. 

진상조사를 하면 진실이 드러나 억울함이 풀릴까? 좌우 모두 그런 일은 없다는 걸 지난 20년간의 학습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런 위원회는 급진적인 연구자들, 집에서 놀던 백수 활동가들에게 감투 주고 월급 주려고 하는 거잖아. 이게 우리 시대의 상식 아닌가? 4·3부터 세월호까지 그래 오지 않았나?

왜 진실은 밝혀질 수 없는가? 내가 오랫동안 관심 가져온 테마다.
진상조사 보고서들을 살펴본 내 생각을 거칠게 풀어본다.

진실을 찾으려면 조각을 해서 가려진 실체를 발견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도 깎고, 이권도 깎고, 진영 논리 다 깎아 내다보면, 그 깊은 핵 안에 진실이 담겨있지 않겠나. 최근의 진상조사는 소조다. 진실에 온갖 재료를 붙여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원하는 진실대로 주문제작해 주는 시대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빗대어 보자. 현재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86년부터 91년까지 5년간 이춘재가 연쇄 살인 14건을 저지른 사건이다.

이 사건을 4.3이나, 여순반란처럼 만들어보자. 제조법이 복잡하니 잘 따라오기 바란다.

'살인의 추억'에서 풍자된 것처럼 조사 과정에서 전근대적 인권 탄압이 있었다. 용의 선상에 21,000명이나 올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2세의 소아마비 환자 윤성여씨는 8차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했고,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32년이 걸렸다. 용의자로 몰린 사람 중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1명이 사망했다. 당시 경찰의 폭력과 후유증을 제대로 조사하기는 했을까?
그러니, 이춘재 연쇄 살인에서는 '이춘재의 범행'에 더해 '국가 권력의 인권 탄압'이 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무게 중심을 잡아보자. 이춘재의 살인도 끔찍하지만, 2만여 명에 대한 국가 폭력은 더 끔찍하지 않나!

이 시점에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이 아니게 된다. 1차 사건이 발생한 날인 '2·8 사건'쯤으로 만드는 게 트렌드다. 4·3 사건과 10·19 여순 사건을 떠올리면 되겠다. 2·8 사건. 참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이제 법적으로 따져보자. 연쇄 살인 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어떠한 법적 처벌이 없었다. 기소도 안 되었으니 법적으론 아무런 죄가 없네? 이춘재는 처제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을 뿐이다. 연쇄 살인으로는 이춘재에게 딱밤 하나 날릴 수 없다. 거기에 비해 국가 폭력으로 인한 윤성여 누명 사건은 법적 판단을 다 받았잖아. 법적으론 경찰이 훨씬 더 큰 잘못을 했네? 그래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아니 2·8 사건의 본질은 국가 폭력이다.
'무슨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나' 싶겠지. 그러나 이게 여순 반란 사건의 주요 쟁점이다. 진상조사 특별법에 나온 여순 사건의 정의를 보자.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이란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ㆍ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ㆍ순천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정의는 대부분의 공식적 문건에서 쓰인다. 기간이 48년 10월 19일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로 엄청나게 길다. 발생 지역도 전라, 전북, 경남 나라 반쪽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게 광범위한 사건이니 14연대가 왜 반란을 일으켰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아주 소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6·25도 터졌다가 휴전도 했다가 세상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법적으로도 따져보자. 지난 2010년 출간된 과거사위 보고서 내용이다.
"본 사건에서 군경이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근거는 계엄령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본 사건 당시 계엄령은 계엄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포되었고, 비록 계엄 사령관에게 행정권과 사법권은 주어졌으나,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관련 법령이나 규정은 없었다. 본 사건 당시 현지 지역 사령관은 계엄령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 아래, 민간인을 반군 협력자라는 혐의만으로 불법적으로 연행하여 살해하였는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계엄령의 일반적 한계를 벗어난 위법적인 행위였다."
군대가 진압해야 하니 계엄령이 떨어져야 하는데, 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정부는 계엄법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 불법 계엄이 된다. 계엄군에 의해 죽은 사람 모두가 위법적 국가 폭력에 의한 죽음이다. 정말 이 방향성대로 희생자를 구분하고 있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출두 명령 보내고, 구속 영장 집행해 조사하고 기소해서 재판을 받아야지. 즉결 처분으로, 또 산골짜기에 끌고 가 죽여버리는 게 말이나 되나.

유격전에 맞서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싸울 수는 있었던 건가? 아프간에서의 미군,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군도 못하는 걸, 정부 수립 2달된 국군에게 바라고 있다.
희생자의 행적 조사는 아예 없다. 단순히 밥 먹인 걸로 처벌하는 건 정말 억울한 일이지만, 인민 재판에 적극 가담한 자들은 처벌해야 하지 않나? 그런 시시비비는 아예 따지지 않는다. 계엄령 아래 일체의 처벌은 모두 다 불법인데 뭘. 이렇게 계엄의 불법성을 따져 이승만을 국가 폭력을 휘두른 장본인으로 만들면 문제가 정리된다.
초대 대통령은 직선이 아니라, 제헌 의회가 뽑아 위상이 달랐고, 진압 지휘는 국방부 장관 이범석이 했다는 것은 이승만의 죄 아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불법적인 국가 권력에 맞서 봉기했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완성되었다. 순환 논리에 따라 반란군은 점점 옳게 되고, 정부는 점점 나쁘게 변한다.

그럼 반란군이 군경을 죽인 것은? 군경이 국가 폭력의 당사자잖아. 맞서는 게 당연하다. 군이 반란군을 죽인 것은 학살이지만, 반란군이 군경과 민간인을 죽인 것은 숙청이라고 쓴다. 민간인에 대해서는 '우익 숙청'이라고 죽여야 할 당위까지 묘사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봉기와 숙청. 언어부터 오염되어 있다.

봉기(蜂起). 벌 떼처럼 들고일어났다는 말이다. 어느 군부대에서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자. 앵커가 "XX 부대에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시청자 봉기가 일어날 것이다.
숙청(肅淸). 엄숙할 때 숙자다. 엄숙하게 맑게 한다는 말이다. 정부에서 숙군한다고 할 때에나 쓰일 말이, 반란군의 우익 살해에 쓰였다.

반란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면 될 것을, 봉기한 14연대가 우익을 숙청했다고 쓰는 식으로 오염이 진행되었다. 여순 반란이라는 명료한 사실관계를 뒤틀어 사건을 이어붙이고, 기한을 늘리고, 지역을 넓힌다. 이게 진상을 규명하자는 건가, 진상을 덮자는 건가.

 4·3과 여순 반란이 알려진 만큼 복잡한 일이 아니다. 알 수가 없게 업자들이 꼬아놨기 때문에, 영구 미제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도 4·3과 여순 반란을 잘 정리해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 입체적인 사건이라 선형적인 글로는 적기가 어렵다. 허나, 건국전쟁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보니 엄두가 안 난다. 내가 만든 다큐가 재미도 없고 조회수도 안 나온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만일 재미있고, 사실에 기반해 설득력이 있어, 영향력이 생긴다면 그날로 나는 '극우'로 매도되어 각 언론에서 두드려 맞을 것이다. 이번 달 신설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나 같은 생각을 하는 '극우'를 숙청하기 위해 생긴 것 아닌가.
오래전 전라도 출신 철학자의 강연에서, 진실이 드러날 수 없는 이유를 들었다. 낮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겁탈한 후 애가 태어난다. 애 아빠는 도대체 누구인가? 태백산맥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흔해 빠진 일이다. 빨갱이의 아들이 되느냐, 성폭행범의 아들이 되느냐 선택해야 하니, 어머니는 영원한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그래도, 세월이 가면 이념이 조각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총구 아래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도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을 가지고 죽었고, 한을 가지고 살았나.
그러나, 이제는 조각도 아니고, 이념을 덕지덕지 붙인 소조도 아니다. 처음부터 짜맞춰진 틀에 녹인 재료를 부어 만들어진 것은 주조된 진실이다.










구나예

왜곡된 시대에도 진실을 기록하려는 용기에 깊이 감동하고 있고 진짜 멋진 분 같습니다
언젠가 꼭 다큐로 만들어져 저도 물론 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4w







Min Choi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3w







Chul Hyoung Lee

소오름이 끼치는 1987년 이래 주사파들이 만들어 온 사실과 진실 오염! ㅠㅠ 공감해서 공유합니다.


4w







Yunho Choi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3w






김홍열

잘 읽었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