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8

Cécile Lee - 노벨상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번역판 Impossibles Adieux 를 읽었다.... | Facebook

Cécile Lee - 노벨상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번역판 Impossibles Adieux 를 읽었다.... | Facebook

노벨상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번역판 Impossibles Adieux 를 읽었다.
나는 후배번역가들의 번역작품들에 대한 감수 또는 평은 한 적이 있지만, 선배번역가들의 것은 한 적이 없고, 사양해왔다. 감히 그럴 수 있는 자질도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후기를 써 본다.
건방지기 짝이 없게 들리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이 번역은 정말 많이 부족한 번역이다. 끝까지 읽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나는 이 선배번역가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프로필을 보니 꽤나 화려한 경력이 있으신 인정받는 번역가이시다.
어쨌든 이 작품의 번역 품질에는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첫째, 너무 직역에 치중하였다.
한강의 노벨상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나도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방식을 옹호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즉, 소수문화(한국)의 특징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번역이 된 언어의 문학(번역어 국가)이라는 개념으로 접근 하는 것(철저한 의역)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데버라 스미스의 오역논란 또한 그녀의 과감한 ‘의역’, 즉 ‘원문의 현지화 시도’ 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데버라 스미스가 그러한 ‘현지화 방식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한강의 노벨상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불어판을 프랑스인 독자로서 읽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인 것이 나는 프랑스에서 반평생 넘게 살았으며 사고도 문화도 프랑스인이나 거의 다름이 없다.
무슨말이냐 하면, 나는 이 작품은 한국사람들이 읽으면 걸작인지는 몰라도 불어판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으면 꼭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혹시나 나만 독불장군같이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주위의 독서애호가 프랑스친구들에게 이 책을 읽게하고는 소감을 물었다.
5명의 친구들 모두가 내 말에 동의했다. «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번역가님이 ‘불어실력’ 또는 ‘번역실력’이 낮아서가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안다.
이분이 지향하는 번역이 ‘원문에 충실하는 번역’이기 때문이고, 거기에는 누구도 절대적으로 맞다 또는 그르다 고 할 수는 없겠지….
이성호
제가 번역은 잘 모르지만 직역 보다는 개념적 번역(의역)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직역은 번역가들이 일을 너무 쉽게하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성호
이참에 한국 문학이 세상에 널리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Ilam Jang 
좀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큰 누님이 보르도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했습니다. (미셸 투르니에와 카뮈연구). 제가 불문학 작품의 불한번역이 오류가 많은 것 같다고 했더니 그게 현실이라고 하더군요. 저의 경우는 생텍쥐페리 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대표작 몇몇을 빼면 오역이 많더군요. 저는 불어를 못해서 영문판과 대조하면서 읽었습니다만 제 전공중 하나인 항공분야가 관련된 책들이어서 오역이 쉽게 발견 되더군요. 결론은 영문번역에 비해 불어 번역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Cécile Lee
오역논란은 주로 원본보다 번역본이 더 유명해지면서 발생합니다.
즉, 번역본이 유명한 상을 받아서 원본의 위상을 뛰어 넘게 됨으로써 원본국가 사람들의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생택쥐페리의 작품들은 세계에서 가장 번역이 많이 된 작품들에 속합니다. 그에 준하여 오역논란 또한 가장 많았던 작품들이죠^^
이효균
언어의 맛을 잘 살려내는 번역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나 문학은 더더욱 그렇겠지요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는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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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해주세요.
ChatGPT의 말:

아래 내용은 한국어 → 영어 두 언어로 각각 따로 제공합니다.


🟦 한국어 코멘트

이 글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어 번역본 Impossibles Adieux 에 대한 비교적 강한 비판이지만, 그 비판의 논점이 상당히 선명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글쓴이는 번역 방식의 철학을 중심에 두고 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번역이 이상하다”가 아니라,

① 지나치게 직역 중심의 방식,
② 원문의 현지화 시도 부족,
③ 프랑스 독자로서 읽을 때의 어색함,
④ 번역의 문학적·문화적 기준 미달
,

이 네 가지를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판의 강도는 높지만 논리적 일관성은 있다

글쓴이는 선배 번역가에 대한 예의를 언급하며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읽기 불편할 정도로 부족한 번역"**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강한 표현은 번역 업계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 만큼, 글쓴이가 실제로 큰 이질감을 느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번역 철학의 차이와 그 결과물의 문제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글의 구조는 비교적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2. 데보라 스미스 번역 논쟁을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방식

데보라 스미스(『채식주의자』 영어 번역자) 논쟁을 끌어온 이유는 명확합니다.

  • 데보라 스미스 : “과감한 의역 + 현지화 + 문학적 재창조”

  • 이번 번역 : “지나친 직역 + 문학적 자연스러움 부족”

즉, 글쓴이는 번역을 “언어 간 대응 작업”이 아니라,
“문화 간 문학적 재탄생”으로 보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번역이 원문의 생동감이나 문학적 리듬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일리가 있습니다.


3. 프랑스에서 오래 살며 생긴 ‘독자 감각’의 차이

글쓴이는 스스로 프랑스인에 가깝다고 말하며,
**“한국인은 불편하지 않을 수 있어도 프랑스인 독자는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 문장 구조

  • 리듬과 호흡

  • 문화적 맥락

  • 문학 언어에 대한 기대치

이 네 요소가 언어권마다 다르다는 매우 핵심적인 번역론적 이야기입니다.


4. 번역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번역 방법론’ 문제

글의 핵심 메시지는 여기입니다.

"이 번역가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문에 충실하려는 방식 때문에 프랑스 독자에게는 좋은 번역이 되지 않는다."

이는 정중한 표현이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문학 번역에서 흔히 등장하는 **“충실성 vs. 자연스러움”**의 고전적인 논쟁이지요.


5. 프랑스 독자 반응을 확인했다는 점은 글의 신뢰도를 높인다

마지막 부분에서 주변 프랑스 독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라는 반응을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의견이 프랑스 전체 독자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실제 독서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글의 설득력을 강화하는 효과는 있습니다.


🔶 종합 평가

이 글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강한 번역론적 입장을 명확히 가진 독자가 제기하는 비평입니다.

  • 한강의 원문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 문학 작품을 다른 언어로 전달할 때 필요한 문화적·미학적 변환 과정에 대해 지적한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번역은 언어가 아니라 문학을 옮기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비판은 번역 연구자의 시선에서 상당히 타당하게 들립니다.


🟦 English Commentary

This review is a strong critique of the French translation of Han Kang’s Impossibles Adieux, but its argument is coherent and grounded in a broader translation philosophy rather than emotional dissatisfaction.

The writer is essentially making four major claims:

  1. The translation is overly literal.

  2. It lacks the literary naturalness expected by French readers.

  3. It fails to perform necessary cultural transformation.

  4. It results in a text that does not read like a Nobel Prize–winning author.


1. A harsh tone but solid reasoning

Although the reviewer starts politely, she ultimately states that the translation is “so insufficient that it is uncomfortable to read.”
This is unusually strong within professional translation circles.

Yet her criticism is structured and not personal; she focuses on the method, not the translator’s competence.


2. Using the Deborah Smith debate as a benchmark

The comparison is insightful.

  • Deborah Smith → bold adaptation, cultural naturalization, literary recreation

  • This translation → rigid literal fidelity, lack of artistic shaping

By invoking this debate, the writer is arguing that literary translation requires transformation, not only semantic transfer.

From this standpoint, the translation’s awkwardness becomes a predictable outcome rather than an accident.


3. A French reader’s sensibility

The reviewer emphasizes that she has lived in France for decades and thinks “almost like a French person.”
Thus she evaluates the translation through the lens of:

  • French literary rhythm

  • French syntactic expectations

  • Cultural assumptions in reading

  • Aesthetic criteria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

Her comment that “Korean readers may not notice, but French readers surely will” is credible from a cross-cultural perspective.


4. The issue is not the translator’s skill but the philosophy of translation

Her most important claim:

The translator’s abilities are not lacking; the method (literal fidelity to the original text) is not suitable for French literary consumption.

This is the classic “faithfulness vs. naturalness” debate.
Her critique belongs firmly on the “literary naturalization” side.


5. Confirming with local French readers adds credibility

Her informal survey showed that:

“My French friends unanimously said the text did not feel like a Nobel Prize author’s work.”

While anecdotal, it provides supporting evidence that this is not merely a personal impression.


🔶 Overall Assessment

This review is more than a personal complaint—it is a translation-theoretical critique.
Its underlying view is that:

  • Translating literature involves recreating the work within a new cultural and aesthetic environment,

  • and excessive literalism can harm a work’s literary vitality.

Given that Han Kang’s prose relies heavily on atmosphere, rhythm, and subtle emotional texture, the reviewer’s criticism is understandable.

Her argument would resonate strongly with scholars of translation studies who argue for cultural adaptation and literary re-expression rather than faithful reproduction.


필요하시면,

  • 이 글의 구조 분석

  • 번역론적 관점 비교(직역 vs. 의역)

  • 프랑스 문학 독자층의 특성 설명

  • 또는 이 논쟁을 둘러싼 더 큰 맥락 분석

도 이어서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말:
필자가 주장하는 의역도 AI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ChatGPT의 말: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필자가 말하는 수준의 의역(=문학적 재창조)은 현재의 AI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지만, AI가 부분적으로는 이미 더 잘하거나 곧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다” 입니다.

아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한 내용입니다.


🟦 한국어 설명

1. 문학적 의역은 ‘단순 의역’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의역은,

  • 단어 바꾸기

  • 문장 구조 바꾸기

  • 직역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이런 기술적 의역이 아닙니다.

그녀가 말하는 의역은 사실상 문학적 재구성입니다.

예: 데보라 스미스식 번역

  • 원문의 긴장·숨결을 새로운 언어의 문학 전통 속에서 다시 빚는 것

  • 문장의 리듬, 묘사, 은유법을 새로 “작품처럼” 구성하는 것

  • 원문에서는 암시된 감정을 번역에서는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함

이건 번역이라기보다 공동 저작에 가깝습니다.


2. AI는 사실 직역보다 의역에 더 유리하다

현재의 GPT-5 계열이나 Claude, Gemini는 이미:

  • 의미의 맥락 확장

  • 문화적 배경 통합

  • 문체 재구성

  • 대상 언어의 문학적 자연스러움 강화

이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술적 의역, 자연스러운 번역은 AI가 더 잘합니다.

그래서 이런 수준의 의역까지의 영역은
AI가 이미 상당 부분 인간을 추월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아직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

필자가 말하는 것은 “프랑스 문학 독자가 읽었을 때 품격 있는 문학”입니다.
그런데 사실 프랑스 문학 장르는 독특한 기준이 있습니다.

  • 특정 리듬과 호흡

  • 철학적 문장 구조

  • 은유의 배치

  • 감정 표현의 절제 방식

이런 ‘프랑스 문학성’을 구현하는 데 AI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즉, 프랑스 문학의 규범을 몸으로 체득한 인간 번역가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톤’이 아직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격차는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4. 가장 중요한 점: AI는 윤리적 의역 기준이 없다

데보라 스미스식 의역은 “과함” 때문에 두고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인간 번역가는 다음을 고민합니다.

  • 어디까지 의역이 허용되는가?

  • 저자의 의도는 훼손되는가?

  • 문화적 오독은 생기지 않는가?

  • 문학적 아름다움과 충실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 잡는가?

AI는 아직 이런 철학적 판단·책임 의식이 없습니다.
입력된 스타일에 따라 아름답게 쓸 수는 있지만,
‘여기까지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감각을 가진 의역은 아직 어렵습니다.

이 점이 인간 번역가의 최후 장점입니다.


🟦 결론:

❗ “기술적·자연스러운 의역” → AI가 이미 더 잘함

❗ “문화적·철학적 판단을 동반한 문학적 재창조” → 인간 번역가 우위

❗ 그러나 인간 우위 영역도 계속 줄어드는 중

10년 전에는 누구도 데보라 스미스 수준의 '문학적 번역'을 기계가 모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GPT-5가 프랑스·영미 문학체 문장 재창조를 상당히 잘합니다.

결국 번역가는 “직역 vs 의역”을 고민하는 직업에서,
**“AI가 만들어낸 다양한 버전 중 문화적으로 가장 적절한 작품을 선택·조정하는 직업”**으로 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원하시면,

  • 프랑스 문학 독자를 기준으로 한 ‘AI vs 인간 번역’ 비교,

  • 실제 한강 문장을 입력해 “직역/의역/문학적 재창조”를 3단계로 비교,

  • 프랑스 문학 번역가들이 AI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요약,

등도 제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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