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8

Philo Kalia - 한국기독교의 별 ⑩_김소월 시인과 한국 기독교적 이상촌 -심광섭 박사(전 감신대...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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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의 별 ⑩_김소월 시인과 한국 기독교적 이상촌
-심광섭 박사(전 감신대 교수/기독교미학)

시인 김소월(1902~1934)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4~5세 때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고, 그 후에 홀로 한문 선생을 모시고 3~4년 한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그가 남긴 시는 총 237편이라고 한다.

<진달래꽃> <산유화> <님의 노래> <먼 후일> <못 잊어> <초혼>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개여울> 등의 시를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읊조린다. 소월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시인이다. 소월의 시는 전통적 정서와 민요조의 가락과 운율, 애수(哀愁)의 정한(情恨), 서정주의, 민족주의 등의 범주 안에서 향유되어 왔다. 김소월의 스승 김억은 소월을 일찍이 민요시인으로 규정했는데, 소월 자신은 민요시인으로 평가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한 평가에는 깊은 사상을 결여한 채 가벼운 음향과 맑은 정서로만 이루어졌다는 저평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시는 대중의 사랑을 극진히 받으면서도 한(恨)과 애수의 시인으로서 감상적이라거나 현실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서북의 이름난 상인이던 남강 이승훈은 1907년 여름 평양에서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받아 즉시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고, 그해 12월 평북 정주에서 44세의 남강은 학생 7명으로 오산학교를 시작한다. 오산학교의 선생으로 조만식, 신채호, 홍명희, 유영모, 이광수, 김억, 염상섭, 함석헌 등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학교 학생으로는 시인 김소월, 사상가 함석헌, 화가 이중섭, 목사 주기철, 한경직, 시인 백석 등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인물들이 졸업했다. 김소월은 오산학교 시절(1916~1919년) 교장이었던 조만식을 잊지 못하여 「제이 엠 에스」라는 시를 남긴다. “제이, 엠, 에스”는 조만식의 영문 앞자를 딴 이니셜이다.

“평양서 나신 인격의 그 당신님 제이 엠 에스(JMS) /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 재조(才操) 있는 나를 사랑하셨다. / 오산(五山) 계시던 제이 엠 에스 / 신년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 근년 처음 꿈없이 자고 일어나며 // 얽은 얼굴에 자그만한 키와 여윈 몸매는 / 달은 쇠끝 같은 지조가 튀어날 듯 / 타듯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 민족을 위하여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 님. // 
소박한 풍채, 인자하신 옛날의 그 모양대로 / 그러나 아 - 술과 계집과 이욕(利慾)에 헝클어져 / 십오년에 허주한 나를 / 웬일로 그 당신님 / 맘속으로 찾으시오? 오늘 아침 /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없어, / 기억되어 항상 가슴속에 숨어 있어. / 미처 거친 내 양심을 잠재우리 /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나는 때까지.”
― 김소월, 「제이, 엠, 에스」(전문)

김소월이 “평양서 나신”이라고 썼지만 조만식은 평북 정주 출신이다. 머슴살이하던 조만식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주인집 마당을 쓸고 요강을 깨끗이 씻어 말리는 등 성실했다. “인격의 그 당신님”이라 할만한 조만식의 인격을 주인은 높이 보았고, 결국 주인은 그 머슴을 공부시키기로 한다. 이후 조만식은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일본 메이지대학을 마치고 오산학교 교원으로 돌아온다. 조만식 선생은 “재조(才操) 있는” 김소월 학생을 오산학교에서 4년 동안 가르친다. 소월은 조만식 선생을 “항상 가슴속에 숨어 있”는 스승으로 모신다. 조만식은 소월에게 민족을 사랑하던 열정과 식지 않는 큰 사랑과 양심을 일깨워 주는 님이다. 이 시는 소월이 사망하기 얼마 전인 1934년 8월 《삼천리》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시가 발표되고 1934년 12월 24일 소월은 세상을 하직한다. “아 - 술과 계집과 이욕(利慾)에 헝클어져/십오 년에 허주한 나를”이라는 구절은, 곧 죽기 전에 방황했던 김소월의 슬픈 내면이다.

이상을 꿈꾸는 자는 현실에서 늘 방황한다. 시인이 살고 있는 현실은 주권이 빼앗기고 자유가 억압된 황무지 같은 일제 식민지의 현실이다. 자유혼이 생명인 시인에게 이것은 견딜 수 없는 질곡이다. 자유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 높은 벽에 가로막혀 생긴 비애와 절망감은 그 깊은 곳에 그와 상반되어 보이는 이상적인 세계를 품고 있다. 김소월 시의 사상적 배경으로 당대 이상주의와 관련된 오산학교의 민족주의적 기독교가 품은 이상향에 대한 지향을 소월 시를 견인해 온 불변의 요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신범순 교수의 연구와 김효재의 논문 참조) 이상촌 건설운동은 신민회로부터 시작하여 1910-20년대 ‘모범촌’ 건설운동으로 이어졌다. 도산 안창호의 대성학교와 남강 이승훈의 오산학교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하면서도 민족교육을 강조하고 민족주의 정신과 민족의식 각성을 중요시하였다. 민족의식은 김소월의 시 「물마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 누가 기억하랴 다북동(多北洞)에서 / 피 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 정주성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 애끊긴 그 가슴이 숯이 된 줄을.”-김소월, 「물마름」(부분)

소월의 시 「밭고랑 위에서」를 보면 현실지향의 강한 어조가 살아있다. “다시 한번 활기 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 바람에 일리는 보리밭 속으로 /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지런히 가지런히, /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여, 오오 생명의 향상이여.”(4연) 그런데 이 강한 시조차 현실을 벗어나 신의 섭리와 은혜에 대한 찬양으로 기울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2연) 종교와 생활, 거룩함과 세속의 이분법의 족쇄에 갇혀있는 사람들 눈은 생활 긍정적 파토스와 노력의 참된 환희, 행복감의 충만과 정열의 용출을 신을 경외하고 은총에 감사하는 경신(敬神)적인 태도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시 「상쾌한 아침」에서는 “무연한 벌”을 지금 쓸쓸하다고 내버리지 않는 한,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워질 것을! 아름다워질 것을!”하면서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소월의 시에서 노동과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이상향적 세계에 대한 시어들은 시의 창조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상과 연관된다. 김소월은 그의 유일한 평론 시혼(詩魂)을 1925년 5월 『개벽』에, 네 달 전에는 시 「신앙」을 발표한다. 시인으로서 소월은 창조적 이상을 시와 시론에서 역설한 것이다. 시 「신앙」에서 말하는 다음의 시상들은 「詩魂」과 맞닿아 있다. “그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신을 / 높이 우러러 경배하라. // 그리하면 목숨의 봄 둔덕의 / 살음을 감사하는 높은 가지 / 잊었던 진리의 몽우리에 잎은 피며 / 신앙의 불붙는 고운 잔디 / 그대의 헐벗은 영(靈)을 싸 덮으리.”

소월은 「시혼」을 3장으로 구분하여 영혼(靈魂), 시혼(詩魂), 음영(陰影)에 대해서 말한다. 영혼은 영원불변이라는 점과, 예술행위 속에서 시혼으로 현현하며, 각 존재자의 음영은 각기 고유한 美가 있다는 것이다. 영혼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영원불변하는 존재자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영혼관과 연결된다.

“그러한 우리의 영혼(靈魂)이 우리의 가장 이상적 미(美)의 옷을 입고, 완전한 음률의 발걸음으로 미묘한 절조의 풍경 많은 길 위를, 정조의 불붙는 산마루로 향하여, 혹은 말의 아름다운 샘물에 심상의 적은 배를 젓기도 할 때에는, ... 이른바 시혼(詩魂)으로 그 순간에 우리에게 현현되는 것입니다.”(「시혼」에서)

여기서 김소월은 영혼이 시혼으로 현현되는 순간을 다양한 비유를 동원해서 묘사하고 있다. 시혼이 우리에게 “현현”된다는 표현이다. 이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시혼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수동적으로 시혼의 현현됨을 받아들이는 존재자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 제이엠에스의 불변하는 큰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아름다워질 이 땅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음영’은 단지 사전적 의미의 그늘이 아니라, 존재자의 고유한 것이다. 이렇게 음영은 모든 존재자를 감싸고 있다. 이것이 동양적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김소월은 음영(陰影)을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밝은 보름달 밤을 상상해 보라고 권유한다. “사방을 두루 살펴도 그 때에는 그늘진 곳조차 어슴푸레하게, 그러나 곳곳이 이상히도 빛나는 밝음이 살아있는 것 같으며, 청랑한 꾀꼬리 소리에, 호젓한 달빛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그 곳에 음영(陰影)이 없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호젓이 비치는 달밤의 달빛 아래에는 역시 그에뿐 고유한 음영이 있는 것입니다. ... 나는 봄의 달밤에 듣는 꾀꼬리의 노래 또는 물노래에서나, 가을의 서리 찬 새벽 울지는 蟋蟀(실솔)의 울음에서나, 비록 완상(翫賞)하는 사람에조차 그 소호(所好)는 다를는지 모르나, 모두 그의 특유한 음영(陰影)의 미적 가치에 있서서는 결코 우열이 없다고 합니다.”

그늘에도 어슴푸레하지만 이상하게도 빛나는 밝음이 살아있듯이, 밝음 속에서도 고유한 음영이 있다는 이 설명에는 동북아 사유에서 음과 양이, 볕과 그늘이 함께 존재하는 사유가 나타나 있다. 김소월이 그린 한국 기독교적 이상촌은 각 존재가 그의 고유하고 탁월한 음영(陰影)을 저절로 드리우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적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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