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 어떻게 살 것인가 | Philos 시리즈 35
고쿠분 고이치로 (지은이),김상운 (옮긴이)arte(아르테)2025-04-15
원제 : 暇と退屈の倫理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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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으며 일본에서 화제의 판매고를 기록한 고쿠분 고이치로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暇と退屈の倫理学)』이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35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노쿠니야 서점 인문 대상’(2011)을 수상했고, 도쿄대학과 교토대학 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인문·철학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2011년 초판 발행일로부터 2025년 현재까지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한 스테디셀러다.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날카롭게 포착하며, 질문에 답한다. 또한 초판본(2011년)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DMN, FPCN, SN의 뇌 네트워크 연구, 샐리언시)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독창적이고도 참신한 답을 제시한다.
목차
개정증보판을 위한 머리말
머리말
서론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1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
토끼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3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
왜 ‘한량’이 존경받을까?
4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
사치란 무엇인가?
5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도대체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6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도마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7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결단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증거인가?
결론
맺음말
부록 상처와 운명
옮긴이의 말
접기
책속에서
P. 41~43 지루함과 기분 전환에 대해 고찰하는 파스칼의 출발점에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인간이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파스칼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살아가기에 충분한 생활비를 가진 사람이 그것에 만족하면, 그러면 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사람은 그것에 만족하며 방에 느긋하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사교 모임에 나가서 스트레스를 받고 도박에 빠져서 돈을 잃는다.
그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간의 불행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충분한 재산을 가진 사람은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군대의 직위를 사서 바다로 나가거나 요새 공략에 나서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파스칼 시대에는 군대의 직위나 판사직 등을 사고팔았다). 물론 목숨을 잃는 일도 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느냐 하면,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곧 방에 혼자 있으면 할 일이 없어서 안절부절못한다는 것, 게다가 참을성이 없다는 것, 즉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다.
그는 그런 인간의 운명을 ‘비참함’이라고 부른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하찮은 이유로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면, 분명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다. 접기
P. 119~121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정주혁명은 한가함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인간에게 부여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지루함이라는 주관적인 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 단어를 정확하게 자리매김시키면 새로운 문제가 보인다. 양자의 관계 문제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둘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한가함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지루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가하다고 해서 사람이 반드시 지루해하는 것은 아닌 것일까?
또한 지루함의 측면에서 한가함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나온다. 지루함은 반드시 한가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즉, 지루해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한가함 속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루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일까? 접기
P. 255~256 하이데거는 먼저 지루함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지루함을 우선 둘로 나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하나는 ① 무엇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②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①을 지루함의 첫 번째 형식, ②를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이라고 부른다. 양자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①은 수동형이다(지루해진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분명히 지루한 것이 있고 그것이 사람을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②에서는 뭔가 특정한 지루한 것에 의해서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마주치고 있을 때, 잘 모르기는 하나 그곳에서 지루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루함이 주위를 뒤덮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지루해하는 것이다. 접기
P. 352~353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 형성적이며, 세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루함은 인간이 자유롭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에게 둘레세계를 단호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둘레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얼빠진 존재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둘레세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 더보기
P. 405 하이데거는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과 비교하면 첫 번째 형식이 자기 상실의 정도가 높다고 했다. 그리고 첫 번째 형식의 구조는 세 번째 형식의 구조와 통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첫 번째 형식=세 번째 형식의 구조에서 사람은 무언가의 노예가 됨으로써 ‘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라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두 번째 형식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자신을 내던져 버리는 태도는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을 마주하는 태도도 있다. 게다가 그것은 ‘안정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대체로 두 번째 형식의 지루함을 살아가며, 그리고 가끔 세 번째 형식=첫 번째 형식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것은 괴롭다. 인간이라는 것은 지루함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지루함을 마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수단을 다양하게 개발해 왔다. 그것을 우리는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그것을 더 향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고단한 인간적 삶에서 벗어날 가능성이다. 무슨 말인가? 인간은 한 둘레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둘레세계로 쉽게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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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쿠분 고이치로 (國分 功一郞)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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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파리 제10대학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DEA를, 도쿄 대학교 종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하며 철학과 현대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출간된 주요 저서로는 『중동태의 세계-의지와 책임의 고고학』(동아시아, 2019) 『다가올 민주주의』(오래된생각, 2016) 『고쿠분 고이치로의 뢰즈 제대로 읽기』(동아시아, 2015)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한권의책, 2014)가 있다.
최근작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중동태의 세계> … 총 59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lethal_notion
김상운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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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철학 연구자이자 전문 번역가이며, 현대정치철학연구회 연구회원이다. 발리바르와 월러스틴의 공저 『인종, 국민, 계급』,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년』을 옮겼고, 『자기의 통치와 타자의 통치』 『생명체의 통치에 관하여』 등을 옮기고 있다.
그 밖의 역서로 『현대사상 입문』 『자크 데리다를 읽는 시간』 『너무 움직이지 마라』 『이미지의 운명』 『푸코의 미학』 『목적 없는 수단』 『세속화 예찬』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50만 독자가 사랑한 현대의 고전
팬데믹이 증명한 철학의 화두
자유와 욕망 사이,
삶의 방향을 말하는 철학 입문서
인생을 활기차게 즐기기 위한 철학이 여기에 있다!
★★★ 2011 ‘기노쿠니야 인문 대상’ 수상작 ★★★
★★★ 2022 도쿄대학·교토대학 최다 판매 도서 ★★★
★★★ 누적 판매 50만 부, 인문·철학 분야 스테디셀러 ★★★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으며 일본에서 화제의 판매고를 기록한 고쿠분 고이치로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暇と退屈の倫理学)』이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35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노쿠니야 서점 인문 대상’(2011)을 수상했고, 도쿄대학과 교토대학 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인문·철학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2011년 초판 발행일로부터 2025년 현재까지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한 스테디셀러다.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날카롭게 포착하며, 질문에 답한다. 또한 초판본(2011년)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DMN, FPCN, SN의 뇌 네트워크 연구, 샐리언시)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독창적이고도 참신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국내에서 출간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2014)의 개정증보판으로, 이번 판본에서 새롭게 수록된 부록 「상처와 운명」에서 지루함의 본질을 “기억이라는 상처”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현대 정치철학 연구자인 김상운 역자의 새로운 번역으로 한층 깊이를 더한 이 책에서는 용어 선택의 근거와 개념의 맥락을 상세히 밝힌 역주가 눈에 띈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들을 꼼꼼히 비교 검토하고, 저자의 의도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적확한 개념어로 옮긴 점이 돋보인다. 또한 각 장의 주요 논점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함께 참고하면 좋을 국내외 연구 자료를 풍부하게 소개하여, 이 책을 통한 더 깊은 탐구의 길을 열어 두었다.
저자는 부록의 큰 주제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구분하며,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임을 밝힌다. 그 근거로 루소의 자연인 개념부터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지루함론과 구마가야 신이치로, A. 바니아 압카리안 등 연구자의 현대 정신의학의 성과까지 아우르며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고독,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인간은 자극을 피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자극이 없으면 불쾌한 상태에 빠진다. 이 모순의 수수께끼는 개개인의 마음의 상처에 주목함으로써 답할 수 있었다. 이 대답은 철학에 태도 변화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지루함을 둘러싼 모순은 인간이라는 것, 혹은 인간 본성을 논하는 한에서는 풀 수가 없다.”(부록에서)
오랫동안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운명’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 즉 인간 개개인이 지닌 ‘상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함을 논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
1만 년 된 인류의 문제이자 현대인의 딜레마
한가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루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지루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우리가 간과해 온 지루함이라는 느낌, 우리를 밑바탕에서부터 두루 조율하는 ‘기분’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파고든다. 그리하여 “1만 년 된 인류의 문제”인 지루함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탐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파스칼의 지루함에 대한 언급, 『형이상학의 여러 문제들』 속에서 언급되는 하이데거의 지루함론을 기반으로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까지 각종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논의를 이끈다.
저자는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된 상태이며, “지루함”이란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키는 주관적인 상태임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현대의 풍요가 한가함을 낳고 한가함이 지루함을 낳는 연쇄 속에서, 우리가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기예를 잃어버렸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거 귀족들은 베블런의 말대로 “품위 넘치는 한가함”, 즉 여가를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현대인은 그 지혜를 잃었다. 게다가 현대 소비사회는 이 지루함을 교묘히 이용한다. 사람들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려고 소비 활동에 나서고, 기업은 그를 부추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이 소비가 진정한 만족을 가져오기는커녕 지루함을 심화시킨다.
이에 저자는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직 인간만이 지루해하며, 그렇기에 자유롭다”라는 하이데거의 생각을 빌려 우리 스스로 인간임을 즐기고,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일인 “동물 되기”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삶을 향유하는 능력을 가꾸는 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사람은 즐거움을 알 때 생각에 대해 열린다. 더구나 즐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확장한다. 이것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사람들은 즐기면서, 또 즐기는 것을 배우면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점차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맛있는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고 항상 영화를 보는 사람은 점차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도대체 누가 만든 영화인지, 왜 이렇게 멋진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예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동물 되기라는 세 번째 결론은 ‘인간임을’ 즐기는 것이라는 두 번째 결론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본문, 430~431쪽에서)
400년의 사유로 읽는
권태의 인류학·경제학·심리학·생물학적 탐구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1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에서는 파스칼의 “기분 전환”에 관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한 원리적 고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토끼 사냥”에 대한 파스칼의 비유를 예로 들며, 이 행위의 목적은 욕망의 대상(토끼)이 아니라 욕망의 원인(지루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임을 지적한다. 이어서 우리가 욕망의 대상을 욕망의 원인으로 종종 착각하며, 기분 전환의 대상을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인다는 점을 짚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2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에서는 지루함의 기원이 논의되고 인류가 유동생활을 멈춘 정주혁명(니시다 마사키의 개념)으로 인해 그때까지 탐색에 사용하던 능력을 주체할 수 없어 지루함이 생겼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논지를 전개한다. 3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와 4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에서는 한가함의 분석, 소비와 낭비의 구별 등을 바탕으로 주로 경제사적 관점(베블런, 아도르노, 모리스, 보드리야르)에서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더한다. 5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6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7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은 주로 지루함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고찰을 담았다. ‘하이데거의 지루함의 세 형식’을 지루함의 타당한 분석으로서 제시하고, 생물학자 윅스퀼의 ‘둘레세계’라는 개념을 활용해 그의 인간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이데거식 해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이데거가 지루함을 타파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저자는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사상가들과 함께 읽는 지루함의 계보학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마르크스부터 아도르노, 아렌트, 들뢰즈, 스벤젠까지
저자는 본인만의 “지루함” 담론을 전개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안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자, 생물학자, 인류학자, 경제학자 들의 연구물을 검토한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생각들을 두루 살피며, 저자만의 독창적인 논지를 어떻게 전개시키는가를 살피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계기를 원하는데, 이는 심지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어도 된다는 관점에서는 니체를 언급한다. 인간은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의 행위의 이유를 끌어낸다. 지루해하는 인간은 그런 욕망을 품는다”.
또 저자는 러셀의 논의를 빌려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으로, 지루함이 쾌락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 낭만주의로 인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집단 서사가 붕괴하면서 인간이 지루함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스벤젠의 주장도 검토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 분석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빌려 현대의 소비가 “관념의 소비”로 변질되어 끝없는 불만족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낭비와 사치의 긍정적 가치를 재발견할 것을 제안한다. “낭비는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물건을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나 소비는 그렇지 않다.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통찰은, 끝없는 소비의 굴레에 갇힌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을 어딘가에 묶어 두는 유대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결단의 순간이란 하나의 광기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낚시는 해도 어부가 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이 여가를 살아가는 기예이다.”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현대에는 소비자의 감성이 제작 프로덕션에 의해 선취되어 있다.”
—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노동(labor)의 대상은 소비되지만, 작업(work)의 대상은 존속한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어떤 것이 쾌락이기에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기 때문에 쾌락이 된다.”
—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다.”
— 라르스 스벤젠(Lars Svendsen)
쇼트콘텐츠, 메신저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을 위한 철학적 처방
동물 되기라는 새 가능성
유한계급에서 부르주아로, 다시 현대의 대중사회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지루함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책은, 포디즘과 포스트포디즘이 만들어 낸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을 해부하며 현대사회가 마주한 지루함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한다.
“한가함”과 “지루함”이라는 누구나 겪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중요한 문제를 논하는 이 책은, 소셜미디어상의 쇼트콘텐츠, 자극적인 영상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 메신저 감옥에서 진정한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포노사피엔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지루함 회피 성향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충실해질 기회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루함과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우리에게 행하는 “불법침입”과 “충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동물 되기”의 새 가능성을 통해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목전의 한가함과 지루함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충격에 의해 자신의 둘레세계가 파괴당한 인간이 거기서부터 사고하기 시작할 때다. …… 그것이 동물 되기라는 가능성이다.”(406쪽)
“지루함이라는 제로 상태는,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305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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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수 많은 외부 자극에 대응하여 습관으로 예측 가능한 세계를 만든다, 외부와의 접촉으로 생기는 기억이란 애초에 모두 아픈데 트라우마가 된 기억은 타자를 경유해야 소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문제이다. - 다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이런 부분은 매우 와닿음.

종이 2025-05-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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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제대로 읽기도 전자책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네요 잘 읽겠습니다

탐 2025-05-0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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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바로 얼마 전 6월 하순은 <마법의 시간>이라고 쓴 것 같은데..
어느덧 계절은 7월로 접어들고 있다..
어제 <자기만의 방>에서 철수.. 본가로 내려왔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역시 대프리카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저녁 8시가 넘었음에도 역에서 내리자마자 후끈한 바람이 훅 들어온다..
여름을 나기 위해 본가로 내려온 것이긴 한데.. 문제는 이 집에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 집의 구조가 한국의 국민 평형이라는 3LDK니까.. 원래라면 세 명이 방 하나씩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한국의 평범한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다보면.. <자기만의 방>은 2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미 이전 점유자들이 <자기만의 방>을 하나씩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신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실의 한 귀퉁이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뿐이다..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베란다에서 살아야 했던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한강이었나 싶다..).. 요새 아파트는 확장형이라 베란다도 없다.. 물론 대프리카에서 한 여름 베란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고쿠분 고이치로라는 저자의 진가는 이미 올 봄 <중동태의 세계>를 읽으면서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나서 들뢰즈에 대한 짧은 책 한 권, 그리고 최근에 재번역되었다는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바로 구입했는데.. 여름방학이 되니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가하지 않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유형인가.. 누구나 <한가하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베블런의 유한계급의 삶을 꿈꾸겠지만..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유한계급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부자들이 제일 바쁜 게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하루 종일 앉아서 이런저런 번잡한 업무들을 처리하다 보면 오후 4-5시 즈음부터 지루함이 밀려오는데(더구나 한 여름은 낮이 길다.. 7시 반까지 해가 쨍하니까..) 그 지루함의 정체에 대한 주석 달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꺼내 들었다는..
무엇보다 책의 첫 부분에 파스칼을 인용한 대목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인간이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팡세>의 한 대목을 저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번역한 구절인데(원문을 확인해보지 못했다..).. 순간 빠져들었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곧 방에 혼자 있으면 할 일이 없어서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 게다가 참을성이 없다는 것, 즉 지루해한다는 것. 이것이,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가끔씩 책도 읽히지 않고, 모든게 지겨워 방안에서 서성이며 빙빙 도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을 계속 꺼내 보면서.. 어딘지 신선한.. 정곡을 꿰뚫는 문장이라는 느낌에.. 지인들에게 공유하면서.. 그래 공유하려는 몸짓 자체가 지루함의 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지.. 방학이라는 핑계를 대고.. 전공 서적은 좀 제쳐두고..그동안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본가로 내려왔던 것인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본가에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
파스칼은 그래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겠지? 사실 마담 댈러웨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방>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라.. 사실, 100여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거실 한 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아두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을 읽으면서.. 특히 4장의 소외론과 5장의 철학이 흥미롭다.. 가벼움과 조야함에 빠지지 않으면서 하이데거의 논의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니.. (이 역시 예전 사사키 아타루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기도 하지만, 서구의 정전들을 비교적 믿음직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지식장에서 가능한 글쓰기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것만은 아니겠지.. 지식장의 식민지적 기원을 운운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이미 잘 정리된 논의를 다시금 요약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는 없겠지만.. 복습을 위해 지루함의 세 형식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의를 다시 써보면..
(1)무엇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는 것.
(2)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 지루해한다는 것..
(3)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는 것..
특히 지루함의 궁극적 형태인 세 번째 형식, "아무튼 지루함"에 맞선 하이데거의 응답은 (역시 하이데거다운) "결단"이다.. 하지만 저자는 결단을 내리는 인간 역시 스스로가 결정한 것의 노예가 될 뿐이라며 지루함의 첫 번째 형식과 세 번째 형식이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인간다운 삶이란 결국 하이데거가 말하는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 즉 지루함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삶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제시한다.. '황당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가끔 동물되기(스피노자-들뢰즈로 이어지는 계보겠지만)도 해보고, 소비사회가 주는 유혹(기분전환과 지루함의 악순환)에 빠지면서도.. 또 가끔 낭비하고, 사치도 부려보면서 사물을 향유하고 즐기고, 또 생각하면서 함께 한가함의 왕국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당부처럼.. 이러한 결론은 이 책을 통독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통독해 달라니, 저자야말로 보통 배짱은 아니지만.. 지루함과 정주혁명을 연결시키는 2장의 계보학, 베블런에서 보드리야르에 이르는 소비사회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노동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3장의 경제학, 루소와 맑스를 다시 읽으면서 소외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본래성 없는 소외.. 동일성 없는 차이를 연상시키는) 4장 소외론도 슬슬 읽어나가기에(통독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한여름의 주말 오후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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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25-07-0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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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철학적 처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p.120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자극이 없으면 지루해하면서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극은 견딜 수 없지만 자극이 없는 것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정작 지루함은 피하고 싶어 한다.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한데, 왜 그로 인해 지루함이라는 불쾌한 상태가 되는 걸까. 삶을 관통하는 이 정반대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한다.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하며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초판본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출간되었다. 러셀, 하이데거,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사유가 400년을 이어져 왔다는 사실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의 발현이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능성이란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단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인 자유를 발휘하라고.... 하이데거는 인간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만이 지루해한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지루해하지만, 동물은 지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311
'지루함'과 '한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사실 평소에 지루하다는 생각이나 한가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대체 한가하고 지루한 감정에 대해서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그 사유라는 것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 가다 보면 꽤나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도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셀의 지루함론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이런 식이다. 러셀이 말하는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오늘을 어제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래서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 줄 것을 갈망한다. 사건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불행하거나, 비참한 사건이어도 된다. 보통 지루함의 반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흥분할 수 있는 것이면 불행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지루해지고 마는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사실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 지루함도 있지만 나름 즐거움도 있는 삶,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빵뿐 아니라 장미로 장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모리스의 사상을 비롯해서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라는 스벤젠의 입장, 인간은 어떻게든 무언가에 괴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다는 니체의 의견에 이르기까지 지루함의 계보학을 만나보자.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을 넘나드는 사유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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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25-05-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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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_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적어도 선진국 사람들은 부유해졌다. 그리고 한가함을 얻었다. 하지만 한가함을 얻은 사람들은 그 한가함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뭐가 즐거운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
자본주의는 이 틈새를 파고든다. 문화산업은 기성의 즐거움, 산업에 유리한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예전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말이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당하고 있다._p27
이렇게 찔릴 수가! 쉬어야 하는 시간에 OTT 영상을 보며 도파민을 팡팡 터뜨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뿐일까? #한가함과지루함의윤리학 의 저자 #고쿠분고이치로 는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각종 습관 만들기, 산업에 의해 미리 준비되어 인간에게 들이밀고 있는 많은 것들이, 칸트가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의주체성 을 더 이상 당연시 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을 빌어서 서론을 열고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취미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그리고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열중할 수 있는 것을 탐닉하고 그래야만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파스칼의 설명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을 손에 넣기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자기 자신에게 속임수를 써야... 한다”로 귀결됨을 재차 강조하고 있었다.
사냥을 하는 이유가 이미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으로 즐기기를 원하는 것이며, 새로운 기기모델이 나오면 교체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것도 모델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지루함을 달래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핵심 내용들은 나에게도 스며들어있는 많은 학습 내용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많은 자기 계발서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자신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을 지루함과 기분 전환, 산업 시스템에 의한 학습, 공허함을 그 자체로, 인간 그 자체로 가만히 두지 못하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철학의 깊은 세계로 빠져서 세상을 보게 만드는 듯 하는 내용이였다.
특히 6장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파트에서 만난 하이데거의 지루함 타당성 분석과 생물학자 윅스퀼의 둘레세계를 통한 동물과 인간의 해석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파스칼, 루소, 키에르케고르,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들뢰즈, 스벤젠 등 많은 사상철학가들이 다룬 지루함을 다루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찾기를 원하고 조언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책을 통해 한가함과 지루함을 각자의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은 일상적인 즐거움을 더 누릴 수 있게, 동물되기의 일상성을 즐기되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져 받아들이고 기다릴 줄 아는... 그래서 지루함과 한가함을 만끽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렵게 느껴지는 제목에 비해 흥미롭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이였고, 사회나 타인, 분위기에 강요받는 활동이나 생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내가 즐긴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한가함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이미 학습된 것은 아닌가? 질문하며 죄책감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루함과 한가함을 잘 즐길 수 있기를, 모두가 한가해질 수 있고 모두에게 한가함이 허용되는 사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_.... 지루함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인간은 아마도 자신이 아닌 타인과 관련된 일을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한가해질 수 있는지, 모두에게 한가함을 허용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지 하는 물음이다._p434
_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그 안에서는 반드시 지루해한다. 그래서 그 지루함을 어떻게든 모면할 수 있는 기분 전환을 행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독특한 방식으로 얽히고 설킨 삶을 살도록 강제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_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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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화 2025-04-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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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으며 일본에서 화제의 판매고를 기록한 고쿠분 고이치로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暇と退屈の倫理学)』이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35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노쿠니야 서점 인문 대상’(2011)을 수상했고, 도쿄대학과 교토대학 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인문·철학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2011년 초판 발행일로부터 2025년 현재까지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한 스테디셀러다.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날카롭게 포착하며, 질문에 답한다. 또한 초판본(2011년)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DMN, FPCN, SN의 뇌 네트워크 연구, 샐리언시)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독창적이고도 참신한 답을 제시한다.
목차
개정증보판을 위한 머리말
머리말
서론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1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
토끼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2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3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
왜 ‘한량’이 존경받을까?
4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
사치란 무엇인가?
5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도대체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6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도마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7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결단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증거인가?
결론
맺음말
부록 상처와 운명
옮긴이의 말
접기
책속에서
P. 41~43 지루함과 기분 전환에 대해 고찰하는 파스칼의 출발점에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인간이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파스칼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살아가기에 충분한 생활비를 가진 사람이 그것에 만족하면, 그러면 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사람은 그것에 만족하며 방에 느긋하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사교 모임에 나가서 스트레스를 받고 도박에 빠져서 돈을 잃는다.
그것뿐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간의 불행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충분한 재산을 가진 사람은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군대의 직위를 사서 바다로 나가거나 요새 공략에 나서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파스칼 시대에는 군대의 직위나 판사직 등을 사고팔았다). 물론 목숨을 잃는 일도 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느냐 하면,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곧 방에 혼자 있으면 할 일이 없어서 안절부절못한다는 것, 게다가 참을성이 없다는 것, 즉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다.
그는 그런 인간의 운명을 ‘비참함’이라고 부른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하찮은 이유로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면, 분명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다. 접기
P. 119~121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정주혁명은 한가함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인간에게 부여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지루함이라는 주관적인 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 단어를 정확하게 자리매김시키면 새로운 문제가 보인다. 양자의 관계 문제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둘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한가함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지루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가하다고 해서 사람이 반드시 지루해하는 것은 아닌 것일까?
또한 지루함의 측면에서 한가함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나온다. 지루함은 반드시 한가함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즉, 지루해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한가함 속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루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가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일까? 접기
P. 255~256 하이데거는 먼저 지루함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지루함을 우선 둘로 나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하나는 ① 무엇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②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 지루해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①을 지루함의 첫 번째 형식, ②를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이라고 부른다. 양자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①은 수동형이다(지루해진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분명히 지루한 것이 있고 그것이 사람을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②에서는 뭔가 특정한 지루한 것에 의해서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마주치고 있을 때, 잘 모르기는 하나 그곳에서 지루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루함이 주위를 뒤덮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지루해하는 것이다. 접기
P. 352~353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 형성적이며, 세계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루함은 인간이 자유롭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에게 둘레세계를 단호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둘레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얼빠진 존재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 둘레세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 더보기
P. 405 하이데거는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과 비교하면 첫 번째 형식이 자기 상실의 정도가 높다고 했다. 그리고 첫 번째 형식의 구조는 세 번째 형식의 구조와 통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첫 번째 형식=세 번째 형식의 구조에서 사람은 무언가의 노예가 됨으로써 ‘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라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두 번째 형식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자신을 내던져 버리는 태도는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을 마주하는 태도도 있다. 게다가 그것은 ‘안정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대체로 두 번째 형식의 지루함을 살아가며, 그리고 가끔 세 번째 형식=첫 번째 형식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것은 괴롭다. 인간이라는 것은 지루함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지루함을 마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수단을 다양하게 개발해 왔다. 그것을 우리는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그것을 더 향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겨진 가능성은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고단한 인간적 삶에서 벗어날 가능성이다. 무슨 말인가? 인간은 한 둘레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둘레세계로 쉽게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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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쿠분 고이치로 (國分 功一郞)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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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파리 제10대학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DEA를, 도쿄 대학교 종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하며 철학과 현대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출간된 주요 저서로는 『중동태의 세계-의지와 책임의 고고학』(동아시아, 2019) 『다가올 민주주의』(오래된생각, 2016) 『고쿠분 고이치로의 뢰즈 제대로 읽기』(동아시아, 2015)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한권의책, 2014)가 있다.
최근작 :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연구>,<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중동태의 세계> … 총 5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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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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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철학 연구자이자 전문 번역가이며, 현대정치철학연구회 연구회원이다. 발리바르와 월러스틴의 공저 『인종, 국민, 계급』,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년』을 옮겼고, 『자기의 통치와 타자의 통치』 『생명체의 통치에 관하여』 등을 옮기고 있다.
그 밖의 역서로 『현대사상 입문』 『자크 데리다를 읽는 시간』 『너무 움직이지 마라』 『이미지의 운명』 『푸코의 미학』 『목적 없는 수단』 『세속화 예찬』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50만 독자가 사랑한 현대의 고전
팬데믹이 증명한 철학의 화두
자유와 욕망 사이,
삶의 방향을 말하는 철학 입문서
인생을 활기차게 즐기기 위한 철학이 여기에 있다!
★★★ 2011 ‘기노쿠니야 인문 대상’ 수상작 ★★★
★★★ 2022 도쿄대학·교토대학 최다 판매 도서 ★★★
★★★ 누적 판매 50만 부, 인문·철학 분야 스테디셀러 ★★★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으며 일본에서 화제의 판매고를 기록한 고쿠분 고이치로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暇と退屈の倫理学)』이 아르테 필로스 시리즈 35번 도서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기노쿠니야 서점 인문 대상’(2011)을 수상했고, 도쿄대학과 교토대학 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인문·철학 분야 도서로는 드물게 2011년 초판 발행일로부터 2025년 현재까지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한 스테디셀러다.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날카롭게 포착하며, 질문에 답한다. 또한 초판본(2011년)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DMN, FPCN, SN의 뇌 네트워크 연구, 샐리언시)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독창적이고도 참신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국내에서 출간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2014)의 개정증보판으로, 이번 판본에서 새롭게 수록된 부록 「상처와 운명」에서 지루함의 본질을 “기억이라는 상처”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현대 정치철학 연구자인 김상운 역자의 새로운 번역으로 한층 깊이를 더한 이 책에서는 용어 선택의 근거와 개념의 맥락을 상세히 밝힌 역주가 눈에 띈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 통용되는 번역어들을 꼼꼼히 비교 검토하고, 저자의 의도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적확한 개념어로 옮긴 점이 돋보인다. 또한 각 장의 주요 논점과 관련하여 독자들이 함께 참고하면 좋을 국내외 연구 자료를 풍부하게 소개하여, 이 책을 통한 더 깊은 탐구의 길을 열어 두었다.
저자는 부록의 큰 주제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구분하며,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임을 밝힌다. 그 근거로 루소의 자연인 개념부터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지루함론과 구마가야 신이치로, A. 바니아 압카리안 등 연구자의 현대 정신의학의 성과까지 아우르며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고독,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인간은 자극을 피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자극이 없으면 불쾌한 상태에 빠진다. 이 모순의 수수께끼는 개개인의 마음의 상처에 주목함으로써 답할 수 있었다. 이 대답은 철학에 태도 변화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지루함을 둘러싼 모순은 인간이라는 것, 혹은 인간 본성을 논하는 한에서는 풀 수가 없다.”(부록에서)
오랫동안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운명’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 즉 인간 개개인이 지닌 ‘상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함을 논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
1만 년 된 인류의 문제이자 현대인의 딜레마
한가함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루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지루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우리가 간과해 온 지루함이라는 느낌, 우리를 밑바탕에서부터 두루 조율하는 ‘기분’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파고든다. 그리하여 “1만 년 된 인류의 문제”인 지루함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탐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파스칼의 지루함에 대한 언급, 『형이상학의 여러 문제들』 속에서 언급되는 하이데거의 지루함론을 기반으로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까지 각종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논의를 이끈다.
저자는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된 상태이며, “지루함”이란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키는 주관적인 상태임을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현대의 풍요가 한가함을 낳고 한가함이 지루함을 낳는 연쇄 속에서, 우리가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기예를 잃어버렸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과거 귀족들은 베블런의 말대로 “품위 넘치는 한가함”, 즉 여가를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현대인은 그 지혜를 잃었다. 게다가 현대 소비사회는 이 지루함을 교묘히 이용한다. 사람들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려고 소비 활동에 나서고, 기업은 그를 부추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이 소비가 진정한 만족을 가져오기는커녕 지루함을 심화시킨다.
이에 저자는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직 인간만이 지루해하며, 그렇기에 자유롭다”라는 하이데거의 생각을 빌려 우리 스스로 인간임을 즐기고,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일인 “동물 되기”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삶을 향유하는 능력을 가꾸는 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사람은 즐거움을 알 때 생각에 대해 열린다. 더구나 즐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은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확장한다. 이것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사람들은 즐기면서, 또 즐기는 것을 배우면서 사물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점차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맛있는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고 항상 영화를 보는 사람은 점차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도대체 누가 만든 영화인지, 왜 이렇게 멋진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예도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동물 되기라는 세 번째 결론은 ‘인간임을’ 즐기는 것이라는 두 번째 결론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본문, 430~431쪽에서)
400년의 사유로 읽는
권태의 인류학·경제학·심리학·생물학적 탐구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1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에서는 파스칼의 “기분 전환”에 관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한 원리적 고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토끼 사냥”에 대한 파스칼의 비유를 예로 들며, 이 행위의 목적은 욕망의 대상(토끼)이 아니라 욕망의 원인(지루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임을 지적한다. 이어서 우리가 욕망의 대상을 욕망의 원인으로 종종 착각하며, 기분 전환의 대상을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인다는 점을 짚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2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에서는 지루함의 기원이 논의되고 인류가 유동생활을 멈춘 정주혁명(니시다 마사키의 개념)으로 인해 그때까지 탐색에 사용하던 능력을 주체할 수 없어 지루함이 생겼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논지를 전개한다. 3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와 4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에서는 한가함의 분석, 소비와 낭비의 구별 등을 바탕으로 주로 경제사적 관점(베블런, 아도르노, 모리스, 보드리야르)에서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더한다. 5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6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7장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은 주로 지루함에 대한 철학적·윤리적 고찰을 담았다. ‘하이데거의 지루함의 세 형식’을 지루함의 타당한 분석으로서 제시하고, 생물학자 윅스퀼의 ‘둘레세계’라는 개념을 활용해 그의 인간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이데거식 해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이데거가 지루함을 타파해야 할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 저자는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사상가들과 함께 읽는 지루함의 계보학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마르크스부터 아도르노, 아렌트, 들뢰즈, 스벤젠까지
저자는 본인만의 “지루함” 담론을 전개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안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자, 생물학자, 인류학자, 경제학자 들의 연구물을 검토한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생각들을 두루 살피며, 저자만의 독창적인 논지를 어떻게 전개시키는가를 살피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계기를 원하는데, 이는 심지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어도 된다는 관점에서는 니체를 언급한다. 인간은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의 행위의 이유를 끌어낸다. 지루해하는 인간은 그런 욕망을 품는다”.
또 저자는 러셀의 논의를 빌려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으로, 지루함이 쾌락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 낭만주의로 인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집단 서사가 붕괴하면서 인간이 지루함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스벤젠의 주장도 검토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 분석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빌려 현대의 소비가 “관념의 소비”로 변질되어 끝없는 불만족을 낳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낭비와 사치의 긍정적 가치를 재발견할 것을 제안한다. “낭비는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물건을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나 소비는 그렇지 않다.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통찰은, 끝없는 소비의 굴레에 갇힌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을 어딘가에 묶어 두는 유대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결단의 순간이란 하나의 광기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낚시는 해도 어부가 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이 여가를 살아가는 기예이다.”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현대에는 소비자의 감성이 제작 프로덕션에 의해 선취되어 있다.”
—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노동(labor)의 대상은 소비되지만, 작업(work)의 대상은 존속한다.”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어떤 것이 쾌락이기에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기 때문에 쾌락이 된다.”
—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다.”
— 라르스 스벤젠(Lars Svendsen)
쇼트콘텐츠, 메신저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을 위한 철학적 처방
동물 되기라는 새 가능성
유한계급에서 부르주아로, 다시 현대의 대중사회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지루함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책은, 포디즘과 포스트포디즘이 만들어 낸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을 해부하며 현대사회가 마주한 지루함의 정체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한다.
“한가함”과 “지루함”이라는 누구나 겪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중요한 문제를 논하는 이 책은, 소셜미디어상의 쇼트콘텐츠, 자극적인 영상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 메신저 감옥에서 진정한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포노사피엔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지루함 회피 성향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충실해질 기회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루함과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우리에게 행하는 “불법침입”과 “충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동물 되기”의 새 가능성을 통해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목전의 한가함과 지루함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충격에 의해 자신의 둘레세계가 파괴당한 인간이 거기서부터 사고하기 시작할 때다. …… 그것이 동물 되기라는 가능성이다.”(406쪽)
“지루함이라는 제로 상태는,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305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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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수 많은 외부 자극에 대응하여 습관으로 예측 가능한 세계를 만든다, 외부와의 접촉으로 생기는 기억이란 애초에 모두 아픈데 트라우마가 된 기억은 타자를 경유해야 소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문제이다. - 다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이런 부분은 매우 와닿음.
종이 2025-05-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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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제대로 읽기도 전자책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네요 잘 읽겠습니다
탐 2025-05-0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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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바로 얼마 전 6월 하순은 <마법의 시간>이라고 쓴 것 같은데..
어느덧 계절은 7월로 접어들고 있다..
어제 <자기만의 방>에서 철수.. 본가로 내려왔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역시 대프리카라는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저녁 8시가 넘었음에도 역에서 내리자마자 후끈한 바람이 훅 들어온다..
여름을 나기 위해 본가로 내려온 것이긴 한데.. 문제는 이 집에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 집의 구조가 한국의 국민 평형이라는 3LDK니까.. 원래라면 세 명이 방 하나씩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한국의 평범한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다보면.. <자기만의 방>은 2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미 이전 점유자들이 <자기만의 방>을 하나씩 꿰차고 있는 상황에서 신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실의 한 귀퉁이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뿐이다..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베란다에서 살아야 했던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한강이었나 싶다..).. 요새 아파트는 확장형이라 베란다도 없다.. 물론 대프리카에서 한 여름 베란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고쿠분 고이치로라는 저자의 진가는 이미 올 봄 <중동태의 세계>를 읽으면서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나서 들뢰즈에 대한 짧은 책 한 권, 그리고 최근에 재번역되었다는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바로 구입했는데.. 여름방학이 되니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가하지 않지만 지루함을 느끼는> 유형인가.. 누구나 <한가하지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베블런의 유한계급의 삶을 꿈꾸겠지만..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유한계급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부자들이 제일 바쁜 게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하루 종일 앉아서 이런저런 번잡한 업무들을 처리하다 보면 오후 4-5시 즈음부터 지루함이 밀려오는데(더구나 한 여름은 낮이 길다.. 7시 반까지 해가 쨍하니까..) 그 지루함의 정체에 대한 주석 달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꺼내 들었다는..
무엇보다 책의 첫 부분에 파스칼을 인용한 대목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인간이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팡세>의 한 대목을 저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번역한 구절인데(원문을 확인해보지 못했다..).. 순간 빠져들었다..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곧 방에 혼자 있으면 할 일이 없어서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 게다가 참을성이 없다는 것, 즉 지루해한다는 것. 이것이,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가끔씩 책도 읽히지 않고, 모든게 지겨워 방안에서 서성이며 빙빙 도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을 계속 꺼내 보면서.. 어딘지 신선한.. 정곡을 꿰뚫는 문장이라는 느낌에.. 지인들에게 공유하면서.. 그래 공유하려는 몸짓 자체가 지루함의 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지.. 방학이라는 핑계를 대고.. 전공 서적은 좀 제쳐두고..그동안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슴에 품고.. 본가로 내려왔던 것인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본가에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
파스칼은 그래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겠지? 사실 마담 댈러웨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기만의 방>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라.. 사실, 100여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거실 한 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아두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을 읽으면서.. 특히 4장의 소외론과 5장의 철학이 흥미롭다.. 가벼움과 조야함에 빠지지 않으면서 하이데거의 논의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니.. (이 역시 예전 사사키 아타루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기도 하지만, 서구의 정전들을 비교적 믿음직한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지식장에서 가능한 글쓰기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것만은 아니겠지.. 지식장의 식민지적 기원을 운운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이미 잘 정리된 논의를 다시금 요약하는 것은 커다란 의미는 없겠지만.. 복습을 위해 지루함의 세 형식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의를 다시 써보면..
(1)무엇인가에 의해 지루해진다는 것.
(2)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서 지루해한다는 것..
(3)아무튼 그냥 지루하다는 것..
특히 지루함의 궁극적 형태인 세 번째 형식, "아무튼 지루함"에 맞선 하이데거의 응답은 (역시 하이데거다운) "결단"이다.. 하지만 저자는 결단을 내리는 인간 역시 스스로가 결정한 것의 노예가 될 뿐이라며 지루함의 첫 번째 형식과 세 번째 형식이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인간다운 삶이란 결국 하이데거가 말하는 지루함의 두 번째 형식.. 즉 지루함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삶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제시한다.. '황당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가끔 동물되기(스피노자-들뢰즈로 이어지는 계보겠지만)도 해보고, 소비사회가 주는 유혹(기분전환과 지루함의 악순환)에 빠지면서도.. 또 가끔 낭비하고, 사치도 부려보면서 사물을 향유하고 즐기고, 또 생각하면서 함께 한가함의 왕국을 만들어보자는 그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의 당부처럼.. 이러한 결론은 이 책을 통독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을 통독해 달라니, 저자야말로 보통 배짱은 아니지만.. 지루함과 정주혁명을 연결시키는 2장의 계보학, 베블런에서 보드리야르에 이르는 소비사회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노동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3장의 경제학, 루소와 맑스를 다시 읽으면서 소외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본래성 없는 소외.. 동일성 없는 차이를 연상시키는) 4장 소외론도 슬슬 읽어나가기에(통독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한여름의 주말 오후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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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25-07-0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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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을 위한 철학적 처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가함이란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가리킨다. 한가함은 한가함 속에 있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즉, 한가함은 객관적인 조건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감정이나 기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 방식이나 느낌과 관련되어 있다. 즉, 지루함은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p.120
끊임없는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자극이 없으면 지루해하면서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끊임없는 자극은 견딜 수 없지만 자극이 없는 것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살아가면서 정작 지루함은 피하고 싶어 한다.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한데, 왜 그로 인해 지루함이라는 불쾌한 상태가 되는 걸까. 삶을 관통하는 이 정반대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은 왜 자극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극을 갈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지루함'이라는 기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한다.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50만 부를 달성하며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초판본에는 없었던 최신 뇌과학 연구와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출간되었다. 러셀, 하이데거, 파스칼, 루소, 키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사유가 400년을 이어져 왔다는 사실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지루함’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기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의 발현이다. 하이데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능성이란 자유를 가리킨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단에 의해 인간의 가능성인 자유를 발휘하라고.... 하이데거는 인간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간만이 지루해한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지루해하지만, 동물은 지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p.311
'지루함'과 '한가함'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사실 평소에 지루하다는 생각이나 한가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별로 없어서 더 궁금했던 책이다. 대체 한가하고 지루한 감정에 대해서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할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그 사유라는 것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 가다 보면 꽤나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도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셀의 지루함론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이런 식이다. 러셀이 말하는 '지루함이란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꺾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오늘을 어제로부터 구별해 주는 것이다. 사람은 매일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래서 오늘을 어제와 구별해 줄 것을 갈망한다. 사건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불행하거나, 비참한 사건이어도 된다. 보통 지루함의 반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루해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흥분할 수 있는 것이면 불행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 책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든 지루해지고 마는 인간의 삶과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갈 것인가'이다. 사실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얽힌 삶, 지루함도 있지만 나름 즐거움도 있는 삶,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다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빵뿐 아니라 장미로 장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모리스의 사상을 비롯해서 인간의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 지루함이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된 것은 낭만주의 탓이라는 스벤젠의 입장, 인간은 어떻게든 무언가에 괴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다는 니체의 의견에 이르기까지 지루함의 계보학을 만나보자.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문학, 생물학, 의학을 넘나드는 사유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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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25-05-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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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_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적어도 선진국 사람들은 부유해졌다. 그리고 한가함을 얻었다. 하지만 한가함을 얻은 사람들은 그 한가함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뭐가 즐거운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
자본주의는 이 틈새를 파고든다. 문화산업은 기성의 즐거움, 산업에 유리한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예전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말이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당하고 있다._p27
이렇게 찔릴 수가! 쉬어야 하는 시간에 OTT 영상을 보며 도파민을 팡팡 터뜨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뿐일까? #한가함과지루함의윤리학 의 저자 #고쿠분고이치로 는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각종 습관 만들기, 산업에 의해 미리 준비되어 인간에게 들이밀고 있는 많은 것들이, 칸트가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의주체성 을 더 이상 당연시 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을 빌어서 서론을 열고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취미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것, 그리고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열중할 수 있는 것을 탐닉하고 그래야만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파스칼의 설명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을 손에 넣기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자기 자신에게 속임수를 써야... 한다”로 귀결됨을 재차 강조하고 있었다.
사냥을 하는 이유가 이미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으로 즐기기를 원하는 것이며, 새로운 기기모델이 나오면 교체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것도 모델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지루함을 달래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핵심 내용들은 나에게도 스며들어있는 많은 학습 내용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들었다.
많은 자기 계발서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자신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을 지루함과 기분 전환, 산업 시스템에 의한 학습, 공허함을 그 자체로, 인간 그 자체로 가만히 두지 못하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철학의 깊은 세계로 빠져서 세상을 보게 만드는 듯 하는 내용이였다.
특히 6장의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파트에서 만난 하이데거의 지루함 타당성 분석과 생물학자 윅스퀼의 둘레세계를 통한 동물과 인간의 해석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파스칼, 루소, 키에르케고르,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들뢰즈, 스벤젠 등 많은 사상철학가들이 다룬 지루함을 다루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찾기를 원하고 조언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책을 통해 한가함과 지루함을 각자의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은 일상적인 즐거움을 더 누릴 수 있게, 동물되기의 일상성을 즐기되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져 받아들이고 기다릴 줄 아는... 그래서 지루함과 한가함을 만끽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렵게 느껴지는 제목에 비해 흥미롭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이였고, 사회나 타인, 분위기에 강요받는 활동이나 생각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내가 즐긴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한가함에 죄책감을 느끼도록 이미 학습된 것은 아닌가? 질문하며 죄책감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루함과 한가함을 잘 즐길 수 있기를, 모두가 한가해질 수 있고 모두에게 한가함이 허용되는 사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_.... 지루함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인간은 아마도 자신이 아닌 타인과 관련된 일을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한가해질 수 있는지, 모두에게 한가함을 허용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지 하는 물음이다._p434
_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그 안에서는 반드시 지루해한다. 그래서 그 지루함을 어떻게든 모면할 수 있는 기분 전환을 행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독특한 방식으로 얽히고 설킨 삶을 살도록 강제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_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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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화 2025-04-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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