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Sun-i Samch'on저자 현기영
나라 대한민국
언어 한국어
장르 소설
출판사 창작과비평
발행일 1978년 9월
《순이삼촌》(順伊三寸)은 현기영이 1978년에 발표한 중편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에 일어났던 1949년 1월 16일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4·3 사건을 최초로 다룬 작품으로 문학사상·역사상 의의가 큰 1970년대 대표적 문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된다. 4·3 사건 자체를 말할 수 없었던 제4공화국 시절에 발표되어 작가가 고문과 금서조치를 당하는 고초[1]를 겪었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4·3 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고 문화계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이 소설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신이 일구던 밭에서 생을 마감한 ‘순이 삼촌’의 자살 원인을 찾아 나아가는 ‘의문-추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려 고향에 들른 서술자 ‘나’가 친척 아주머니인 ‘순이 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다.)이 죽은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되어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30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의 한가운데서 두 자식을 잃고 천행으로 살아남았으나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고 평생을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며, 그 비극의 현장인 자신의 ‘옴팡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자살하였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이삼촌 [順伊三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관련 논문이은진, 〈제주 4·3사건의 기억 재현 양상 연구 -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중심으로〉, 《개신어문연구》 35, 개신어문학회, 2012년
음영철,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료 과정-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집》 13-11, 한국콘텐츠학회, 2013년
정문권·이희영, 〈현기영의 〈순이삼촌〉에 나타나는 기억 양상 연구〉, 《한국언어문학》 94, 한국언어문학회, 2015년
이하은, 〈4·3이라는 왜상과 이데올로기의 허상- 〈순이삼촌〉 론〉, 《비평문학》 80, 한국비평문학회, 2021년
각주
그때의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순이 삼촌]은 1979년도에 책으로 발간했는데 이듬해인 1980년에 판매가 금지됐어요. …(중략)… 민주화 운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해금될 수 있었죠." "[순이 삼촌]이 1978년에 발표되고 그 이듬해 책으로 나왔어요. 4·3이 발발한 지 30년 만이었는데 …(중략)… 제가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고발한 것이었죠. …(중략)… 그런 글 쓰고서 무사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때 3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저를 국가보안법으로 묶지를 못했어요. …(중략)… 그러니까 저를 재판에 회부할 수는 없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고문하고 때리고를 반복했죠."(두 인용문의 출처: 네이버 인생스토리 '현기영')
분류: 1978년 책
중편소설
대한민국 소설
제주 4·3 사건
1949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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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최근 수정 시각: 2025-10-08 https://namu.wiki/w/%EC%88%9C%EC%9D%B4%20%EC%82%BC%EC%B4%8C
순이 삼촌
順伊 三寸

장르
현대문학
작가
현기영
출판사
창비
발매일
1978. 9.
쪽수
371쪽
ISBN
9788936460341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4. 여담
1. 개요[편집]
현기영의 1978년 작인 단편소설로 제주 4.3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화자인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당시에 있었던 일을 겪은 인물들과 중심 인물인 순이 삼촌[1]의 이야기를 다뤘다.
2. 등장인물[편집]
나(상수): 이 이야기의 화자. 30대 중후반. 제주도 태생이나 서울로 상경하여 현재는 자녀를 둔 대기업의 중역. 7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역시 일본으로 도망가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어 큰댁 식구들 밑에서 성장했다.
성인이 되어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상경한 뒤 아픈 상처만이 가득한 제주도를 잊고자 노력하다가 할아버지의 제사로 인해 8년 만에 제주도로 돌아오나 자신을 어린시절부터 돌봐준 순이 삼촌[2]이란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아 친척들에게 얘기하자 순이 삼촌이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다.
순이 삼촌: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자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 향년 56세. 옴팡밭을 일구며 살아 온 중년 여성으로 슬하에는 결혼한 딸 내외가 있다. 몇 달 동안 주인공의 집에 지내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었지만 PTSD를 심하게 앓고 있어서 가끔씩 심한 피해망상과 환청에 시달렸다. 30년 전 북촌마을에 있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어서 상수가 제주에 도착한 작중 시점에서 며칠 전에 자신이 일궜던 옴팡밭에서 음독 자살을 했다.
길수: 주인공의 큰댁 사촌형. 주인공과 1살 차이이고 중학교 교사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나 부업으로 귤밭을 일구는 중이다. 고모부의 책임회피에 하루빨리 사건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흥분한다.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이 믿고 의지할 수 있던 사촌으로 주인공을 여러번 도와주었다.
고모부: 서북 출신으로 당시 청년단 소속. 돌아가신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화를 피하기 위해 황급하게 고모와 결혼시켰다.[3] 그 당시 사건에서 정부와 군경을 많이 옹호하여 친척간 말다툼이 일어난다.
순이 삼촌의 딸 내외: 주인공이 서울에 있었을 때 만난 순이 삼촌의 딸과 사위. 딸은 순이 삼촌이 남편을 잃은 후 낳은 유복녀이다. 사위는 농촌진흥청 지도직공무원이다.
3.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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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상수는 현재 서울에 지내면서 대기업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고 아내와 두 자녀가 그의 가족인 평범한 남성이다. 큰댁 식구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제사차 고향으로 내려오란 소식을 듣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간다.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까지 일본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오지 않아 고아로 지내다시피 한 그에게 제주도는 상처만이 남은 곳이다.
제주도에 온 뒤 고향인 북촌마을에 도착하여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순이 삼촌'이라는 친척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 상수. 순이 삼촌은 몇 달 동안 서울의 주인공의 집안일을 도와준 먼 친척 아주머니로 잦은 환청과 불안증세로 인해 사회생활이 어려워 그녀의 딸과 사위도 그녀의 병을 걱정하고 있다. 주인공 역시 그들에게 얘기를 들어 삼촌의 증세가 파출소 사건 이후로 생긴 걸로 생각 중이지만...
길수 형에게 순이 삼촌이 보이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삼촌 얘기를 하는 상수. 순이 삼촌 얘기를 하자 얼굴이 어두워진 길수 형은 실은 상수가 오기 며칠 전 순이 삼촌이 옴팡밭에서 음독 자살을 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어른들 모두 30년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30년 전인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갑자기 군경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그 뒤 안내방송을 듣고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이자 군경들이 전부 친척 중에 군인이 있는 가족들은 나오라 명한 뒤 가족이 없는 이들을 전부 교문 밖의 공터로 끌고 가 마구잡이로 총살했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는 순이 삼촌 뿐이었으며 그녀 역시 뱃속의 딸을 제외하고 그 총격에서 남편과 쌍둥이 남매를 잃는 참변을 겪었다. 그 뒤 아이를 낳은 다음 옴팡밭을 일구면서 그날 그날 생활을 영위하던 그녀는 그 상처를 잊기 위해서 서울로도 올라왔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야기를 한 다음 상수는 밖으로 나가 한숨을 쉰 뒤 담뱃불을 지피며 그 죽음은 이미 30년 동안 해를 묵힌 운명이었고 삼촌은 이미 그 때 숨졌던 인물이며 그 상처가 30년의 기나긴 시간을 보낸 뒤 비로소 가슴 한복판을 꿰뚫어 당신을 죽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생각했다.
한편 집안에서 길수 형은 이 사단은 국가 전체에서 조사하고 배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고 고모부는 그냥 덮어두자고 하여 잠시 심한 언쟁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 농사일로 대화 주제가 바뀌는 모습을 끝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그렇게 결국 순이 삼촌의 비극적인 죽음으로도 사회를 변화시키지도 못한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며 끝난다.
4. 여담[편집]
소설의 무대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4] 제주 4.3 위령성지'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문학비는 누워있는 순이 삼촌을 모델로 한 조각상과 함께 소설 구절을 새긴 비석이 실제 희생자가 묻혀있는 '애기무덤'[5][6]을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형태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북촌리 대학살사건' 당시 옴팡밭에 뽑아놓은 무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희생자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2025년 4월 11일, 세계기록유산 '진실을 밝히다: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의 목록에 순이 삼촌이 문학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되어 함께 등재되었다.#
[1] '삼촌'이라는 호칭 때문에 남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인물은 여성이다. 옛 제주 방언에서는 연장자를 성별 상관 없이 '삼춘(삼촌)'이라 부르고 연하자를 '조캐(조카)'라고 불렀다. 해당 문서의 표제어는 표준어인 삼촌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제주에서는 삼춘이라고 발음한다.[2] 제주어에서는 여성도 삼촌이라고 부른다.[3]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서도 고모의 행복을 위해 괜찮은 사람을 찾아다가 데려왔다. 고모부는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건이 끝나고 육지로 복귀한 다음에도 제주로 돌아와 고모를 찾아왔고 결국 제주에 정착하여 가정을 꾸려 오래오래 잘 살았다.[4] 넓은 돌밭을 뜻하는 제주어 지명인데 북촌리 너븐숭이는 주변이 움푹 꺼져있어 옴팡밭이라고도 불린다.[5] 제주도에선 20세기 중반까지 어린 아이가 죽었을 때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어 주면 까마귀가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뜯어먹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애기무덤이라 하여 제대로 봉분을 만들지 않고 아무렇게나 무덤을 만들었다. 물론 지금은 제대로 된 무덤을 만들지 않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사라진 과거의 풍습이다.[6] 위령성지 내에 애기무덤은 약 20여기가 있으며 그 중 적어도 8기는 제주 4.3 사건에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문학비와 같이 있는 무덤은 작게나마 봉분이 조성되어 있지만 주변의 애기무덤은 돌로 경계석을 둘렀을 뿐 봉분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며 그 중 1기는 영화 '폭낭의 아이들' 촬영용으로 조성된 가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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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은이)창비2015-03-25초판출간 1978년




























Sales Point : 11,763

책소개
탄탄한 구성과 서정적인 묘사가 어우러진 중후한 문체로 제주도 수난의 역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특히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왔던 '현기영의 중단편전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아버지'(1975)부터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4.3소설의 최고봉이자 4.3사건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이 삼촌'(1978), 단편소설의 백미인 '마지막 테우리'1994)까지 모두 30편의 중단편 작품(마당극 '일식풀이'와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 포함)을 개정해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첫째권 <순이 삼촌>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대표작 '순이 삼촌'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30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된 진실을 생생히 파헤친 문제작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목차
소드방놀이 · 순이 삼촌 · 도령마루의 까마귀 · 해룡 이야기 · 아내와 개오동 · 꽃샘바람 ·
초혼굿 · 동냥꾼 · 겨울 앞에서 · 아버지
책속에서
첫문장
큰 흉년이던 계축년 3월, 정의고을에 진휼이 실시되어 기민에게 죽사발을 돌리던 날, 같은 시 같은 곳에서 기민창 색리 윤관영이 부형(釜刑)을 받았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하필 여기가 가려울까? 환장하겠네˝
아저씨, 아저씨, 혹시 거기서 새살 돋아나오려는 거 아녜요? 봄 되니까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 트려고 가려울 거예요, 아저씨. 너는 굴다리 밖으로 나오면서 올봄에는 저 아저씨에게 미끈한 종아리가 진짜로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나도 약방에 들러야겠다. 그 의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면 테라마이신을 사 먹으라고 했다. 어서 빨리 새살이 돋아나야지.
너는 약방 앞 쓰레기통 속에다 손수건에 싼 금붕어를 미련 없이 집어넣어버린다.
- 꽃샘바람 중에서 접기
처벌했든지 간에 아무튼 일단 끝나버린 일, 공연히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더구나 저것들이 죄를 뉘우친다고 엎드려대죄하고 있는데……
형 집행권이 잠시 농락당한 것이 서운하다면서운하지만 저 실성한 것들이 그만하면 실컷 화풀이도 됐을 테니오히려 잘된 일이다. 하여튼 죽은 놈만 불쌍하구나.
쯧쯧………사또는 잠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남은 진휼을 마무리짓기 위해 피 묻은 돌무더기와 윤관영의 시신을 치우라고 명했다. 접기
재빛 바다 안으로 날카롭게 먹혀들어간 시커먼 현무암의 갑())저걸 사투리로 ‘코지‘라고 했지. 바닷가 넓은 ‘돌빌레(盤)‘에 높직이 쌓여 있는 저 고동색 해초더미는 ‘듬북눌‘ 이겠고, 겨울 바다.
에 포말처럼 둥둥 떠 있는 저것들은 해녀들의 ‘테왁‘ 이다.
시커먼현무암 바위 틈바구니에 붉게 타는 조짚불, 뭍에 오른 해녀들이 불을 쬐는 저곳을 ‘불턱‘이라고 했지. 나는 잊어먹고 있던 낱말들이심층의식 깊은 데서 하나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남모르는 쾌재를불렀다.
이렇게 추억의 심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 머릿속은 고향의 풍물과 사투리로 그들먹해지는 것이었다. 접기
나이가 원수인 세상에 어른 되려고 하급 받으면 어찌하려고….… 나이가 자라서는 안된다. 나이 먹어서도 안되어.
다니 이 난세에 아이는 자라서는 안된다.
이가 죄요 원수인지라 반드시 총 맞거나 죽창 맞아 죽는 날이 오는법이다.
어떤 아이들은 모자 안에다 철사테를 넣어 순경 모자같이 춤을 높이고 테두리를 팽팽하게 해서 쓰고 있는 게 보인다. 무척 순경이 나 병정이 부러운 아이들이다. 아마 커서 그렇게 되고 싶은 게다.
참 꾀가 약다.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 군경 가족이나 공무원 가족 을 빼고는 모조리 산폭도 가족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이니까. 순원이 도 면서기가 어려우면 그렇게 만들고 싶구나.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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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철 (소설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현기영의 문학은 지방주의나 복고주의적 민족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그려내는 제주도는 제주도만의 토속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서 제주도 민중이 겪어야 했던 역사로서의 제주도이며, 그래서 제주도의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로 우리 민족 전체의, 나아가 전인류가 당면해온 보편적인 문제로도 확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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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을까
- 권인걸 (북 엔터테이너)
저자 및 역자소개
현기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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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과 자연 속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누란』, 산문집 『바다와 술잔』 『젊은 대지를 위하여』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접기
수상 : 2025년 이호철통일로문학상, 2023년 대산문학상, 1999년 한국일보문학상, 1994년 오영수문학상, 1990년 만해문학상, 1986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사월에 부는 바람>,<[큰글자도서] 제주도우다 3>,<[큰글자도서] 제주도우다 2> … 총 7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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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바다 비가 내리면>,<그간 격조했습니다>,<별이가 우리에게 왔을 때>등 총 4,120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1위 (브랜드 지수 289,181점), 국내창작동화 1위 (브랜드 지수 3,203,341점), 청소년 소설 1위 (브랜드 지수 1,480,21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제주의 4월, 그곳에는 ‘순이 삼촌’이 있다
현대사에 빛나는 거장 현기영의 문학인생 40년
탄탄한 구성과 서정적인 묘사가 어우러진 중후한 문체로 제주도 수난의 역사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파고들면서 특히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왔던 현기영의 중단편전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아버지」(1975)부터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4.3소설’의 최고봉이자 ‘4.3사건’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이 삼촌」(1978), 단편소설의 백미인 「마지막 테우리」(1994)까지 모두 30편의 중단편 작품(마당극 「일식풀이」와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 포함)을 개정해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비록 과작이기는 하나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현기영 소설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맛볼 수 있는 이 전집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명편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작가의 강직하고 사려깊은 문학적 삶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인이 초원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제 격정은 아니었다. 그 잔잔한 슬픔은 마치 가슴속에 마르지 않는 찬 샘을 갖고 있는 것과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때때로 무서운 격정에 사로잡혀 영각하는 소처럼 들판을 향해 울부짖기도 했다.
초원의 안개는 여전히 죽은 자들의 슬픈 영혼으로 무리 지어 떠돌고, 임자 없는 백골들이 아직도 어느 굴헝, 어느 굴속에 뒹굴고, 풀 뜯다가 풀 속에 숨어 있는 녹슨 탄피까지 잘못 먹어 장파열로 죽는 소도 있건만, 세상은 초원의 과거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았다. (「마지막 테우리」 25면)
첫째권 『순이 삼촌』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중에서 오랫동안 금기시했던 ‘4ㆍ3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순이 삼촌」, ‘그날’의 처절한 현장을 역사적 현재의 수법으로 절실하게 재현해낸 「도령마루의 까마귀」, ‘4ㆍ3사건’의 비극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적 사건으로 부각시킨 「해룡이야기」 등 초기 3부작이 돋보인다. ‘폭도’에 가담한 아버지를 둔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한 등단작 「아버지」 역시 ‘4.3사건’과 맞닿아 있다. 특히 대표작 「순이 삼촌」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30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된 진실을 생생히 파헤친 문제작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아직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순이 삼촌」 85-86면)
이밖에 지식인의 고뇌와 개인의 무력감을 섬세하게 그린 「아내와 개오동」, 소시민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동냥꾼」 등은 작가의 사회의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개인의 의식세계를 미학적으로 파헤친 「꽃샘바람」 「초혼굿」 「겨울 앞에서」 등에서는 초기 소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부정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한 「소드방놀이」는 탁월한 상상력과 상징성으로 오늘의 세태를 정곡으로 찌른다.
어째서 큰 부정은 죄가 안되고 작은 것만 죄가 되나. 부정이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부정의 탈에서 벗어나는가? 그렇다. 도둑도 좀도둑이 훨씬 도둑답다. 그것이 대담해져서 명화적쯤 되면 이미 도둑의 탈은 벗겨지는 법. 부정이란 것도 좀스럽고 쩨쩨한 구석이 있어야 진짜 부정이지, 쥐가슴 태우며 훔쳐내는 쌀 한톨, 실 한가닥은 부정이지만 환곡미 이백석 횡령은 이미 부정이 아니었다. (…) 그건 이미 부정이 아니라 지체 높은 권세였다. 큰 부정일수록 이렇게 모두 환골하고 탈태하여 나라 경영의 대종을 이루었던 것이다. (「소드방놀이」 27-28면)
둘째권 『아스팔트』에는 ‘4.3소설’에 속하는 「잃어버린 시절」 「아스팔트」 「길」 외에 제주도 출신 영세민의 애환을 그린 「귀환선」, 식민지적 잔재가 온존하는 교육현장을 고발한 「나까무라 씨의 영어」, 마당극 형식을 빌려 선악의 대립을 통해 민중의 각성을 일깨운 「일식풀이」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작가는 여기서 수난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사건의 폭력성과 참상을 고발하기보다는 화해와 용서를 통해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하는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보여준다. 이전의 작품들이 죽은 자를 위한 진혼의 서사였다면 이 세 작품은 살아남은 자를 위한 위로의 서사라 할 만하다. 특히 「아스팔트」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를 엿보이며 마무리되고, 「길」에서도 분노 대신 4?3사건의 상흔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가 애잔하게 묘사된다.
그러니 그것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사람 몫의 죽음이 아니라 남의 죽음에 덤으로 얹힌 무의미한 죽음이었다. 사람 목숨이 그렇게 우연히 처리되다니! 일순 노여움이 불끈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눌러 진정시켰다. 아서라. 휘진의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돼. 평상시 안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것이 난세의 논리가 아닌가. 흔히 시국 탓이라고들 말하지만, 가해자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발광케 만든 한 시대였다. (「길」 122-123면)
셋째권 『마지막 테우리』에는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우리 단편문학 역사에 빛날 명작”(염무웅)이라는 평가를 받은 표제작 「마지막 테우리」를 비롯하여 「거룩한 생애」 「목마른 신들」 「쇠와 살」 「고향」 등 ‘4?3사건’ 관련 작품과 자전적 소설 「위기의 사내」, 당대의 현실을 다룬 「야만의 시간」 등 7편의 소설과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각색한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가 실려 있다. 전통적인 소설 문법의 형식을 벗어나 파격적인 형식 실험을 보여준 「쇠와 살」에서 작가는 자못 격정적인 어조로 “개인을 발광케 만든” 야만의 시대를 절규하며 비극의 현장을 들려준다.
아,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전대미문이고 미증유의 대참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그렇게 무참히 파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짐승도 그런 떼죽음은 없다. 가해자들은 ‘사냥’이라고 했다. 그것은 ‘빨갱이 사냥’이라고 했다.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때 죽은 자는 모두 빨갱이다. 빨갱이가 아니면 왜 죽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떼주검을 휘발유 뿌려 불태울 때 그 냄새가 돼지 타는 냄새와 흡사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그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자기가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새삼 확인했는가. (「쇠와 살」 177면)
작가 현기영의 작품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4.3사건’을 소설화한 것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4?3’ 이외의 이야기로, 초기 소설에서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회의,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인간의 황폐한 내면 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닉 등에 골몰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교직생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자신을 모델로 한 자기고백적 소설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매는 뼈를 피해 살집만 골라 정확히 타격했다. 그의 육체는 활활 타는 불길 속에 내던져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이 고통스러운 육체를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정신을 배반하는 육체, 제 몸이 이렇게 저주스러울 줄이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까무러치기라도 했으면…… (…) 매질이 끝났을 때 그는 교사도 작가도 아닌, 세 아이의 아버지도 한 여자의 남편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팬티에 겁똥을 깔긴 한마리의 사냥감 짐승이었다. (「위기의 사내」 223면)
그럼에도 현기영은 명실공히 제주와 ‘4.3문학’을 대변하는 작가로서 자리매김되었다. 이것은 4.3문학 전반을 놓고 볼 때 현기영이 가장 독보적이며, 작가 자신에게는 ‘4.3사건’이 문학적 고갱이이자 기반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4.3사건’은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謫客)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國馬)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해룡 이야기」 159면)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제주도민의 트라우마이자 작가의 문학인생을 완성하는 삶과 역사의 상징인 것이다. 임규찬의 평가처럼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꾼 사려깊은 문학적 삶”(「해설」)을 견지해온 작가 현기영은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소설을 살아온 것’이다.
백조일손, 그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무렴, 4.3 조상은 그렇게 모셔야지. 내 조상 네 조상 구별 말고 섬 백성이 모두 한 자손이 되어 모셔야 옳았다. 4.3을 모르고 무슨 사업을 하고 무슨 학문을 하고 무슨 인생을 논하나. 그 모두 다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나같이 천한 심방놈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벌이는 원혼굿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한날한시에 죽은 원혼을 진혼하려면 온 마을 사람들이, 아니 온 섬 백성이 한 자손 되어 한날한시에 합동으로 공개적으로 큰굿을 벌여야 옳다. 바람길 따라 구름길 따라 무리 지어 흐르는 수만의 군병들, 전대미문의 가장 억울한 죽음이기에 가장 영험 있는 조상신으로서 우리를 보우해줄 것이다. 어허, 백조일손, 얼마나 좋은 말인가. 덩지덩지 덩덩 덩더꿍. (「목마른 신들」 99면)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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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나는 참 잘 보냈는데 옆지기는 3일 내내 출근해서 마음이 무겁기는 했다.
4월에는 총 10권을 읽었다. 늘 8~9권 정도인데 시집이 한 권 포함되어서 10권이 된 것 같다. 직장인이여서 주말에 대부분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사기세가
사기열전 1, 2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학문의 권장
카프 시인집
코리아 체스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행복의 약속
토지 15











본기, 세가, 열전까지 읽으며 사기를 마무리했다. 이 중 사기열전 2권은 5월 1일에 완독했지만 우겨서 4월달 완독으로 낑겨넣는다^^;
중국 고대 전한 시기까지를 대충 끝내고 이제 뒷 역사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밀린 책들이 많아서 이번 달은 어찌될 지 모르겠다. 읽을 책이 중간에 계속 생기고 있는지라.
여성주의 함께 읽기 책이었던 <행복의 약속>은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고마운 책이었다. 앞으로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특히 좋았던 책은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외교,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함께 읽으면서 더 도움이 되었다. <토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책이고.
<순이삼촌>은 4.3에 맞춰 표제작만 읽어서 완독 리스트에 넣기는 애매해서 뺐다.



그리고 어제 커피와 함께 두 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번 달 여성주의 함께읽기 책과 서재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책이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엔탈리즘>과 여러 가지로 비교해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도.
거리의화가 2023-05-02 공감 (28) 댓글 (16)


제주 4.3 에 맞춰 읽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하루 늦춰서 표제작만 읽었다. 「순이삼촌」의 주인공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가 사고를 만났다.
재독하면 할수록 4.3을 다룬 문학 작품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 피해를 겪었고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안고 사는 분들이 있다. 매년 이 날이 찾아오면 사라져버린 이들의 많은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를 한다. 한 장소에 무더기로 여기저기 널린 시신을 보게 되는 것은 어떤 마음이겠는가.
작년에는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이라도 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대타를 내려보내는 대통령을 보면서 씁쓸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당의 최고위원의 발언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국가라는 그늘 아래 국민으로 살지만 이런 저런 말 듣기 싫으면 국민이 떠나라는 건가?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40411351864094
책에서는 수용소 단어가 잠시 언급되지만 얼마 전 역사비평 142호에서 다룬 특집 기사를 읽으며 제주 4.3 때도 수용소가 꽤 많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주4·3 초기부터 군경은 수용소를 설치해 이용했다. 1948년 4월 18일 군정장관 딘(William F. Dean) 소장이 제59군정중대 민정관에게 내린 지시중에는 “경비대의 작전에 의해 붙잡힌 포로들은 경찰에게 인계하지 말라. 그들을 경비대가 마련하고 보호하는 막사에 수용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본토로 후송하도록 조치하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 P41
한국 현대사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수용소라면 한국전쟁 때 운영된 거제 수용소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서도 엄연히 수용소가 운영되었음을 여러 구술 자료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당시에 제주도 초토화 작전 지시가 내려진다. 제주도민들을 폭도들로 간주하면서 진압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초토화작전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시 경무부 공안국 공안과장으로 있던 홍순봉이 작성한 「4·3 폭동사건 이후의 제주도 치안 대책안」이었다. 홍순봉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조병옥 경무부장의 지시에 따라 ‘제주도 치안대책’을 입안하여 상부에 올렸고, 그것이 경무부 내 전체 국과장회의에서 통과되었다. - P42
여기 홍순봉이라는 인물을 주목하자. 그는 1935년 1월부터 만주국 관료로 재직하면서 (짐작하겠지만) 반만 항일세력에 대한 소탕 작전을 지휘했던 이다. 비단 그뿐이겠는가. 일제 시기 순경 등으로 독립군을 고발하고 때려잡던 관료들 중 대부분이 반공의 투사로 둔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5.10 남한만의 총선거 이후 수용소 증설의 필요성은 증대되었는데 짐작하겠지만 포로들의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용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첫 단계는 높은 석벽을 쌓아 마을을 요새화하고 지역 민병대를 훈련시켜 전략촌을 세우는 것이었다. 경비대가 주둔지를 떠나서 한라산 주위의 공격전진기지로 이동해 갔기 때문에 해안 지역의 경비는 경찰이 맡고 있었다. 두 번째 단계
에서는 경비대가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지원을 받아 섬 내륙을 완전히 휩쓸었다. 정부군(경비대―인용자)이 50야드씩 간격을 두고 산기슭을 올라갈 때, 게릴라들이 집결하는 지역을 찾기 위해 정찰기가 이용되었다. 산기슭(중산간―인용자)의 마을은 불태웠고 그곳의 주민은 강제로 해안의 수용소로 이주시켰다.작전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수용소 내에 게릴라 용의자를 찾아내기 위한 심사센터를 설치했다. - P43~44

"잘 들으라요. 우리레 지금 작전 수행 둥에 있소. 여러분의 집안은 작전명령에 따라 소각되는 거이오. 우리의 다음 임무는 여러분을 모두 제주읍에 소개하는 거니끼니 소개 둥 만약 질서를 안 지키는 자가 있으문 아까와 같이 가차 없이 총살할 거이니 명심하라우요."
"나도 따라가 봐수다만 거참, 이상헌 일도 다 이십디다. 그 사이 눈이 나련 보리밭이 사뭇 해영허게(하얗게) 눈이 덮였는디 말이우다, 참 이상허게시리 순이 삼춘 누운 자리만 눈이 녹안 있지 않애여 마씸"
제주도 현지 사투리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작품의 백미다. 재독하니 안 보였던 것이 보였다.
거리의화가 2023-04-05 공감 (28) 댓글 (6)

<순이삼촌>에는 10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순이삼촌', '도령 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아버지'의 네 편이 모두 제주 4.3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 대해 쓰엿기 때문이다. 작가의 4.3 등단작인 '아버지'는 4.3 사건을 겪은 어린 소년의 개인적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을 아이들의 머리 역할을 하던 소년이 아버지가 산으로 올라간 후, 한없이 스스로 움츠러들어가는 심리와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4.3 사건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순이삼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인 1979년은 가해자였던 육지의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고 그 일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진 상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은 입밖에 내어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살아있는 권력들이 무서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 사건은 공식 역사에서 오랫동안 '공산폭동'으로 왜곡되었다.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고 긴 세월을 이어오던 섬 공동체를 일거에 파괴시킨 4.3사건의 진실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은폐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건 이후 제주도는 '붉은 섬'으로 낙인찍혀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4.3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떼죽음과 행방불명, 되새기고 싶지 않은 핍박과 소외, 그로부터 입게 된 크나큰 심리적 상처였다."(김영범'기억투쟁으로서의 4.3문화운동 서설).(임규찬, 해설 337면)
아, 떼죽음 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 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 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순이삼촌, 85면)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 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순이삼촌,86면)
현기영의 4.3 사건 관련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내게는 단순히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고, 어떤 기록물보다 더 설득력을 발휘하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4.3 사건의 피해자들은 무고하게 죽은 3 만여명의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의 기억 속에 지옥의 모습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이 피해자들 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역시 힘없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었다는 것에 더 분노한다. 특히 부녀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악행은 그들이 진정 짐승으로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짐승도 제 울타리에 들어온 동족들에게는 이런 행동을 일삼지 않는거 아니었나?
표제작인 '순이삼촌'의 주인공인 순이삼촌은 산으로 피신한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 할머니에게 맡겨 놓은 오이리를 찾아 잠시 산에서 내려온 날 그 사단(소개작전)이 난 것이다. 그날 밤 소개(제주방언은 소까이,疏開)작전이 전개되면서 반동분자로 분류가 되었고 난리통에 오누이를 잃었으며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총살하기 전 먼저 기절하는 바람에 죽은 사람들 밑에 깔려있다 간신히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이후의 삶은 산 것이 아니었고 유복자 딸 때문에 산 세월이었으며 결벽증,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는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이였다.
그들은 또 여맹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女盟)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순이 삼촌도 그런 식으로 당했다.
지서에 붙들어다놓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닦달 끝에 옷을 벗겼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간밤에 남편이 왔다 갔는지 알아 본다는 핑계였는데, 남편이 왔다 갔으면 분명 그 짓을 했을 것이고, 아직 거기엔 분명 그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날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순이 삼촌이 남편의 행방을 안 댄다고 빼앗긴 도리깨로 머리가 깨어지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순이삼촌, 79면)
도피자 가족들은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취조를 받고 닷새만에 풀려나왔는데 순이 삼촌도 그중에 끼여 있었다. 그 닷새 동안 할머니 심부름으로 길수 형과 내가 번갈아가며 차좁쌀 주멱밥을 매일 한 덩어리씩 차입해주었다. 마지막 날엔 내가 주먹밥을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풀려 나오는 순이 삼촌을 만났는데 그 몰골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비녀가 빠져나가 쪽이 풀리고 진흙으로 뒤발한 검정 몸빼에다 발은 맨발이었는데, 길가 돌담을 짚고 간신히 발짝을 떼며 허위허위 걸어오고 있었다.(순이삼촌,89면)
소까이날에 피해 입은 것은 대부분 아녀자나 노인들이었는데 중호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정네는 미리 피하고 없었다. 단지 젊다는 이유 때문에 폭도로 몰려 공연히 죽기 쉬운 그들인지라 벌써 한 두달 전에 산과 들로 도망가 굴속에서 피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호 아버지도 소까이 보름 전 어느 날 마루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마당가의 수리대숲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면서 저편 고샅길로 올라오는 토벌군들 한떼가 보이자 기겁해 일어나 뒷담 넘어 도망쳤던 것이다.(해룡 이야기, 151면)
순이 삼촌뿐만 아니라 '도령마루의 까마귀'에서 귀리집, '해룡 이야기'에 등장하는 중호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서의 10살짜리 소년과 같은 사람들이 지금 제주도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무섭던 소까이(疏開). 온 섬을 뺑 돌아가며 중산간 부락이란 부락은 죄다 불태워 열흘이 넘도록 섬의 밤하늘을 훤히 밝혀놓던 소까이. 통틀어 이백도 안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삼만이 죽었다. 대부분 육지서 들어온 토벌군들의 혈기는 그렇게 철철 넘쳐 흘렀다. 특히 서북군은 섬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힐 만큼 혈기방장하였고 군화 뒤축으로 짓뭉개어 이 섬을 지도상에서 아주 없애버릴 만큼 냉혹했다.(해룡 이야기, 149면)
'순이삼촌'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제주 4.3사건은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제주사람들의 억눌린 울음으로만 구전되던 4.3사건을 기록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소설이 바로 <순이삼촌>이고,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공식화된 문헌으로서도 최초였다고 한다. 역사적 진실 복원의 첫 시발점이 된 <순이삼촌>은 실제 역사가 하지 못할 대체 역사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인 제주 '북촌 너븐숭이'는 4.3 유적지 가운데 모슬포 대정의 '백조일손지묘'와 함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가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음에도 작가가 굳이 북촌을 선택한 것은 한날 한시에 양민 사백여명이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집단 학살의 상징성 때문이다.(임규찬, 해설 340)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사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 뒤를 따랐다. 아, 한날 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가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순이삼촌,60면)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제주도에 가서 제대로 즐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
차를 타고 제주도 중산간을 가면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면서 저기 능선 어딘가에 있던 마을이 다 불타 없어지지 않았을까 동굴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죽음으로 남았을가, 대나무 숲이 있는 호젓한 마을을 보면 지금은 이리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 아래 어딘가에 총 맞아 죽은 시신이 묻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할 것이고, 오름에 오르면서는 읍내에 홀로 떨어진 아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 도령마루를 오르던 그 이름도 생소한 귀리집(귀리댁이 아닌)을 생각할 것이고, '노형, 서호, 대정, 북촌, 대정 모슬포, 일주도로' 라는 마을 이름이나 도로표지판을 보면 트라우마처럼 소설의 내용들이 오래오래 자동재생될 거 같아 몹시 힘들지도 모르겠단 그런 생각.
그래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한동안 다시 책을 펼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기사를 읽거나 지식 검색으로 제주 4.3 사건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그 동안 검색으로 알아왔던 지식으로 내가 제주 4.3 사건을 제대로 알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들린듯한 필력으로 제주 4.3사건의 작품을 줄줄이 써낸 현기영 작가에게 정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1970년대 말 필화사건으로 거의 일년 반 동안 펜대를 꺾은 채 술로 허송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나서 어서 일어나라고 무섭게 야단쳤던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바로 '순이삼촌', 그제야 작가의 분신으로서 그녀가 항상 내면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임규찬,해설 348면)
은하수 2023-02-09 공감 (3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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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마다 들어있는 감정의 깊이가 깊어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蘭芳桂馥 2017-05-15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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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한 소설을 읽고야 말았다. 학창시절 재일동포와 문학이라는 강의를 받은적이 있다. 교수님이 왜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가 많은가를 설명하며 추천해줬던 책 중 하나가 순이삼촌이었다. 한정판이 출간되었다고 알림이 뜨지 않았다면 계속 잊고 지냈을텐데..!
질풍 2020-08-02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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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읽기를 미루던 책인데 드디어 읽었습니다.
역사 공부도 되고 좋습니다.
너무 무거울까봐 안 읽고 계신 분들에게권하고 싶습니다.
멋진 책 2023-05-21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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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아라 2018-07-1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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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없이 그저 원칙을 따른 군인들에 의한 제주 민중 학살사건. 독재정권의 죄악의 역사. 구입한 뒤 읽기를 몇 해동안 망설였으나 읽어냈다. 쓰라리다. 오늘따라 제주 4.3을 추념하는 동백꽃 뱃지가 빛난다.
책읽는직장인 2020-04-2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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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순이삼촌
그 옴팜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 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69/270
현기영(玄基榮, 1941~ )의 단편소설집 <순이 삼촌>에는 10여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 이들은 모두 제주 4.3사건과 연결고리가 있으며, 이 사건이 모두에게 감히 언급되어서는 안 될 '금기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 작품 속 화자들은 대체로 4.3사건을 전해 들은 간접경험자이거나 어린 시절 경험한 이들이다. 그렇지만, 직접 증언보다 흐릿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4.3사건이 생존자에게 남긴 상처를 독자들은 더 실감하게 된다.
당신이 그전서부터 파출소를 피해 다니는 이상한 기피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일단 씌어진 누명을 벗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신은 1949년에 있었던 마을 소각 때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어, 불에 놀란 사람 부지깽이만 봐도 놀란다는 격으로 군인이나 순경을 먼빛으로만 봐도 질겁하고 지레 피하던 신경 증세가 진작부터 있어온 터였다. 하여간 당신은 그 콩두말 사건으로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었던 모양으로 절간에서 두어달 정양까지 해야 했다. 그때부터 당신은 심한 결벽증에 사로잡혀 혹시 누가 뒤에서 흉보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붙잡혀 늘 전전긍긍하게 되고, 나중엔 환청 증세까지 겹쳐 하지 않은 말을 들었노라고 따지고 들곤 했다. 그리고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올 무렵에는 상군해녀이던 당신이 갑자기 물이 무서워서 물질마저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43/270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 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9/270
그 악몽의 현장, 그 가위눌림의 세월, 그게 그의 고향이었다. 그러니 고향은 한마디로 잊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의 전부였고, 행복이나 출세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중호는 고향의 모든 것을 미워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6/270
제주 4.3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 '빨갱이'가 된다는 사실은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이들에게 또다른 죽음의 공포였을 것이다. 이념과 사상을 채 알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초토화 작전과 무장대에 의해 학살을 당한 사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은 결국 '이데올로기'에 연유한다. <아내와 개오동>에서 묘사된 '개오동 나무'는 이데올로기의 은유로 표현된다. 온 집안을 가득 메운 오동나무와 이에 빌붙어 기생하는 벌레들. 온 나라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상황으로 밀어넣고 단물을 빨어먹는 집단의 은유 속에서 이를 쳐내버리고 싶어하는 화자의 마음은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의 공통된 억눌린 마음이 아닐까.
이념과 명분은 오직 그들만의 독점물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아내와 개오동>, p139/270
하여튼 나무는 집의 모든 것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거의 온 마당이 이 나무 그늘 밑에 들어갔다. 장독대를 뒤덮고 추녀 끝을 찌르고 역한 냄새 나는 가지 끝을 석규 방으로 빼짓이 들이밀기도 했다. 화단에도 그늘이 들어 분꽃도 백일홍도 맨드라미도 미처 끛을 피우지 못한 채 노랗게 이울어졌다 게다가 개털까지 날아들어 곰팡이처럼 화단을 허옇게 덮었다. 아내는 죽은 화단을 모조리 파헤쳐, 따낸 벌레 붙은 오동잎을 파묻었다.... 이제 와서 벌레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나무를 밑동에서 싺둑 베어 내버리는 것뿐이었다. _ 현기영, <순이 삼촌> <아내와 개오동>, p125/270
2022년 제주 4.3 사건 74주년을 맞아 <순이 삼촌>을 다시 꺼내 읽었다. '삼촌' 이라는 어감에 '순이 삼촌'을 언뜻 남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순이 삼촌은 여자다. 제주지역에서는 삼촌을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하기에 낯설게 느껴지는 '순이 삼촌'이라는 단어. 그리고, 작은 단어 하나에서 느껴지는 제주도민과 외지인 사이의 거리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선 이데올로기와 1948년 5.10 총선거를 전후한 분단 체제가 가져온 제주의 비극.
다음부터는 모일 때마다 각자 사례를 한가지씩 취재해 가지고 나오도록 하면 어떨까? 각자 가슴속에 묵혀둔 피해의식을 떳떳한 증오로 바꾸기 위해서, 그리나 증오가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_ 현기영, <순이 삼촌> <해룡 이야기>, p119/270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희생자와 이들이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때문에, 사건의 남긴 집단의 기억은 잘 전달되지만, 사건의 의미는 온전히 독자들에게 넘겨진다. <해룡 이야기>에서처럼 4.3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사건을 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복이 아닌 용서를 위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서청이 와 부모형제들 니북에 놔둔 채 월남해왔가서? 하도 뻘갱이 등쌀에 못 니겨서 삼팔선을 넘은 거이야. 우린 뻘갱이라문 무조건 이를 갈았디. 서청의 존재 이유는 앳세 반공이 아니가서. 우리레 무데기로 엘에스티(LST)타구 입도한 건 남로당 청지인 이 섬에 반공전선을 구축하재는 목적이었는디.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59/270
뒤늦게 초토작전을 반성하게 된 전투사령부는 선무공작을 펴서 한라산 밑 동굴에 숨은 도피자들을 상당수 귀순시켰는데 현모 형도 그중에 끼여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6.25가 터져 해병대 모병이 있자 이 귀순자들은 너도나도 입대를 자원했다. 그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멋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눌러 있다간 언제 개죽음당할지도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고향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묭맹을 떨쳤던 초창기 해병대는 이렇게 이 섬 출신 청년 삼만명을 주축으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따지고 보면 결국 반대급부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_ 현기영, <순이 삼촌> <순이 삼촌>, p6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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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4-03 공감(51) 댓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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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처음 만나는 제주 4.3사건의 진실
<순이삼촌>에는 10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순이삼촌', '도령 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아버지'의 네 편이 모두 제주 4.3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에 대해 쓰엿기 때문이다. 작가의 4.3 등단작인 '아버지'는 4.3 사건을 겪은 어린 소년의 개인적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을 아이들의 머리 역할을 하던 소년이 아버지가 산으로 올라간 후, 한없이 스스로 움츠러들어가는 심리와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4.3 사건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순이삼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인 1979년은 가해자였던 육지의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고 그 일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떠한 진 상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은 입밖에 내어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살아있는 권력들이 무서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4.3 사건은 공식 역사에서 오랫동안 '공산폭동'으로 왜곡되었다.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고 긴 세월을 이어오던 섬 공동체를 일거에 파괴시킨 4.3사건의 진실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은폐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건 이후 제주도는 '붉은 섬'으로 낙인찍혀 레드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4.3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떼죽음과 행방불명, 되새기고 싶지 않은 핍박과 소외, 그로부터 입게 된 크나큰 심리적 상처였다."(김영범'기억투쟁으로서의 4.3문화운동 서설).(임규찬, 해설 337면)
아, 떼죽음 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 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 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순이삼촌, 85면)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 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순이삼촌,86면)
현기영의 4.3 사건 관련 작품들은 소설이지만 내게는 단순히 소설로만 읽히지 않았고, 어떤 기록물보다 더 설득력을 발휘하면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4.3 사건의 피해자들은 무고하게 죽은 3 만여명의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의 기억 속에 지옥의 모습으로 남았겠지만, 나는 이 피해자들 중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역시 힘없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었다는 것에 더 분노한다. 특히 부녀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악행은 그들이 진정 짐승으로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짐승도 제 울타리에 들어온 동족들에게는 이런 행동을 일삼지 않는거 아니었나?
표제작인 '순이삼촌'의 주인공인 순이삼촌은 산으로 피신한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 할머니에게 맡겨 놓은 오이리를 찾아 잠시 산에서 내려온 날 그 사단(소개작전)이 난 것이다. 그날 밤 소개(제주방언은 소까이,疏開)작전이 전개되면서 반동분자로 분류가 되었고 난리통에 오누이를 잃었으며 마을 사람들을 집단으로 총살하기 전 먼저 기절하는 바람에 죽은 사람들 밑에 깔려있다 간신히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이후의 삶은 산 것이 아니었고 유복자 딸 때문에 산 세월이었으며 결벽증,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는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이였다.
그들은 또 여맹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女盟)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순이 삼촌도 그런 식으로 당했다.
지서에 붙들어다놓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닦달 끝에 옷을 벗겼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간밤에 남편이 왔다 갔는지 알아 본다는 핑계였는데, 남편이 왔다 갔으면 분명 그 짓을 했을 것이고, 아직 거기엔 분명 그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날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순이 삼촌이 남편의 행방을 안 댄다고 빼앗긴 도리깨로 머리가 깨어지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순이삼촌, 79면)
도피자 가족들은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취조를 받고 닷새만에 풀려나왔는데 순이 삼촌도 그중에 끼여 있었다. 그 닷새 동안 할머니 심부름으로 길수 형과 내가 번갈아가며 차좁쌀 주멱밥을 매일 한 덩어리씩 차입해주었다. 마지막 날엔 내가 주먹밥을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풀려 나오는 순이 삼촌을 만났는데 그 몰골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비녀가 빠져나가 쪽이 풀리고 진흙으로 뒤발한 검정 몸빼에다 발은 맨발이었는데, 길가 돌담을 짚고 간신히 발짝을 떼며 허위허위 걸어오고 있었다.(순이삼촌,89면)
소까이날에 피해 입은 것은 대부분 아녀자나 노인들이었는데 중호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정네는 미리 피하고 없었다. 단지 젊다는 이유 때문에 폭도로 몰려 공연히 죽기 쉬운 그들인지라 벌써 한 두달 전에 산과 들로 도망가 굴속에서 피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호 아버지도 소까이 보름 전 어느 날 마루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마당가의 수리대숲이 바람에 한쪽으로 쏠리면서 저편 고샅길로 올라오는 토벌군들 한떼가 보이자 기겁해 일어나 뒷담 넘어 도망쳤던 것이다.(해룡 이야기, 151면)
순이 삼촌뿐만 아니라 '도령마루의 까마귀'에서 귀리집, '해룡 이야기'에 등장하는 중호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서의 10살짜리 소년과 같은 사람들이 지금 제주도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무섭던 소까이(疏開). 온 섬을 뺑 돌아가며 중산간 부락이란 부락은 죄다 불태워 열흘이 넘도록 섬의 밤하늘을 훤히 밝혀놓던 소까이. 통틀어 이백도 안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삼만이 죽었다. 대부분 육지서 들어온 토벌군들의 혈기는 그렇게 철철 넘쳐 흘렀다. 특히 서북군은 섬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힐 만큼 혈기방장하였고 군화 뒤축으로 짓뭉개어 이 섬을 지도상에서 아주 없애버릴 만큼 냉혹했다.(해룡 이야기, 149면)
'순이삼촌'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제주 4.3사건은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제주사람들의 억눌린 울음으로만 구전되던 4.3사건을 기록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소설이 바로 <순이삼촌>이고,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공식화된 문헌으로서도 최초였다고 한다. 역사적 진실 복원의 첫 시발점이 된 <순이삼촌>은 실제 역사가 하지 못할 대체 역사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인 제주 '북촌 너븐숭이'는 4.3 유적지 가운데 모슬포 대정의 '백조일손지묘'와 함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의 고향인 노형리가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음에도 작가가 굳이 북촌을 선택한 것은 한날 한시에 양민 사백여명이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집단 학살의 상징성 때문이다.(임규찬, 해설 340)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사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 뒤를 따랐다. 아, 한날 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가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순이삼촌,60면)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제주도에 가서 제대로 즐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
차를 타고 제주도 중산간을 가면 이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면서 저기 능선 어딘가에 있던 마을이 다 불타 없어지지 않았을까 동굴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죽음으로 남았을가, 대나무 숲이 있는 호젓한 마을을 보면 지금은 이리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 아래 어딘가에 총 맞아 죽은 시신이 묻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할 것이고, 오름에 오르면서는 읍내에 홀로 떨어진 아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 도령마루를 오르던 그 이름도 생소한 귀리집(귀리댁이 아닌)을 생각할 것이고, '노형, 서호, 대정, 북촌, 대정 모슬포, 일주도로' 라는 마을 이름이나 도로표지판을 보면 트라우마처럼 소설의 내용들이 오래오래 자동재생될 거 같아 몹시 힘들지도 모르겠단 그런 생각.
그래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한동안 다시 책을 펼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기사를 읽거나 지식 검색으로 제주 4.3 사건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 그 동안 검색으로 알아왔던 지식으로 내가 제주 4.3 사건을 제대로 알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들린듯한 필력으로 제주 4.3사건의 작품을 줄줄이 써낸 현기영 작가에게 정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1970년대 말 필화사건으로 거의 일년 반 동안 펜대를 꺾은 채 술로 허송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나서 어서 일어나라고 무섭게 야단쳤던 꿈이 너무도 생생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바로 '순이삼촌', 그제야 작가의 분신으로서 그녀가 항상 내면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임규찬,해설 3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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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2-09 공감(3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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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우리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사건.
'제주 4.3사건을 아시나요?'
현대사에서 '제주 4.3 사건'을 입에 담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그래서였다고 스스로를 변명해봅니다만 이제서야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인것 같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고도 불리우는 4.3사건이 이 책 '순이삼촌'을 통해 극적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네이버 사전의 요약에 의하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의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즉, 하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무려 7년에 걸쳐 벌어진 일인데요. 희생자 대부분이 양민이라는 것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고문과 잔혹한 학대를 가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중앙정부의 병력에 의해서죠.
당시 제주도민의 전체 인구가 30여만명인데 이때 학살당한 희생자가 3만명에서 6만명에까지 이르른다고 합니다. 한 지역의 인구 10~20%를 절멸시킨 사건이 바로 제주 4.3사건이죠. 제주도민들은 좌익분자, 빨갱이, 폭도로 규정되어 학살당해야 했으며 부모형제, 친지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었습니다. 더우기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그 사건들을 철저히 금기시했어야 했습니다. 출신 고향도 숨겨야 했고 사투리도 버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유일하게 세상에 향해 던진 텍스트가 바로 이 책 '순이삼촌'이지요. 그것도 사건이 종료된지 무려 25년이 지난 1979년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자 현기영 작가는 바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 떳떳하지 못한 국가가 감추어야 할 사건을 세상에 알린 죄로 말이죠.
이 책 '순이삼촌'은 현기영 작가의 중단편 모읍집입니다. 제주 4.3사건을 겪으며 지옥같은 그곳을 겨우 살아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살펴보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공감을 가져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 3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44년의 인생을 지나면서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숙연해졌던 건 처음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백해야겠습니다. 4.3사건을 알게 된 건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통해서입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가까이 4.3사건을 마주하고 분노하고 슬픔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지요.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순이삼촌 #제주43사건 #현기영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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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 2018-04-25 공감(17)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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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6.25전쟁이 휴전되어 끝난지도 70년이다.근래에 시대가 변해서 옛날의 희생적인 민초들이였던 시민상은 없다.그런데도 우리사회 곳곳에는 전근대적이고 억압하에 사는 약자들이 있다.6.25희생자나 일본의 식민치하청산.,독재정부의 언론탄압등등..
특히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회고한 기억들에는 내용을 읽어보면 가난도 가난이지만 근본적인 힘없는 서민이라고 사람대우못받는 가난한 서민들이 꽤 있었다. 현대에도 이런 이들이 없는는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신생정부는 이념을 쫓느라 이런 약자들을 돌보지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공의 권력은 민초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4.3사건의 주발단은 정부의 빨치산강경진압인데 억울한 제주시민들이 있었다는게 문제다.
더러 수십년뒤 보상받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은 드물고 고통은 홀로 희생자 자신이 몫인데도 어두운 그늘에 사는 인간군상들이 지금도 있다...
가족의 비극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인공은 지금도 이런 이들은 존재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대신하는 듯하다.5.18광주사건같이 ...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고사하고 이건 모든 주변인뿐만 아니라 주위까지 고통의 굴레에 집어넣는다. 자신의 생애만 파탄나는 게 아니다.
대개 인간이 무너지면 그런 타성적이고 무책임한 생활에 젖어 가족을 내팽개치고 세상을 원망하는 일이 흔하다.그리고 가족은 살기 힘겨워 불화의 연속이다.개인의 자아가 어떻게 깨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4.3사건의 무대는 옛 먼날의 이야기같으나 현재에도 그런 불행한 이들이 있다.
순이삼촌처럼 어두운 유년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원망하고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 소설이 뚜렷이 보여준다 . 이제 이런 어둠을 청산할 때이다.
주인공은 이런 세태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한다.이런 억울한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근래에 눈에 띈다.오랫동안 외면하던 역사의 문제를 이제 사회가 나서서 치료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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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정 2020-04-01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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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 제주 4.3사건 학살 권력부패
학창시절에 '제주 4,3사건'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알게 된 '제주 4,3 사건'은 물음표로 남았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일까? 작품 속으로 몰입되어갈수록 많이 아프게 그려지는 우리의 역사를 보게 된다. 역사적 사건이라 그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대한 아픔이 커진다. 관광지였던 제주가 이제는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는 역사적인 장소와 시간이 되어준 소설이다. 더 이상 제주의 밭은 아름다움이 아닌 아픔의 장소로 기억되게 한 이야기이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간 이 나라는 이념의 대립속에서 혼재한다. 죽창에 찔려 죽었어야 할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 을의 노래>와 <사람아, 아 사람아>소설이 떠오른다. <작별하지 않는다>한강의 소설도 제주 4.3사건을 다룬다.이 소설들이 소환하는 역사의 끝자락을 덮을지 펼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역사에서 흩어져버리지 않도록 이 작품을 집필할 수 밖에 없었던 강한 의지들이 전해지는 소설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역사를 제대로 직시해야한다.
반복되지 않을 역사가 되도록 펼쳐야 할 이야기가 된다. 4월의 시간에 쓰러져버린 이들이 있었음을, 제주밭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하는 작품이다. 위화 소설 <원청>에서도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인물들이 전하는 하나의 바램들이 있었는데 이 작품도 다르지 않았다. 시대만 달랐을 뿐 결국 모두가 원하는 건 크지 않은 바램들이다. 그 바램이 부서진 사건들을 다루는 소설들이다. 크지 않은 그 소원들이 비참하게 쓰러지는 현장을 소설을 통해서 현장의 긴박함을 느끼게 한다. 슬픈 이야기. 4월의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금기시한 4.3사건을 작가에 의해 수면위로 올린 최초의 소설이다. 학살사건에 기적같이 살아남은 순이삼촌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환청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삶으로 그 시간의 그 공간을 원형으로 맴도는 잔혹한 학살사건에 더한 공포와 살았던 인물이다. 이러한 사건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전해준다.
은폐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었던 이유를 펼쳐놓는 소설이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부정부패를 다룬 <소드방놀이>의 문장은 이 시대의 사건과 판결이 떠오르게 한다. 웃음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웃는 것인지, 비탄인지는 이 시대의 우리의 몫이 된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변한것이 없다. 원형으로 돌고 있는 회귀 본능의 부조리의 시작점들이다. 우리가 놓친 것들이 더욱 부각되는 작품이다. 헛웃음만 즐비해지는 4월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모범택시 2>드라마에 열광하고 <더 글로리>드라마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국민들이다. 이들의 가슴이 무엇에 분노하였는지 손끝을 바라보게 한다. 정의롭지 못한 한국사회의 부정부패와 권력집단의 병폐를 펼쳤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뜨거웠다. 너무 높은 온도에 온몸이 녹아내리게 한 순이삼촌이다. 이 인물이 살아간 그 시간은 공포로 가득해진다. 그들의 악행이 휘발되지 않도록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끌어놓는 역사적 이야기이다. 순이삼촌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누가 뭐래도 그건 면백한 죄악이었다...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
어째서 큰 부정은 죄가 안되고 작은 것만 죄가 되나...쌀 한 톨, 실 한 가닥은 부정이지만 환곡미 이백걱 횡령은 이미 부정이 아니었다_ 소드방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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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3-04-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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