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1일 APEC 정상회의 장소인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APEC 정상회의 장소인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1일 폐막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빅테크들의 국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가 구체화했다. AI 데이터센터는 수만~수십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동시에 연산하는 인프라로, 고성능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이다. 그간 한국은 GPU 부족 문제와 대지 수급 등의 문제로 빅테크 데이터센터를 유치하지 못했다. 하지만 AI 반도체 최강자 엔비디아와 ‘AI 동맹’을 맺으며 GPU 26만장을 공급받았고,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AI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면서 국내에도 AI 데이터센터가 대거 구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를 접견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를 접견하고 있다. /대통령실

◇한국, 데이터센터 허브로

세계 1위 클라우드 업체인 AWS는 2031년까지 한국 내 AI 기술 강화를 위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AWS는 지난 6월 SK그룹과 함께 100MW(메가와트) 규모 AI 특화 데이터센터인 ‘울산 AI 존’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는 약 4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다. 이에 더해 AWS는 인천·경기 일대에 AI 데이터센터 2곳을 신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AWS는 지난해부터 인천 서구 가좌동 인천지방산업단지 일대에 100MW 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경기 고양시 사리현동 일대에도 80MW 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실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이번 APEC에서 AI 시대에 필수적인 첨단 GPU 26만장을 한국 정부와 기업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엔비디아 GPU(4만5000장)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정부가 확보한 GPU 5만장은 한국형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에 투입될 전망이다. 삼성SDS 컨소시엄이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안이 유력하다. 그간 GPU를 확보하지 못해 연구·개발(R&D)에 난항을 겪던 대학이나 연구 기관, 스타트업이 AI 인프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른바 ‘국가대표 AI’ 개발을 위해 경쟁 중인 네이버, LG AI 연구원, SKT, NC AI, 업스테이지 등도 인프라 지원을 받는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역시 삼성·SK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짓는다. SK는 전남에, 삼성은 포항에 각각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안을 추진한다. 각각 20MW 규모로 건설되며, 앞으로 확대 가능성이 있다. 삼성과 SK는 오픈AI가 5000억달러 규모로 추진 중인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오픈AI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고성능 D램을 월 90만장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메모리 공급 의향서(Memory Supply LOI) 및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메모리 공급 의향서(Memory Supply LOI) 및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그룹

◇전력, 주민 반발은 변수

글로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구축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이 큰 변수다. AI 연산을 위한 GPU 클러스터는 기존 클라우드 서버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구글은 미국 전력 회사 넥스트에라에너지와 손잡고 가동 중단 상태에 있는 원전을 재가동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설계 수명 40년이 다했다는 이유로 멈춰 세웠던 고리 2호기의 재가동 결정을 잇달아 연기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여전히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혐오 시설’로 인식되는 점도 문제다. 데이터센터에 설치되는 고압 전선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오해와 함께 소음 등에 대한 문제 제기로 데이터센터 사업 진행이 난항을 겪는 것이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용도로 인허가를 받은 사업 총 33개 중 17개(51.5%)에서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