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2

강요된 친밀성 배면에 있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대학지성 In&Out

강요된 친밀성 배면에 있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 대학지성 In&Out



강요된 친밀성 배면에 있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다
고현석 기자
승인 2020.05.10 

■ 깊이 읽기_ 『친밀한 제국: 한국과 일본의 협력과 식민지 근대성』 (권나영 지음, 김진규·인아영·정기인 옮김, 소명출판, 387쪽, 2020.04)


한일 관계가 1965년 이래 최악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에서는 혐한과 한류가 분열되어 있어, 한국을 혐오하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한편 BTS나 트와이스 콘서트가 매진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식민지 시기를 새롭게 봐야 한다며 한국의 ‘반일종족주의’를 비판하는가 하면, 그것이 일본의 혐한 담론을 그대로 수용한 인종주의라는 비판도 뜨겁다. 이러한 한일 양국 분열은 일제강점기/식민지 시기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는 결국 ‘부인’된 과거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일본과 식민지 조선은, 때로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때로는 계몽적 스승과 제자로, 때로는 제국주의 파트너로 36년 동안 복잡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의 관계를 “친밀성”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하고 있다. 제국은 폭력을 행사했던 가해자이고, 식민지는 폭력의 피해자인데, 이 둘의 관계를 친밀성으로 개념화한다는 것은 일견 어쩔 수 없이 ‘밀접’했던 양자 관계의 한 단면을 거칠게 일반화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마치 위안부와 일본 군인의 관계를 “동지적 관계”라고 했던 논의와 유사한 것은 아니냐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그러한 강요된 친밀성 배면에 있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이에 대응했던 식민지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일제 말기에 ‘내선일체’, ‘오족협화’,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개념들은 식민지 조선과 일본 내지는 ‘친밀한’ 관계여야 한다는 이념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이를 믿었던 일본인과 식민지 조선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정책은 늘 이러한 동화와 함께 차별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끝내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등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은 식민지 시대 문학작품, 신문 기사, 좌담회를 섬세하게 읽고, 그 맥락을 복원하는 것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 잡지 표지

저자는 이 책에서 식민지-제국 관계의 중층성과 양가성을 정신분석학적 전제를 통해 개념화하고, 그 분석을 위해 “정동affects”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구) 근대성 및 탈식민지 이론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한국-일본 사례들을 바탕으로, ‘서구 보편’을 비판하고 이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식민지에 매혹되면서도 이를 타자화하고, 동화하려고 하면서도 차이화하는 일본, 그리고 제국의 일상적 강압에 억눌리면서도 제국에 매혹되는 식민지, 이 두 존재자의 관계를 정동이라는 이론적 어휘로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도이다.

왜냐하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정동 개념은 신체가 세계에 속해있는 동시에 속해 있지 않다는 표지이며, “힘들의 충돌”에 따른 “부대낌의 양태”로 정념의 동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에서의 논의들은 서구 보편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재구성하려는 이론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분명 의미가 있다.
▲ 메이지학원의 학생과 교사들. 이광수는 맨 마지막 줄 왼쪽 끝에 서 있다. 이 사진의 사본을 공유해준 하타노 세츠코 교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메이지학원 역사 기록관
▲ 『시로가네 가쿠호(白金學報)』에 실린 이광수의 「사랑인가」 ⓒ메이지학원 역사 기록관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제1장은 이광수의 「사랑인가(愛か)」에서 나타나는 식민지 조선 유학생으로 보이는 분키치/문길의 일본인 학생 미사오에 대한 절절한 사랑 고백과 문길의 좌절을 소개한다. 이는 ‘한일문화의 합류’ 지점이자, ‘애국적인 민족주의 지도자이면서 반역적인 친일 협력자’라는 이광수의 상반된 명성과 함께 생각해 볼 때,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제국적 조우에 내재하는 ‘친밀성’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 장은 이광수라는 식민지 조선문학을 상징하는 인물이 ‘첫 작품’으로 여긴 작품이 일본 본국과 식민지 조선의 ‘트랜스식민지적인 조우’의 ‘친밀성’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서두에 배치되어 있다.

제3장부터 제5장은 아쿠타가와상 수상 배경 및 이를 둘러싼 일본 본국의 심사위원들과 김사량의 심리(제3장), 김사량의 「빛 속으로」 텍스트 분석(제4장), 일본 본국 문단과 식민지 조선문단 사이의 식민지 작가이자 토착 ‘정보 제공자’로서의 김사량을 비롯한 일본어로 작품 활동과 번역을 하는 식민지 조선 작가의 비루한 처지(제5장)를 논의한다. 세 장에 걸쳐서 김사량을 다룬 만큼, 그는 이 저서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김사량이 식민지 조선(인)과 본국 일본(인) 사이의 ‘친밀’한 ‘트랜스 식민지적 조우’를 살피는 데 핵심적인 인물, 텍스트, 사건인 이유는 제1장에서 소개한 이광수의 「사랑인가」와 유사한 측면 때문이다.
▲ 규슈 사가 고등학교의 학생 시절의 김사량. 사진 가운데에 있는 김사량은 팔짱을 끼고 학교 모자를 쓰고 있다. Ⓒ시라카와 유타카

이처럼 이 책은 일본과 식민지(인) 사이의 ‘트랜스 콜로니얼’한 조우에서 ‘친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여러 겹의 강압과 회유 사이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복잡한 표정인지를 잘 드러내 준다. 일본인에 대한 어린 조선 유학생의 사랑과 절망(이광수의 「사랑인가(愛か)」),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보를 둘러싼 일본 본국인들의 동정적 태도와 이에 대한 김사량의 심정,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본어 글쓰기라는 것 자체에 내재한 양가성, 좌담회라는 형식 속에 내재한 폭력성, 결국 내선일체를 홍보하기 위한 들러리로 사용될 뿐인 식민지 조선인들의 억지웃음 등에 내재한 ‘정동’들을 끈질기게 추적함으로써, 식민지(인)과 본국(인) 사이의 ‘협력’의 표면에 보이는 ‘친밀성’과 그 배면에 있는 제국의 강압성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보편으로 간주되어 온 서구 모더니즘의 “재현의 난제”를 서구 근대성이나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배제되어 온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예를 통해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구 모더니즘은 재현의 난제를 보편적인 것이라 주장하나, 이는 결코 식민지 근대주체의 경험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지 조선의 예를 바탕으로 “재현의 난제”는 이제 식민지인 제국의 언어로 쓰면서 제국의 통치 아래 생산되어 식민적 경계를 가로지르면서 생기는 역설과 모순과 연결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서구 모더니즘에서 논의하는 근대성의 보편적 경험이라 주장하는 “재현의 난제”를 식민지-제국의 관계 속에서 전유하는 것을 통해서 보편적 경험이라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식민지-제국의 문화적 재현들을 의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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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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