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0

김일성평전과 대한민국 2016년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김일성평전과 대한민국 2016년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김일성평전과 대한민국 2016년 (2)

by 주성하기자   2016-12-30 9:50 am

30부만 가까스로 출판된 ‘김일성평전’. 오른쪽 사진은 1930년대 초반 김일성 장군으로 활동했던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군사위 서기 양림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로 시끄러운 요즘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는 저서 하나를 알게 됐다.

‘김일성평전(상·하편)’. 상편만 7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 유순호는 중국 연변에서 나서 자랐고 오래전부터 항일투쟁사에 천착했다.

동북항일연군 군장 조상지의 전기 ‘비운의 장군’(1998년)을 쓴 지 3년 뒤 중국에서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활동금지를 당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후 조상지의 후임인 허형식 군장의 전기 ‘만주 항일 파르티잔’(2009년)을 출판했고 이번에 김일성평전을 마무리했다.

난 김일성 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서대숙)’,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키)’은 물론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까지 다 정독했다.

이중 유순호의 김일성평전은 과거 모든 김일성 연구서를 뛰어넘는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저서들이 광복 이전의 기록물 중심인데 반해 김일성평전은 항일 연고자들의 회고, 중국 공산당의 비밀자료실에 보관된 문헌들과 수백 장의 진귀한 사진 등 과거 김일성 연구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한 중국측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동북의 항일투쟁사를 논함에 있어서 중국측 자료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인데 그게 드디어 빗장이 풀린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 당시엔 김일성의 상관이었던 인물들이 중국에 많이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인터뷰를 할 수 없다.

김일성평전은 ‘김일성 신화’의 거품을 공정하게 걷어내고 있다. 혁명 모금을 한다며 부자들을 협박하던 10대의 김성주도, 만주에 퍼진 김일성 신화를 이용하려 이름을 개명한 20대의 김성주도 당시 함께 했던 이들의 증언으로 까밝히고 있다.

앞서 만주에서 김일성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누구였는지도 책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북한이 크게 선전하는 ‘북만원정’도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야반도주한 것이며 1938년에 김일성이 일제에게 항복하려 했다는 증언도 있다.

또한 달변으로 중국인 간부들의 환심을 샀던 능력도, 민생단 누명을 벗으려 작탄대 평대원으로 자원해 두 번 씩이나 선두에서 포대로 돌격했다는 등 김일성이 두드러졌다는 증언들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1920~30년대 만주는 거대한 항일의 바다였고, 김일성은 작은 실개천이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은 죽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김일성은 수많은 항일선배들의 업적을 가로채 실개천을 바다로 둔갑시켰다. 이런 신화 조작은 지금도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 중국인 연고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 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도적질과 같은 행위가 아니고 뭐겠는가.”

나는 통일 후 북한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김일성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옛날 반공교육 시대에 만들어진 김일성 가짜설로는 어림도 없다.

김일성과 함께 했던 이들의 증언은 빼고, 그냥 ‘카더라’식 위주로 채워진 주장은 북한 역사보관소의 원본 문헌들만 공개돼도 즉시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김일성평전은 통일 후 북한에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책은 보지 못했다.

김일성평전의 출판을 막기 위해 북한은 원고를 사겠다는 등 각종 회유를 했고, 사료를 갖고 뉴욕까지 날아와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원고를 갖고 서울로 왔다. 그러나 100여개의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보수단체가 고소하면 변호사비로 큰 돈 날릴 것”이란 이유였다. 자비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상편 30부만 찍었지만 이대로라면 이 책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묻힐 처지다.

한국에선 1980~90년대에 벌써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책들이 출판됐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2016년의 대한민국에선 김일성 신화를 무너뜨릴 저서가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다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다.

이걸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는 진보한 것인가, 퇴보한 것인가. 역사 앞에 정직할 자세와 준비는 돼 있는 것인가. 북한의 역사 왜곡을 당당히 단죄할 수 있을까. 김일성평전 하나 찍을 아량조차 사라진 곳에서 공정한 역사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까.

난 김일성평전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은 한때의 공산주의자가 어떻게 인민을 철저히 배신했는지를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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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반공서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 읽어보곤 실망해서 빨갱이 책이라고 욕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책의 의미는 신화적 김일성을 팩트에 기반해 인간 김일성으로 끌어내린데 있지만, 중국 공산당의 자료에는 김일성이 용감하고 임기응변과 화술이 능한 빨치산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전설적 김일성 장군이 아닌 조선인 빨치산 지휘관 중 한 명인 김일성의 활동을 그린 것입니다. 책에 김일성이 1대, 2대, 3대 등이 자세히 설명돼 있지만, 3대쯤 되는 북한의 김일성이 사실 제일 활동 많이했고, 우리가 김일성 장군 소행이라고 알고 있는 전투 대부분이 3대 김일성이 한 것이라는 것이 중국의 자료들입니다.

다만 저는 김일성이 빨치산을 했던 것이 그의 이후 죄를 사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자도 1945년 이후의 김일성은 극악한 독재자로 변했다고 비판합니다.

여러 차례 말했지만 김일성은 공 10% 정도로 시작해 과가 90%쯤 되고, 반대로 박정희는 과로 시작해 평생을 공 80% 이상으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한때엔 항일투사일수도, 일본군 장교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끝나고 죽었으면 모를까, 이후 국가 지도자로 살았던 사람들에겐 한때의 경력이 그가 민족 앞에 남긴 업적이 될 순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부연한다면 태영호 공사의 기자회견을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저렇게 외교관들이나 해외 북한 주민들이 다 본다면 저에게 탈출 방법을 언제든지 문의해도 됩니다.

우측에 배너를 띄우긴 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보니 모르시는 것 같아 이렇게 텍스트로 다시 글을 남깁니다.


윗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또한 nkfuturefed08@gmail.com 여기로 연락 주십시오. 안전한 계정입니다. 단, 이 메일로 북한 주민이 아닌 분이 메일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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