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를 지향한 유교 공동체의 노력
서양은 개인주의, 동양은 집단주의. 동서양 문화의 차이를 논할 때 가장 자주 튀어나오는 전형적인 답변이다. 다소 보기 좋게 정리하자면, 동양은 전통적으로 집단의식이 강하여 개인과 자유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반면에, 서양은 전통적으로 개인의식이 강하여 집단과 단결에 대한 인식이 빈약한 편이다. 사실 동서양 세계관에 관한 이런 이분법은 개념상의 명료함은 주지만 깊이는 없는 대답이다. 아무튼 대다수가 동양적 집단주의의 사상적 원천으로 유교를 지목한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모두 유교문화권에 속한 전형적인 국가들이고, 민족주의나 연고주의 같은 집단주의의 경향이 강하다.
학술연구의 동향을 보면, 동서양의 공동체주의 담론은 시간상으로 반대방향으로 치닫는다. 서구에선 근대성의 결과가 집단적 광기와 전체주의 악몽으로 끝났기에, 여전히 개인의 독립과 권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의 위기'와 이에 따른 공동체주의 담론은 구미의 탈근대 논의에서 호소력이 강한 주제였다. 그래서 서구의 공동체주의를 얘기할 때면 감초처럼 튀어오르는 것이 동양의 이른바 유교적 공동체주의 전통이다.
이 책『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은 유교적 공동체론에 대한 학술상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유가는 군자의 조건으로 수기치인이나 수기안인을 중시한다. 수기는 내적 성숙이고 안인은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말한다. 대다수가 수기는 안인의 전제조건이고 안인은 수기의 목적이라고 해석하며 두 관계는 상호적이라고 설명한다. 안인은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를 꿈꾼 유가의 이념이고, 공동체의 덕성은 개인 각자의 수양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 유교를 정통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500년은 유교의 그런 이상적인 공동체론을 제대로 구현해내었는가. 이에 대한 정답은 두 가지로 갈린다. 제대로 구현했다면 조선이 일본에게 망했겠는가,라는 답변과 제대로 구현했기에 제대로 망했다는 답변이 그러하다.
"유교 공동체의 변화와 관련하여 박은식이 「유교구신론儒教求新論」을 발표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 글에서 첫째, 제왕의 유교에서 인민의 유교로 유교의 지향점을 바꾸고, 둘째, 유교 바깥의 세속사회를 향한 유교적 구세주의를 강화하고, 셋째, 복잡한 주자학에서 간단한 양명학으로 유교의 내용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유교를 추구하여 사회 공동체와 소통하고, 망국기의 혼란스런 세속화와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대결하여 사회 공동체와 연대하고, 공동체의 도덕적 실천을 극대화하는 양명학으로 전환하여 유교 공동체 역시 공동체의 도덕성을 강화하라는 뜻이었다."(178, 179쪽)
유가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대동사회이고, 대동사회란 '천하위공'의 사회다. 나라와 문명마다 이름은 달랐으나 저마다의 사회복지 제도가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이 유교문명권의 양민養民, 구민救民, 휼민恤民 제도다. 국가 주도의 상평창, 의창, 환곡과 민간 주도의 사창 등이 대표적이다.
유교공동체의 양대 기둥은 집단성과 자율성이다. 그 원칙을 잘 보여준 것이 사촌의 향촌자치기구인 유향소다.
"우선, 유향소를 운영하는 집단의 모체는 사족이다. 여기서 사족이란 자신이 생원이나 진사인 자, 내외에 현관顯官이 있는 자와 그 자손, 문무과 급제자와 그 자손 정도로 정의되는 법제적인 규정과는 달리 향촌에서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향안에의 참여 여부였다. 즉, 삼향三鄉인 부와 모 그리고 처향의 향참鄉參 여부였다. 부와 모, 그리고 처계가 모두 향안에 참여하고 있다면, 자신도 그 어느 향안에든 곧바로 수록될 수 있었다. 향안에 이름이 오른 집안은 그 지역사회에서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으며, 유향소 운영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130쪽)
유향소는 일명 향소나 향청이라고 불리고, 유향소의 인적 구성체가 고을 사족의 명부인 향안이며, 유향소를 운영하기 위한 규약이 바로 향규다. 사림파가 추진했던 향촌자치규약이 향약인데 '주자증손여씨향약'에 따르면, 향약의 네 강목은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이다. 조선적 향약의 시초는 퇴계향약 혹은 예안향약이다. 향약의 4대 강목 가운데 오직 과실상규 위주로 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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