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2

한일합방이 합법이었다는 이문열의 망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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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권
  한일합방이 합법이었다는 이문열의 망언에 대하여
  


소설가 이문열씨의 주장에 대한 반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합방은 국제법상 합법이었다"는 소설가 이문열씨의 주장을 뒤늦게 접했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그는 '바쁜 의원'님들에게 "과거사에 올인 할 것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고 한다.

너무도 당연한 과거청산 문제가 정치판의 쟁점이 된 이 마당에 왜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올까도 싶었지만 막상 접하고 나니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숨길 것은 숨겨야 하는 노련함(?)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속내를 드러낸 그의 순박한 어리석음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이내 어이가 없어지고 만다. 상대하기조차 싫은 그런 어이없는 기분 말이다.

솔직히 한일합방이 합법이라고 하는 그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개천이래 그토록 부당하고 원통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을사늑약(勒約, 억눌러서 이루어진 조약)'에 의해 한낱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과 그 암울한 조국의 현실 때문에 수십 년간 억압받고 죽어가야 했던 민족을 위해 생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일본제국주의의 조국강점에 피로써 항거했던 그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전문을 설명이라도 해주어야 할까?

소설가 이문열씨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나 그는 분명 실언을 하였다. 설령 한일합방이 합법이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독립투사들은 한일합방이 합법이 아니어서 저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언제 한일합방이 합법이 아니어서 분노했는가 말이다.

실언은 '누워 뱉은 침' 마냥 고스란히 그에게 돌아갈 것이지만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실언을 하면서까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하지 말자는 것일까?

비단 이문열씨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청산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사람들은 과거청산을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소모적인 일'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민생경제'나 '미래지향'을 운운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청산 활동은 분명 민간차원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과거청산'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정치적이고 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우리가 광주학살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었고, 이후에 놀랍게도 유엔을 통하여 그 주요내용이 국제법적으로도 확립된 바 있는 '과거청산의 원칙'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진상규명, 사법처리, 명예회복, 피해배상, 정신계승'이 그것이다.

"과거사청산 민간차원에서 해결하라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

다시 말해, 부당하고 잘못된 과거는 왜곡과 은폐가 있으므로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하고, 가해자는 반드시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하며, 피해자는 명예회복과 피해를 배상해야 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로 '과거청산'인 것이다. 이는 바로 과거청산 그 자체가 정치적이고 법적인 해결을 의미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것을 민간차원에서 해결하라는 것은 곧 과거청산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과거청산의 대상 가운데 하나인 친일행위에 있어서는 '사법처리'가 문제될 수는 있다. 해방직후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특위'가 독재정권과 친일파에 의해 이루지 못했던 그 '사법처리'를 지금에 와서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과거청산이 단순히 민간차원에서 '문화적, 역사적'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시기를 놓쳐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청산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준엄하게 실행해야 될, 국가적 사업이며 책무이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과거청산을 민간차원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없다. 지금까지 그나마 과거청산을 주장하고 준비해 온 쪽은 어디까지나 민간차원이었지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이나 국가를 향해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과거청산을 하라고 그토록 외쳐 왔는데 생뚱맞게 민간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최근에 과거청산을 추진하려는 '열린우리당'이 과거청산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청산은 반드시 추진돼야만 한다. '열린우리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청산해야 될 과거'에 연루돼 본능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이 과거청산을 적극 찬성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열린우리당'의 정략적 속셈보다도 '친북용공 활동'도 과거사에 포함해야 한다거나, 과거청산을 위한 기구를 민간기구로 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수구적 저항이다.

이는 몇 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를 유명무실한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민간기구'로 설립하려고 했던 바 있는 한나라당의 모습 그대로이며, 더불어 수십 년 전에 '반민특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공주의'를 써먹었던 자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기 때문이다. 
2004-08-28 14: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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