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세계 꿈꾼 ‘공자’ 앞에서…다툼도 갈등도 없었다
등록 :2012-10-10 20:20수정 :2012-10-10 20:47
종교 지도자들이 공자연구원 안에서 공자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들을 보고 있다.
7대 종교 지도자 이웃종교 체험
우리나라 7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웃종교 체험’을 위해 유교의 교조 ‘공자’를 찾아 떠났다. 지난 4~7일 3박4일 일정이었다.
순례단의 첫 방문지는 중국 베이징 국자감. 원·명·청대에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중국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 공부했던 곳이다. 부속건물 ‘벽옹’ 주위를 지름 60m 못이 360도 둘러싸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중에 새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는 말에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건 어느 나라나, 어느 종교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이어 국자감과 붙어 있는 공묘. 원나라 때 창건돼 황제들이 공자에게 제사를 올리던 사당이다. 공묘 앞에선 젊은 남녀가 화려한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춘 춤을 춘다. 엄숙하기 그지없을 것만 같은 공자의 사당에서 춤이라니. ‘대성예악’이다. 음악을 도(道)로 보았던 공자의 덕을 맹자는 ‘집대성’(集大成)으로 표현했다. 다른 성인들의 덕은 하나의 악기가 최고의 연주를 이뤄낸 ‘성’(成)이라면 공자의 덕은 각각의 연주를 모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뤄낸 ‘대성’(大成)이라는 것이다.
국자감·공자연구원 등 방문
유교 교조 ‘공자’ 만난 순례단
“50개 종교 있는 우리나라에서
상호이해가 성현 뜻 실현하는 길”
순례단은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취푸로 향했다. 공자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공자를 중국의 상징으로 부활시키면서 1996년 설립한 곳이다. 양차오밍 원장 등이 일행을 지극히 맞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성균관’이 지난달 27일 이곳에서 열린 ‘제5차 세계유학대회’에서 ‘2012 공자문화상’ 단체상을 받았다.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 등 중국인들이 잃어버린 유교의 예식과 정신을 전해주는 멘토인 최근덕(79) 성균관장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각별하다. 공자의 후손인 쿵샹린(공상림) 부원장은 온종일 순례단과 동행했다.
문화혁명 때 파괴했다가 이제 정부 차원에서 띄우는 ‘공자’의 유적지는 어디나 인산인해다. ‘세계 최고의 사당’이라는 공묘와 공자씨족의 공동묘지인 공림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후손들이 거주한 ‘공부’(孔府)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순례단 가운데 최고령인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89) 회장은 “불리하다고 내치고 유리하다고 상품화하는 건 아직도 공자의 참뜻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공자는 중국 하나를 본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수신제가를 통해 천하를 태평케 해 하나가 되는 대동세계를 이루려 했다”고 말했다.
‘공부’에서 여성들만의 거처로 남자 종도 출입할 수 없었다는 안채로 들어가자, 총천연색으로 그려진 대형 벽화가 나타난다. 용처럼 생긴 탐욕스런 ‘탐’(貪)이란 동물이 발에 온갖 보물을 다 쥐고서도 하늘의 태양까지 따려고 덤벼드는 그림이다. 남성들보다 글공부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그림이다. 이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기 전 ‘탐욕에 물들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를 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배인관(54) 사무총장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란 성경 야고보서를 인용하며, “탐욕과 욕망의 길을 가르치는 종교가 있겠느냐”며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가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공자가 거처했던 집 앞엔 마치 빨래판 같은 대리석이 놓여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무릎을 꿇고 걷게 했다는 판이다. 천주교 김희중(65) 대주교와 원불교 문화사회부장인 김대선(59) 교무가 ‘죄인’을 자청해 시연했다. 주위에서 “아프냐”고 묻자 그들은 “그걸 말씀이라고 하느냐”고 물어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공부는 진시황이 책들을 없애게 한 분서갱유 당시 공자의 후손이 책을 넣고 외벽을 봉해버렸다. 그래서 유실을 막은 노벽이 있다. 이때 보존된 <논어>는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지침서다. 천도교 임운길(84) 교령은 “공자께서 종교적인 의식보다는 생활 속에서 뜻을 펴며 실천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을 알겠다”고 말했다.
일행은 노벽 한켠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이때 최근덕 관장이 ‘농반진반’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과거 이곳에 왔을 때, 중국인들에게 ‘죽어 좋은 곳에 가려면 헌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내용이 적힌 <논어>를 한 권 줄 테니, 이걸 노벽에서 새로 찾았다고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교가 내세에 대해선 일체 언급 없이 현세만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헌금 바칠 생각도 안 해 성균관이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양원 회장이 “지금 공자님에게 하소연을 하는 거냐, 원망을 하는 거냐”라고 물어 웃음이 터졌다.
웃음 속에선 다름도 갈등도 없는 ‘대동’(大同)이었다. 김대선 교무는 “궁극적으로 성자들이 일깨워준 것은 정성과 공경과 믿음”이라며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이렇게 평화롭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이웃 종교의 교리를 수용할 수는 없어도 이해하고 존중할 수는 있다”며 “모든 게 경제논리로만 좌우되는 이때 각 종교가 함께 정신문화의 가치와 참된 지혜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해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례단의 여정의 종착지는 타이안의 태산. 중국의 오악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여긴 성산이다. 공자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이는구나’라고 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에 오른 종교지도자협의회 의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백천입해 동일함미’(百川入海 同一鹹味·일백 개천의 물이 바다로 들어가면 짠맛으로 하나가 됨)라는 말로 공자가 꿈에 그리던 ‘대동’을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50개 종교, 500개 종파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길 아니겠는가.”
베이징·취푸·타이안(중국)/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전문은 휴심정(well.hani.co.kr)
유교 교조 ‘공자’ 만난 순례단
“50개 종교 있는 우리나라에서
상호이해가 성현 뜻 실현하는 길”
취푸 공자연구원을 방문한 7대 종단 지도자들의 단체사진
공자의 집 ‘공부’에서 벌을 받는 장면을 시연해보는 김희중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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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555223.html#csidxfb5d3b3212b19a790f991337a9884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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