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대동(大同)과 고 조선의 홍익인간을 중심으로
이 논문은 第五回 日中韓国際学術會議(East AsianPhilosophyof Pease in a Global Era)The Fifth Japano-Sino-Korean International Simposium
The 110 Aniversary of SHOUHEIKOU-Higashi Nipon International University
-Iwaki. Fukushima, Japan (23. June. 2013)
발표한 논문을 다시 문맥을 교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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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대동(大同)과 고 조선의 홍익인간을 중심으로
韓國 成均館大學校儒學大學儒學與東洋哲學 特聘教授
Chair. of Board of Chicago East University(C.E.U.)
林 官 憲
- 서두에
동아시아(East Asia) 또는 극동(Far East)로 불리어지는 지역은 동경(東經) 90도 이동의 아시아 대륙과 그 연장선에 있는 도서 구가들, 동북아 3국과 동남아 10국으로 또는 동아시아 13국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이 지역인구는 20세기 초에는 세계 인구 16억 중 1/4인 4억, 그로부터 100년 후인 지금은 70억-세계인구중 그 1/3에 해당하는 23억으로 지구촌 중 최대의 경제 시장(市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오래 동안 서양 문명과 거리를 두고, 직접적 교섭이 끊기어 인류공통의 천명(天命)사상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며 특히 지난 2000년간은 신본(神本)주의 사상이 지배 한 서양과 그들의 지배나 교류 등 영향을 받은 근동(近東), 중동아시아지역은 극동(極東)으로 불리는 인본(人本)주의와 왕도사상이 지배하던 우리지역과는 그 사상과 문명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근접한 인도와 그 주변국을 포함하면 35억으로 세계인구의 50%에 달하는 초 광역 공동체불럭을 형성하게 됩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일기시작 한 산업혁명이후, 세계는 자국의 국부(國富)만을 위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식민정책으로 전쟁과 경쟁, 그리고 폭력이 끊이지 않았으며 홍익인간(弘益人間)과 대동(大同)을 이상으로 하는 동방의 여러 나라도 그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서 이 지역의 위대한 지도자와 제왕(帝王)들이 꿈꾸던 왕도(王道)정치, 천하통일과 평천하의 이상이 문어지게 되었습니다.
서세(西勢)동점(東漸)이 본격화된 후로부터 250여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를 포함하는 세계는 아직도 대립과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장과 국경에서, 남지나해, 동해, DMZ에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느끼면서도, 우리가 그리던 이상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꿈꾸며 그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남한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동시에 나온 지금이 지난 100년간 불행했던 과거사를 뒤로하고 우리 가까운 이웃끼리 모여서 공통의 목표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홍익인간),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대동의 이상을 실천하여 평천하(平天下)를 이루어야 할 좋은 때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소아를 버리고 대동(大同)으로 가야하는 시발점에서 중국정부가 지향 하는 소강(小康)은 공자가 바라던 이상사회로서 전통적으로 그 목표는 우리 동양 3국과 아세안 10국의 공통분모가 되기에 충분하며 ’동아시아 공동체‘형성에 희망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 평천하의 도를 말한 유학 (儒學/ 儒家)의 연원
공자가 활동하던 서기 전(-6BC)세기는 동아시아의 중원과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철기문화가 융성하고 산업과 경제가 발달하였으나 중원대륙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불안은 점차 고조되는 춘추 전국시대가 시작 된지 200년이 되는 쟁투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천하의 혼란기에 처한 중원의 군주들에게 평천하(平天下)의 도(道)를 유세(遊說)하던 공부자가 환(桓)국, 3황5제, 청구, 조선, 요, 순, 은(殷), 주(周)의 시대에 활동한 전문가, 엘리트 집단인 선비(士), 유류-유가(儒家)의 사상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봉공(奉公)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의 길을 집대성하여, 유학사상으로 크게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동아시아지역에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 된 이후, 부족과 민족단위로 나라가 형성되면서 그 사회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길을 모색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교육과 종교(큰 가르침)로 이루어진 역사철학인 유학은 드디어 군자지도(君子之道)로 집대성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공자는 동아시아의 장구한 역사를 통섭하고, 고금에 일관(一貫)하는 정치철학(一貫之)을 체계화하여 그 당시 복잡한 현실을 비교, 연구, 조명하고, 그것을 융합(融合)하여 평천하하는 예와 그 기법인 인문학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자는 선유(先儒), 선사(先士)들의 철학을 광범위하게 섭렵하고 고기(古記) 와 역사를 두루 징험(徵驗)하여 유학을 완성하였기 때문에 그가 논어에서 “술이부작(述而不作) 신이호고(信而好古) 절비아어노팽(竊比我於老彭)”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기가 “유학을 창시(創始=만든)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옛 것을 편술(編述)하였을 뿐”이라고 분명히 천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우리 모두는 공자를 유학을 창작한 분으로 정의하여 그분이 논어 술이편에서 선언한 술이부작(述而不作)신이호고(信而好古), 절비어노팽(竊比於老彭)의 본뜻을 무시하고 유학을 집대성한 조종(祖宗)이요, 종사(宗師)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이것이 공자이전의 유학과 그 연원이 되는 천명(天命) 내지 천부(天符)사상을 전승(傳承)한 사실(史實)을 흐리게(糊塗)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가 유학을 집대성하기 이전부터 수천 년 간 동북아시아 인류사회를 지배해 온 우주와 인간, 사회와 인간 간, 그리고 한 인관과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인간 간, 사회와 인간 간, 그리고 우주, 자연과의 평화를 유지하고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를 궁구하는 학문인 유학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음을 바로보지 못하고 오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전과 기록으로 전승된 유학의 연원은 하늘의 의지인 천명(天命)과 사람이 이를 실천하는 길을 해석, 평가하고 기록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한국을 비롯한 인류문명의 전승(傳承), 전통, 역사적 기록과 징험에 따르면 먼저 인간이 따라야 하는 도(道)-그것을 실천하는 길이 옳고 그른 것은 천명(天命)-천부(天符)에 따르는 것-천부인(天符印)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기(古記)를 인용한 불교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군장인 한웅(BC3898년)이 한인(BC7197-BC3898) 천제로부터 천부인 3개를 받아, 이에 의지해서 미개(未開)한 세상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부인이 무엇인지 고기에는 그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다만 천명을 징표(徵表)하는 부신(符信) 내지 부적(符籍)으로서 어떤 상서로운 표적(表迹)내지 부도(附圖)라고 보는 이들도 있고, 어떤 신성한 세 개의 상징물인 거울, 자(尺), 검(劍), 또는 방울(鈴)같은 것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통설은 한웅이 한인 천제로부터 3개의 징표-천부인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후 천 오백년 후인, 단군조선시대에는 천부인이라는 용어대신에 천부경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공자가 이야기하는 도의 뿌리이며 천명의 징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천부인 3재(才) 와 공자가 소개한 대학 3강령(綱領)
천부경(天符經)의 3재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 등 3 주체(主體)로 하고 이들 간의 관계를 수리(數理)로 전개(展開)시키는 변화(用變)와 그 변화에도 무변(無變)하는 본체(不動本)와의 상호관계와 사람가운데 천지(天地) 2재(才)가 다 포함(人中天地一)되는 진리(道)를 81(9X9)이라는 자(字) 수(數)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가 술이(述而)한 유학의 근본서인 대학의 3강령에서는 도(道=眞理), 덕(德=社會的德性), 민(人倫=民在止於至善)이라고 하여, 천부경의 3재(才)와 대학3강령은 대단히 닮아 있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가르침이서도 혈구(絜矩)지도와 대동사회의 구현 등 이 사실들을 상고해보면, 천부경의 시작과 대학의 완성은 장소와 시시간적으로 근 3천년의 차이가 있으나 그 이론인 진리(眞理)의 체계나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연원은 뿌리를 같이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대, 사회, 문명의 변화가 계속되고 인지(人知)가 축적되어 학문과 그 실천이 크게 발전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상호간, 그리고 인간과 주변과의 관계는 그 근본문제에 있어서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즉 우리는 공자가 살던 시대의 우주와 인관관계가 오늘 날 보는 인간세계에서의 그 근본적 관계는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지금도 세계는 문화의 충돌이니, 이념적 갈등이니, 지역, 국가, 민족 간의 이익 충돌,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사회에 만연해 가는 폭력의 증대로 불안 해 하고, 불행해져, 행복하지 못하고, 세계평화는 더 위태롭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공자가 주류(周遊)천하(天下)하면서 평천하의 도를 주창하던 것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파괴, 인간의 불행과 국가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유엔의 여러 가지 노력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 것일까? 깊은 상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동아시아의 평화가 곧 지구촌의 평화
통신, 교통수단의 발달은 세계를 지구촌으로 부르게 되고, 경쟁과 분업으로 이웃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웃의 행복 없이 나의 행복도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상호 의존적 관계로 이 지구촌이 변모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는 세계인구의 1/3 이상이 사는 공동체가 되었으며 지구촌의 큰 중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남한과 북조선, 일본, 러시아, 몽골이 있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싱가포르, 타이,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 한국, 중국은 지리적, 전통적으로 가깝고, 혈통과 DNA, 그리고 역사적 뿌리가 가장 가까워서 역사와 문화, 풍속을 많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C200 년 경(漢나라 때)부터, 동아시아 근세사에서 중원의 패권을 차지한 대륙의 나라와 AD400년 경 해도(海島)를 장악한 왜(倭)의 침구(侵寇)로 인하여 그 틈바구니에 있던 조선(진한, 밝한, 변한 등 3조선)은 이들의 패권-침략전쟁을 방어해야하는 불행을 겪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의 조선(삼한과 부여)침공, 수와 당나라의 고구려침공, 당나라의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정복전쟁, 3한(韓)일통(一統)을 내세운 역대 동아시아의 정복과 통일전쟁, 요, 금, 원의 분국(分國)과 고려침공, 여몽(麗夢)의 일본 정벌전쟁, 청의 중원정복전쟁과 양대 호란, 왜의 임진-정유의 조선침공, 일본의 조선 병합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근래에 불거지고 있는 동지나해, 동해상의 도서와 대륙 봉 문제 등으로 지역 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민족적, 국가적 이기심이 팽배하게 대립되어 있는 이러한 상황은 대승적인 안목과 인류애에 기초한 평천하라는 보편적 공동의식이 없는 한 해결할 길이 없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동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이단아로 그 무력을 늘리고 있는 북조선의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도 간과할 수 없고,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개발로 인해서 점차 세계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각 민족의 생존과 행복을 단번에 앗아갈 위험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 맺는 말
서기 전 6세기에 살다 간 공부자의 유학사상은 동아시아지역에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 된 이후, 부족과 민족이 분열되고, 집단 간의 대립이 형성되고 경쟁하면서 반목하게 되자 평화가 깨어지게 되고, 각국은 생존과 행복을 모색하는 실천적 학문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변하는 시대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오제 시대까지 전해 온 선양(禪讓), 대동-천하위공(大同/天下爲公)시대와 하, 은, 주 3대 때의 적자양위(小康/天下爲家)의 틀을 비교하면서 대동을 이상적인 평천하로, 소강을 현실적인 평천하로 보고 한탄하였던 것은 오늘날 많은 사상가들의 생각과 크게 틀리지 않고 쓰여 집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불리는 혼란기에 접어든 한 시대를 살면서도 동아시아제국의 국가지도이념인 ‘혈구(絜矩)지도’(대학과 천부사상 공히 중시)에 입각한, 모두가 평화롭게 잘사는 ‘대동(大同)사회’의 아이디어를 내 놓았습니다. 그 당시 중원을 장악하려는 6국간의 투쟁과 연합은 천하의 평화를 잃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평천하의 길을 제후들의 힘과 학자들의 지혜를 빌어 달성하려고 하였던 각국의 제왕들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주류천하(周遊天下)하며 일자리를 찾던 공자에게 있어 천하위공을 함께 할 지도자로 마땅치 않고, 일을 맏겨 줄 군주를 찾을 수 없어 실망하고 한때 부해지탄(浮海之嘆) 을 하는 장면이 논어-공야( 公冶)장에 나옵니다. 공자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모든 학문인 예악(禮樂)사어(射御)서수(書數)-육예(六藝)에 통달하였고 천하의 현군 (賢君)과 패(覇)자들를 많이 만났으며 수많은 제자들로부터 공경 을 받던 당 대 의 철학자이며 교육자였습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겸손해하면서 모든 학문과 사상을 융합(融合) 하는 학자요 또한 학생으로서 동 시대와 후세 인류의 크나큰 지도자요 스승이 되었습니다.
필자의 대학시절, 우리대학에서 법철학을 가르치던 이항령 교수께서는 세계를 서방, 중방, 동방사회로 나누고 서방은(자유) ‘민주주의’ 정치, 중방은 종교적, 이념적‘ 독재정치’, 동방은 공자사상으로 대표되는‘ 왕도(王道)정치’ 로 나누어 지역 별로 특징 을 삼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균관대학교 유학의 태두시었던 고 유승국 교수님은 정치형태의 변화를 인류문명사적 측면에서 <전 근대적 동방사회>와 같은 ‘봉건(封建) 군주제(君主制)‘에서 <근대적 서구사회> 와 같은 ‘민주(民主) 공화제(共和制’로 진화하고 현대는 바야흐로 탈(脫) 근대(近代)시대로 “인류(人類)의 세계화(世界化)” 시대로 전환(轉換)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두 석학의 주장은 서로 다른 기준 즉 전자는 지역을 기준으로 하고 후자는 시대를 기준으로 한 분류일 뿐 오늘의 실제 상황에서도 이론과 현실이 부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현 중국이 중앙정부통제 계획경제 체제를 접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여 2020 까지 온포(溫飽) 와 소강을 이루겠다는 등소평에서 시진핑에 이르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국정지표를 보면서, 이는 안으로 온포(溫飽), 밖으로는 소강으로 분쟁이 없는 평천하를 이루자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이 중국대륙의 13억 인구와 G2 반열에 들어선 국부(國富)를 외면할 수 없듯이, 중국도 이웃들을 중히 여기지 않고, 솔직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없이는 소강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아시아 제국은 가장 쉬운 것부터, 즉 동아시아자유무역(FTA)과 경제통합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유럽연합과 같이 동아시아 연합으로 ‘소강’과 ‘문화융성’을 동시에 이루면서 평천하에 다가서고 결국 홍익인간 하여 공자가 말한 대로 모두가 행복하고 잘사는 대동 사회를 하루 속히 이룩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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