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 30년 베트남전쟁의 전개와 종결 - 두레신서 11
리영희 (지은이)두레1985-07-01
목차
1. 베트남 전쟁(1) : 1945-1956
2. 베트남 전쟁(2) : 1956-1972
3. 베트남 전쟁(3) : 베트남 전쟁의 총평가
4. 베트남 정전협정의 내용과 평가
5. 종전후 베트남의 통합과정
6. 부록 : 민족해방전선의 기원과 구성/프란시스 핏제럴드
7. 해방전선의 우편배달부/岡村昭彦
책 속으로
베트남 전쟁의 확대는 미국이 내세우는 '개입의 권리와 근거'라는 것으로 자기전개적이었다. 미국쪽 이론의 근거는 북베트남의 남베트남 침략이라는 주장의 주변에 구축되어 있었다. 드골의 정치, 역사, 도덕적인 차원의 관점은 차치하고 순수한 군사적 '침략'(이것이 미국의 이론의 핵심이었다)을 문제삼더라도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려운 성격이었다.
파리 휴전협정은 저지하러 왔었다는 미국 군대의 철수는 규정하고 있으면서 바로 그 침략군이라는 북베트남 군대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없다. 미국은 14만 명의 북베트남 군대가 남베트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북베트남 정규사단은 남하하였다. 미국과 북베트남은 서로 군대를 남베트남에 들여놓은 시기를 따져 침략자의 낙인을 상대방에 붙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 시기에도 문제가 있다.
--- p. 79
저자 및 역자소개
리영희 (지은이)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으며,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고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었고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도쿄대학교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 한 학기씩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1987년에는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정식 부교수로 초빙되어 ‘평화와 갈등’ 특별 강좌를 맡아 강의했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 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로 재임했다.
2000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하다 회복했고, 이후 저술 활동을 자제하면서도 지속적인 사회 참여와 진보적 발언을 계속했고, 불편한 몸으로 대담 형식의 자서전 ≪대화≫를 완성했다.
2010년 12월 5일 지병 악화로 타계했다.
그는 휴머니즘과 자유 사상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의 야합을 질타하고 언론 자유 쟁취의 중요성을 계몽했다. 그의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 활동은 한국 사회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확대, 실천으로서의 저널리즘 정신 확산, 대안 언론과 참여 언론 발전에 기여했다.
늦봄통일상, 만해상, 심산상, 단재언론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80년대의 국제 정세와 한반도≫, ≪베트남 전쟁≫, ≪역설의 변증≫, ≪역정≫, ≪자유인, 자유인≫, ≪인간만사 새옹지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및 일본어로 번역된 ≪分斷民族の苦惱≫,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8억 인과의 대화≫, ≪중국 백서≫, ≪10억 인의 나라≫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와 미발표 글들을 모은 ≪리영희 저작집≫(전 12권)을 펴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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