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5

대화 | 리영희, 임헌영 대담 | 알라딘

대화 | 리영희, 임헌영 대담 | 알라딘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지은이),임헌영
한길사2005-03-10




























한국정치사정/정치사 주간 49위, 종합 top100 9주|
Sales Point : 8,138

9.5 100자평(37)리뷰(70)


책소개
한 부류에서는 '사상의 은사'로, 다른 한 부류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며, '야만의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리영희 선생의 회고록.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글로 옮겼던 '지성인'으로 살아온 리영희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한 흐름에 조망한다.

책은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과의 대담 형식으로 씌어졌다.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집필 활동이 힘들게 된 상황에서 수 차례 구술과 기록을 반복하며 2년 가까이 작업한 끝에 완성한 것. 대담자 임헌영은 이 '대화'에서 선생의 70년 삶의 줄거리를 국면 국면 마다에서 상기시켜주고, 주요한 역사적 문제들을 이끌어내어 비판적 토론을 이끄는 역활을 맡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항일 시대에 겪은 조선인으로서의 체험에서 시작해,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던 청년기를 거쳐, 마침내는 시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일체화시킨 '지성인'으로서의 삶을 산 지난 70년 간의 이야기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 놓는다.

광복 후 미군정기 남한 사회의 혼탁상에서 한국전쟁의 비극과 한국군의 실상, 4·19와 5·16, 광주민주화운동, 최근 국내외 정세까지 한국 현대사의 증언으로 남겨질 소중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점도 특징이다.

역사의 구비구비에서 사회의 모순에 부딪칠 때마다 실존적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지성인'으로서의 자신의 논리를 획득해나간, 선생의 내면적 투쟁의 과정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목차


1
식민지 조선의 소년 - 청운의 뜻을 품고 경성으로
해방, 환희, 그리고 분단 - 친일파의 세상에서 방향 잃은 민족

2
전쟁 속의 인간 1 - 민족상잔의 현장에서 우는 청년
전쟁 속의 인간 2 - 화연 속에 달궈지는 평화주의자
저널리스트에 천직을 찾고 - 우상 파괴자로 거듭나다

3
희망의 봉화, 꺼진 뒤의 암흑 - 4.19의 전열에서 피로 거둔 열매는
다시 겪는 악몽: 탱크가 지배하는 세상 - 인간답게 살려는 25년의 몸부림으로
가려진 진실에 빛을 들이대며 - 최고 국제문제 기자의 고행
전차의 길을 막는 사마귀 - 베트남 인민과 함께 우는 언론인
인텔리는 필경 관념론자! - 언론계 추방 - 육체노동자실격 - 다시 인텔리로

4
한국 현대 중국혁명 연구의 개척자 -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찾아
"선지자는 고향에서 박해받는다" - '사상의 은사'와 '의식화의 원흉' 사이에서
무신론자의 인간관, 사회이념 - '유일신'과 '절대주의' 없는 삶을 향해

5
배신당한 서울의 봄 1980년 - 민족의 정기가 광주에서 꽃필 무렵
23년 만에 얻은 '자유의 날개' - 극우반공의 동굴에서 눈부신 햇살의 하늘로
동서양 인류문화의 현장으로 - 일본, 독일, 미국에서의 교수 체험
캄캄한 하늘에 뜬 큰 별 「한겨레」 - '주한 미국 총독'과의 '광주대학살' 책임 논쟁

6
20세기 인류의 행복조건 -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양은 가능한가
펜으로 싸운 반세기의 결산 - 조광조를 보내고 이퇴계를 맞는 명상

리영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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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임헌영 - 선생님은 자유에 대해서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자유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남용하고, 자유라는 술어로 비자유스럽게 한다거나 또는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제도가 자본주의 아닙니까. 또 이 자유라는 개념으로 사회주의까지도 무너뜨린 것 아닙니까?

리영희 - 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형... 더보기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1쪽 접기 - 가넷
이 긴시간에 걸친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였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익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원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7쪽 접기 - 가넷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1쪽 접기 - sol2003
이 긴시간에 걸친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였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익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원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7쪽 접기 - sol2003
다만 마르크스적 계통과 진보적 사상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일반적 견해가 모든 인간적 사회적 현상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단정하려는 고정관념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한 것뿐이야. ‥ 계급주의 이론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재단하려는 자세는 자칫 '지적현실도피'가 아니면 '이념의 화석화' 또는 교조주의가 되지 않을까요?-245쪽 - 전진하는청년
나는 언제나 개인을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 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 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민족의 역사에서도 임형이 원하는 것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절제의 현명함으로 움지여진 실례를 나는 것의 찾아 볼 수 없어요. 이것은 지성인의 바람이나 욕구와는 전혀 무관하게 걸어가는 집단적 행동의 특성인 것 같아.-267쪽 접기 - 전진하는청년
그것보다 더 큰 문제였던 것은 한국 국민의 나쁜 특성의 하나인데, 자기들을 지배하는 권력이 막강할 때는 평신저두하다가, 정권이 국민에게 자유를 주고 약한 기색을 보이면 즉시 태도가 돌변해서 제각기 자기 주장대로 행동하는 것이오. 이 때문에 민주당 아래서 이렇다 할 개혁의 성과는 없었어. 한국 민중에게 민주주의적 책임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요. 그때나 40년 지난 지금이나.-284쪽 접기 - 전진하는청년
한국 국민들에게는 그런 막강한 미국에 대해서 짚신 신고 화승총 같은 것을 메고 대항한 베트남 인민이 승리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사실이었지. 그런데 방금 내가 열거한 것과 같은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때늦은 자기비판을 듣고 보면, 하나도 불가사의한 거시 없다는 것을 깨달을 거에요. 한국인들은 미국의 물질적 힘만을 이해할 줄 알고 그것에 의존하려고만 하지, 그 물질적 힘을 제외한 나머지의 그 많은 요소와 덕성을 지닌 약소민족 인민대중이 지니는 힘을 불행하게도 이해하지 못해요.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을 오로지 미국의 사고방식에 길들여져버린 한국인들은 진정으로 강력한 인간의 사상과 힘을 모르고 있어! 이것이 한국인들 머릿속에 긴 세월에 걸쳐서 주입된 미국식 사고방식의 해독이라고!-355쪽 접기 - 전진하는청년
나는 '구체적인 상황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구체적 행동'이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섬세한, 마치 학문적인 정밀성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자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론'으로 세분화한 말들은 당면한 상황의 극복에는 다분히 비생산적인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비치더군 ‥ 세계의 정치개혁운동사에서, 어느 나라 경우에나 큰 공통점이 있어요. 즉 우익은 이권으로 뭉치고 좌익은 이념으로 모이지만, 동시에 우익은 이권분배의 크기로 분열하고 좌익은 이념을 지나치게 정밀화`세밀화하는 '작음'의 고질적 아집 때문에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에요.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나요?-624쪽 접기 - 전진하는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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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사를 그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살아낸 리영희 선생님.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대학 시절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등을 통해 선생님은 준엄한 교훈으로 내 청춘을 흔들었다. 이 책은 리영희의 회고록인데, 뇌중추 신경계의 이상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어 직접 글을 쓸 수가 없어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대화 형식으로 인생을 풀어낸 글이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겐 리영희가 ‘사상의 은사’로 자리매김되지만, 청년들에게도 이 책이 유효할까?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질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유효하다. 출판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20대에서 70대까지의 세대를 아우르며 서가에 놓이는 명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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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리영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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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졸업했으며,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고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었고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도쿄대학교 초청으로 사회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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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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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문학』을 통해 『장용학론』(1966)으로 문학평론가가 된 후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월간 『독서』 등 잡지사 주간을 지냈다. 유신통치 때 두 차례에 걸쳐 투옥, 석방 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를 지냈고,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 참여, 부소장·참여사회 아카데미 원장 등을 거쳐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창조와 변혁』, 『민족의 상황과 문학 사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불확실 시대의 문학』,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문학가 임헌영과의 대화』(대담 유성호) 등과, 리영희의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담을 맡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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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지은이)의 말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짧지 않은 나의 인생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다. 회고록의 통상적 형식인 본인의 일인칭 서술이 아니라 '대화'형식인 까닭은, 개인사적 사실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질문자와의 비판적 토론 방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얽혀서 진행된 국내상황과 시대정신, 20세기 인류사적 격동의 의미와 가치를 나의 세계관의 모색과 더불어 음미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상사'적 담론이 전체 내용의 절반을 이룬다. 책이름을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으로 한 연유이다. - 리영희 (지은이)



출판사 소개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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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지구 관찰자의 기후 노트>,<고백록>,<타키투스의 역사>등 총 699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862,327점), 미술 이야기 15위 (브랜드 지수 29,373점), 철학 일반 17위 (브랜드 지수 31,37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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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어요 좋은책예요
대박나무 2022-02-20 공감 (0) 댓글 (0)





































이 책을 왜 샀을까. 솔직히, 난 가토 슈이치라는 지식인을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무식..ㅜ).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자서전' 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서전이라는 종류의 글에 관심이 많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글을 쓰는 현재의 자기를 만든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 이런 일들이 내게는 늘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자서전'이라고 붙은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고 대부분 읽는다. 이 책도 산 지는 꽤 되었으나, 결국 이제라도 읽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인 지식인이고,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가토 슈이치의 知人들은 일본 사회에서는 저명한 사람들일 수 있으나 나는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역자의 각주를 읽고서야 아 일본 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정도의 감상이 있었달까. 그러니 읽는 속도가 대단히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인생에 잘 읽혀지지도 않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는 책.



하지만, 이 책은 읽을 만 했다.

아니, 읽기를 잘 했고 꼭 추천하고 싶다.



1919년에 태어나 21세기 초입에 사망한... 그러니까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부터,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일본의 부흥 등등을 다 겪어낸 전후 세대로서, 가토 슈이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주변인으로서의 지식인이었다. 정치활동을 한다거나 어디에 적을 두고 계속해서 뭔가를 한다거나 목소리를 드높여 자신의 생각을 강변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일본과 해외를 부유했고 거기에서 본인이 느꼈던 것들, 본인이 의구심을 가졌던 것들을 글로 계속 써나갔을 뿐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있었으나 40세에 버리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충실히 살았던 사람. 그러나 정치적인 동물은 아니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인생을 담담하면서도 그러나 일관된 태도로 잔잔히 기술하는 능력이 있어서, 사실 별다른 이벤트가 빵 터지는 내용은 없었음에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생계의 목적으로 택한 직업인 의사를 하면서 주변에 훌륭한 지식인들을 계속 두고 교류하며 자신을 만들어나갔다.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 궁금해하던 것들을 해결하고자 외국으로 홀연히 떠났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나라들을 다니게 되었고, 그럼에도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늘 고민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속성과 역사 앞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으로서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작들이 몇 권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다.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을 읽고 나니, 그가 직접 쓴 책을 읽고 싶다는 바램이 생겨 몇 권 보관함에 집어 넣는다. 그의 인생을 읽으면서 문득, 리영희 선생이 생각났다. 이 글 <대화>라는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뭣 때문일까를 생각해보니, 가토 슈이치와 리영희 선생 모두, 그 시대에 특출난 지식인이었고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진실과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사람들이었으며 나서서 투쟁을 울부짖기보다는 글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지식인이란 과연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






















































비연 2017-04-10 공감 (24) 댓글 (2)



책 표지에 써있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란 글이 눈에 들어 온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의 책을 뒤 늦게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들 또는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 에도 안나오는 생생한 체험을 선생을 통해 뒤늦게 알게된 내 자신이 무지한 것이 창피할 따름이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알려준다 지나온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와 미국 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촘스키선생이나 보네거트 선생이 비꼬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있는 책이다
우리가 알아야할 역사 바로 잡아야할 역사 에대해 진실 이라는 두글자에 사실이라는 글자를 덧 붙이고 싶을 뿐이다




p717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p586 남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기우는 것은 남이 나라를 무너뜨리기에 앞서 그나라의 군신이 스스로 먼저 나라를 기울게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혹은저녁에☔ 2016-06-18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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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 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리영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책꾸러기 2010-04-19 공감 (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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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날 수 있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사상의 은사, 리영희 교수. 역사와 철학과
yiwoogi 2009-01-12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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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필독서!
2008-07-22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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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청보리 2010-08-05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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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 좀 읽고 우리의 현대사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웁시다~~~
칭찬고래 2010-09-02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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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온 한 지식인의 한평생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crimson88 2009-05-21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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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노노티스 2009-12-01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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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꼭 간직하고 싶어서 읽었던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지인의 선물을 위해 새롭게 다시 구매를 합니다. 아직까지 이 책을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꼭 권해주고 싶습니다.
dream-island 2013-12-21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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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오늘 다시 꺼내 읽으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반딧불이 2010-12-06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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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우리 세대의 지식인
거북이 2011-08-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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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에 가슴을 들이대기



나는 리영희를 때로 이영희라 불렀다.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아니, 그의 사상의 세례를 받아야 할 만큼 사회와 맞닿아 있는 지점의 자유를 갈구하는 절박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자잘한 현실을 관념의 구역에 밀어넣고 슬쩍 눙치며 방관하기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비겁했다,고 고백할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를 펼치게 되었다. 잠들기 전 책 속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던 그의 말들은 밤이면 나의 머리와 마음을 뛰어다니며 흔들리는 배를 탄 듯 멀미를 일으켰다. 그건 걸핏하면 용공분자로, 빨갱이로, 의식화의 원흉으로 매도되었던 그가 회고하는 75년간의 삶이 결국 나의 피를 타고 흐르는 의식의 혈육적 문화역사를 재생하고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일은 결국 '우리'와 '과거'를 두루마리 풀듯 주루룩 펼치지 않으면 막다른 한계에 머리를 박고 돌아서고 또 되돌아서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지식인과 지성인의 경계

기능적인 지식인에서 현실로 포박해 들어가는 지성인이 되는 길에는 아주 얇은 경계막이 있다. 그 막을 찢는 일 그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용기백배해서 그 막을 찢어 발겨 버리고 난 뒤 우리는 우리 삶의 파열을 때로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지성인이 되는 일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제물로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일과 다름아니다. 편안하고 그럭저럭 굴러가는 나의 일상들과 그 일상들에 저도 모르게 깊이 몸을 담그고 있는 나의 전존재가 일거에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하나에 우리는 주춤하고 그 경계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그 막을 통하여 고통스럽게 '현실'을 엿보는 일은 비겁한 지식인이 감수해야 할 하나의 천형이다. 종국에는 우리는 아파하지도 않고 스리슬쩍 염탐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타락'의 한 형태다. 알았기에 그리고 그 앎에 멈추었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지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앞에 펼쳐진 형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다.
-p.7

리영희는 1977년 저서들로 인한 반공법 위반으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던 기억을 30년이 지나간 뒤에도 잊지 못한다. 대공분실 옛자리인 남영역 앞을 지나가면 지금도 소름이 돋아 눈을 감는다고 한다. 그 형벌은 기억을 통한 감각까지 점령하였다. 진실 앞에서 행동하는 일은 이렇게나 처절한 자기희생적 투신을 요구한다. 나는 그럴 수 없고 그러지 못할 것이다. 대신 그의 희생이 남긴 열매를 생래적으로 얻은 권리로 여기고 주머니에서 흘러 떨어져도 주워담지 않고 그저 지나가 버리는 그런 무감각을 이제는 흔들어야 겠다. 그것은 산모가 흘린 피가 얼룩진 강보에 싸인 것이다. 시선을 맞추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보듬고 키워야 한다.



인간 그 본질로서의 무게

그의 인간관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유는 '인간' 생명의 원초적 본성이며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 사회적 조건'이라고 얘기한다.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식으로 조화 통합하여야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준다. 인간의 하반신적, 동물적, 물직절 조건을 자본주의로, 상반신적, 인간적, 정신적 자율성을 사회주의로 담아내어 그 둘을 조화시켜 나가려는 노력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습은 여즉까지 그를 빨갱이라고 낙인찍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철저히 오해하고 그의 사상을 오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공산주의도 반공주의도 사상적 자폐증으로 곧 자살이라고 비판한다. 인간의 본성에도 또 그 본성이 충족되고 난 다음의 연민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연대에도 그의 시선은 머무른다.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일이 때로는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기주의는 결국 자멸로 이르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신념처럼 고수하다 쓰나미처럼 연이어 경험해야 했던 그 비극의 현장에서 그의 얘기는 깊은 울림을 가진다. 완전한 자유는 타인과의 경계 위에 걸처져 있다. 손을 잡지 않고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의 못남을 돌아보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권력에 빌붙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고스란히 미군정의 권력 대리자로 등용되어 분단을 고착화하고 극우 반공주의의 폭압성으로 민족의 주체성을 갉아 먹고 제국주의에 철저히 유린 당하고 있는 역사적 과거에 대하여 그는 통탄한다.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으로 그들의 것은 그들의 것으로 돌려 주어야 하는 그 기본적 일이 이렇게나 요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질곡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뼈아프게 방증한다. 우리 손으로 찢어야 하는 노비문서, 우리가 우리의 못남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긍정으로 재탄생하는 그 필요불가결한 과정을 망실하고 우리의 상황은 언제나 지극히 가변적이고 의존적이며 불투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고 자학한다. 이건 차라리 하나의 업 같다.

그는 민중적 공감과 저변의 대중 속 운동의 목표와 방향, 행동양식이 상향적으로 기능했던 모택동식 사회혁명에 감응하는 바가 컸다. 또한 마치 닮은꼴 복제처럼 미국의 분단획책에과 이간질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베트남이 결국 너무나 자명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지도자 호지명의 기치 아래 통일을 이루어 내고 말았던 사례에 경도된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그가 국내 정세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는 하나의 등불이 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역사의 전진을 믿는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인간 본질에 대한 긍정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대한 명철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나름의 문제의식, 분석으로 가공한 그의 글은 진실을 나누고자 했던 그의 소망의 결실로 민주화투쟁의 도화선이자 사상적 지주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서문 중



고통을 무릅쓰지 않고 다가갈 수 없는 것들을 듣는 일은 힘들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면죄부를 주어야만 견딜 수 있는 우리네 같은 범인들에게 그의 생은 하나의 비수 같다. 그럼에도 가슴을 들이대는 것은 읽는다는 것이 그가 우상에 도전하고 민족적 미신에 도전한 일을 조금이라도 나눠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의 삶을 들어야 한다. 듣고야 말아야 한다.

p.s. 분량과 내용면에서 얼핏 지루한 첫인상을 줄 수 있는데 막상 읽게 되면 그의 입담과 드라마틱한 삶, 편집의 미덕이 어우러져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잊게 된다. 1929년 금광으로 유명한 평북 운산 북진에서의 출생으로부터 최근까지의 그의 삶이 현대사와 어우러져 펼쳐지는 장대한 드라마는 하나의 대하 소설 같다. 현대사에 대한 갈증도 더불어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말과 글이 일치하는 리영희가 쉽고 체계적으로 역사적 사실들의 얼개를 짜 보이는 일은 하나의 감동적인 강의를 듣는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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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9-14 공감(32) 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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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대화

책 표지에 써있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란 글이 눈에 들어 온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의 책을 뒤 늦게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들 또는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서 에도 안나오는 생생한 체험을 선생을 통해 뒤늦게 알게된 내 자신이 무지한 것이 창피할 따름이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알려준다 지나온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와 미국 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촘스키선생이나 보네거트 선생이 비꼬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있는 책이다
우리가 알아야할 역사 바로 잡아야할 역사 에대해 진실 이라는 두글자에 사실이라는 글자를 덧 붙이고 싶을 뿐이다




p717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p586 남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기우는 것은 남이 나라를 무너뜨리기에 앞서 그나라의 군신이 스스로 먼저 나라를 기울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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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16-06-1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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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계를 견고히 만드는 독서와 분석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세계사 속에서, 그러면서도 개별적으로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한 책이다.

리영희 선생의 글과 사상에 '정확하다'는 수식을 달 수 있는 건 그만의 철저한 고증과 자료분석, 그리고 방대한 양의 관련 서적에 대한 독서에서 글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국제정세 분석은 날카로우면서도 풍부했다.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선생의 글과 저서들이 필독도서로 여겨지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된다.

이름난 지식인 대부분이 35세부터 40대 중반까지 가장 왕성한 독서를 한다던 글이 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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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 2006-06-20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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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면 꼭 읽어야 할 ... 리영희 선생님



의식화의 원흉, 진실의 목탁...

리영희 선생님. 우리 시대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판단한 그놈들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내가 대학 들어가서 읽은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은 좀 관념적인 글이었고, 동녘편집부의 <철학 에세이>는 '이게 뭐 철학이지? 좀 허술한데?' 하는 생각을 들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읽은 선생님의 <전환 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분단을 넘어서>같은 책들은 나의 <절대 데모를 해서는 안 된다>던 무식한 주관을 일거에 무너뜨린 책들이었다.

그분의 역작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베트남의 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온 것은 과연 무엇인지... 아직도 <국익>을 위해서 이라크에 부대를 파견하는 무지 몽매한 친미 정권이 지배한 어리버리 한국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우린 베트남을 짓밟았고, 베트콩을 쏴죽였다는 '김상사들'의 새카만 얼굴만 보았지 그들의 몸 속에 묻어온 고엽제와 그들이 뿌리고 온 '2세들'의 슬픈 역사는 뒤켠에 감추어 두었던 역사를 배웠다.

푸에블루호 사건이라든지, 유신 시대의 삶을 접하다 보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한국 현대사라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했던 그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의 글로 읽지 못하고 몸이 불편해 져서 임헌영과 대화 형식으로 엮인 글이다 보니 좀 뻣뻣하긴 하지만, 740페이지에 달하는 인생 역정은 나의 피를 들끓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한다.

일제가 물러가고 난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은, 4.19의 호기를 군사 정권의 쿠데타로 놓치게 되고, 1980년의 서울의 봄마저 광주의 피를 부르고 무위로 돌려버렸으며, 6.29의 뜨거웠던 열기도 보수 반동들의 단일화 후보 실패로 식어져 버리고 말았다.

리영희 선생님은 자꾸, 우리 민족의 저열함이 아닌가, 너무 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자위하며 살지 않는가 걱정하시지만, 역사를 읽으시는 분이시니 다른 나라들의 좋은 기회에 비해서 우리 나라는 더 좋은 조건들을 더 악조건으로 만들어 버린 오욕의 역사가 더 안타까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냉전 지대, 21세기 유일한 분단 지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늘 저자세로 고개 수그리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존경할만한 지도자가 없었다기 보다도, 그런 지도자가 될 법한 사람들은 반드시 제거를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숨어서 읽었고, 경찰서 대공과에서는 <해전사> <전환시대의 논리> <민중과 지식인> 같은 책들을 의식화 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시절에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했던 분야를 이제라도 차근차근 읽고 싶은 욕망을 부른 책이다. 그런데, 촛불 시위에는 긍정적이지만 또한 축구판에서도 열정적인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책을 읽기나 하려는지... (요즘 젊은이 걱정하는 걸 보면 나도 늙은이 축으로 가고 있는 모양^^)

장차 외교 무대에 서고 싶다는 작년 우리 반 반장 녀석이 지금 재수하고 있는데, 올해 학교를 잘 가면 이 책 한 권 선물해 줘야겠다. 외교 무대에서 알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이 책엔 무진장 묻혀 있는 것 같으니깐.

숱한 필화를 겪으시고, 5년 전 쓰러지셔서 이제 더 이상의 저술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부지런히 강연도 하시고 다니실 때, 한 마디라도 더 배우고 싶은 분.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양심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읽은 주말은 가슴 뿌듯하다.

선생님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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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0-15 공감(1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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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대화

🖊 리영희, 백기완, 신념에 따라 변함없이 살아내는 가치.


📖 그래서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둘째 월남민이 아니고 또 그것을 자처하거나 그렇게 행세하길 거부하고, 셋째 그런 월남인들의 미국숭배 반평화주의를 일관되게 외면하고 살아왔어요. 더욱이 남한에서의 망국적 지역갈등과 지역대립, 반문화의 극치인 매카시즘적 ‘색깔시비‘를 혐오하기 때문에 그들과 그런 조직은 물론 그것들의 생활문화와도 거리를 두고 살아왔어. 지금도 그래요. 몇 해 안 남았지만 죽는 날까지 그럴 거예요.

📖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소련의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카이로선언과 포츠담협정으로 일본 패망후 그 식민지인 조선민족의 즉시독립을 제안했지요. 그러나 영국의 처칠은 철저한 제국주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조선인의 자치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로즈벨트 대통령은 조선인을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인민의 수준으로 간주해서 적어도 30년 동안은 신탁통치를 하고 난 뒤에 자주독립을 허용하자는 주장이었어.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도 모르는 한국사람이 많아요.


#대화 #리영희 #임헌영 #한길사 #지식인 #백기완 #RIP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머리쓰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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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쓰기&글쓰기 2021-02-21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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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의표본 리영희선생



우리는 한시대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민속에서

살게된다 어떤이는 자기개인을 위해 어떤이는 나라를위해

또 어떤이는 고통받는 대중을 위해 기타등등 참으로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생각를가지고 살라가는 것이 세상살이다

나는 이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최고 논객이며 최고의 지성인인

리영희선생의 대화란 책을 통해서 통해서 우리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긴

이인생의행로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알려주고 고민을 던져준다

또 우리의현대사를 방대한 자료와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고로

저술된이책이 독자로 하여금 역사인식을

한단계 끌어올릴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남녀노소 할것없이

중학교이상의 나이면 반드시 일독 할것을 권한다

이책은 리영희선생의 건강이 회복되긴했으나 2000년 중풍으로쓰러지시어

아직 오른손이 많이 불편하여 엽서 한장 정도 펜으로

기록할수 있을뿐 방대한 논문 형식의 저술은 불가한 까닭에 대화 방식으로

하여 구성된것이다 대담의 상대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선생이다

이분 또한 우리나라 진보적 문학평론에 태두라 해야할 정도로 객관성 있는 분이다

이책을 내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필요로했다고 한다

대화 문체이기에 개인저술로 소홀 할수 있는 부분 보완할수 있다 정말

급변했던 우리현대사를 곰곰히 되씹을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다

리영희선생이 저술한 모든책이 우리의 등대가 되어왔다 선생이 살아온

인생의역정을 거의 다 담은 이책은 읽는 이로하여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할것이다

이대화란 책을 통해서 우리의 우방(?) 미국에대하여 그리고 중국 ,베트남 ,일본,이북

주변국가에 대하여 많은것을 부정에서 긍정을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꾸는 동기가

될것이다 그리고 선생의개인사는 우리의 개인사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선생의 지독하리만큼 자기관리에서 우리진보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본받아야할점과

독서편력등 이루 열거 할수 없는부분을 책을 일독 아니 두번세번 읽으므로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엄청나리라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생께서 우리곁에 있어 늘 혼돈의 의식을 일깨워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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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야재 2005-06-26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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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의 만남


리영희의 '대화'를 읽고 - 21세기와 20세기의 대화


‘연세대학원신문’이 1999년에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는 특집으로 마련한 ‘20세기 인문과학분야에 영향을 끼친 학자와 저작’에서 1위는 리영희였다. 그 이유는 ‘1970~80년대 한국 변혁운동의 중심이었고, 폭압적인 시대상황에 맞서 싸웠고, 70년대의 냉전주의적 사회분위기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 놓은 학자’라는 점이다.
리영희 스스로 마지막 저서라고 밝힌 인생역정이 담긴 회고록 ‘대화’는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대화형식을 빌린 자서전이다. 고은 시인은 “눈물바람도 하고 통쾌하게 웃기도 하면서 읽어 내려간 이 책은 ‘우리시대 진실의 서(書)’ ”라면서 “해외여행때마다 늘 챙기던 ‘괴테와의 대화’ 대신 우리 형님의 ‘대화’를 꼭 갖고 다니겠다”고 말했다.

리영희를 통해 만나는 20세기의 젊은이와 21세기의 젊은이
‘대화’는 70~90년대 청년, 학생, 지식인들이 독재정권이 숨기고 왜곡한 진실을 찾아 나가는 그 시대의 고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대화’는 리영희와 임헌영의 대화가 아니라 21세기와 20세기의 대화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20세기에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로 삼고 살았던 젊은이들의 고뇌와 대화이다. 리영희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현대사에 새겨진 진실찾기의 수난과 기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70~90년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정신적, 지적, 사상적 영향으로 리영희의 저서를 지적하였다. 그로 인해 리영희는 수많은 재판의 증인으로 지정되어 증인대에 서야했다.
리영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진리를 위해 청춘을 불사르며 살았던 젊은이들이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의 젊은이들은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지만 지금은 그때와 시대가 다르다. 다른 시대적 경험을 한 세대들이 21세기에 함께 살고 있다. 리영희의 ‘대화’는 다른 시대적 경험을 한 세대들을 소통시켜줄 통로가 될 것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온갖 고통을 겪어야 했던 과거와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지만 ‘역사가 복사된다’는 말은 아니다. 과거와 대화는 오늘의 삶의 지혜를 제시해주면서 역사를 새롭게 읽게 한다.
리영희는 분단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반공, 반북, 친미, 친일, 호핵(好核), 군비확대 등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민중을 계몽하면서 시민사회를 확대시켜온 실천적인 지식인이다. 70~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리영희의 날카로운 분석을 통하여 세계을 인식하면서 가치관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리영희는 청년,학생,지식인들에 의해 ‘사상의 은사’로 불렸다. 한편 그 반대편에 있는 세력들에게 리영희는 ‘의식화의 원흉’일 뿐이었다.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로 따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리영희의 저술들이 인구에 회자될수록 리영희에 가해지는 핍박의 고삐가 더 강하게 조여졌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한국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에게 해직과 구속이라는 수난이 뒤따랐지만, 리영희는 그 고난의 길에서도 진리를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9번의 연행, 3차례 옥살이 등 '야만의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새는 좌우로 난다’, ‘반세기의 신화’ 등 12권의 저서와 ‘8억인과의 대화’ 등 3권의 편역서를 냈다.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부각할 경우 객관성을 상실할 수도 있으나, ‘사상의 은사’인 리영희의 영향에 대해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필자가 겪은 세차례의 계기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입학시기이다. 1983년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는 광주의 80년 5월을 겪으면서 이미 사춘기를 잃고 성장한 상태였다. 대학생활이 인생의 새출발이라고 산뜻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와 진리를 갈망하였지만, 귀가 막힌 시대였기 때문에 지적 방황과 갈등의 혼돈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수동적인 삶을 받아들이는 자기 모순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접하였다. 특히 베트남전쟁에 대한 논문을 읽고 난 후 머리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듯했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진리를 추구해야한다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리영희의 논문을 집약한 것이 1994년에 두레출판사에서 발간한 ‘베트남전쟁’이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10년만에 나온 이 책에는 베트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학문적 성취가 집약되어 있다”고 회고하고 있다.
두 번째, 대학졸업 후 사회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인생의 전환을 가져온 글을 접한 것이다. 1988년에 ‘사회와 사상’ 창간호에 실린 리영희의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이다. 이글은 당시 젊은이들이 ‘북한의 군사력 우위’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불신과 증오와 대결을 재생산하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 80년대후반부터 한반도 평화와 군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적인 근거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이 논문에 대하여 “역대 군부독재정권과 그 권력기반인 광적인 각종 극우반공세력이 그들의 영구집권을 위해서, 북한의 군사적 우월성을 부당하게 과장하고 고의적으로 대북한 공포 불안 의식을 조성하던 시기에 그들의 주장이나 선전이 진실이 아님을 논증하려고 발표한, 그런 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온 공개적 연구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으로부터 위협’이라는 한마디는 우리 사회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찬물을 끼얻고 만다. 북한의 위협이 유일하게 독재정권의 존립기반이었던 1988년의 시대상황을 연상한다면 리영희의 한편의 저술이 미친 파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결혼식이다. 리영희는 필자의 결혼식 주례사에서 ‘부부간에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 이해할 것’, ‘정신적, 도덕적, 인간적 내면의 위대함을 달성할 것’, ‘근검절약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일상생활속에서 리영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고 리영희가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리영희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된 것은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때문이다. 실천적 지식인은 시대적 과제라는 가치의식을 가지고, 시대적 과제에 허위의 장막을 씌우는 것과 싸워야 한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리영희가 ‘인간 상호간의 배려와 이애’, ‘정신적, 도덕적, 인간적인 내면의 위대함’을 강조한 것은 의례적인 축사가 아니다.

리영희 사상의 바탕은 휴머니즘
리영희의 인간관을 잘 알 수 있는 글이 1988년 11월 6일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당산시민을 위한 애도사’라는 칼럼이다. 당시 리영희의 칼럼이 한겨레신문에 실리면 서울시내 신문의 가판판매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 1976년 중국의 공업도시 당산에서 대지진이 났던 바로 그해 가을 뉴욕에서 12시간 정전이 되었다. 당산대지진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질서가 유지되었고, 뉴욕은 사람은 안죽고 정전만 되었는데도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상황을 비교하면서 사회체제와 인간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리영희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애(人間愛)였다.
임헌영은 ‘대화’에서 리영희에게 ‘당산과 뉴욕의 비교’를 예로 들면서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드러난 인간이 이기심과 탐욕에 대해서 묻는다. 리영희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에 호소하는 방법과 제도로 물질적 생산을 극대화시켰고 그것으로 승리했다”고 답한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인간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조화속에서 가능하다는 지적을 잃지 않는다. 사회적 허구에 대한 리영희의 날카로운 비판은 인간의 자유의 확장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리영희는 진정으로 자유인이 되고자 했고, 허위와 우상에 대한 비판은 비록 고달프긴 했지만 리영희를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비판의식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진리찾기의 험난한 길에 나섰기 때문이다. 리영희는 자유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천적 지성인이 바로 자유인이다.
리영희는 대화에서 “지식이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죽은 지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요, 삶의 목적은 ‘진실의 추구’였다고 말한다. 그 배경은 휴머니즘인 것이다.
대화에서 리영희는 노신에게서 ‘글쓰는 기법, 문장 미, 속에서 타는 분로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곡법으로, 때로는 비유,은유,풍자,유머,해학,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기법’을 배웠다고 밝힌다.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리영희의 사상은 지적인 내용은 그 자체로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의 실천방식과 결부됨으로써 비로소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이데올로기 비판에 대한 리영희의 학문적 사상적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실천방식 역시 그의 사상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그의 날카롭고 간명한 문체는 그의 실천방식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노신에 대한 천착과 노신의 잡문쓰기를 리영희식 글쓰기로 발전시켜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많은 민중을 깨우쳤던 그의 글쓰기 방법에는 노신과 마찬가지로 민중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리영희가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한 것은 전쟁이나 군사력이 가져오는 인간파멸의 반인간적 속성에 대한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한국전쟁을 비롯한 7년간의 군대생활에서 그가 느낀 반인간성은 그이 저서 ‘역정’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가 전쟁과 군사주의를 반대하고 베트남이나 아랍민족과 같이 전쟁을 겪은 제3세계 민족에게 애정을 표현한 것에서도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는 이미 1988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간한 ‘나의 청년시대’라는 부제를 단 자적적 에세이 ‘역정’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다. 역정은 소년시절부터 시작하여 1963년으로 끝난다. 리영희가 수많은 저술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우상을 비판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성을 회복하게 하여 사상의 은사가 되었던 70년대 이후의 시절을 다루지 않고 있다.
리영희는 ‘역정’을 쓰게 된 이유로 지적 삶의 종말을 의미하는 처참한 체험은 들고 있다. ‘대화’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배후조정자가 되어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리영희는 그 체험 이후 자신의 삶을 밝히는 글로서 지적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결심을 한다. 그 절대적 고독감에서 출간한 책이 ‘역정’이다. ‘역정’의 서문에서 리영희는 “(1963년 이후) 나머지 부분은 혹시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훗날 채워넣을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약속은 ‘대화’가 출간됨으로써 지켜졌다. 물론 그의 자발성보다는 후학들의 강권(?)과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 육체와 지적능력, 언어능력에 손상을 입었다가 4년이 지나는 사이에 조금씩 회복되었다. 직접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라는 형식으로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 활자화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소년이 한시대의 위대한 스승으로 깨어있는 자들의 우러름을 받기까지 그 역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살아 숨쉬는 우리의 20세기 역사이고, 압제의 시대를 살았던 민중에게 주어진 ‘빛과 공기’에 대한 증언이다. 리영희가 조광조를 보내고 이퇴계를 맞는 심정으로 열정의 삶에서 관조의 삶을 보내며 되돌아본 현대사에 대한 성찰이다.

함께 읽을 책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이삼성, (한길사, 1998)
전쟁과 평화, 인간의 비극에 관한 정치적 성찰.
이 책은 현대사에서 인류가 겪어온 전쟁과 그것이 내표한 야만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고,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역저이다.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 일본의 군국주의, 보스니아와 르완다 비극 등 20세기의 절망적인 사건을 고찰한다. 베트남 전쟁과 핵숭배 문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야만을 내포한 문명 전반의 기초로 작용하는 사유의 원리들을 반성하고 우리의 선택과 판단으로 변화시켜나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역정”, 리영희, (창작과 비평사, 1988)
한국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성인 리영희의 청년시대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
식민지 시대의 조선소년이 일제말기의 중학시절에 민족의식이 싹트면서 성장해온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으로서, 전쟁의 회오리와 4.19혁명, 5.16 구테타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의식있는 젊은이가 어떻게 겪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떤 성장 소설 못지 않게 감동을 주고, 어떤 역사교과서 못지 않게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새는 좌우로 난다”, 리영희, (두레, 1994)
리영희의 첫 번째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20년이 되는 해에 ‘전환시대의 논리 그후’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일곱 번째 평론집. 그의 평론집이 당대의 허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들이 이미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글을 다시 읽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리영희는 말한다. 그러나 이 1994년에 쓰여진 이 책을 읽다보면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을 이해하는데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 (두레, 1994)
리영희가 베트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학문적 성취가 집약되어 있다고 회고한 저서. 베트남전은 20세기 현대사에서 스페인전쟁과 함께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두 전쟁이라고 일컫어지고 있다. 20세기 동서양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는데, 왜 베트남 전쟁이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인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미국의 각종 비밀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의 모든 갈등요소가 뒤범벅이 된 베트남전쟁을 평가하였다.

“문익환 평전”, 김형수, (실천문학사, 2004)
순수의 결정체, 이 시대 민중의 마지막 어버이 문익환 목사의 일대기.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는 말씀이 다시 들려온다.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 있는 문익환 목사의 삶을 통해 100년의 한국근현사를 살린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를 역사속에서 다시 살리는 일이다.

“역사의 언덕에서”, 강원용, (한길사, 2003)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원로의 현대사 체험.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설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온 사회원로의 현대사 체험담이다. 어느편은 절대선이고 그 반대편은 절대악이란 사고방식은 옳지 않았다고 보았기에 이를 해소하고자 대화로 각방면의 화해의 길을 열기위해 노력한 필자의 가치관이 녹아 있는 현대사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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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ri 2006-04-2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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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의 대화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생이나 스승으로 부르며 존경을 표할만한 사람이 있을까? 김구 선생이나 장준하선생처럼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을 제외하면 단연 리영희 선생이 떠오른다. 대담형식의 회고록인 대화를 읽으며 그간 몇몇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해왔던 그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는데 기쁨 그 자체였다. 스승은 어떠한 사람일까? 내 생각에는 인품과 사랑, 자애를 통해 사람들을 품는 고결한 스승, 지식과 지혜를 통해 사람을 일깨우는 각성의 스승이 있지 않을까 한다. 리영희 선생은 아마 각성의 스승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선생은 일생은 그야말로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반공주의와 맹목적인 국가주의에 온 국민이 세뇌되어 있을 때,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에 눈을 돌려 격변하는 세계정세를 연구하고 진실을 알리는 작업을 일관되게 해온 것이다. 극우에도 극좌에게도 치우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세계의 흐름을 잘 알았고, 우리나라의 처지와 미국, 중국 등 주변정세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과 진실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와 세계인에게 알리는 실천적 지식인의 자세는 그야 말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70-90년대를 살아가면서 인간과 국가, 그리고 세계를 고민했던 이들이라면, 리영희 선생의 저작이 얼마나 날카로운 고통을 주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세뇌되어왔던 모든 지식들이 깨어지는 아픔은 아프락사스의 알의 깨짐에 비유할 수 있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초중고, 심지어 대학에서의 사회와 세계, 그리고 역사에 대해 배워온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모든 것으로 알았고, 이 이상의 진실은 없을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이제 어떠한 책들을 읽더라도 쉽게 부정되고 마는 가설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며, 심지어는 조작되고 선전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런 일일 것이다.

이를 떠나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의 근원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월남전 파병이 미국의 용병 노릇에 불과하며, 베트남의 매국노들을 돕는 일이고, 베트남 침공의 원인인 통킹만 사건이 미국의 조작이며, 그 이유는 베트남이 자유선거를 하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을 막으려고 저지른 비극이라는 점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를 인정한다면, 베트남 전쟁을 통해 친우를 잃고, 청춘과 건강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바쳤던 이들에게는 자신의 희생과 개인적 비극을 모두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아픔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이나 희생을 부추겼던 무리들에게 진실을 갈파한 리영희 선생은 부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도 불행한 존재들이 아닐까.

회고록을 통해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 분의 지사적 풍모의 기반이 평범한 상식인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 책에는 일제시대부터 근래까지 역사의 격변기마다 글과 말을 통해 사회 변화의 힘과 계기를 주었던 선생의 일들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항상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면서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던 일들이 쓰여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내가 볼 때에는 고고한 종교인적 품성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켜온 선생의 모습에서 표출된 것이다. 책에는 젊은 혈기로 못되게 굴다가 의연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반성하는 모습, 정권의 탄압에 겁먹었던 모습, 사회적 활동에만 애쓰다가 가족들에 소홀하였던 점을 후회하는 모습 등 선생의 인간적 면모와 단점도 기탄없이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선생은 평범하지만 옳은 일은 옳고, 그른 일은 그르다고 하는 상식인의 자세를 끝까지 견지해나간다. 진실과 사실이라는 그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반공주의와 국수주의 속에서 평범한 상식인의 모습이란 스스로 지사적 풍모를 띌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리영희 선생을 얻은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다.

리영희 선생의 세대에서는 중학생도 지식인에 해당하였다. 영어와 일어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었고, 많은 책들을 섭렵함으로써 인간과 세계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리영희 선생은 이공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과 언론 분야에서 이토록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점이 놀랍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이공계로 유학하였다가 인문학자로 활동한 학자들은 많았다고 한다.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넘치고 또 넘치는 현재에서, 과연 왜 학문을 공부하고, 지식인의 책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지. 어쩌면 우리는 기능적 지식인으로서 목적 의식 없이 쓸려다니는 레밍즈에 불과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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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 2006-01-30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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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참된 지식인의 삶의 무게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영희 선생님과의 대담 <대화>를 읽으면서 형언하기 힘든 정신과 이성의 힘에 압도당한다. 그 숙연함은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이라 불릴만한 리영희 선생님의 깨어 있는 의식과 올곧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경건함에서 비롯된다. 한 시대와 민족에게 있어 참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전 존재로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세기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영희 선생님이신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신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은 이 책은 나에게 올해 최고의 책이 될 듯하다.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성장하신 선생님은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한다. 그 무렵에 해방을 맞고 해양 대학을 졸업한 후 안동중에서 영어교사 재직하던중 6 ․ 25 전쟁이 발발한다. 군에 입대한 선생님은 최전방에서 통역장교로 3년을 근무하고 후방 군의학교에 전속되어 근무하다가 7년 만에 소령으로 전역한다. 합동 통신사에 첫 발을 내딛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와 세계사적 흐름을 주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와 연구를 시작한다. 60년 4 ․ 19와 61년 5 ․ 16을 겪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의식을 무장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나간다. 이후, 196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옮겨 11월에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안 기사로 구속 기소. 69년에 베트남 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제 1차 언론사 강제 해직. 군부독재 ․ 학원 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으로 제 2차 언론사 강제 해직. 76년에는 제 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1차 교수직 강제 해임. 77년에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내용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 80년 광주교도소 만기출소. 사면과 복권 되어 해직 4년만에 교수직으로 복직되던해 5월 16일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의 한 사람으로 날조되어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지만 한양대에서 2차 로 교수직에서 다시 해직됨. 84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주관 ‘각급학교 교과서 반통일적 내용 시정견구회’ 지도 사건으로 다시 구곳 ․ 기소되었다가 2달만에 석방(반공법 위반혐의). 한양대학교에 해직 4년만에 2차 복직. 이후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 공동초청 초빙교수.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주도적 참여후 이사 및 논설고문 역임. ‘한겨레신문’ 창간기념 북한 취재기자단 방북기획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 ․ 기소(당시 환갑). 추후 사면 복권. 95년 한양대학교 정년퇴직. 2000년 집필중 뇌출혈로 우측 반신마비. 이후 건강회복에 전념.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 보다도 감동적이다. 딸 미정씨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대학시절 아버지는 수정주의자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7년간의 군복무중 17살 어린 동생의 죽음과 77년 11월 27일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한 인간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와 사회적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참된 지식인이 한 사회에서 담당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어렵고 힘든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가족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따뜻한 남편의 역할을 포기한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독재정치와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리영희 선생님의 태도는 물론 차이가 있다. 외신부 기자로 본격적인 논문과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의 선생님은 주로 중국의 공산당 혁명과 베트남 전쟁,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의 해방과 독립을 목도하며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일관된 연구를 거듭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패권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엔과 미국 정부의 비밀 문서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밝히고 전지구적 차원의 미국의 힘의 논리를 밝혀낸다. 중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시대 이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포기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흐름을 짚어낼 수 있다.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를 발간한 이후 우리 사회는 리영희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여전히 그러하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관련 대학생들은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의 영향을 언급한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본문 554)”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의 영향력을 웅변한다. 노신을 존경하여 그의 사상과 태도 글쓰는 방법론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은 우리 사회의 노신으로 여겨지게 한다. “‘개인은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본문 268)”는 말 속에 인간 리영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리 속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입장과 태도마처 비이성적이라면 분명 통탄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한 시대의 선각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스승으로서 한 평생을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살아오신 선생님의 이 말이 비단 글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에게 경건한 자기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서문중에서)” - (본문 675)





리뷰의 분량이 3200자로 한정되어 덧붙이는 사족.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향을 더듬어 볼 필요는 있겠다.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얼하다고 확신해요. (본문 687)

촘스키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나 사르트르를 대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있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삶과 사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 삶의 태도와 이성적 판단력에 영향을 줄만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꼽으라면 우리에겐 누가 떠오를 것인가?

쉽사리 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거나 탁상공론에 빠지거나 지식과 이성이 삶의 태도와 현실의 모순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내가 배운것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적어도 선생님에게서 그 작은 빛과 희망을 본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살아남아 지성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책을 읽어가며 군데 군데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지만 이 몇개의 밑줄이 오히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오해할 요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만의 독서법이니 내 안에서 소화된 내용을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여 자서전 형식의 책을 위해 대담을 맡아 성실하고 적절한 대화를 이끌어 낸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 임헌영 선생님의 역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책을 추천하거나 권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지만 이 책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0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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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ptic 2006-11-0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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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가르치는 글쓰기





리영희 선생이 타계하셨던 2010년 12월에 서재에 들여놓은 책을 1년이나 묵히고 펴보았다. 그때 함께 들여논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그의 전집 가운데 6권에 이른다. 1970년대,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읽힌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 <자유인>,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21세기 아침의 사색>, 그리고 이 책 <대화>였다. 1년간 감히 펴볼 생각을 못했다. 다른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적 진실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서 였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리영희의 저서들로부터 깨닫게 될 진실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는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진실이란 깃발아래 써내려간 논평가요, 저널리스트였다. 끊임없는 탐구정신으로 세계의 시대조류를 파헤친 성실한 언론인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거치며 그는 진실을 추구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투옥과 고문을 당했고, 수차례 언론사와 교수직에서 해직당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반대편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맞춤식 글쓰기와 처세로 승승장구한 언론인과 교수들이 있었고, 그들은 리영희와 전혀 다른 영광의 길을 갔다. 그들은 훗날 장관, 언론사 사장, 고위관리로 임용됐다. 이 영화와 리영희가 멀어진 것은 단 한가지 이유, 진실에 바탕을 둔 삶과 글쓰기를 해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보기드는 고집장이 리영희는 누구인가?



리영희는 1929년 12월 2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에서 태어났다. 1942년 남한으로 내려와 경성공립고등학교와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하고 안동에서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그 해에 6.25 전쟁을 맞아 유엔군 연락장교단에서 통역관으로 3년 전쟁을 보낸다. 미국 고문관과 한국군 장교 사이의 통역 업무를 맡았던 그는 지금의 통일 전망대 근처, 향로봉 고지에서 오랜시간 전쟁의 참혹함과 군대에 대한 혐오를 경험한다. 통역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휴전이되고도, 1957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기 전 7년간이나 그는 스스로 혐오하던 군대에 잡혀있어야 했다. 군 제대후, 그는 합동통신사 외신부장과 조선일보사 외신부장을 거치며 저널리스트로서 인생을 시작한다. 엄혹한 시절, 진실을 추구하고 탐구한 리영희식 글쓰기가 시작된 지점이다.



6.25 전쟁을 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 한 이력으로 봤을 때,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영희는 최전선 전장에서 인생의 젊은 날을 보내며 전쟁의 비극과 그 원인, 이데올로기의 허상 같은 걸 배운다. 전장 고지에서 미군 고문관의 통역담당 장교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보충병으로 충원되어 전방 고지로 올라오던 병사들의 신분과 죽음을 예약한 고지전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한다. 안타깝게도 죽음이 예약된 고지전에 충원된 병사들의 신분이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돈과 빽'이 없는 사회 하층민이 대부분이었다. 리영희는 미군 고위관리들과 함께 전쟁을 겪어내며, 강대국의 계산적 논리를 배운다. 훗날, 그가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달리 미국에 대한 환상에 젖지 않고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이유다.



리영희의 자서전 <역정>을 읽은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1960년대 까지를 다루고 있는 그 책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지금껏 그 어떤 책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감히 생각해 보지 못할 이야기를 그는 반쪽짜리 자서전(삶의 전반기만을 다룬다)을 통해, 쏟아냈던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2000년 지병인 뇌출혈로 사실상의 집필 활동을 접었고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정리할 최종적인 자서전을 낼 형편과 여력이 없었다. 외국언론을 통해 그는 `사상의 은사'로 호칭되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가장 진실한 언어와 양심으로 담아냈던 그의 삶이 한 권의 묵직한 자서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큰 행운과도 같다. 민족문제연구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헌영과 대담 형식으로 된 이 책 <대화>는 임헌영이 시대순으로 굵직한 사건과 그의 행적을 회고하고 질문하면 리영희가 답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총 2년간이나 수정,퇴고 작업을 거쳐 이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700여 장의 육중한 부피를 읽어내려가며, 왜 그가 `사상의 은사'라는 별칭을 얻었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저널리스트로서 그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를 워싱턴포스트에 익명으로 기고하는 일에 전념했고, 훗날 4.19 혁명에 공헌한다. 베트남 전쟁을 분석하는 심층적인 저술,연구 활동을 통해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이 무엇인지 논파하는 글을 발표한다. 리영희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이며 한국 정치와 경제가 미국의 지배전략에 따라 좌우 되는 것을 파악해 숨은 진실에 대해 중요한 기사와 저작들을 내놓게 된다. 독자들은 한국 현대사의 숨은 비화, 여럿을 목격하고 파악하는 희열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리영희가 당시의 독재권력 하수인들에 의해, `의식화의 원흉'이란 악담을 들은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21세를 살고 있는 독자들까지도 이 책의 행간을 읽어나가며 얻게 되는 `진실'과 그 진실을 추구하는 한 지식인의 `열망', 그것 말이다.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소련의 스탈린은, 제 2 차 세계 대전 중 카이로선언과 포츠담협정으로 일본 패망 후 그 식민지인 조선민족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지요. 그러나 영국의 처칠은 철저한 제국주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조선인의 자치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의 로즈벨트 대통령은 조선인을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인민의 수준으로 간주해서 적어도 30년 동안은 신탁통치를 하고 난 뒤에 자주독립을 허용하자는 주장이었어.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도 모르는 한국사람이 많아요. " 리영희 <대화>, p. 82



박정희에 대한 리영희의 묘사는 주목할 만 하다. 이 책에 따르면 박정희는 대구사범 재학 시절 일제가 운영하던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려 하는데, 기혼자에 만 20세가 넘어 자격이 되지 못하자, <만주신보>에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란 혈서를 보내고, 그에 감복한 일본 장교들이 그를 일제 육사에 입학시키게 된다. 리영희에 따르면, 그는 일제시대엔 천황 숭배자로 민족의 배반자였고, 해방이 되자 남한의 사상적 주류였던 남로당(공산주의)에 재빨리 편승했는가 하면, 여,순 사건으로 형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사상과 충성을 맹세했던 남로당은 물론 자신의 책임으로 관리하고 있던 비밀 당원의 명단까지 미국 군정에 팔아넘긴자로 철저한 기회주의자요 변절자라는 것이다.



리영희는 또한 박정의 시대의 경제 발전을 그 개인의 성과로 돌리는 것에 반대한다. 1960년대까지 모든 면에서 앞서가던 북한을 미국은 경계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동베를린에 대항해서 서베를린을, 동독에 대항해서 서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남한을 자본주의의 `테스트 케이스' 또 `쇼 케이스'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 미국은 박정희 시절 다른 예속국가와 정부들에게 지원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물질,정치,외교적 원조를 전면적,직접적으로 제공한다. 미국은 체면을 걸고 로스토 계획에 따라 케네디가 미국의 남한 경제지원을 일본에게 대행시킨 것이다. 이것이 박정희가 정권의 목숨을 걸고 한일회담의 성사를 강행한 이유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일정한 물질적 성과를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난 정치적 지도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사실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세계적 체제경쟁 배경 때문이었다는 국제정치를 알 필요가 있어요. 게다가 한국인의 높은 교육 수준과 지적 수준이 다른 예속국의 국민들과 달랐고." 리영희 <대화>, p.295



온 몸과 이성의 힘을 다해, 리영희는 시대의 무지와 권력자들의 횡포, 반민족적 사대주의와 싸워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드는 생각은 자생적인 독재자와 강대국 미국에 대한 반감 같은게 아니었다. 그 시대의 시민, 민중, 민족의 역량에 대한 각성 같은거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리영희는 이 책 안에서 권력자와 강대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그 시대에 협업하고 동업했던 `끄나플'들과 침묵으로 일관했던 `시민'들에 대한 반성도 요구한다. 이땅에 독재와 사기 정권이 들어설 수 있던 책임을 정치 세력과 미국에만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 지식인과 언론인을 비롯한 뭇 대중이 그같은 정치구도와 세력을 허용했단 주장처럼 들린다. 이 말은 오늘날의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꼼수정권을 들어서게 한 것은 바로 우리들 아닌가? 사실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면 사기와 편법에 능숙한 지도자도 괜찮다고 자위했던 우리들 아니었던가?



"박정희 시대의 언론과 권력관계를 두고 말하면, 차라리 신문사주와 신문인이 자진해서 권력에 몸을 팔았다고 나는 생각해. `강간'을 당했다기 보다 `화간'을 한 것이지." 리영희 <대화> ,p.321



리영희는 비롯 가진게 없었지만, 뛰어난 영어실력과 통역장교로 7년간 복무하며 한국 최고의 엘리트로서 미군정의 영향력이 남아있던 남한에서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만 고쳐먹었다면 아마도 고위 관리와 장관을 거치며 일생 호의호식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거치며 꼬박 세번 투옥당해 옥고를 치르고,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다. 삼남매를 키우며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세번째 구속되었던 법정에서 방청객의 아내에게 고개를 돌려,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다 입회형무관에게 제지당한다. 조선일보 외신부장으로 있던 시절, 김대중이란 신입 직원이 들어오는데 맘에 들지 않았단다. 훗날, 그만 남고 리영희를 비롯한 많은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퇴출 당했다. 알다시피 김대중은 훗날 조선일보 대표 주필로 이름을 날렸다.



편한 삶을 마다하고 누군들 이런 고초를 겪고 싶어했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저널리스트와 지식인의 본령이 진실의 추구와 탐구에 있고, 저널리스트가 발굴한 진실을 뭇 대중과 나누는 것에 있고, 무지의 나락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에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0세기 중국 인민의 사상적 스승이자 계몽의 선구자란 호칭을 얻은 작가 루쉰을 리영희는 가장 존경하며 닮고자 했다. 그처럼 리영희도 한국 민중을 노예근성이 장악한 어둠의 장막에서 구출해 내려 노력했다. 그의 글쓰기를 통해 7,80년대 의식화 된 젊은이들이 많다. 보다 정확히 그것은 의식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땅의 지식인과 대중이 진실에 눈뜨는 기회였다. 그 시절 어떤 언론인과, 지식인도, 그처럼 온 몸을 던져 진실을 쓰지 못했다. 리영희가 언론인으로서 미래에도 존경받아야 할 이유다.



지난 5년은 언론과 역사의 퇴행기였다.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한국 외교는 미국으로 편향되었다. 네티즌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과 SNS의 통제는 진실을 추구하는 입들을 막고자하는 꼼수였다. 민주주의가 언제든 퇴행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유통시키려는 세력이 여전히 막강하며, 지식인의 곡필이 뭇 대중을 희롱하는 시대다. 리영희의 회고록 <대화>를 읽으며, 글을 쓰는 자의 태도를 배운다. `진실을 가르치는' 그의 글쓰기로부터 이 시대 책읽는 자와 글쓰는 자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진실은 남이 그저 건네주는게 아니라 찾고 탐구하는 것이며, 비판하는 가운데 다가오는 것이다. 리영희, 그를 어찌 `사상의 은사'라 부르지 않겠는가?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리영희 <대화>, p.675















2012.1.5
- 접기
개츠비 2012-01-05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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