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0

가을 꽁치, 추도어(秋刀魚)의 꿈

가을 꽁치, 추도어(秋刀魚)의 꿈



가을 꽁치, 추도어(秋刀魚)의 꿈
충북일보
미디어전략팀 기자cbnews365@naver.com
웹출고시간2022.11.29


조우연

시인날이 추워지면 과메기가 인기다. 과메기는 겨울 찬바람에 꽁치를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여 말린 것이다. 꽁치의 제철은 서리가 내리는 10월과 11월이라고 한다. 꽁치는 아가미 근처에 구멍(孔)이 있어 공치로 불리다가 꽁치로 된소리화되었다고 정약용의 『아언각비』에 기록되어 있다 한다.

가을이 제철인 꽁치. 길쭉하고 주둥이가 뾰족하며 등이 푸른 꽁치는 몸이 칼을 닮아 '추도어(秋刀魚)'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우리말로 풀면 '가을철 칼 닮은 물고기'일 것이다.

내게는 시골장에서 구입한 무쇠칼이 있다. 도마 위에 무나 대파를 올려놓고 칼질을 하다가 무심코 무쇠칼을 보니, 뾰족한 주둥이며 퍼런 등이 여지없는 꽁치였다.

추도어 꽁치를 생각하며 썼던 시가 있어 옮긴다.

전남 남원에 유명한 남원식도(食刀)가 있어. 기차레일만 재료로 삼아 숯불에 달구는 전통기법을 고수한다는 이 식도는 코베기꽁치, 가스미꽁치라 불리지.

기차의 속력으로 바닷물을 가르다보니 주둥이 끝은 예리해지고 등은 단단해지지. 그러다 꽁치들은 칼이 되고픈 원대한 야심을 품는다는구먼. 보름달이 뜨는 밤, 그물에 걸린 몇 안 되는 꽁치만이 장인의 손에 선별되어 진짜 칼이 된다고 하네.

좌판에서 대가리가 잘리고 마는 꽁치도 있긴 해. 사람들은 이 꽁치들을 秋刀魚라고 불러 위로한다네.

꽁치구이 집에서 칼이 되었다는 꽁치의 꿈을 듣는다. 주둥이 끝은 둔해지고 눈물로 간이 밴 눈알이 자꾸 흐려지는 나는 이제 막 숯불에 구워져 은박지 벗겨진 추도어인지 모른다.

소주 한 잔을 넘긴다. 남원식도가 저 닮은 놈의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려내고 있다. 빨갛게 녹슨, 잘린 대가리의 눈알이 칼등에 새겨진 시퍼런 파도 문신을 쳐다보고 있다.

어떤 꿈은 너무 차갑고 낯설다.

-시 「꽁치」 전문

칼이 되는 것이 꽁치의 꿈이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칼이 되는 꿈을 이룬 꽁치를 남원에서는 지금도 코베기꽁치, 가스미꽁치라 부르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칼이 되지 못한 많은 꽁치는 추도어(秋刀魚)라 불리며 생선구이집에서 은박지에 싸여 구워지고 있고 말이다. 그렇게 구워진 꽁치는 술안주가 되어 꿈을 이루지 못한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꽁치나 사람이나 꿈을 이루기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맹목적으로 꿈을 쫓다가 서로를 밀쳐내고 베는 일도 흔하다. 그러다 문득 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간의 삶을 돌아보면, 무엇이 꿈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근원적 이유와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보다는 경쟁과 성공에 대한 질책을 많이 받아온 것만 같다.

칼이 되는 꿈을 이룬 코베기꽁치 같은 사람을 떠올려 본다. 칼이 되지 못하고 추도어가 된 꽁치 같은 사람도 생각해본다.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지 확신할 수 없다. 칼의 꿈을 이룬 코베기꽁치가 추도어가 된 꽁치를 자르는 현실을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니체의 말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가치를 가진 꽁치가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꿀 수 있는 바다에 사는 꽁치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꽁치는 고등어랑 비슷하지만 더 작고 싸다. 근래 어획량의 감소로 올겨울 꽁치의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고 하지만, 꽁치는 서민들에게 더 만만한 식재료가 되어준다. 찬 바람이 부는 저녁, 추도어가 된 꽁치구이를 밥상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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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의 맛[ 秋刀魚の味,1962 ]_오즈 야스지로(Yasujiro Ozu)

 나무 ・ 2024. 4.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를 대변하는 대표작 중 한편이자 그의 유작. 초로의 아버지와 혼기가 찬 딸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과 가족이라는 주제를 그리고 있다.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내면이 잘 묘사돼 있다.


시놉시스

히라야마는 늙은 홀아비이자 오래된 직장인이다. 그의 남은 인생에서 특별한 즐거움이나 걱정이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저 가끔씩 퇴근길에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조촐히 술 한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조금씩 걱정이 쌓인다. 문득 돌아보니 딸 미치코의 나이가 과년하다. 정혼 상대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히라야마는 생각한다.


그즈음 히라야마는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중학생 시절의 선생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허름한 음식점의 주방장인 옛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 스승을 모시고 사느라 시집도 못 가고 훌쩍 늙어버린 스승의 딸을 보면서 히라야마는 그게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미치코를 시집보내는 데 더 공을 들인다. 우여곡절 끝에 미치코는 시집을 가고 결혼식을 마친 뒤 히라야마는 쓸쓸히 집에 돌아온다.



작품해설

1. 오즈의 말년과 제작 과정



원제는 〈꽁치의 맛〉, 영문 제목은 〈가을 오후〉(An Autumn Afternoon)다. 오즈의 54번째 영화이며 1962년 8월부터 11월까지 쇼치쿠 오후나 촬영소에서 촬영했고 11월18일 개봉했다. 오즈는 자신의 영화 후반기에 이르렀던 이즈음, 오랫동안 몸담아왔던 쇼치쿠(松竹)가 아닌 다른 제작사들하고도 빈번히 작업했다. 가령 〈부초〉(1959)는 다이에이(大映)에서, 〈고하야가와 가의 가을〉(1961)은 도호(東宝)에서 만들었다. 〈꽁치의 맛〉은 〈고하야가와 가의 가을〉 이후 2년 만에 쇼치쿠로 다시 돌아와 만든 영화였다.



이즈음 오즈의 건강과 개인사는 악화일로였다. 1960년경부터 몸의 피로함을 전보다 훨씬 더 자주 느꼈으며 1961년에는 전철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1962년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가장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86살의 노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오즈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노모와 함께 살았다). 오즈가 〈꽁치의 맛〉의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어머니의 죽음이 이 영화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1963년에 자신의 목에서 발견된 암 덩어리는 수술에도 불구하고 오즈의 목숨을 앗아갔다. 결국 그의 나이 60살 되던 생일날인 1963년 12월12일 오즈는 타계했다. 오즈는 다음 작품으로 〈무와 당근(원제: 大根と人参)〉이라는 영화를 계획 중이었지만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사후에 동일한 제목으로 시부야 미노루에 의해 완성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즈는 이즈음에야 서서히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3년 제13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오즈의 회고전이 열렸고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일본영화 특별전이 열리는 가운데 오즈의 영화가 다수 소개되어 상찬을 받았다.



2. 오즈식 형식미





오즈의 영화 인생에 있어 늘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다. 이를테면 시나리오작가 노다 고고, 촬영감독 아쓰다 유하루, 배우 류 치슈 등이 그들이다. 오즈의 유작 〈꽁치의 맛〉은 공교롭게도 정확히 이 세 사람과의 마지막 협업으로 남게 됐다.



오즈는 자신의 형식미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하는 스태프 및 배우들과의 작업을 선호했다. 그만큼이나 오즈의 형식이라고 부를 만한 특별하고 견고한 것들이 많았다.



일명 ‘다다미 숏’이라고 불리는 낮은 카메라앵글을 비롯하여 고정된 카메라, 시선이 맞지 않는 편집 방식 등 수없이 많은 형식이 지금까지 오즈의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오즈는 자신의 영화에 형식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화 매체의 변화에 늘 심사숙고하는 편이었다. 그 점에서 그가 자신의 영화 세계 말년에 이르러서야 받아들인 한 가지가 있다. 컬러영화다. 오즈는 컬러가 유행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컬러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실은 그의 뜻이라기보다는 제작사의 강력한 요청에 가까웠다. 〈피안화〉(1958)가 그의 첫 번째 컬러영화다. 그리고 오즈의 컬러영화는 모두 합쳐도 6편밖에 되지 않는다.



그 컬러영화들은 작품마다 미묘한 색감의 차이를 보였는데 〈꽁치의 맛〉에서는 오즈가 특히 선호했던 붉은 색감과 더불어 갈색이나 어두운 초록색, 푸른색 등이 전반적인 색조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오즈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있다. 시네마스코프(2.35:1의 와이드스크린을 사용한 영화) 화면 비율이다. 이를테면 1960년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 중 스탠더드 화면 비율(1.33:1)로 제작된 작품은 〈은령의 왕자〉와 더불어 오즈의 작품 〈가을햇살〉이 유일했다. 오즈는 유작인 〈꽁치의 맛〉에서도 스탠더드 화면 비율을 고수했다.



3. 영화의 주제와 결말





오즈가 데뷔작 〈참회의 칼〉(1927)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사극을 만든 적이 없다는 점, 대부분 동시대 소시민들의 삶을 내용으로 삼았다는 점,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홈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즈 영화에서의 주제란 늘 소시민 그리고 그들의 가족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기 무성영화 시절의 일부 장르영화 또는 무성 희극영화 시기를 지나고 유성영화 시기를 맞은 뒤 〈만춘〉을 기점으로 그런 주제적 성향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오즈가 만든 영화의 주제란 늙어가는 부모를 애처로워하는 자식, 자식의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 누군가를 잃은 형제들의 슬픔, 남편과 아내의 사랑 또는 미움 등등 가족 내에 생겨날 수 있는 영원한 애증의 문제의 반복이라고. 오즈는 가족을 일종의 작은 세계로 놓은 다음 그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또 변주하는 주제의식을 보였다. 〈꽁치의 맛〉도 거기에서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오즈는 〈꽁치의 맛〉의 가족을 도쿄의 외곽에 거주하는 것으로, 하지만 동시에 도시 중심의 분위기에 충분히 영향을 받는 지역에 사는 이들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꽁치의 맛〉에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아들 내외인 코이치와 아키코도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곤 하는데, 이들은 당시의 젊은 세대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됐다. 예컨대 아들 코이치는 돈이 없지만 마음에 드는 골프채를 사고 싶어 하고 아내 아키코는 그걸 처음엔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결국 코이치의 뜻대로 하게 둔다.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것으로 많이 손꼽힌다. 딸을 시집보낸 날 히라야마는 자주 가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퇴근했을 때마다 항상 반겨주던 딸은 이제 더 이상 이 집에 없다. 막내아들 녀석의 좀 버릇없는 잔소리만이 자신을 반길 뿐이다. 히라야마는 딸의 이층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잠시 서서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힘없고 쓸쓸하게 주전자의 물을 한잔 마신다. 그러면 영화가 끝난다. 누군가는 남아 있고 누군가는 떠나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걸 오즈는 이 장면을 통해 처연하게 보여준다. 오즈의 많은 영화 그리고 많은 명장면들 중에서도 자주 말해지는 장면이며, 〈꽁치의 맛〉의 주제를 요약해내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4. 제목의 의미

​이 영화에는 꽁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꽁치의 맛’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우선 이 영화가 가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어처럼, 일본에서 꽁치(秋刀魚)는 가을철을 대표하는 생선이다.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꽁치는 날이 추워지면 지방 함유량이 높아져 고소해진다.

​결국, 가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제목 ‘꽁치의 맛’은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철을 맞은 생선이라는 맥락에서는 결혼 적령기를 맞은 딸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가을이 돼서야 참맛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에서는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아버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주요 등장인물

히라야마(류 치슈) : 아내를 먼저 보내고 딸과 작은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욕심 없고 착한 노년의 신사다. 젊은 시절부터 오즈 영화의 단골 배우였고 특히 아버지 역을 많이 해왔던 류 치슈가 연기했다.



미치코(이와시타 시마) : 히라야마의 딸. 미우라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그에게 다른 여인이 생겼다는 걸 알고는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한다.



코이치(사타 게이지) : 히라야마의 큰 아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골프를 좋아하는 등 새로운 고급문화에 대한 욕심이 있다.



아키코(오카다 마리코) : 당차고 똑똑한 히라야마의 며느리, 코이치의 아내.



카즈오(미카미 시니치로) : 히라야마의 작은아들. 버릇이 좀 없다.



미우라(요시타 데루오) : 미치코가 마음으로 좋아하던 상대. 코이치에게 골프채를 팔고 싶어한 인물. 그렇게 히라야마 집안과 연계돼 있는 인물.



명장면 명대사

- 술집 여주인 : “검은 양복을 입으셨네요. 어디 장례식 같은 데라도 다녀오셨나요?”

- 히라야마 : “뭐 비슷하지요.”

히라야마는 술집의 여주인이 자신의 죽은 아내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이 가는지 그 집에 종종 들른다. 딸의 결혼식이 있던 날에도 집으로 돌아가던 히라야마가 그 술집에 들러 한잔 더 한다. 이 대사는 이때 눈썰미 좋은 여주인이 그가 차려입은 검은 연미복을 보고 물어보는 장면이다.



딸의 결혼이라는 경사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히라야마가 쓸쓸하게 살짝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 것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을 구차스럽게 여겨서이기도 하겠지만, 결혼이나 장례나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인생의 이러저러한 통과의례들을 불현듯 하나로 묶어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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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1963년 블루리본상 여우조연상(기시다 교코)

• 1963년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남우조연상(도노 에이지로), 여우조연상(기시다 교코), 촬영상(아스타 유하루)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년 일본][한글자막][필링박스] (naver.com)
필링박스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1962년 일본][한글자막][필링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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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영화

〈만춘〉(1949, 오즈 야스지로) : 오즈의 42번째 영화다. 〈만춘〉 역시 거칠게 보면 〈꽁치의 맛〉과 내용이 비슷하다. 홀아비를 모시던 딸이 시집가는 내용. 〈만춘〉은 히로쓰 가즈오의 소설 〈아버지와 딸〉을 원작으로 했다. 아버지 역은 류 치슈, 딸은 하라 세쓰코가 연기했다.



〈피안화〉(1958, 오즈 야스지로) : 오즈 야스지로의 첫 번째 컬러영화. 연애결혼을 하려는 딸을 말리려 하지만, 결국은 딸에게 지고 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네이버 지식백과] 꽁치의 맛 [秋刀魚の味] (세계영화작품사전 : 가족을 다룬 영화, 정한석, 김지석)


[출처] 꽁치의 맛[ 秋刀魚の味,1962 ]_오즈 야스지로(Yasujiro Ozu)|작성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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