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수정 2025-10-28
“지금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은
시대착오적… 이젠 미래세대 걸맞게
민족주의 극복한 역사관을”지금 청년들은 외모부터 앞 세대와 많이 달라져 ‘인종이 바뀌었다’고 흔히 말한다. 신세대의 지적인 활동을 가끔 곁눈질하다 보면 역시 인류 문명을 선도하는 일류 민주공화국의 성숙한 시민이 탄생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선진국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 독일의 철학과 과학기술, 영국과 미국의 세계 패권과 풍요로움을 동경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매력을 느낀 이유조차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 선진국을 추월할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신기루, 환상의 지름길에 현혹됐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보다 십년쯤 선배들, 4·19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전쟁통에 헐벗고 굶주린 기억, 미군들이 던져 주는 초콜릿을 주워 먹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친척 누나가 ‘양공주’가 돼 가족을 먹여 살린 아픈 상처를 가진 분들도 있었다. 그 세대에게 열등감을 감추고 자존심을 북돋울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채호가 만들고 박은식이 다듬은 신화가 재발견됐다. 나라가 망한 시대, 남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있더라도 민족 자존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독립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단군신화를 만들고 대종교를 만든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유산이 호출된 것이다. 우선 자존심을 세워야 했기에 지성이 마비되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족주의라는 독약을 마셔야 했다.
안재홍, 정인보 등이 그려 놓은 ‘실학’이라는 그림이나 오지영이 소설 ‘동학사’에서 창작한 ‘동학’이 ‘우리 민족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전석담, 백남운 등이 만든 ‘자본주의 맹아론’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거기다 엄항섭이 써 놓은 프로파간다용 원고를 곧 반민특위에 불려갈 처지의 이광수가 윤문하고 가필한 ‘백범일지’가 필독서가 되고, 김학철이 이야기한 바 300배 이상 과장된 청산리 전투나 봉오동 전투 신화도 널리 보급됐다. 영화로도 만들어 천만 국민이 함께 관람했다.
마침내 한 사람의 독립투사가 종로 한복판에 권총을 들고 나타나 일본 경찰 수백 명을 쓰러뜨리는 활극을 영화로 만들어 즐겼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아동용 만화’가 돼 갔다.
착한 주인공과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은 벌써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착한 사람은 처음부터 착하고 악한 사람은 끝까지 악하다. 대표적인 아동용 만화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이다.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은 뉴라이트, 극우, 친일파의 후예, 군부독재의 잔당으로 낙인찍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하지만 그 사이에 자존심은 강하지만 지성이 부족한, 아니 어린아이가 돼 버린 국민이 탄생했다. 원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생 끝에 너무 일찍 어른이 돼 버린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우고자 했던 근현대사 교육이 막냇동생들, 86세대와 97세대에게는 독약이 됐다. 그들은 이를 자식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강행해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순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지금 유통되는 한국 근현대사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동서양 문명이 만나 융합하는 세계 일류의 민주공화국,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전혀 맞지 않다. 이제는 아동용 만화가 아닌 성인용 소설 같은 건국 설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근현대사 교육이 ‘케데헌’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로서 건국 설화가 청년들에게 제공돼야만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비극 공연을 권장한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아는 성숙한 자유시민만이 민주정의 주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열등감이 없는 청년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견뎌 내야만 했던 냉혹하고 모순된 현실을 있었던 그대로 전하자. 민족주의 독약으로 그들의 지성을 마비시키려 들지 말자.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주대환 칼럼 논평: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의 이 칼럼은 현재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이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에 갇혀 있으며, 세계 일류 선진국 시민에게 걸맞은 <성숙하고 복합적인 역사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던진다.
1. <칼럼의 주요 논지와 통찰>
민족주의의 역할과 한계: 필자는 이전 세대가 후진국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민족주의적 '설화'가 필요했고, 이는 일종의 <독약>과 같았다고 진단한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지성이 마비된 국민>을 탄생시켰다는 분석은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역사 교육의 만화화 비판: 필자는 청산리 전투의 과장, <백범일지>의 프로파간다적 성격, 영화 <암살>과 같은 <활극>을 예로 들며, 현재 유통되는 근현대사 서사가 '착한 주인공 대 악당'이라는 <아동용 만화>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새로운 역사관 제시: 해결책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고 모순된 현실을 그대로 전하는, <성인용 소설 같은 건국 설화> 즉, '케데헌(Kedehon)' 수준의 복합적인 서사를 요구하고 있어. 이는 <냉혹하고 모순된 현실>을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2. <논평과 비판적 검토>
비판의 타당성 (Strength)
역사관의 발전 요구: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지위에 걸맞게 역사관 역시 <자기 비판>과 <복합적 이해>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필자의 제안은 타당하다. 과거의 열등감 극복을 위한 서사가 현재의 주체적인 비판 정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큰 울림을 준다.
선악 이분법 지적: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착한 독립투사> 대 <나쁜 친일파/일본인>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에 대한 지적은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한다.
논리의 한계 (Weakness)
이분법적 비판: 필자는 민족주의적 서사를 비판하면서도, 이전 세대의 역사 교육을 <지성을 마비시킨 독약>으로, 지금의 청년 세대를 <성숙한 시민>으로 나누는 또 다른 <이분법>을 구사하고 있어. 이는 필자가 비판하는 '착한 사람 대 악당'의 구도를 '어린 세대 대 성숙한 세대'로 치환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대중 매체와 역사 교육의 혼동: 영화 <암살>을 언급하며 이것이 근현대사 교육의 <아동용 만화화>를 가속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상업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락적 활극>의 문법을 따르며, 이는 <학문적 역사 교육>과는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그것을 곧 교육의 실패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건국 설화>의 모순: 모든 국가는 국민 통합을 위해 특정한 형태의 <건국 설화>를 필요로 하는데, 필자가 제시한 '선악이 공존하고 반전이 거듭되는 소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합의된 내러티브>가 될 수밖에 없어. 필자가 원하는 <케데헌 수준>의 복잡성을 가진 역사를 대중 교육의 '설화'로 만들 때, 과연 국민적 <통합>과 <자긍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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