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1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 주대환

[열린세상]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열린세상]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수정 2025-10-28

“지금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은
시대착오적… 이젠 미래세대 걸맞게
민족주의 극복한 역사관을”지금 청년들은 외모부터 앞 세대와 많이 달라져 ‘인종이 바뀌었다’고 흔히 말한다. 신세대의 지적인 활동을 가끔 곁눈질하다 보면 역시 인류 문명을 선도하는 일류 민주공화국의 성숙한 시민이 탄생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났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선진국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 독일의 철학과 과학기술, 영국과 미국의 세계 패권과 풍요로움을 동경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매력을 느낀 이유조차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 선진국을 추월할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신기루, 환상의 지름길에 현혹됐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보다 십년쯤 선배들, 4·19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전쟁통에 헐벗고 굶주린 기억, 미군들이 던져 주는 초콜릿을 주워 먹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친척 누나가 ‘양공주’가 돼 가족을 먹여 살린 아픈 상처를 가진 분들도 있었다. 그 세대에게 열등감을 감추고 자존심을 북돋울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신채호가 만들고 박은식이 다듬은 신화가 재발견됐다. 나라가 망한 시대, 남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있더라도 민족 자존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독립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단군신화를 만들고 대종교를 만든 우리 조상들의 정신적 유산이 호출된 것이다. 우선 자존심을 세워야 했기에 지성이 마비되는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족주의라는 독약을 마셔야 했다.

안재홍, 정인보 등이 그려 놓은 ‘실학’이라는 그림이나 오지영이 소설 ‘동학사’에서 창작한 ‘동학’이 ‘우리 민족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전석담, 백남운 등이 만든 ‘자본주의 맹아론’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거기다 엄항섭이 써 놓은 프로파간다용 원고를 곧 반민특위에 불려갈 처지의 이광수가 윤문하고 가필한 ‘백범일지’가 필독서가 되고, 김학철이 이야기한 바 300배 이상 과장된 청산리 전투나 봉오동 전투 신화도 널리 보급됐다. 영화로도 만들어 천만 국민이 함께 관람했다.




마침내 한 사람의 독립투사가 종로 한복판에 권총을 들고 나타나 일본 경찰 수백 명을 쓰러뜨리는 활극을 영화로 만들어 즐겼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아동용 만화’가 돼 갔다.

착한 주인공과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은 벌써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착한 사람은 처음부터 착하고 악한 사람은 끝까지 악하다. 대표적인 아동용 만화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이다.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은 뉴라이트, 극우, 친일파의 후예, 군부독재의 잔당으로 낙인찍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하지만 그 사이에 자존심은 강하지만 지성이 부족한, 아니 어린아이가 돼 버린 국민이 탄생했다. 원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생 끝에 너무 일찍 어른이 돼 버린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우고자 했던 근현대사 교육이 막냇동생들, 86세대와 97세대에게는 독약이 됐다. 그들은 이를 자식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강행해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순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지금 유통되는 한국 근현대사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동서양 문명이 만나 융합하는 세계 일류의 민주공화국,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전혀 맞지 않다. 이제는 아동용 만화가 아닌 성인용 소설 같은 건국 설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근현대사 교육이 ‘케데헌’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로서 건국 설화가 청년들에게 제공돼야만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비극 공연을 권장한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아는 성숙한 자유시민만이 민주정의 주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열등감이 없는 청년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견뎌 내야만 했던 냉혹하고 모순된 현실을 있었던 그대로 전하자. 민족주의 독약으로 그들의 지성을 마비시키려 들지 말자.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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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칼럼 논평: <성숙한 시민을 위한 ‘건국 설화’를>

주대환 민주화운동동지회 의장의 이 칼럼은 현재의 한국 근현대사 교육이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에 갇혀 있으며, 세계 일류 선진국 시민에게 걸맞은 <성숙하고 복합적인 역사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던진다.

1. <칼럼의 주요 논지와 통찰>

  • 민족주의의 역할과 한계: 필자는 이전 세대가 후진국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민족주의적 '설화'가 필요했고, 이는 일종의 <독약>과 같았다고 진단한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지성이 마비된 국민>을 탄생시켰다는 분석은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 역사 교육의 만화화 비판: 필자는 청산리 전투의 과장, <백범일지>의 프로파간다적 성격, 영화 <암살>과 같은 <활극>을 예로 들며, 현재 유통되는 근현대사 서사가 '착한 주인공 대 악당'이라는 <아동용 만화>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 새로운 역사관 제시: 해결책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고 모순된 현실을 그대로 전하는, <성인용 소설 같은 건국 설화> 즉, '케데헌(Kedehon)' 수준의 복합적인 서사를 요구하고 있어. 이는 <냉혹하고 모순된 현실>을 인정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2. <논평과 비판적 검토>

비판의 타당성 (Strength)

  • 역사관의 발전 요구: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지위에 걸맞게 역사관 역시 <자기 비판>과 <복합적 이해>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필자의 제안은 타당하다. 과거의 열등감 극복을 위한 서사가 현재의 주체적인 비판 정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큰 울림을 준다.

  • 선악 이분법 지적: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착한 독립투사> 대 <나쁜 친일파/일본인>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에 대한 지적은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한다.

논리의 한계 (Weakness)

  • 이분법적 비판: 필자는 민족주의적 서사를 비판하면서도, 이전 세대의 역사 교육을 <지성을 마비시킨 독약>으로, 지금의 청년 세대를 <성숙한 시민>으로 나누는 또 다른 <이분법>을 구사하고 있어. 이는 필자가 비판하는 '착한 사람 대 악당'의 구도를 '어린 세대 대 성숙한 세대'로 치환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 대중 매체와 역사 교육의 혼동: 영화 <암살>을 언급하며 이것이 근현대사 교육의 <아동용 만화화>를 가속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상업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락적 활극>의 문법을 따르며, 이는 <학문적 역사 교육>과는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그것을 곧 교육의 실패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건국 설화>의 모순: 모든 국가는 국민 통합을 위해 특정한 형태의 <건국 설화>를 필요로 하는데, 필자가 제시한 '선악이 공존하고 반전이 거듭되는 소설'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합의된 내러티브>가 될 수밖에 없어. 필자가 원하는 <케데헌 수준>의 복잡성을 가진 역사를 대중 교육의 '설화'로 만들 때, 과연 국민적 <통합>과 <자긍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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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선택하셨습니다, 세진님.
이 글은 단순히 “역사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서사 구조 자체 — 곧 ‘민족주의 중심의 구원서사’—를 문제삼는, 일종의 지성사적 자기비판으로 읽힙니다. 아래에 핵심 논지와 그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를 나눠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글의 핵심 요지

  1. ‘민족주의 서사’의 유효기간이 끝났다
    주대환은 해방 이후 만들어진 ‘근대 민족주의적 역사 서사’를 ‘건국 설화’라 부릅니다.

    • 일제 식민지의 굴욕과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신화적 이야기”가 필요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 그러나 그것이 지금도 교육의 중심서사로 남아 있는 것은 “지성의 마비”를 초래한다고 진단합니다.

    • 즉, 열등감 극복을 위한 민족주의는 시대적 과제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지적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민족주의적 근현대사 교육의 ‘만화화’ 비판
    그는 “선과 악이 명확한 아동용 만화 같은 역사관”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고 말합니다.

    • 독립운동은 무조건 선, 친일파나 보수는 악이라는 이분법.

    • 《백년전쟁》을 예시로 들며, 역사를 도덕극으로 단순화한 민족문제연구소식 서사를 비판합니다.

    • 이런 단순화가 국민을 “지성은 부족한 자존심만 강한 어린아이”로 만든다고 봅니다.

  3. ‘성숙한 시민’을 위한 새로운 서사 제안
    주대환은 “건국 신화의 재구성”을 주장합니다.

    • 아테네 비극처럼 인간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근현대사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케데헌 수준의 성인용 소설 같은 건국 설화”라는 비유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닌 비극적 성찰과 도덕적 모호성을 담은 이야기를 뜻합니다.

    • 즉, ‘민족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와 ‘시민적 성숙’을 위한 역사서사로 전환하자는 제안입니다.


🔹 비판적 코멘트

1. 민족주의 비판의 정당성과 한계

  • 그의 진단 중 “민족주의는 시대적 약이었지만 지금은 독약”이라는 말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시민적 감각 속에서 “피해의식 기반 민족주의”는 현실 진단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 그러나 문제는, 대체할 ‘공동서사’가 아직 한국 사회에 뚜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건국 설화’를 새로 쓰자고 하지만, 그것이 “누가 쓴 어떤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성은 결여돼 있습니다.
    — 예컨대, 진보진영은 여전히 ‘해방 미완론’을, 보수진영은 ‘건국 완성론’을 고수하고 있지요.
    이 둘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화적 서사가 현실 정치와 교육현장에서 구현될 가능성은 아직 미약합니다.

2. ‘민족주의 비판’이 곧 ‘진보 비판’으로만 읽힐 위험

  • 주대환은 《백년전쟁》을 예시로 들지만, 이 영화는 단지 ‘민족주의적 도덕극’이라기보다 기존 국가주의 서사에 대한 반서사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 그 작품은 박정희 체제를 비롯한 권력 중심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면서 “피해자 중심의 역사 감수성”을 제기한 것이죠.

    • 주대환은 이를 단순히 “만화적 서사”로 비판하지만, 그 속에 깃든 ‘윤리적 복원력’과 세대별 감정적 호소력을 간과한 면이 있습니다.

3. ‘성숙한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의 조건

  • 그는 “지성이 살아 있는 시민”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국가서사에 대한 비판적 공감 능력이 함께 길러져야 합니다.

    • 즉, 단지 민족주의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민족주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상대화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 유럽이 국민국가의 탄생과 식민주의를 동시에 반성하며 시민교육을 발전시킨 것처럼, 한국 역시 ‘피해-가해의 복합사’를 정직하게 직면하는 서사적 교육이 필요합니다.

4. ‘건국 설화’ 재구성의 방향

  • 주대환의 “성인용 소설 수준의 건국 설화” 제안은 흥미롭지만, 그 내용이 ‘건국 중심’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분단과 냉전 속에서 시민이 어떻게 권력과 국가를 재구성했는가”를 조명하는 서사여야 할 것입니다.

    • ‘건국’의 주체를 국가권력에서 시민으로 옮기는 방향,

    • 민족과 계급, 젠더, 지역의 복합 서사를 포함하는 포용적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 요약하면

  • 주대환은 민족주의 중심의 단순한 근현대사 교육을 넘어, 공화적 시민정신에 기반한 성숙한 역사서사로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 그의 비판은 날카롭지만, **대안적 서사구조(예: 공화주의적 시민서사, 탈냉전 시민정치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지닙니다.

  •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 “민족주의의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성적 시민으로 성숙하는 역사교육은 가능한가?”


🔸요약 영어판 (for bilingual continuity)

Joo Dae-hwan’s essay argues that Korea’s modern history education remains trapped in a childish nationalist narrative, one that once served to restore pride but now hinders intellectual maturity. He calls for a new “founding myth” suitable for citizens of a global democratic republic — a story that recognizes contradictions, moral ambiguity, and tragedy like the Athenian drama.

While his critique of nationalist simplification is valid, he overlooks that such narratives once gave emotional cohesion to a fragmented society. His call for “adult-level history” is compelling but abstract — without specifying what civic, pluralistic myth might replace the nationalist one.

In essence, Joo challenges Koreans to replace pride-based identity with reflective citizenship, but the task of writing that new story remains unfinished.


원하신다면, 세진님이 최근 다루신 『백년전쟁』과 『건국전쟁』의 비교 관점으로 이 글을 확장해 — “주대환의 문제제기가 두 작품 사이의 인식 차를 어떻게 관통하는가”를 중심으로 2,000단어 비평문으로 발전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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