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엮은이)개마고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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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종이책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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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 324쪽
책소개
우선 이 책은 '리영희의 삶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 로 읽힌다. 리영희라는 창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큰 줄거리를 읽을 수 있다. 엮은이는 리영희를 '법칙'과 '이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에서부터 출발해 '실천'으로 나아간 시대를 비추는 투명한 창으로 평가한다.
또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통해 본 리영희의 삶'으로 읽힌다. 이렇게 이 책을 읽을때 '개인'과 '사회'의 갈등 속에서, 개인 리영희가 겪은 고통이 결국 사회의 변화를 이뤄내는 힘으로 작용함을 볼 수 있다. 리영희가 글에서 말 한 '좌우의 균형'이 그의 삶에서 정신과 물질의 균형, 지식과 실천의 균형등과 연장선을 이루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책 전반에 걸쳐 리영희의 글을 많이 이용했다. 이 책에서 그의 글은 메시지 중심의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을 넘어 역사와 그의 삶의 흐름과 연관되어져 더욱 힘을 갖는다. 리영희는 자신이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 밝혔지만, 엮은이는 리영희가 원한 세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의 책들은 계속 읽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세상이 누구의 피와 땀으로 오게 됐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목차
머리말_ 리영희의 삶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
제1장.1940년대 : '완전한 무질서'속에서
제2장.1950년대 : 전쟁과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
제3장.1960년대 : 기자의 열정으로 '신들린'세월
제4장.1970년대 : 전환시대의 '우상과 이상'
제5장.1980년대 : '광주학살'의 광기 속에서
제6장.1990년대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맺음말_ 북한엔 '리영희'가 존재할 수 없었다
저자 및 역자소개
강준만 (엮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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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법조공화국』, 『MBC의 흑역사』, 『공감의 비극』, 『정치 무당 김어준』, 『퇴마 정치』, 『정치적 올바름』, 『좀비 정치』, 『발칙한 이준석』,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부족국가 대한민국』,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등 300권이 넘는다. 접기
최근작 :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 … 총 59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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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역사가 만들어 낸 외곬, 살아있는 역사
magicfinger 2010-11-17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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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이라는 맑은 창을 통해 본 현대사,그 가운데 리영희 선생님이 서 계시다
yiwoogi 2010-12-2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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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입문서.
새벽에 2018-10-0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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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산 지성
한국현대사의 그 많은 굴곡과 늪의 역사를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것은 허상과 이데올로기였다.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그러한 온갖 우상숭배와 이데올로기에 맞서 자신의 개인적 삶을 바쳤던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그 거대하고 두려운 독재권력의 횡포에 맞서 젊은 열정을 넘어서 "역사"라고 하는 말을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었던 사람도 바로 그였을 것이다. 무릇 역사는 독재가 생기면 거기에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수많은 민중들의 운동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필연적인 현상들 이면에 이렇듯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외쳤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존재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그 역사적 현장의 정점에 리영희 선생님은 그렇게 우뚝 서 계셨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그의 생애를 다룬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것은 리영희 선생님이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있어서 그 흐름과 같이했고, 우리 현대사의 왜곡과 갈림길에서 또 다른 길을 제시했던 선구적이고 모범적이었던 삶이 가진 중요성과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걸출한 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마저도 자신의 의견제시를 많이 자제하고 될 수 있는 한 선생님의 육성을 많이 담아내려고 했던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한국사의 어떤 시대에서도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 수많은 자료 조사와 실증적인 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글 한 줄도 함부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내뱉지 않았다는 점, 항상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시에 그 민족과 국가를 구성하는 다수 민중의 처지를 마음 속에서 놓치지 않았다는 점, 자신이 가진 많은 영향력과 권위에도 불구하고 늘 증명된 진실 앞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와 진실을 수용하려는 자세는 한 사람의 이름없는 사회과학도인 내가 마음 깊이 배우고 존경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그의 책이 아쉽게도 한 권 밖에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 그는 우리 나라의 현대사에서 우상과 이데올로기로 인해 극단적으로 잘못된 선택의 순간에 늘 반대의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균형잡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현실도 크게 변화된 바가 없다. 시장과 세계화와 자본자유화의 움직임의 목소리만 우측 날개가 되어 세상을 뒤덮는 곳에서 그 문제점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좌측의 날개 또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을 민족주의자니 인간주의자니 반반공주의자니 하는 여러 가지 주의자로 규정하기보다는 그의 이론과 실천 이면에 한 세상에 주어진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열심히 살려고 했던 삶의 자세를 나는 배우고 싶다. 자신의 몸과 가정을 넘어서 민족과 민중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나아가 북한의 동포와 베트남의 민중과 미국의 참된 길을 생각하는 제한없는 사랑과 인류애가 나는 존경스러운 것이다. 선생님이 언젠가 말했듯이 전환기의 굴곡의 한국 역사에서 자신의 몫을 최선을 다해 한 후에 이제 후학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겸허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겠다는 말씀이 내 가슴에 와닿는다.
치열하고 희생적이었던 자신의 한 인생을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에게 덧씌워진 명예와 권위와 자존심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밝혀서 마지막의 인생을 정리하고 자신의 떠날 자리를 보는 혜안이 나로하여금 더욱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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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12-11 공감(15)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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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과 함께하는 현대사 산책에 리영희를 만나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을 맨처음 품게 해준 것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였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탐욕스레 식당문을 들어서는 부랑자처럼 대학도서관을 배회하던 새내기 시절 만났던 강준만이 준 충격은 얼마나 섬세하고 날카로웠던가. 리영희의 삶을 통해 강준만이 바라보는 한국 현대사인 이 책은 1929년 리영희 선생의 출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사를 살아가는 생생한 지식인의 면모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어떤 맥락으로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과 해답도 함께 던져준다.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 바... + 더보기
누리 2005-03-15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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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리영희 선생의 글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새는좌우의날개로난다' 등의 책으로 익히 존경하며 보아 왔으나, 정작 선생의 평전에 대해서는 처음 읽게 된 것 같다. '대화'라는, 평전은 아니지만 선생의 평생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책이 있다고 하지만, 리영희 선생에 대해서 더 나아가 한국현대사에 대해알고 싶은 사람들은 본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읽고나니 리영희 선생의 삶 그 자체가 책 제목대로 정말 한국 현대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편저자가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다. 기자로서 (진정한 의미의 기자)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잘 엮어낸 책이다.
본인이 성장하면서 갖은 고초들을 겪으면서 세상을 원망할만도 한데, 또는 적당히 사회와 타협할만도 한데, 오히려 한 지식인으로서 일생 전체를 살아온 걸 알고나니 더더욱 존경스럽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오히려 더욱더 매서워지는 비판력을 어찌하면 닮을 수 있을지... 미국의 지식인으로 불리우는 노암 촘스키와 리영희 선생을 항상 비슷하게 연상하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오히려 더 존경스러워진다. (아마도 노암 촘스키는 형제가 비참하게 죽어나가거나 돈이 없어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거나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글 때문에 감옥에 들락거리는 일은 최소한 당하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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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kim 2006-02-08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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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의 통일적 표현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내가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라는 책의 리뷰를 쓰기에 더없이 좋은 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은 뜨겁지만, 머리 속의 생각들은 차갑게 식히고 곰삭여서 이 리뷰를 쓰고 싶다. 감히 단언하건데, 그 분의 글쓰기가 야만적인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성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얼마 전에 리영희선생님의 강연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강연이 끝나고 마지막 질문으로 "선생님께서 만약 교직 생활을 하셨다면 어떤 교사가 되시겠습니까? 교사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교사는 지식인 일반인으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특수한 임무와 가치 추구가 있다. 보다 더 균형잡힌 사회(관), 세계(관), 인간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광적인 권력추구형 인간을 양성해왔다. 이제는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기형적 가치에서 스스로 벗어나 깨우치려면 끊임없는 독서와 토론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각고하는 노력으로, 믿음으로 해나가야 한다. 후세들에게 어떤 유혹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하도록 아이들이 저항감 없이 옳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석하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떠한 유혹도 거부하고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설사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누군가에게는 말이 말로 끝나겠지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분이 리영희교수이다.-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진실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앞의 리영희 교수의 답변을 새겨볼 때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꿈꾸며 들어온 교직생활. 그러나 학교라는 곳도 우리나라의 이 모순적인 배경에서 비껴날 수 있었을까만,-정말, 학교가 딱 그 정도만 되어도 이해한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나라의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모습들만을 노골적으로 축소해 놓은 끔찍한 곳이 바로 학교다.
합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집단이 공공연하게 '왕따'시키자고 제안하는 곳이 학교다. 그러면서 그 선생들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어떻게 설명할지? 아무나 보고 "이 학교 선생들은 미쳤다"고 욕을 하는 선생이 없나? 합리적인 토론이나 설득은 없고, "몇 살인데?", "어린 게..." 가 입에 붙어 어떤 말도 소용없는 선생이 있지 않나?(더 웃긴 건 그런 말을 하는 선생이 겨우 34,33살이고 그 말을 듣는 선생은 29, 28, 27살이다.)
나는 이런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들을 때마다 미칠 것 같다. 처음에는 분노의 감정이 치솟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즉자적인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무엇이 잘못 되었나?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어느새 그 감정들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일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답답한 건 나에게 직접 이런 일이 맞딱뜨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도 이성적인 사고도 행동으로 잘 연결이 되고 있지 않는다.
이런 답답한 환경 속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고 있지 못하는 내가 리영희 교수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밖에 없는데,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내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에, 책 속의 인물과 상황이 자꾸 책 밖으로 나와 내 곁에서 말을 걸기 때문에, 나는 괴로운 것이다.
나의 괴로움과는 무관하게 그런 점에서 리영희 교수를 생각해 본다면 진실로 '대단한 사람'-'위대한'이라는 표현에는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우상'의 냄새가 풍기고 있지 않은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증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사실을 찾고, 사실에 근거해서 진실을 발견하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행동하는 일을 지식인의 의무로 알고 평생 그 의무를 감당해 온 사람이라 그렇다.
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아마도 '우상과 이성'이었던 것 같은데,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안개 뒤에 가려진 실체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아 더 고민이 많아지기도 했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그의 책을 읽으면 고민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후로도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역정',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동굴 속의 독백' 등이 지금도 우리집 책장에 꽂혀 있는 리영희 교수의 책이다.
결국 그의 글은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하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을 때,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진실을 외면할 때, 그는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진실에 다가갔다. 그러므로 그 진실을 알리고자 글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차원의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곧 실천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행동과 분리될 수 없는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이제 리영희 교수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걸어간 눈 덮힌 발자국을 따라 뒷사람들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을 나침반 삼아, 벗 삼아, 리영희 교수가 걸어온, 진실을 찾아 걸어온 그 길에 나도 함께 오르고 싶다.
그리고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본다면, 리영희라는 투명한 창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려던 이 책의 의도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낸 '외로운 호랑이의 포효' 덕분이기도 하지만, 강준만 교수의 충분한 자료 준비와 쉬운 글쓰기의 미덕을 바탕으로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흐름들을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주관적인 감정의 개입이 너무 확연히 드러나서 조금 어리둥정한 부분도 있는데, 전라도 지역의 지역감정에 대해 발언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런 주장이야 계속 제기되어온 문제였는데, '리영희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라는 이런 공간에서도 흐름을 끊어가며 길게 설명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그 부분을 읽는 동안 들었다.
아직 리영희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리영희 교수의 勞作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나로서는 별 다섯 개가 전혀 아깝지 않다.
- 학교가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배움터였으면 하는 생각도 아울러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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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7-02 공감(6)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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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의 책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2004년 겨울, 참여정부가 출범했을 당시였는데, 노무현에 대한 책이 시중에 많이 출간되었었다. 그때 처음으로 강준만의 책을 몇 권 읽었다. 한국근대사산책과 현대사산책 세트를 제외하고 단행본을 읽은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갑자기 '리영희'를 읽게 된 건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때문이다. 유시민의 청년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기 전, 조금 가볍게 리영희를 알고자 해서 강준만의 이 책을 읽게 됐다.
"리영희는 아홉번이나 연행되어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이나 재판받고 언론계에서 두 번 쫓겨나고, 교수 직위에서도 두 번 쫓겨났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1012일에 이른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다는 죄 하나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겠지만 리영희는 자신의 신체에 가해진 것보다 더욱 혹독한 정신적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왔다."(작가 서문 중)
책은 '리영희의 삶을 통해서 본 한국 현대사'라는 주제에 맞게 194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리영희가 어떻게 발언했고, 어떤 실천을 해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국민 방위군 사건. 이승만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조차 이 사건을"9만명 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공노할 사건"으로 가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리영희의 기록. "단테의 연옥도, 불교의 지옥도 그럴 수는 없었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초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리영희를 리영희로 만든 것은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학교깨나 다닌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가고, 이 틀림없는 죽음의 계곡에는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 나라의 불쌍한 자식들만이 보내지는가? 나라 사랑은 힘없는 자들만이 하는 것인가? 전쟁과 군대를 알게 될수록 나는 점점 더 사색적으로 되어갔다. 그럴수록 이 나라의 기본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생각이 들었다."
리영희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1966년 중앙정보부가 한국 군대가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줄 것을 후한 조건으로 부탁했는데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사명감과 대쪽같은 양심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걸까.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한가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자연과학의 공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정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이론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대한 공부인 인문 사회과학도 별의별 이론이 많기로는 자연과학에 못지 않으면서도 되돌아오는 곳은 단순한 인간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본질적 요체, 평균적 두뇌로 이해되는 간단한 결론이다. 무엇인가 자꾸만 어려운 이론이나 학설, 철학을 동원해야 자기의 정당성을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 사상.결정,입장은 벌써 민중을 떠난 소수자의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박현채의 글을 인용한 부분. "박정희 체제의 후계를 노리는 군부의
작은 고양이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위한 승부처를 끈덕진 저항의 역사를 가지면서 경제력에서 약하고 역사적 투쟁에서 싸움의 좌절과 좌절 속에서 처절함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좌절 속에서 체념을 배운 전남에서 선택했다고 보았다. ... 무력감에 빠진 호남인들은 훗날 아무 말 없이 오직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통해 그 한을 풀고자 했지만 인정머리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그들의 그런 평화적인 선택에 대해서조차 경멸을 보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인간관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완전히 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바로 그러한 것이 사회주의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소유 및 사유재산을 통해 인간의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들을 조장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는 세계 가 30% 정도의 타락과 60 % 의 도덕성, 인간성을 유지하면 성공이라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타협을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실과 이상이 조화되는 안정 된 사회이며 '존재를 위한 체념' 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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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2013-06-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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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1-171019 33
사실, 발단은 마르크스였다.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다. 읽어졌다. 읽어져야지. 먹은 입문서가 몇 권인데. 한 꼭지를 읽고 책을 덮은 다음, 자 이제 한 번 써볼까. 써졌다. 그럼, 써져야지. 제낀 개론서가 한 박스다. 다 쓰고 읽어봤다. 응? 그것은 syo가 여지껏 읽어 본 글 중 가장 형편없는 글이었다. 뭐냐하면, 그냥 글. 이 글은 무슨 글입니까 하고 물으면, 한글이요, 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그저 글자들의 집합. 세상에서 제일 못 쓴 자본론 입문서보다 더 못난 글이 여기 있네?
며칠을 끙끙 앓았다. 나의 독서는 뭐지?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으나, 정작 읽을 수 없는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는 글을 못 쓰는 독서. 자연히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지치고 세상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독서판을 떠날까 잠깐 고민해 보았으나, 돌아보니 여기가 이미 벼랑끝인 걸 가긴 어딜 가.
돌아보면, 이건 옛날에 이미 관측이 가능한 결말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쳐갈 때쯤 지도교수님을 찾아갔던 일이다.
교수님, 유학가고 싶어요. 어디로. 교수님 박사하셨던 학교요. 거기 좋지. 네. 근데? 추천서 좀 써주세요. 교수님은 말이 없었다. syo는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학점 관리는 잘 했냐. 네, 저 4점 넘어요. GRE는. 그거 할라고 들면 얼마 안 걸린다고 교수님이 그러셨는데요. 내가? 네. 다시 교수님은 말이 없었다. 커피는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넌, 어렵다. 왜요, 저 학점도 좋은데. 넌 학점은 좋지만 깊이가 없어. 네? 넌 학점은 좋은데 깊이가 없다고. 깊이가 뭔데요. 너 지난 학기 때 뭐하고 돌아다녔었냐. 영화..... 그래서 그거 찍었냐? 아뇨, 각본만 하고 전 중간에 나왔죠. 너 이번 학기에는 뭐 한다고 그랬냐. 게임 제작...... 그래서 그거 만들었냐? 아뇨, 막판에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그래서 넌 안 되는 거야, 넌 한 가지에 집중을 못하고, 맨날 일만 벌려 놓기 바쁘지 뭐 성과가 없잖아, 뭔가 하나 하다가도 금방 딴 데 한눈 팔고 그러잖아, 맞아 아냐. ......맞습니다. 그래서 넌, 유학 글렀어, 너한테 추천서 안 써줘. 네...... 그러니까 그냥 우리 랩실 와. 네.....네? 우리 연구실 오라고. 교수님, 전 학점은 좋지만 깊이가 없어서 어렵겠는데요. 아냐, 넌 깊이는 없지만 학점은 좋아서 괜찮아.
결국 유학도 못가고 대신 군대를 갔다. 늘상 이런 식이었다. 대학을 5년 다녔으나 일군 것은 하나도 없고 졸업과 동시에 입대. 군대에서 꿀보직을 받아 시간이 꿀처럼 흘렀으나 역시 일군 것은 하나도 없고 제대. 제 버릇 개나 좀 주지 그걸 못 주고 제대 후에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다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현재 실업자 통계에 일조 중. 이런 처참한 인생이 결국은 다 선택과 집중을 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진단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야 그렇다 치고, 뜬금없이 리영희에 루쉰에......
겉보기엔 유익한 다독 욕심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한참을 들여다 봤다. 많이 읽으려는 욕심은 많이 가지려는 욕심과 똑 닮아 있었다. 많이 가지려는 갈증이 얼굴을 바꾸어 많이 읽으려는 욕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syo는 돈이 없으므로, 곳간에 쌀가마니를 쌓는 대신 두뇌에 정보가마니를 채워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병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닌척 해도 이 나이 먹도록 이룬 것 하나 없는 백수라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거라, 비록 가진 건 없지만 든 건 많으므로 나는 그렇게 후진 사람이 아니라며 스스로의 자존심에 아까징끼를 쳐바르고 살았던 것이다. 아이고, syo야, syo야. 그게 더 쪽팔리는 거야......아이고, 임마.
171011-171019 33권
문학 6권






1. 남아 있는 나날
: 남아 있는 이시구로의 책들이 이미 읽은 책들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2.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3.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 그 행복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이시구로, 이러지 마세요. 랜덤으로 책을 펼쳐서 한 챕터씩 읽으나 그냥 읽으나 별 차이 없는 책을 만들다니.
4. 시인의 사물들
: 시인. 한 때는 목말랐으나 이제는 추억 속에 못박아 넣고 먼지만 맞히는데도 아쉬움조차 가물거리는 희미한 그 이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름.
5. 아픈 천국
: 우리가 몸을 잃고 떠도는 유령이라면, 체온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헤매는 괴물이라면, 차라리 서로의 시체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물처럼 불처럼 찬란히 사랑하다 빠져 죽고 타서 죽어도 좋겠다.
6. 우리가 고아였을 때
: K.O.를 노리지 않는 이시구로의 문장. 한 방 없이 이야기를 축적해가는 영리한 전략.
철학 9권









7. 아미엥에서의 주장
: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하나를 꼼꼼히 읽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번역은 그냥 그런 것 같다.
8.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
: 뭐지, 이 괴물 같은 사람은.거의 세상 모든 학자들의 말을 벽돌로 써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라는 집을 지으려 시도한다. 신기하나 산만하다.
9.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 그러니까, <경제학-철학 수고>와 <독일 이데올로기>를 열심히 읽으라는 말씀이시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요.
10.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선선히 읽어 나갈 수 있는 푸코와 역사. 밀도는 낮다.
11.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 이 책의 제목이야말로 <철학하는 여자는 강하다> 같다. 강신주 네 이놈, 여성철학자가 어쩌고 어째? 하는 책이다.
12.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 결국 마지막에는 푸코로 푸코를 죽여야 한다. 그말은 곧, 이미 나보다 앞선 많은 사람들이 푸코를 휘둘러 푸코를 죽여놨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에이즈로 죽었지만 푸코의 철학은 푸코의 철학 때문에 죽었다. 근데 그 철학의 시체가 아직도 다른 말들을 죽이는 데 너무 유용하다.
13.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철학이 쉬운 건 줄 알았다. 크게 속았다.
14. 제 2의 성
: 원전을 읽을 거라면 큰 의미가 없는 평이한 요약서.
15.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 사상사
: 좋은 책이다, 이해가 쉽고 설명이 훌륭하다, 이런 평들을 올리시는 분들 참 부럽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철학자들에 관해서는 동의하는 바가 있는데, 배경지식이 없는 부분은 거의 이해가 잘 안 된다.....
읽기 / 쓰기 7권







16.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시키는 대로 하면 나도 막, 막, 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막, 막, 그렇다.
17. 집 나간 책
: 정말 부럽다. 얼굴 빼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당신.
18. 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잘 쓴 알라딘 서재글 같은 책. 그러나 한 건의 실수 때문에 진정성에 살짜쿵 금이 갔다.
19. 글 잘 쓰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분명 도움은 된다, 되는데, 왜 90%는 똑같은 말로 채워진 책들을 자꾸자꾸 찍어내냐고.
20.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많이 읽는 사람들의 글은 각기 참 다르다. 자신의 것을 만드는 데는 쓰기와 읽기가 넉넉히 필요하다.
21. 문학은 노래다
: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이 묻혔으므로, syo의 책 같은 건 태어나기도 전에 묻힌 셈이다.
22.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 비록 제목은 낚시지만 내용은 충분히 가치있다. 그러니까 syo처럼 읽는 놈들을 나무라는 책인데, 옳다. 느끼는 바가 많다.
인물 5권






23. 리영희를 함께 읽다
: 스승을 만나러 처음 떠나는 길. 좋은 책이지만 사실은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읽기에 적합하지는 않은 듯.
24.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 역시 강준만 선생님 스타일. 자료 인용, 자료 인용. 솔직히 방법론적으로 보면 리영희 선생님 다음 자리는 강준만 선생님이라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25. 리영희 평전
: 딱 이 책까지 읽는 순간, 이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바로 읽어도 되겠다는 감이 왔다.
26. 역정
: 자전인데 평전보다 나은 경우가 흔치 않다. 이 경우가 그 경우다.
27. 루쉰 그림 전기
: 참신하지만 장면을 위주로 서술하다보니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다. 그럼 재미가 덜한 법이다.
그 외 6권






28. 프랑스 혁명
: 장난하나..... 아무리 입문이고 총서라지만 역사서 쓰는 데는 자격이 필요한 법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 동아시아가 노려보고 있다, 이 영감아.
29. 시사인 525-526
: 손석희 만쉐. 뉴스룸 만쉐. 뉴스공장 대박.
30. 언어 공부
: 언어학 책 주제에(?) 왜 딱딱하지 못하고 웃기는 거야. 니가 이렇게 웃기면 정작 웃겨야 될 다른 책들은 어떡하라고.
31. 엄마는 페미니스트
: 번역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을 다 읽고 다음 작가를 찾던 중 이 책을 펼쳤다. 다음이 결정되었다.
32. 글 쓰는 여자의 공간
: 읽고 쓰기가 지겹다는 생각은 읽고 쓰려면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여유덕에 생겨나는 비만 같은 증상임을 알아채고 나니 슬럼프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33. 그림 읽는 시간
: 사소하다. 그냥 한 번 피식 웃고 말 책.
아무튼 그리하여 이런 모자란 짓은 오늘로 땡. 내일부터는 적게, 그리고 깊이 읽는 법을, 그러니까 집중해서 사는 방법을 연마해야겠다. 책탑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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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19 공감 (50)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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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기록 8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
사실, 가시적으로 드러날 만큼 세상을 바꾸는 데 두꺼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읽는 이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아주 얇은 책, 심지어 한 줄의 글을 통해서라도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은 물론 필요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휘둘러야 하니까. 세상엔 오직 이성만을 말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초월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신음소리 정도는 무시할 수 있으며, 직접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가 눈 앞에 있는데도 스스로 자신에게 쥐어준 논리와 객관의 밧줄을 휘둘러 아픈 이를 담론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있다. 복잡한 이론은 결국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담론의 전장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코 설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종류의 가치 토론을 지켜보며 syo가 발견한 아이러니는, 결코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을 사람일수록 토론하자고 외치고, 결코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을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을 정당한 비판으로 포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얇고 가볍다. 그러나 딱 이 책이 이야기하는 정도만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된다해도 세상이 많이 아름다워질 두껍고 무거운 책이기도 하다. syo는 멍청하고 아는 것이 없어서 담론의 전장에서는 그저 학살당하는 양민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담론이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방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담론판의 관우 장비 조자룡들이 창 휘두르듯 자신의 지식을 뽐내어 상대를 쓰러뜨리는 모습이 syo의 눈에는 하나도 멋있거나 설득적이지 않다.


그냥 여기 쯤. syo가 있는 곳.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
어쩐지 책팔이 노선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은 행보도, 입방정 구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나저러나 syo는 결국 강신주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매번 속는다. 철학이 쉬운 거라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로 우리 곁에 항상 철학이 있어요. 능청능청. 과일 가게에서 잘라주는 수박 귀퉁이 같은 책이다. 그러니까 뭐 이런 식의 일이 벌어진다.
아무 생각없이 산책을 나선 syo는 신주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네안데르탈꽃미남형 외모에 안경을 껴서 무척 똑똑해 보이는 아저씨가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을 죽 늘어놓고 판다. 과일은 생긴 것도 기괴하고 냄새도 알쏭달쏭하다. 먹으면 몸에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만 아플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독일 어디어디에서 왔다는데, 이름은 한 번 들어본 것도 같다. syo는 망설인다. 그때 그가 비릿한 미소와 아리송한 말투를 투척하며 다가온다. 여기 제가 조금 잘라 드릴 테니까 드셔보세요. 어때요, 먹을만 하죠? 왜 이런 맛이 날까요? 자, 생각해 보세요, 넓게 펼쳐진 푸른 들판이 있어요, 일년에 절반은 비가 오고 절반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들판이요, 보이세요? 그 한 가운데, 조그마한 나무가 있죠? 자, 이제 그 나무가 자랄 겁니다. 농부 아저씨가 비료를 뿌려요, 아줌마가 풀을 뽑아요, 나무가 자라면 열매를 맺겠죠? 어때요? 어, 열매를 맺었네? 어, 근데 나무에 없네? 그러면 그 열매가 어디로 갔을까요? 그 열매가 여기 있네?
정신이 들었을 때, 어쩐지 syo는 집에 도착해 있었고 식탁 위에는 귀퉁이가 조금 잘려 나간 과일이 놓여 있다. 아, 뭐지..... 일단 샀으니 과일을 쪼갰는데, 이게 뭐야. 안쪽은 그 아저씨가 잘라 준 부분이랑 색깔부터가 완전 다른데? 같은 과일 맞나? 일단 한 번 먹어나 볼까...... 아, 이게 무슨 맛이야, 젠장! 이 프랑스 저머니 미친 포스트모더니즘 과일들아!
과일들은 썩지도 않는다. 냉장고를 열때마다 조용히 syo를 노려본다. 콜라 꺼내 마실때마다 syo를 비난한다. 우릴 고르지 않고 달고 청량한 것들만 먹다니. 네놈의 내면은 곧 개발도상국형 성인병에 걸릴 것이다. 닥쳐, 이 헤겔하이데거비트겐슈타인라캉들뢰즈데리다같은 못되먹은 자식들아.
그러나 다시 과일 가게를 지날 때면, syo는 여지 없이 또 당한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심지어 아주 두껍한 놈으로 업어 온다. 속을 잘라보기 무섭다.



뭐 이런 놈들

리영희를 함께 읽다
고병권 외 지음 / 창비 / 2017
syo가 리영희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한 것은 희한하게도 군대였다. syo는 이명박 말기에 군대에 가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합니다. 정치무식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제대했는데, 그때 진중문고로 선정된 리영희 산문선『희망』이 각 생활관당 한 부씩 배부되었다. syo는 관심이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이 같이 들어와 선점했던 것 같다.『희망』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군인이 책을 보지 않아서 그런가 하면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도 없는게, 『1Q84』는 항상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었고, 열정이 넘치는 독서가들의 참을 수 없는 지식욕에 희생되어 몇 페이지가 찢겨나가기도 했다(소실된 페이지들은 종종 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냥 하루키의 필력에 대한 방증이라고 하자.) 리영희는 그렇게 때타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었다. syo도 보지 않고 제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곳도 아닌 군대에, 아직도(2011) 정훈장교가 이승만이 잘한 일을 가르치고,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며,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의 야욕에 맞선 불가피한 전쟁이었다고 가르치는 그 군대에, 온몸으로 칼날을 받아가며 그것들과 맞서 싸운 리영희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참 아찔한 아이러니다.
어떻게 리영희를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것보다 어떻게 리영희를 읽지 않고 서른 넘도록 살았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리영희는 올바른 한국 빨갱이의 기본 소양 아닌가? 마르크스, 읽어야지. 레닌, 로자, 트로츠키, 아 읽으면 좋지. 지젝, 힙하지.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다 읽었다한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빨갱이가 리영희를 모른다면? 아, 그럼 그냥 연습생 시절로 돌아가는 거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불행이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리영희가 바로 그런 경우다. 리영희는 한국 현대사에 최상급의 증언과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왜 '최상급'인가. 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사리판'에 어느 정도 타협했거나 그 판을 멀리서 구경만 했던 사람들은 결코 감지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리영희는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_ 강준만,『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21세기에 리영희를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세기 수많은 젊은이들의 감긴 눈을 틔워 정신적, 사회적 수렁으로 몰아넣은 '의식화'의 교과서『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는 이미 그 책을 낳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그야말로 '역사'가 되어 버린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직접 읽어 보거나 읽어 본 이들의 입을 통해 들어야 알 수 있을 것이므로 그저 책꽂이에 꽂아놓기만 한 syo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리영희의 정신은 지성인들이 좇아야 할 이정표로 어제 오늘 뿐 아니라 내일까지도 남을 것이다. 이런 고풍스럽고 제도권 반공 독후감에나 나올 것 같은 찬사를 하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리영희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진실을 향한 리영희의 태도와 자세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인 것 같습니다.
리영희를 처음 만나시려는 분들에게, 리영희의 자전인『역정』과 대담집인 『대화』를 권합니다. 평전은 아직 몇 권 읽어보지 않았지만, 자료의 지배자 강준만 선생님과, 한국의 슈테판 츠바이크 김삼웅 선생님의 책이 있군요. syo가 살짝 넘겨봤는데 김만수 선생님의 『리영희 살아있는 신화』는 그야말로 "한권으로 보는 리영희"라 해도 충분할 만한 책이었습니다. 첫 책으로 권하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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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17 공감 (45)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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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가장 충격받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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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자.한문.공부를 시작했다.일단 천자문.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사자성어.옛날부터 있었던 한자능력검정시험 책 으로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일본어,중국어 공부에도 직,간접적으로 이익, 도움이 될 것임에 자명하다. 공부하다 죽어라. 자투리,짬짬이 시간에 직접 손으로 쓰면서 익힘!!
현재는 오강남 교수님의 장자 책을 곁에 두고 짬짬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연말에 한자능력검정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이미 상비되어있는 한자책,한문책들이 많다.실천과 완료 가능한 계획을 수립하고 직접 몸으로 직접 손으로 써가면서 익힌다. 진짜 노력은 배신하지않는다.하루 10개 50개 익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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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년안에 장가 가겠다.적적함과 외로움을 상쇄시키기 위해 여자라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물은 한순간.이 아니라 매순간,24시간 내내 필요하다.아내는 어머니의 부재를 대체할 구원투수 이기 때문이다.여자의 손길,여자가 빚어낸 맛있는 음식들,따스한 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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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썰.은 내가 누누이 강조하고 재차 과하게 겹처서 쓰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나는 하루 중 24 시간 중, 가장 황홀하고 최고의 순간으로 우리 어머니 께서 직접 주방에서 맛있는 집 밥,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순간과 직접 요리를 하면서 내내 도마 위에서 요리를 하는 소리. 직접 식칼이 타타타닥 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래 이 맛이야. 그래 이것이 행복이고 가장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내가 솰아있는 순간이야. 이 순간이 가장 좋아.
이걸 우리 어머니에게만 한정적으로 국한 시켜서 설정. 진짜 설정 해놓으면 안돼.
이런 삶을 죽을 때 까지 영원히 누리고 누리면서 지키고 보호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2년 안에 장가 가겠어.
뭐 아직 지금은 분홍빛 연애.에서 ㅇㅇ 도 꺼내지 못 했지만.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은 직진 직진 본능하겠어.
아마도 저 예민한 레이더망에는 조금 있으면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 할 좋은 예감즐거운 촉, 상상이 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수 해왔던 비혼주의자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최근에 나는 장가가 너무 고파.
그렇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도 미리 예비해서 착실히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여러분~ 장가 그리고 시집 가기 위해서는 무슨 준비와 마음가짐이 절실하게 필요한가요??
그냥 절실한 마음가짐 만 있으면 후딱 갈 수 있는 걸까요??
장가가 그리고 시집이 고파서 환장 하는 1인 이 몇 마디 지껄여 봤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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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위닝일레븐 2020 축구게임.을 시작했다.벼르고 벼르다가 작심하고 시작했다.위닝일레븐 참으로 많이 진화 했구나 감탄했다.축구게임.에 인생을 대입하고있다.20년전에도 위닝.에 몰입해서 결승까지 올랐다 1골 차이로 준우승 했던 추억이 있다. #위닝 #위닝일레븐 #PS4 #축구 #축구게임 #F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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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구글 이미지. Google Images.
주의사항 -
사전 협의. 사전 허락 없이 참고자료.로 쓰고 있습니다.
무단 도용. 저작권. 같은 사진 자료.에 대한 법적 권리!!!!!!!!가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당장에 삭제 내지는 사진. 이미지.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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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몰락)고 리영희 선생님.이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이념,이데올로기,거인으로만 추앙 받던 분이 단지 죽음 앞에서 약해지고 굴복하는 모습은 나에게 상징하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연스런 질병과 죽음 앞에서는 이념도 그냥 몽매한 허무,덧없음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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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적고 보니,,10년이나 속절없이 흘러버렸구나. 강산이 한 번 변했는데,,나도 그동안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인 진화.를 했었나 자뭇 궁금하다..
고 리영희 선생님.이 위독하시다. 라는 전언.을 듣게 되었다..
평소에 그분의 책을 읽었고..여러모로 관심을 유지하고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그분의 건강 위독 소식..은 여러모로 충격 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터넷 기사..를 클릭해서 들여다 보는데..그만 그자리에서 얼음 땡..얼어붙고 말았다
평소의 상대방을 집어삼킬 만큼의 카리스마 넘치는 위용과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냥 너무나도 보통 이면서 평범한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서 똑같은 인간 이구나.
별반 다르지 않고 강하지도 않으며 우리 주위에서 평소에 마주치고 목도하게 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척 수척해진 얼굴과 살이 쏙 빠진 육신을 마주보고 있는데..참으로 여러모로 많은 편린들이 태풍처럼 강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보 보수. 좌 우 이념. 이데올로기. 부자 가난한 자(빈자). 높고 낮음. 흑 백 논리. 이런 게 다 무용지물 이구나.
일장춘몽.
겨우 100년 가까이 왜 우리들은 그다지도 열변을 토하면서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고, 욕하고 사는걸까?
미움, 부정, 논박, 투쟁, 싸움, 그런 것들은 하등 죽음과 인간의 파리 목숨 아래서 값어치, 가치,가 없는 그야말로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면,,나는 인간이라는 육신을 어쩔 수 없이 타고났다면 앞으로 무엇을 위해? 앞으로 무슨 덕목에 나의 온 에너지와 태도를 집중 시켜야 하는 걸까?((아모르 파티 !! 카르페 디엠 !! 가슴이 뛰는대로 가는 게 진리일까??))
과거!! 웅장하고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자연 습지, 갈대밭을 유유히 유유자적 거닐던 때가 오버랩 되고 있다.
경이로운 자연이 이러할진대,,우리들은 왜 이다지도 파이 나눠먹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을까??
고 리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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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다가가 2020-08-10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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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아침에 전철을 타고 오면서 작년 11월말 한겨레 대담기사로 '송건호언론상에 강준만 교수를 선정한 이유'를 읽었다. 언젠가 프린트한 걸 가방에 계속 넣고만 다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사실은 바삐 전철에 오르느라 매점에서 조간신문을 살 시간이 없었다) 읽은 것인데, 거의 두달 전 기사이지만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귀가하기 전에 인용/정리해두려 한다. 이런 기사도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이므로 전문을 퍼오진 않고 부분 인용/발췌를 하면서(사실 이런 '인용'을 가장 잘,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강준만 교수이다) 드문드문 몇 마디 덧붙이고 하겠다. 대담은 '강준만 입문'으로서 아주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6년 동안 122권의 책을 낸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상이 주어졌다면 과소한 듯도 한데, 이 기회에 '강준만의 시대'를 잠시 돌이켜보고 싶다(나는 강준만을 지지하지 않을 때라도 그의 작업만은 적극 지지한다). 비록 내가 적격자는 아니더라도.
나는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을 한두 권 정도밖에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인물과 사상>만은 여러 권 사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자신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만, 내가 안티-조선에 동참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운동' 덕분이었다. 더불어, 아마도 그와 '인물과 사상'의 주도적인 문제제기에 따라 '문학권력'과 '주례사비평'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도 했다. 여러 모로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건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제목으로 붙인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는 그의 수상소감문이며, 나는 과중한 겸손을 오히려 경계하는 사람이기에. 기사/대담의 중반으로 건너뛰겠다(기자와 강교수의 주거니받거니이다).





-언론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자, 정치평론가, 행동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나?
=언론인까지야. 대중적 글쓰기하는 언론학자지. 나를 언론인라고 하면 과찬이고, 전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언론인 역할 하면 좋겠지.(*언론학자 강준만의 대표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10년쯤 전에 보던 책들은 <언론플레이>나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같은 책들이었다. 과조교 시절이었는데, 과방에는 언론고시생들이 읽던 책들이 나뒹굴고는 했고 '강준만'도 그런 책들에 속했다. 고시에 뜻이 없었던 나는 그냥 훑어보는 걸로 충분했다.)
-안티조선의 주요 활동가였는데 최근 언론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글에서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조중동에 대한 생각은 같은데, 싸운 뒤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은 국민이 호응을 안했는데, 그것은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 때문이다(*나로선 적극 '호응'했지만, 원래 조선일보의 독자가 아니었으므로 실상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내가 보태준 건 별로 없다. 나는 주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본다. 보다 정확하게는 김훈과 고종석의 독자였다. 두 지면의 사설들에 동의하는 건 아니므로. 강준만 교수는 요즘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언론학자 강준만은 한국사회에 조선일보의 해악을 폭로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맘때쯤 나는 강준만이란 이름과 다시 만났고, <인물과 사상>의 비주류 독자가 됐다. 매번 사읽은 건 아니었으니까).





유권자로서는 민주세력 찍지만, 신문은 안 바꾼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 인사가 공직 들어서면 재산 공개했는데, 왜 돈이 그렇게 많은가(*다른 말로 하면, 좌파는 부유해도 되는가, 이다. 이건 일종의 '수행적 모순'이다. 기사가 달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일부 노조위원장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네그리의 말대로, 혁명의 원천은 '가난'이고 '빈곤'이다. 결코 '의식'이 아니다. '부자 아빠'에의 유혹과 '자발적 가난' 사이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을 감안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주류 영합주의가 강하다. 내 삶의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선택과 다르다. 주류 매체고 영향력 있다는 그 판단이 크다. 이것이 가장 세고 주류라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주의를 부추긴다. 기러기 아빠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개혁·진보 인사에서도 있다. 진정성 갖고 운동해도 신문 안 바꿨다.
이제 경제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재현씨가 어느 글에서 “진보적 진영에서 문화운동하고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말이다. 경제는 감시 대상일 뿐이고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겨레>같은 언론도 재벌들로부터 독립해 신문사를 꾸려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치중한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탈·비리만 다루지 주도적 플레이 안 한다. 그러면 영원히 조중동에게 깨진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다(*때문에, 아직도 국민의 '어리석음'이나 탓하는 이들을 나로선 신뢰할 수 없다).
-최근의 신문법이 시행됐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기구들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지만, 기대가 있다. 이런 기구들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왜냐면 한국 독자들이 가진 묘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광신도 노무현 광신도가 <조선일보>를 본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합리주의다. 왜? 노가 개혁한다고 나서도 주변 핵심 인사들의 재산 규모가 역대 정권 비해 적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수고 진보고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가 중심이고 가외로 개혁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입장의 정통 좌파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한편으로 노 정부 요직 인사들도 자기 재산 다 챙기고, 국민들은 신문에서 아이들 논술과외 서비스도 받아야 하고, 부동산·증권 투자 정보도 얻어야 하고, 각종 광고도 봐야 한다. 그런 신문이 유리하다. 경제는 이렇게 간다.(*그러니까 생각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이 아니라 '현실'에서부터.) 앞서 안티조선 운동 하면서 모멸을 가하는 공격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북·서유럽 복지 국가 모델? 나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본다. 자원 없고 수출로 사는 나라를 어떻게 북유럽 나라들에 비할 것인가?





우리 나라 사람 경제적 보수성을 낮은 곳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택시 타보면 운전기사들이 결코 무식하지 않다. 물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혜를 갖고 있다. 장하준 교수 글에 대해 여러 말 많지만, 그 정도 글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겨레>가 장하준 정도의 시각을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하다(*그런 식으로 대단한 건 창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아는 체하는 인문·사회학도들이 경제를 모른다. 경제에 대해 뭘 알아야 국민들 마음 속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경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건 대개 '실물경제'에 대한 무관심이고 갈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부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르기까지 읽느라고는 읽었다. 가정경제에 도움이 안 됐을 뿐이다.)
-<한겨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아직 창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초심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창간 당시는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독재정권에게 대항했던 이들이 자체 매체 가진 감격이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겨레>가 비판을 넘어서서 의제를 스스로 만들고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저항세력이 가졌던 견제·감시·비판 수준이다. 반면 조중동은 의제 설정을 멋대로 하지만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독자들은 익숙해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때 경호권 발동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리영희 선생도 경호권 발동 반대했고, 열린당 그것을 망설였다. 당시 <한겨레>는 때묻히지 않으려고 원론 수준으로만 얘기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한겨레>가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 마당을 펼쳤어야 했다. 경호권 발동 안 된다는 리영희 선생 얘기도 싣고, 또 예외적으로 경호권 발동해서 보안법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로 다룰 수 있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유시민 의원은 다 끝나고 국회 사망선고하면 뭐하나? 한겨레가 썼으면 여야가 심각히 고려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고급지로서 어젠다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전술·방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국가보안법 말고 다른 것에도 적극성이 없다. 진보세력의 문제점 안 다룬다. 조중동 따라서만 조금 다룬다. 그러다 보니 어젠다를 다 넘겨준다. 정권 주류가 비주류적으로 일관하듯 <한겨레>도 그런다. 나는 그걸 아웃사이더 체질이라고 본다. 아웃사이더는 고귀하다. 권력·부에 욕심 없고, 옳은 소리하고 저항하고 감시·견제한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집단을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궂은일, 더러운일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욕할 것 많지만, 인사이더는 어렵고 욕먹을 일이 많다.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인사이더는 책임져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휘말리지 않고 옳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한다. 메이저로서 아웃사이더 하면 좋겠지만, 조중동 70%가 인사이더 하는데, 마이너만 아웃사이더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정파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비판도 더 하고, 개혁진보세력을 더 세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사 쓸 때는 진보세력과의 유대도 끊어야 한다.(*2000년부터 격월로 간행되던 <아웃사이더>가 결국 폐간됐고, 나에겐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란 인터뷰집 두 권만이 남았다. 갖고 있는 책인 줄도 모르고 2,000원 떨이판매 하길래 또 산 것. 어쨌거나 '고귀한 아웃사이더'들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정의상 '아웃사이더'는 '소수'이며,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해서, 보다 더 많아져야 할 것은 '인사이드 아웃사이더'가 아닐까 싶다. 자신도 이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의식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기만이다.)
-최근 칼럼에서 신문산업이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신문시장은 지금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다. 조선·동아는 그래봐야 거대자본의 소유는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터넷 언론 기업 성장하고 통신업체 중심으로 매체 융합 나타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 집권하면 케이비에스2·엠비시 민영화 안 할 것 같나? 신문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루퍼트 머독 식의 거대한 미디어그룹이 나오면 현재의 조중동보다 민주주의에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해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한다. 살 방법은 지식인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아직 기자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지식 산업쪽으로 힘을 펼쳐야 한다. 거대 기업들속에 편입되면 절대 안 된다. 비교 우위는 지식 산업인데, 신문업계 선두주자인 조중동은 정권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홍석현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책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벼락공부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에 ‘홍수민주주의’가 있다. 지난 민주당 분당에 민주당의 책임만 있나? 삼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평소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소에 잘못된 것을 잘 눈감아 주다가 건수 생기면 국민 모두 짱돌 하나씩 들고 나선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처리하는 홍수식이 화끈한 맛은 있다. 그런데 홍수 났을 때 사람들이 신중하게 하겠나. 우격다짐식이다. 아무리 우리 체질이어도 이제 와서 삼성만 죽일 놈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평소에 대학 총장들도 삼성 포함한 재벌 돈을 끌어와야 한다. 재벌 은전 받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를 평소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덜 할 텐데, 이벤트성이 강하다. 한 번 걸리면 홍수 맛좀 봐야 한다는 쏠림이 강하다.(*이 '홍수민주주의'에 대한 지적은 예리하며 유익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교과서에 들어갈 만한 항목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중앙일보>는 또다른 삼성이자, 언론계의 실력자다.
=<중앙일보>가 조·동에 비해 개혁세력으로부터 덜 얻어맞는다. 유시민도 조·동은 독극물, <중앙>은 불량식품이라고 했던가? 남북문제에서 비교적 자본의 합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자본의 합리성도 없이 생래적 거부감으로 접근했다. 한국사회에서 민족문제 다루면서 자본의 위험이 가려졌는데, 사실은 운동권도 그렇지만 민족문제와 자본문제가 쌍벽이다. 중앙의 잘못이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 조·동이 중앙을 키운 셈이다. 아마 조동이 남북문제 시각 바꾸면 중앙 입지가 위축될 수 있겠다.
-인물과 사상의 중단과 인터넷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나?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데?
=최근 <한겨레21>에 휴대전화 관련 글을 썼는데, 일종의 균형잡기 지적이었다.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에 친화적이다. 새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중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딴따라 끼도 있다. 영화도 엄청 좋아한다.





-전북 전주에 살고 전북대 교수를 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것은 언론사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또다른 문제라고 했는데?
=내부 식민지이론을 믿는다. 여기는 식민지 체제인데, 열이 나지 않는가? 서울서 국회의원하는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 사람인가? 여기를 대변하는가? 여기 사는가? 아이들이 여기 있나? 다만 여기 근거로 제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이 신문 제목 좀 봐라. 지역 언론이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전북 지역의 신문 두 개를 보이며) “노대통령 전북홀대 심각” “전북 홀대론 확산 분노” 언론은 이런 보도 좀 하지 말고, 중앙정부는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지역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 생각하나?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 60년대 250만명이 넘었는데, 최근 190만명선이 무너졌다. 내가 처음에 전북대 와서 지역 문제 갖고 혈압 좀 올렸다. 그런데 나만 성격 이상한 놈으로 찍혔다. 가만 보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체념의 지혜가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서울 못 가서 배 아파서 그러냐” 그런다. 최근에 지역 신문 발전기금 나눠주는 것도 그렇다. 지방 언론사 사주가 토호라고 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 적용해 특정 지역 언론이 집중 지원받았다. 그런데 토호와 재벌이 다른가? 재벌은 선진적이라서 좋고, 토호는 비리 복마전이라서 나쁜가? 재벌처럼 토호도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기업이 잘 되면 악질로 본다. 그 시각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지역 신문은 경제력에 달렸다. 어느 지역에는 <한겨레>만한 매출을 올리는 신문사가 있고, 대부분 다른 지역에는 그런 신문사가 없다. 기업의 건전성은 경제력에 달렸다. 이렇게 기준 만들다 보니 지원이 일부 지역에 몰렸다. 사람도 같다. 빈곤층을 볼 때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라고 봐야 하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양면을 봐야 한다. 지방을 썩어빠진 것으로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하면 지방에 오래 있어 물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대 교수들도 지방언론사를 욕한다. 그리고 지방대에서 좋은 학생은 다 서울로 편입가고 교수도 서울로 떠난다. 지금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안면 몰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역안배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역 안배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 정책, 행정도시, 기업도시, 공기업 이전 추진중이다.
=노 정부가 요만큼 지역 균형발전 하는 기미 보이더니 수도권을 풀었다. 지방에 공기업 이전 계획 발표하고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허용한 것은 지방에 어음주고 수도권에 현찰준 꼴이다. 균형발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울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신도시, 공장 신·증설 풀어줬다. 갑갑하다. 인구가 아무리 수도권에 몰려도 아직 지방이 다수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서울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또 본국(?)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지방은 묘한 이중 식민지 구조가 돼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러면 당신 애는 공부 잘 해도 지방대 보내겠냐고 말한다.
-서울대 문제 책도 쓰고 해법 제시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했는데?
=국공립대 통합은 정말 좋은 안인데, 민주노동당 집권해야 된다. 손호철 교수가 민주노동당 쓴소리 강연 갔다가 이래서는 집권 못한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진보진영 쓴소리 경청 했는데, 손 교수가 2010년대에 집권 못한다고 그랬다. <한겨레 21>하고 서울대 문제 갖고 토론도 했는데, 서울대 개혁 얘기하는 사람도 학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나는 정운찬 총장처럼 서울대와 연·고대 비중 축소해서 가자는 것이다. 명문 일류대도 경쟁의 필요성이 있다. 주요 권력기관 출신대를 봤더니 3개 대학이 50%를 먹어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적어도 수십개 대학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돈 아끼려고 고교등급제를 하는 것이다. 또 고교 등급제보다 대학 등급제가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 원초적 차별 가하니 명문대 아닌 대학생들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법고시 식으로 경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시 덕에 노 대통령도 나온 것 아닌가?





-강 교수가 펴낸 책을 검색해보니 122권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창피해서 언제부터인가 권수를 세지 않는다. 나는 책을 작품으로 생각 안한다. 주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역작을 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책 내는 쪽으로는 디지털화돼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전에 책이 귀할 때는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함부로 본다. 메모도 함부로 하고, 소모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철학과 같은 분야는 다르다. 이론 분야는 작품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신방과 쪽에서 작품이 나오겠나? 흐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한 책을 오래 쓰다 보면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다. 내게 책 내는 데 불성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공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나는 다른 고종석, 김훈, 홍세화 등과 달리 강준만에게는 '문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문체없음'은 사실 그의 전략이기도 한 것. 더불어 '소모되는 것'을 자임하는 그의 미덕이기도 하다. 적어도 문체적으론 그는 나르시시즘으로부터 자유롭다.)
내게 책 쓰는 것은 중독인 것 같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사명감 같은 게 없고, 누구는 내가 돈 때문에 많이 쓴다고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다. 자주 내는 것은 덜 팔려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띄엄띄엄 내는 게 돈벌이로는 낫다. 나는 그냥 책 쓸 준비하고 책을 내는 게 취미다. 매우 재미있다. 요즘은 한국인의 특성을 범주화하는 책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쏠림, 홍수민주주의, 소용돌이 현상, 빨리빨리. 냄비 근성 등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개념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겐 책 쓰는 게 그 재미다.(*책을 읽고 쓰는 재미에 나도 공감한다. 책에 대한 구속 덕분에 나는 '온라인 게임'과 '드라마'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나?
=무작위로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입력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또 신문 보다가 사례가 나오면 오려놓는다. 그런 것들을 각 주제별로 파일에 입력한다. 지금도 이미 쓸 책들이 정리돼 있다. 자료 입력을 미리미리 했기 때문이다. 보통 10~20권씩 진행한다. 주제별로 입력해놓은 것이 20권 정도 분량이 된다.(*이런 류의 페이퍼도 아니고 단행본들을 20권씩 진행하다니! 그나저나 그런 식으로 책이 쏟아지면 우리는 '강준만의 시대'를 언제쯤 면하게 되나?)
06.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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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1-20 공감 (3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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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월의 사회적 독서
지난달 1일은 만우절이어서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는 일이 멋쩍더니 이달은 또 메이데이(노동자의 날)인지라 이런 노동이 머쓱하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이런 휴무와 무관한 예외적 노동자인지라 5월의 리스트도 올려놓기로 한다(이 또한 예외적 노동인가?).
사실 리스트에는 스스로를 닦달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3월에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1,2월에 사회적 독서를 처음 구상할 당시에 예기치 않았던 '저항'에 직면하고 있어서 '닦달'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날달에도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 등이었지만 이 책들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물론 대학 신입생들을 겨냥한 목록이었지만). 그건 3월의 목록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굳이 (스스로에게) 변명하자면 이 달 안으로 <인간문제>와 <어머니>에 대한 글을 포함해서 몇 가지 아이템에 대한 페이퍼를 쓸 계획이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아무래도 좀 만만한 책들을 리스트에 올려야겠다는 계산이 선다. 그래서 가정의 달에 꼽은 '사회적 독서'의 목록은 강준만의 <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 2006)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가정의 달'이란 것 자체가 한국적 발상이자 '한국인 코드'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여하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또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지식인으로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겠기에(나는 '강준만의 시대'란 표현에 동의한다)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한 예우도 갖출 필요가 있겠다. 내가 굳이 군소리를 붙이지 않아도 그의 책들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서도.
<한국인 코드>와 함께 내가 읽어보려는 책은, 며칠전 경향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확인이 됐지만 지난 7-80년대 한국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다룬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개마고원, 2004)이다. 강준만의 편저로 돼 있는 책인데,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라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이 있다(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 이미 이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프리'다. 역시나 베스트셀러들인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2007)나 스콧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갤리온, 2007) 등을 들춰봐도 좋겠다. 요는 이러한 '거울'들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좀 들여다보자는 것이니까.




두번째 책은 경향신문의 설문 중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국내저술 목록에서 단독 저작으로는 다섯번째로 꼽힌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이다. '미시적 파시즘'과 '대중독재'라는 화두를 통해서, 그리고 한동안 <당대비평> 지면을 통해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에 준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는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백낙청-리영희-최장집-김우창 등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지식인의 자기반성적 성찰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이념과 이데올로기의 '속살'을 만지는 게 그의 주특기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민족주의 운동의 전공자이면서 동유럽(특히 폴란드)과 러시아의 사정에 밝다는 점도 호감을 갖게 한다.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에 대해서 그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세번째 책은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저술 가운데 다섯번째를 차지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03)이다(강원대출판부본은 절판되었다). 그래도 푸코의 저작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팔린, 가장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다. '푸코'란 이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독자라면 먼저 크리스 호록스의 만화책 <푸코>(김영사, 2003)로 몸을 푼 다음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감시와 처벌> 정도는 이미 독파한 분이라면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도서출판b, 2004)과 대결해보는 것도 좋겠고, 벤담-푸코의 판옵티콘의 응용이라고 할 홍성욱의 <파놉티콘 - 정보사회, 정보감옥>(책세상, 2002)을 디저트 삼아 읽어볼 수도 있겠다.




끝으로 네번째 책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엮어낸 <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 2007)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속으로 외치면서 <소설 구십년대>, <소설 팔십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다(80년대에서 끝난다면 지옥일 테지만). 가정의 달 '5월'이 갖는 또다른 의미를 되새기기에 적합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소설 이천년대>에 대응할 만한 시집으로는 '젊은 시인 49인 자선 대표작' 모음집인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실천문학사, 2007)가 눈에 띈다. 아무리 문학판이 '일류(日流)' 일색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의 시의 영토는 보전되고 있다. 그 영토에서 젊은 시인들이 각자 무슨 구멍들을 파고 있는지 잠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만한 계절이다. 5월은...
07. 05. 01.




P.S. 이런저런 사정으로 5월의 사회적 독서를 6월까지 연장한다. 내가 따로 고려했던 몇 권의 책은 최상천의 개정판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 그리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황광우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이다. 지난 년대에 대한 기억으로 며칠쯤은 채워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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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5-01 공감 (13)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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