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위안부 피해자단체가 ‘소녀상’ 철거한다면 : 뉴스 : 동아닷컴
[천영우]위안부 피해자단체가 ‘소녀상’ 철거한다면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입력 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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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발목을 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작년 12월 28일 서울에서 발표된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합의문을 통해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도 금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후폭풍에 묻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인다. 어렵사리 타결한 합의가 해석의 차이로 이행 여부조차 불확실해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4·13총선으로 합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의 발언권이 커진 것도 새 변수로 등장했다.
애초 예상된 일이지만 핵심 쟁점은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철거 문제다. 정부는 합의문에 소녀상 철거는 언급도 안 됐다고 대통령까지 못 박고 나섰고, 일본 측은 암묵적 양해사항이라고 반박한다.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이나 협정이 아닌 일종의 신사협정이자 문서화한 양해사항에 불과하다.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합의문에 어떻게 언급됐는지는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사자가 합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관건이고, 합의를 가능케 한 암묵적 양해가 있다면 문서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한다”는 합의문 속의 두루뭉술한 표현이 각자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혀 언급도 안 된 문제라고 발뺌하기엔 무리이고, 일본으로서는 암묵적 양해로 해석할 소지도 없지 않다.
이번 합의에 만족할 국민은 없다.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10억 엔의 금전적 지원으로 덮고 넘어가자는 방안에 대해 돈으로 면죄부를 사고 죄책감을 털어버리려는 수작이라고 분개하는 국민도 많다. 발표문에서 사용한 ‘최종적 불가역적(不可逆的) 해결’이란 묘한 표현이 거부감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껏 이렇게 끝낼 일을 애초에 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키웠고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위안부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 정부 신뢰성이 걸린 문제다. 소녀상 철거를 민간단체 몫으로 돌리고 정부는 피해 갈 궁리만 하는 것도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합의 내용이 불만스러워도 그것이 지난 4년 동안 한일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더 큰 국익을 희생해 가며 얻어낸 최선의 결과다.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과도하게 집착한 것은 탓할 수 있어도 협상을 잘못했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일본이 국가 책임을 죽어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것 이상의 표현을 얻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 예산에서 지원금 전액을 출연하는 데서 간접적으로나마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를 찾을 여지도 있다.
합의를 통한 해결의 대안은 일본이 역사의 멍에를 영원히 지고 가게 하는 것이다. 돈 10억 엔에 면죄부를 주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도 있겠으나 일본이 아무리 야속해도 앞으로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차라리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고 지원금을 사양하는 것만 못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전 세계 모든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 관련 단체들이 그간 일본에 항의의 뜻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선언하고 자발적으로 철거하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대범하고 감동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방치하는 것은 국익 손상 이상의 해악을 초래한다. 가장 억울한 손실은 우리가 힘들게 가꾼 민주적 가치와 법치의 훼손이다. 산케이신문 특파원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고 ‘제국의 위안부’를 저술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위안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반일(反日) 정서가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까지 제약할 수 있는 위력을 보여줬다. 항일투사로 인정받으려는 유혹이 법과 양심으로 재판해야 하는 판사들의 이성까지 흔들어 사법제도의 신뢰성을 위협한 일은 없었는지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나. 국민 정서가 이성과 국익을 지배하고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대일(對日)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천영우]위안부 피해자단체가 ‘소녀상’ 철거한다면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입력 201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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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발목을 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작년 12월 28일 서울에서 발표된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합의문을 통해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합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도 금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후폭풍에 묻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합의 이행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인다. 어렵사리 타결한 합의가 해석의 차이로 이행 여부조차 불확실해지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4·13총선으로 합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의 발언권이 커진 것도 새 변수로 등장했다.
애초 예상된 일이지만 핵심 쟁점은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철거 문제다. 정부는 합의문에 소녀상 철거는 언급도 안 됐다고 대통령까지 못 박고 나섰고, 일본 측은 암묵적 양해사항이라고 반박한다.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이나 협정이 아닌 일종의 신사협정이자 문서화한 양해사항에 불과하다. 소녀상 철거 문제가 합의문에 어떻게 언급됐는지는 본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사자가 합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관건이고, 합의를 가능케 한 암묵적 양해가 있다면 문서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한다”는 합의문 속의 두루뭉술한 표현이 각자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혀 언급도 안 된 문제라고 발뺌하기엔 무리이고, 일본으로서는 암묵적 양해로 해석할 소지도 없지 않다.
이번 합의에 만족할 국민은 없다.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10억 엔의 금전적 지원으로 덮고 넘어가자는 방안에 대해 돈으로 면죄부를 사고 죄책감을 털어버리려는 수작이라고 분개하는 국민도 많다. 발표문에서 사용한 ‘최종적 불가역적(不可逆的) 해결’이란 묘한 표현이 거부감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껏 이렇게 끝낼 일을 애초에 왜 감당하지 못할 만큼 키웠고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위안부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 정부 신뢰성이 걸린 문제다. 소녀상 철거를 민간단체 몫으로 돌리고 정부는 피해 갈 궁리만 하는 것도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합의 내용이 불만스러워도 그것이 지난 4년 동안 한일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더 큰 국익을 희생해 가며 얻어낸 최선의 결과다.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과도하게 집착한 것은 탓할 수 있어도 협상을 잘못했다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일본이 국가 책임을 죽어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임을 통감”하는 것 이상의 표현을 얻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 예산에서 지원금 전액을 출연하는 데서 간접적으로나마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를 찾을 여지도 있다.
합의를 통한 해결의 대안은 일본이 역사의 멍에를 영원히 지고 가게 하는 것이다. 돈 10억 엔에 면죄부를 주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도 있겠으나 일본이 아무리 야속해도 앞으로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차라리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고 지원금을 사양하는 것만 못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전 세계 모든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워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 관련 단체들이 그간 일본에 항의의 뜻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선언하고 자발적으로 철거하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대범하고 감동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방치하는 것은 국익 손상 이상의 해악을 초래한다. 가장 억울한 손실은 우리가 힘들게 가꾼 민주적 가치와 법치의 훼손이다. 산케이신문 특파원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고 ‘제국의 위안부’를 저술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위안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반일(反日) 정서가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까지 제약할 수 있는 위력을 보여줬다. 항일투사로 인정받으려는 유혹이 법과 양심으로 재판해야 하는 판사들의 이성까지 흔들어 사법제도의 신뢰성을 위협한 일은 없었는지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나. 국민 정서가 이성과 국익을 지배하고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대일(對日)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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