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9

[새책]그는 어떻게 제국의 변호인이 됐나?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민중의소리

[새책]그는 어떻게 제국의 변호인이 됐나?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민중의소리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최종업데이트 2016-05-26 1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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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기억 또 하나의 억압, 21세기 금서!”

문구만 보면 굉장한 진실을 전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맞선 의사(義士)의 풍모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문구는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 제2판 표지에 등장하는 문구다. 박 교수는 재판을 통해 34곳에 대해 삭제 결정이 내려지자 해당 부분을 삭제한 2판을 발간했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PDF판을 무료 배포하기까지 했다.
“21세기 금서”라는 검은 띠지가 달린 ‘제국의 위안부’를 서점에서 만나는 건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적으로 박 교수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이를 둘러싼 지식인 세계의 풍경들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검찰의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와 맞물리면서 한국의 자유주의 지식인의 상당수가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제국의 위안부’에 힘을 실었다. “낡은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럴싸한 양념이 더해지면서 ‘제국의 위안부’를 실질적 또는 내용적으로 지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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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2판 표지. “또 하나의 기억 또 하나의 억압, 21세기 금서!”라는 구절이 선명하다ⓒ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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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가 ‘21세기 금서’라고?
이런 풍경들은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한 논란이 법적인 삭제 조치로만 끝날 수 없는 성격의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출간된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는 이번 논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의 시작을 알리는 소중한 첫 결실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문제제기를 한다. 비판 대상은 1차적으로는 ‘제국의 위안부’와 저자 박유하이고, 2차적으로는 박유하를 옹호하는 한국의 자유주의 지식인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을 비판하고 있다. 법학, 역사, 문학 전공자들과 언론인, 운동가 들이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며 그들은 전쟁범죄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을 마주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의 출판을 기념해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201호에선 서평회가 열렸다. 이날 서평회엔 이 책의 필진들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했다.
서평회에서 나온 이야기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국내 지식인들의 태도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존재였다. 사실 필진인 김수지 역사평설가는 “노무현 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사료집을 낸 적이 있다. 거기 보면 ‘친일의 유형과 논리’가 나온다. 어떻게 식민지 지식인이 친일의 길을 갔는 지 알 수 있다. 그 길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고 지적으로 보인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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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서평회ⓒ최진섭
김수지 역사평설가는 이 책에서 일제시대 당시 정교원이라는 언론인이 쓴 ‘내선일체의 윤리적 의의’라는 글에서 주장한 ‘동근동조(同根同祖)’라는 논리를 인용한다. 그가 이런 논리를 만든 건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이 민족의 침략이 아니고 따지고 보면 조상이 같으니 억울해할 일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리고 박유하의 논리도, 박유하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의 논리도 이런 의도와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수지 역사평설가는 “이상하게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인 지식인임을 강조한다. 마치 중간에 있는 게 합리적인 것처럼 말한다. 기울어진 시소에서 어디로 가야 중간이 되냐”고 꼬집기도 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한일 군사동맹 그리고 미국

이날 서평회에서 정연진 미국 OK 원코리아 대표는 미국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2000년 미국 연방 법원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와 소송을 벌여던 당시를 설명하면서 “일본의 방해는 충분히 짐작했다. 하지만 가장 큰 큰 걸림돌은 미 국무부였다. 당시 미국은 유태인 홀로코스트와 달리 미 법정에서 다뤄서 안 된다고 재판부 설득하는 등 집요하게 방해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정 대표는 “남북이 같이 힘을 합쳐서 국제무대에서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남북 공조 가능한 이슈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과 졸속 합의에 나서면서 남북 공조의 기회도 차단했다”고 꼬집었다.
우리 지식인들과 미국의 태도를 관통하는 말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다. 그리고 식민지근대화론, 국정교과서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입장과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1919년)의 법통성을 부정하고 새롭게 건국절(1948년)을 추진하는 세력과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세력은 이미 내용적인 ‘화해’를 끝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조만간 한일군사동맹을 위해 어깨동무를 나란히 할 ‘동지적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화해를 한일군사동맹을 필요로 하는 미국은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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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서평회ⓒ정연진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경계해야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화해’의 담론으로 포장하고, 표현의 자유로 띠를 두르고, 사상 검열 당한 피해자 흉내를 내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박유하는 누구 편인가?”하고 질문을 던진다. 엄연히 전쟁범죄 피해자가 실재하는 문제에서 ‘당신은 누구편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질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필진 가운데 한 명인 손종업 교수는 “박유하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편익을 추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책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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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위안부 문제, 소녀상, 정대협

‘제국의 위안부’가 담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2016년 1월 창립한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초대 회장인 김창록 교수는 “많은 이들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부분의 전체화, 예외의 일반화, 자의적인 해석과 인용, 극단적인 난삽함, 근거 없는 가정에서 출발한 과도한 주장 등등, 수많은 문제점으로 가득 찬 ‘제국의 위안부’는 이미 학술서로서의 기본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책”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의 필진인 이재승 교수도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님을 입증하는 박 교수의 서술 방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이 믿고 싶은 몇 가지 사례들을, 더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방식대로 믿고 이를 사태의 전부로 일반화하고 나머지 사례를 모조리 증거가 없다고 하는 것이 수정주의자들의 행위공식”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시종일관 제국의 입장에서, 즉 가해자의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 소녀상, 정대협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재승 교수는 “박 교수 는 근본적으로 침략과 전쟁을 억압받는 여성이나 주권을 박탈당한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제국의 시선에서 제국의 변호사로서 다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 책은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 자체가 일본제국의 전쟁 책임을 묻는 일본군 ‘위안부’를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만들어 일본군의 범죄를 면죄해주는데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안부’(성노예) 문제는 단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며 일본보다 일찍 제국주의 확장을 한 서양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게 한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제목은 일본의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희석화, 추상화하고, 축소하는 데 활용된다고 꼬집는다.

이 책의 제목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다. 손종업 교수는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제국의 변호인’이라고 쓴 것에 대해서 그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 아닌가 비판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런 분들이라면 너무도 당연히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이 얼마나 경솔하고 비학문적이며 어느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인가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열린 서평회에서 이 책을 기획한 최진섭 도서출판 말 대표는 “서점에서 ‘21세기 금서’라는 띠지를 단 ‘제국의 위안부’를 보는 순간 감정이 북받쳤다. 그 옆에 비판 책 같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현의 자유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제국주의에 맞서 몇 십 년을 싸워온 이들을 희롱하는 내용”이라며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 책이 ‘제국의 위안부’ 옆에 놓여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제국의 위안부’와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 가진 위험성을 우리는 충분히 아는 듯 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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