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 권영숙
등록 :2014-11-06 18:35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년 1895일의 투쟁 끝에 2010년 11월1일 국회에서 맺었던 사회적 합의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회사는 라인을 깔아야 한다면서 유예기간을 요청했고, 노조는 양보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2013년 5월1일 간절히 출근하고 싶었던 일터로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는 일도 주지 않고 임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해 12월30일 연말을 틈타 노동자들 몰래 말 그대로 ‘야반도주’했다. 출근한 노동자들은 자신들만 남은 빈 일터를 봐야만 했다.
기륭전자 사태는 이 사회에서 노사분규 혹은 노동자 투쟁과 관련해 이뤄낸 사회적 합의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특히 서유럽의 사회적 조합주의에서 보장되는 법적 제도적 효력이 전혀 없는, 단지 사회적인 압박으로 만들어낸, 그래서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런 개별적인 협약에 대해서 어떻게 이행을 강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도 심각하다.
누가 어떻게 노·자 간의 사회적 합의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겠는가. 비단 기륭전자 사례뿐만 아니라 여러 노동자투쟁이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가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국회권고안에 따른 노사합의가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았으며, 2010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간의 파업을 접으면서 체결한 노사 합의도 현재 유명무실화됐다. 하지만 이 사회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접는 사회적 합의의 체결 여부에만 관심 있을 뿐 그것의 이행 여부에는 둔감하다. 이 국가는 노동자와의 사회적 합의를 어긴 기업주에 대해 어떤 처벌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자 간의 합의문 조인식에 나타나 악수하고 웃음지으며 사진 찍던 국회의원들 역시 그 합의의 폐기에 대해 어떤 사후적 조처도 취하지 않는다. 어떤 계약이든 보증인의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과연 이들에게 연대책임은 없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도 있다. 레토릭으로 점철된 공허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기 이전에 기업이 노동과 맺은 사회적 약속에 대한 이행부터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강제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흔히 재벌공화국이라고 불리고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 재벌도 여러 기업관행에 대한 처벌에서 항상 면제되진 않는다. 배임·횡령, 정치자금 조성 등은 가끔 처벌된다. 유독 한국의 기업들이 일방적인 면죄부를 받는 것은 기업의 노동관행과 관련된 불법행위들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기업과 기업주는 비켜난다. 법원과 검찰도 법을 그 방향으로 우회하도록 윤색한다. 용역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살인미수 하더라도 그것은 살인미수가 아니다. 불법 근로자파견이 적발되어도 법적으로 명시된 징역형은 고사하고 벌금형도 유예된다. 고용노동부조차 눈감아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부당노동행위가 적발되어 고발됐던 유성기업,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상신브레이크 등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한국은 자본공화국이고 재벌공화국이면서, 동시에 노동의 시민적 권리가 지체되고 억압된, 임금노예들의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이다. 청춘의 10년을 바치며 투쟁해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싸움을 마무리지은 이른바 사회적 합의가 자본의 야반도주로, 검은 머리 자본의 ‘먹튀’로 결말을 지어도 침묵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노동에 그 어떤 사회적 합의도 종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검찰은 1만1800명의 국민이 사기죄로 고발한 최동열 회장 사건에 대해서 당장 수사에 착수하라.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