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6

알라딘: 만주 모던 -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알라딘: 만주 모던 -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만주 모던 -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 
한석정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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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 518쪽 | 231*159mm | 826g | ISBN : 978893202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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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부상하게 한 급속한 산업화, 건설과 정보 강국을 견인한 속도 추구, 나아가 개발 체제에 대한 향수가 일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오늘날의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빨리빨리' 문화도 건설과 동원, 경쟁 등 60년대의 압축성장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제시하는 책 <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만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석정 교수(동아대학교 사회학과)가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한국의 '재건 체제' 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

작업의 기강과 동원 등 권위주의 체제의 요소와 불도저식 건설을 한국에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만주국은 남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둔했던 관동군이 1931년 상부의 명령 없이 군벌 장쉐량 체제에 전쟁을 도발하고 이듬해 세운 나라다. 만주국 체제는 건설 분야뿐 아니라 생산, 안보, 위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적 정책 수행의 총체였다. 핵심은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결정해 밀어붙이는 속도다.

머리말

1장 만주 모던으로의 길
근면 체제에 대하여 | 동아시아의 확산 | 근대란 무엇인가 | 전통과 모방 | 하이 모던 | 식민주의와 모던 | 식민주의와 토착화 | 만주 모던

2장 만주와 조선
주변부의 등장 | “조반을 부산에서, 석반을 안둥에서” | 만주와 전시하 지역사회 | 식민 시대 부산의 문화적 맥락 | 만주행 엑소더스 | 만주국의 경계 | 만주의 인구 구성과 조선인의 사회적 지위 | 만주국 후반기의 조선인 화이트칼라 | 만주 노래 혹은 토착화의 실험 | 만주 문학의 스펙트럼 | 개척과 생존 | 귀환과 기억

3장 건국과 재건
만주국 만들기 |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 | 만주와 남성성 | 국가와 폭력 | 냉전과 만주국의 영향 | 한일회담과 만주 인맥 | 건국과 재건 | 재건의 스펙트럼

4장 “싸우면서 건설하자”: 한국판 국방국가
파시즘과 근대화 | 카키복 제복을 입은 파시스트 청년들 | 재건국민운동 | 청년단 운동의 한계와 명암 | 개발 욕구 | 계획경제 | 식량 증산의 꿈 | 재건을 위한 “피눈물” | 노동영웅 | 한국식 민족주의 | 한국판 국방국가

5장 건설 시대
‘국토개발’의 계보 | 울산 콤비나트 | 뚫기 | 메우기 | 파헤치기 | 스피드 | 한국형 하이 모던

6장 신체의 각성
동아시아 위생 정책의 계보 | 식민지 위생 |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 제국과 신체 | 민족의 신체 | 냉전과 스포츠 | 스포츠 강국의 길 | 복싱과 세계체제

7장 재건의 노래
무용과 재건 | 노래와 재건 | 남과 북의 대결 | 저질과 퇴폐 | 영화와 재건 | 만주 웨스턴의 남성상 | 만주 웨스턴의 융합성

8장 맺으며: 식민과 변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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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6년 4월 9일자 '책의 향기'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16년 4월 8일자 '새로나온 책'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6년 4월 7일자

 최근작 :<만주 모던>,<근대 만주 자료의 탐색>,<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 … 총 5종(모두보기)
 소개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브라이트 재단 지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어바인 대학교 강의교수, 교토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日文硏)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ARI)의 외국인 연구원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화려한 군주』 『주권과 순수성』이 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
뚫고 메우고 파헤치는 속도전의 건설 시대, 60년대 한국.
맨주먹으로 황무지를 일군 개척과 실험의 공간, 만주.
만주는 한국 근대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나?
30년대 만주와 60년대 한국을 넘나들며
한국 재건 체제의 형성과 그 역사적 뿌리를 고찰하다


1960년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한국을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부상하게 한 급속한 산업화, 건설과 정보 강국을 견인한 속도 추구, 나아가 개발 체제에 대한 향수가 일조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오늘날의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시간대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빨리빨리’ 문화도 건설과 동원, 경쟁 등 60년대의 압축성장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을 제시하는 책 『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만주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석정 교수(동아대학교 사회학과)가 1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서, 한국의 ‘재건 체제’ 혹은 불도저식 증산, 안보 체제의 원류를 만주국 체제(1932~45)에서 찾는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직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1960년대라면, 또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공간이 바로 1930~40년대 만주라는 것이다. 작업의 기강과 동원 등 권위주의 체제의 요소와 불도저식 건설을 한국에 전파한 것은 일본 식민주의다. 만주국은 남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둔했던 관동군이 1931년 상부의 명령 없이 군벌 장쉐량 체제에 전쟁을 도발하고 이듬해 세운 나라다. 만주국 체제는 건설 분야뿐 아니라 생산, 안보, 위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적 정책 수행의 총체였다. 핵심은 소수의 지도자가 단기간에 결정해 밀어붙이는 속도다.
조선 농민들의 엑소더스, 경계의 확장, 광활한 대륙을 달리는 만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오족협화, 고난과 개척, 폭력과 근대, 이류들의 약진, 국제적 계보의 영화·음악 등이 만주를 설명하는 장면들이다. 1930~40년대 만주는 이러한 것들의 일종의 콜라주로, 그리고 1960년대 한국은 그 시대와의 중첩적 국면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식민주의와 근대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만주’를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새롭고 흥미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첨예한 주제인 식민주의와 대면해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오늘과도 관련성이 깊은 만주에 대한 기억은 장기간 억제되어왔다. 오로지 ‘항일 내셔널리즘’만이 살아남은 채, 친일과 저항의 넓은 스펙트럼 한가운데 있던 다양한 삶의 양태들과 기억들은 편리하게 망각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만주국 관료, 문인, 만철 기술자 등 만주에서 활동했고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해방 후 한국에서 활동한 여러 만주 출신들이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만주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연구 대상 혹은 관심 대상에서 잊히고 말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계에서도 박정희 시대를 거의 전적인 비판 대상으로 삼으면서 저자들의 이념적 정향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고 한석정 교수는 지적한다. 그러한 이분법적 서사는 한 시대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몰고 가 실재했던 양면성과 복잡성을 지워버릴 수 있다. 저자는 당대의 개발 체제와 식민주의의 관계를 논구하고 식민 시대의 경험, 제국 내부의 분절성, 한국의 냉전과 파시즘의 특성과 공과 등을 객관적으로 따져본다. 저자는 만주와 한국 사회, 또 일제하 식민 시대를 종횡무진 오가면서 이러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소환해내기 위한 말 걸기를 시도한다.
일본 식민주의는 약 1천만 명의 이동을 초래한 대소용돌이의 역사다. “모든 문화의 기원은 제국주의”라는 지적처럼 일본 식민주의는 근대적 아이디어와 제도를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이것은 위생행정을 포함해 건축과 영화, 노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게 일본은 모방과 경쟁의 대상이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1960년대 한국 발전국가의 틀과 환경을 규정한 것은 미국이지만, 그 내부 동력은 만주국식 에토스였다. 두 요소는 안팎으로 서로 중첩되며 여러 면에서 접합됐다.

60년대 재건 체제는 만주국 체제의 재림인가?
역사는 모방과 반복, 차용, 번안, 상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국토개발, 반공대회, 대량 전단 살포, 표어 제작, 주민 점호 등 1960~70년대 한국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행사들은 만주국 시대에 행해진 것들이었다. 저자는 조선에서 해방 전후사로, 30년대 만주에서 60년대 남한으로 연대기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다니며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만주는 한국 재건 체제의 형성에 얼마나 깊숙하게 영향을 주었을까? 박정희를 비롯한 이선근, 정일권, 유석창, 신기석, 김성태, 이인기 등 만주 출신들은 5.16 이후 군부에 합류해 교육, 이념 등 다방면에서 한국 재건 체제의 기틀을 닦았다. 1968년의 ‘국민교육헌장’은 만주 출신들이 기초 작업에 참가해 반공주의, 국가주의를 담은 것이고, “싸우면서 건설하자” “배우면서 일하자”라는 재건국민운동의 구호 역시 만주국 모델을 차용한 것이다. 특히 재건국민운동은 만주국 협화회를 복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부에서 추진한 “올해는 일하는 해” “전진의 해” “건설의 해” 등의 국가 목표나 선전 방식, 가장 중요하게는 계획경제, 특히 경제개발 5개년계획 역시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다.
한국 군정의 개발 추진과 속도, 직선적 건설의 이면에는 만주국에서 온 ‘하이 모던’ 정신이 있었다. 뭐든 신속하게 뚫고 파헤치고 메우고 덮어버리며 남성성을 과시한 것은 만주국 체제의 에토스였다.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건설 등은 마치 만주국 대도시와 공단 건설이 그랬듯 신속하게 추진됐다. 한국의 도로, 도시, 댐, 공단을 망라하는 ‘종합’ 국토개발과 ‘다목적’ 수자원 관리 계획에 영향을 미친 것 역시 만주국의 ‘총합 개발’이다. 이러한 국토 확장과 건설, 식량 증산의 경험은 후일 두바이 등지로 진출한 한국 건설 경쟁력의 뿌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스피드에 대한 강박은 자연 경관의 복개, 전통적 건물과 시가지의 파괴, 졸속 부실공사, 민주주의의 희생 등을 대가로 치르게 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 시대 최초이자 최대의 도시 봉기인 광주 대단지 사건이 일어났고 와우아파트 참사 등을 예고하기도 했다.

방대한 1차 자료 활용, 기존과 차별화된 중심 서사 축,
‘만주’와 ‘한국’의 중요한 장면들을 파노라마로 제시하다


이 연구를 위해 저자는 1930~40년대 『만주국정부공보』 등 정부 간행물, 『셩징셔바오』 『매일신보』 『후산닛포』 등 만주.조선.일본의 신문, 1960년대 한국의 『정부 관보』 등 간행물과 신문, 5·16 직후 행정을 맡았던 관료들과 만주에서 귀환한 자들의 인터뷰, 한국·중국·일본 및 영어권의 2차 자료를 방대하게 활용했다. 단순 연대기적 서술에서 벗어나, 국가 형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러 사건, 패턴과 우연, 시차, 다양한 문화 장르를 넘나든다. 그리고 경직된 인과성을 내려놓은 채 1930~40년대 만주와 1960년대 한국을 파노라마로 전개한다. 저자는 탈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분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만주만큼 절묘한 연구 대상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1장은 1930년대 부산에서 시작해, 만주행 엑소더스의 출발지인 영남 지역을 거쳐 만주 펑톈 등지로 갔다가 해방 후 귀환하는 기행 형식을 통해 재건 체제 형성의 역사를 추적한다.
2장에서는 만주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부산을 중심으로 식민주의가 초래한 ‘확산’에 접근한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와 귀환, 조선과 만주의 관계, 조선인의 지위 등을 통해 1960년대 한국의 재건 체제에 이르는 개척의 흐름을 추적한다. 3장은 동아시아 발전국가의 계보에서 만주국이 차지하는 위치, 만주국을 소환한 배경인 냉전과 한일 수교 등을 짚어보고 한국 발전국가의 역사적 맥락을 논의한다. 4장은 부정적 시각 일변도의 파시즘을 분해하고 파시즘과 근대의 관계를 살핀 후 생산과 안보에 주력한 한국판 국방국가의 형성을 살펴본다.
5장은 온 국토를 뚫고 메우는 직선적 건설, 속도에 매몰된 건설 시대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6장은 신체를 통한 재건 체제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신체가 어떻게 제국, 민족, 냉전 경쟁에 헌신하게 되고 재건 체제를 형성했는지 논한다. 7장은 노래, 춤, 영화 등 예술 세계에서의 남북 대결, 만주국에서 비롯된 예술 세계를 추적한다. 8장은 결론으로서 재건 체제 형성을 되짚어보고, 만주 모던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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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ㅣ 2016-05-27 ㅣ 공감(2) ㅣ 댓글 (0)
나는 이런 역사책을 재미있는 소설만큼이나 좋아한다.만주는 관심있는 지역이고 만주국은 흥미로운대상이다.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70~80%모습은 1930~40년대 만주국의 모습이 남아있다.예전엔 80~90%였겠으나 민주화시대이후 조금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나,아직도 연전히 사회 곳곳에 끈질기게 남아있고,흥미롭게도 북한역시 1930~40년대의 만주국의 모습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우리가 흔히 일제의 잔재라고 하면 그동안은 일본본토를 이야기 했으나,이책을 읽고나서는 일제잔재는 "만주국"의 잔재라는걸 알았다."만주국"을 그동안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해 세운 괴뢰국가정도로만 알고있었으나 일본본토와는 전혀다른 새로운 시도를 했던,심지어 일본좌파와 우파가 결합하여 새로운 체제를 실험해 보던 장이었다.
이책을 읽을때 자칫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찬성하거나"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으로 오해할수 있으나 자세히 읽어보면 ,그동안 친일이야 항일이냐 또는 과도한 내셔널리즘으로만 바라보던 시각에서 좀더 객관적시각으로 넉넉함으로 볼수 있을것이다.
뉴라이트에서 이야기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단견인것이,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덕분에 근대화되었다는 논리인데,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았더라도 조선말의 각종 개혁정책들이 추진되었다면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세계발전의 추세에 따라 근대화를 이루었을것이기 때문이다.더군다나,식민지 정책이라는것은 기본적인 속성자체가 모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를 개발하는것이지,식민지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기위한 정책이 아닌것이기 때문이다.
다만,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던,식민지시절의 경험과,5,16군사쿠테타세력들(만주국세력들)에 대한 반감등이 일정부분 감소되고,공은 공대로 인정하고,과는 과대로 지적하자는 것이다.
나역시 말로만 듣던 극빈의 가난은 경험해보지 못했다.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보릿고개"와 "배고픔"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했다.왜 어른들이 그렇게 "박정희향수"에 젖어있는지를 어느정도 이해할듯 하다.물론,이미지 조작과 프로파간다의 영향이 있을지라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빈곤극복"의 경혐은 우리세대와는 다른듯하다.
아마도,"박정희와 만주국세력들"이 아니었다면,현재 대한민국이 이만큼 경제적으로 발전한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그것은 동시대를 선도한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대만의 "장제스"와 비견할수 있겠다. "만주국세력들"은 도덕적,윤리적인 면에서 항일투사들과는 애초 비교대상조차 안되지만,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고나서 30년가까이를  일제의 황국신민화 영향하에 교육받고 생활해온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모두가 항일독립투사가 되기는 어려웠을것이다.항일독립운동은 소수의 지역에서,소수의 신념에 찬 사람들만이 가능했던 일이다.그러기에 그 분들을 더 존경해야 하는것이다.
"박정희와 만주국세력들"은 당시 상황에 가장 적합했던 정책을 펼친것이다.만주국모델은 유럽의 후발주자인 독일과 소련에서 성공을 거두었고,대공황시 미국에서도 펼쳐졌던 정책이다.2차세계대전이후에는 사회주의 중국과 북한에서도 성공적으로 추진한 모델이다. "무질서"와"빈곤"으로 대표되는 1,2공화국의 무능력한 정책실행능력과 비교해 보면 "박정희와 만주국세력들"의 실행능력은 충분히 인정받을만 하다.이것이 빈곤의 최전선을 벗어나게 한 주요한 이유다.많은 시행착오와 인권탄압과 강압적인 군사독재체제였으나 당시의 시대적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발전모델을 가장 실행력있는 집단과 조직이 이끌어 성공시킨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발전모델이 수명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장국가를 고수하는  북한과 그 독재자의 딸이 지배하는 남한에서 그 시대를 재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이다.
1930~40년대와 1960~70년대를 넘나들며,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요소들을 비교분석하며 국,내외 연구자들의 지식을 인용하는 방식도 좋았다.일방적이고 편협했던 사고의 폭을 넓혀준 책으로 별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한국에게 일본은 모방과 경쟁의 대상이었다
만주에서 수입된 급속산업화,도시화,개척과 건설,동원의 에토스.달리 말해 만주 모던은 1960년대 냉전상황에서 발현돼,결국 북한을 따라잡는 원동력이 됐다.나아가 후일 일부 분야에서는 옛 식민자인 일본을 넘보는 자원이 되기까지 했다.역설적으로,이곳은 피식민자들의 실전경험,나아가 식민자를 위협하게 될 훈련의 장이었다.
1930년대 총동원의 현장 만주국의 통제경제는 1960년대 한국의 체제경쟁과 세계체제 내의 상향 이동에 공헌했다.1960년대는 고속 산업화를 위한 불도저 체제가 가동된 분출의 시점이다.군정 지도자들은 만주국의 관동군 스타일로 누대의 문제를 쾌도난마로 해치우기 시작했다.10년이상 국민들을 근면하게 움직인 이 추동력은 사회의 극심한 회전력에 기여했다.그러나 공기단축에 드러난 속도와 자신감은 자연파괴,졸속,현재에도 끊이지 않는 대형사고를 대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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