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만에 찾은 고국에서 지역 강연을 앞두고 있다. 6월 1일 성공회대를 시작으로 광주와 대구에서 각기 두 차례, 수원, 전주, 청주, 옥천 등 8개 지역에서 6월 1일부터 14일까지 크고 작은 강연회나 지역모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지역일정의 목적은 작년 말 12.28 한일 '위안부'합의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일제과거사문제와 통일이슈를 연결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인식을 토대로 분단문제를 생각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으게 하는 데 있다.
12.28 졸속합의와 정부가 합의에 따른 재단 수립을 강행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일본군성노예 문제는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역사문제와 통일문제를 하나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력한 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일본군성노예 문제가 20여년 동안 피해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방식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 왜 한일관계는 거꾸로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을 분단을 마주하는 역사인식에서 찾아야하고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통일이라는 미래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겠다.
민중 시각으로 보는 일제 과거사 청산의 문제
올 초 19명의 필진이 참여한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도서출판 말 출간) 기획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책이 일제과거사 문제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필진에 동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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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명의 공저자가 참여하고 도서출판 말이 펴낸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책 펼침 이미지. [사진제공 - 도서출판 말] |
흔히들 “독일은 나치의 전쟁범죄에 대해 거듭 반복해서 사죄하는데 왜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하지만 이는 너무나 평면적인 비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독일은 역사청산을 이루었지만, 일본은 역사청산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독일인은 나치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청산해야 할 과거로 생각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전쟁범죄에 책임을 져야하는 세력이 아직까지 집권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역사 또한 일제청산이 되지 못했다. 일제에 협력하고 치부해 대다수 민중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세력에 대한 단죄가 되지 못했고, 역사책에 제대로 기록되지도 못했다. 역사교과서에 일제에 저항한 많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은 묻혀버리고 오히려 일제와 같은 편에 섰던 이들의 역사를 더 많이 배우고 있다. 역사학 또한 아직도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스스로 역사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가해국인 일본에게 역사청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제과거사 청산 문제를 오랜 기간 고민하고 실천해온 입장에서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1]
박유하라는 지식인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옹호하는 책을 낸 것도 또 그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성명을 낸 것도 한국인 스스로 일제청산이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한국인들은 어째서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는가, 그래서 무고한 백성들이 노예와도 같은 처지가 되어 650만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징병, 징용, 근로정신대, 성노예로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일본군‘위안부’ 희생자들은 대부분 못 배우고 못 사는 집안에서 끌려갔다는 면에서 우리는 결코 민초들이 당한 설움과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안 된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째서 이러한 비극이 초래되었는지 우리 역사에 대한 스스로의 뼈저린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겠다.
그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진정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오늘날의 현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아야한다.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기에 나라는 분단이 되었고 분단체제 하에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이념전쟁과 독재 하에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은 계속되었다.
결국 민초들의 수난사를 온전히 회복하는 길은 우리 스스로의 역사청산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과제에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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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에서 5월 20일 일본군‘위안부’연구회, 포럼 진실과정의 주최로 열린 ‘12.28 합의를 넘어 전정한 해결을 위한’ 좌담회. 왼쪽부터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 이재승 건국대 법대교수, 정연진 AOK 대표, 김창록 경북대 교수, 권명아 동아대 교수, 역사연구자 강정숙 박사, 한혜인 박사. [사진제공 - 정연진] |
한일관계는 한일관계를 넘어서야 해법이 보인다
5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 도서출판 말 주최로 열린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 문제의 진실> 서평회에서, 그리고 이보다 앞서 5월 20일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진단한다’ 전문가 좌담회에서 내가 강조한 말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서야 해법이 보인다”라는 것이다.
2]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12.28 한일합의의 배경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작동하고 있다. 특히 미.일.한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외교정책으로 인해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위안부 문제를 속히 타결할 것을 미국이 종용했다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동맹은 분단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고 한.미.일 군사동맹이 대두되는 것 또한 분단체제 때문이다. 구조적인 악순환이다.
중국의 부상을 좌시할 수 없는 미국 패권주의는 한.미.일 군사공조를 앞으로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지만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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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도서출판 말 주최로 열린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서평회. 건국대 이재승 교수와 동학다큐소설 작가인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연진] |
2b]
이러한 미국의 외교정책은 내가 관여했던 2000-2006년도 미국법정에서 일본군성노예들을 위한 배상소송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의 15명 피해자들의 모든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집단소송 형태로 일본국가를 상대로 미국법정에서 소송을 전개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의 방해도 아니고 미국무부의 개입이었다는 사실이다.
유태인들이 독일, 오스트리아의 전범기업을 상대로 벌인 ‘홀로코스트’ 소송에서는 피해자편에서 소송이 해결되도록 적극 도왔던 미국 국무부가 소송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일본 편에 섰다. “이 소송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긋나므로 미국 법정에서는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재판부를 설득하며 집요하게 개입했다.
결국 미국 소송은 재판이라는 본론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송을 할 수 있는가 여부를 따지는 예심에서 법리적 판단에 공방을 계속하다가 연방항소법원, 연방대법원에까지 항소와 항고를 거듭했으나 결국 심리거부를 당하고 말았다.
3]
그러나 수년에 걸친 미국 소송을 통해 배리 피셔와 같은 홀로코스트 소송을 이끈 세계적 인권변호사, 피해국들 활동가, 단체들과 끈끈한 연대와 일반 미국인들의 인식변화라는 소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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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평회에서 미국의 위안부소송 개입과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연진] |
그렇다면 미국의 강력한 개입에 대항하여 풀뿌리 시민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가. 아니 분명히 있다. 국제정치 흐름을 잘 들여다보면서, 미-일 공조를 깨뜨릴 수 있는 이슈가 있을 때 시민사회가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나서야 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에 호소해 변화를 일으켜야한다.
그러한 예가 실제로 있었다. 2005년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좌절시킨 인터넷서명운동이다. 한 달 반만에 애초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4천2백만 서명을 받아내어 세계의 여론을 변화시키지 않았는가.
동시에 이 인터넷서명운동이 성공한 이유는 ‘반일’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국가가 세계지도국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인류의 보편적 원칙과 상식을 문제삼았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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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한반도와 통일한반도를 암흑의 철조망과 나비가 가득찬 모습으로 대비시킨 이미지를 강연할 때 마다 자주 사용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정연진; 출처 - 페이스북] |
평화나비, 통일로 날아가는 미래를 상상하며
여러 지역에서 평화나비 모임을 만날 예정이다. 나비는 한반도의 평화를 상징하고 여성인권을 상징한다. 나비가 날아드는 평화로운 한반도는 분명 축복의 땅이 될 것이다. 축복의 땅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실행에 옮겨야하는가.
현재 한반도를 덮고 있는 철조망이 가득찬 암흑의 땅이 어떻게 하면 형형색색의 나비가 가득찬 한반도가 될 수 있는가를, 한반도의 미래를 적극 상상하자고 말할 것이다.
역사문제와 통일문제를 하나로 잇는 역사인식이 그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평화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지구촌 시민들은 이미 우리 편이라는 든든한 동지의식을 심어줄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는 나비가 분단이라는 장벽을 넘어 통일이라는 미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우리들 스스로 상상하고 미래를 개척하자고 이야기할 여러 지역 모임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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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국의 위안부][박유하][정진영] 통일운동 <완코리아 (AOK)>대표 정연진 님의 글 비판
우선 정연진의 글의 요점 3가지를 인용문으로 모으고, 각 인용문 밑에 나의 커멘트를 부친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포인트에 가장 긴 커멘트를 부친다.
1]
[박유하라는 지식인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옹호하는 책을 낸 것도 또 그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성명을 낸 것도 한국인 스스로 일제청산이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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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이 글 만으로 보면 정연진은 <제국의 위안부>를 읽지 않았거나,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유하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의 존재가 일제청산이 되지않은 것을 증명한다고? 나도 성명자 중에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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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12.28 한일합의의 배경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작동하고 있다. 특히 미.일.한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외교정책으로 인해 한일관계에 걸림돌이 되는 위안부 문제를 속히 타결할 것을 미국이 종용했다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동맹은 분단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고 한.미.일 군사동맹이 대두되는 것 또한 분단체제 때문이다. 구조적인 악순환이다.
중국의 부상을 좌시할 수 없는 미국 패권주의는 한.미.일 군사공조를 앞으로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지만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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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이 미일한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것 이라는 이해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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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
[이러한 미국의 외교정책은 내가 관여했던 2000-2006년도 미국법정에서 일본군성노예들을 위한 배상소송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의 15명 피해자들의 모든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집단소송 형태로 일본국가를 상대로 미국법정에서 소송을 전개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의 방해도 아니고 미국무부의 개입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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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미국무부가 보는 위안부 문제는 그저 두동맹국 사이에서 빨리 적당히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문제일 것이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 이다. 이건 하나도 새로운 이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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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수년에 걸친 미국 소송을 통해 배리 피셔와 같은 홀로코스트 소송을 이끈 세계적 인권변호사, 피해국들 활동가, 단체들과 끈끈한 연대와 일반 미국인들의 인식변화라는 소중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강력한 개입에 대항하여 풀뿌리 시민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가. 아니 분명히 있다. 국제정치 흐름을 잘 들여다보면서, 미-일 공조를 깨뜨릴 수 있는 이슈가 있을 때 시민사회가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나서야 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에 호소해 변화를 일으켜야한다.
그러한 예가 실제로 있었다. 2005년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좌절시킨 인터넷서명운동이다. 한 달 반만에 애초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4천2백만 서명을 받아내어 세계의 여론을 변화시키지 않았는가.
동시에 이 인터넷서명운동이 성공한 이유는 ‘반일’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국가가 세계지도국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인류의 보편적 원칙과 상식을 문제삼았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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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범세계적인 인권문제로 만들고저 하는 사람들이 한국인들 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과 국적의 배경의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들이 본인들은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 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이해가 간다. 일본인들 안에서도 이 운동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법으로는 한일관계로서의 위안부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데, 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 말한데로 위안부문제를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삼는데 동조하는 일본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동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부문의 일본인들이 동조하지 않는다면, 이런 운동이 세계의 호응을 얻는다고 해도 한일관계로서의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면 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동조하지 않을까? 그중에는 소위 극우경향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숫자는 작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에 속하던 진보에 속하던 중도 정도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결국 일본의 중도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군사적 성노예"라는 세계적인 인권문제로 생각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정연진은 '내가 강조한 말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서야 해법이 보인다”라는 것이다'라고 썼다. 한일관계를 한일관계를 넘어서 해법을 찾아서 일본인들에게 압력을 가해서 동의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북한에 그런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은 정연진은 모르는 듯하다.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라는 접근방법을 일본을 상대로 하자면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하여는 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북한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일반적인 북한인권문제 비판방법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특수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위안부문제에서의 그 특수 상황이라는 것은 식민지-제국 관계였다.
나는 많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 보다 윤리적으로 모자라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이 위안부문제를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답하자면 위안부문제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가? 시각의 차이도 있겠지만, 이 시각의 상당 부분은 객관적 역사적 사실과 그 이해의 대한 문제이다. 그 역사적 사실과 이해는 어떠한 것 인가. 그것도 한가지가 아니고 여러가지가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를 하자면, <제국의 위안부>가 이용하는 사실 자료와 이해가 중도의 일본인의 이해와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박유하가 친일을 하는라고 그런 책을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일본에 아부하느라고 썼을까? 책 <제국의 위안부>가 나오기 전 부터 박유하를 알고 있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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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진은 위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며 시작한다.
"어째서 일본군성노예 문제가 20여년 동안 피해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방식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 왜 한일관계는 거꾸로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정연진은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도 같은 말을 하면서 시작한다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 문제에 대한 박유하의 양심선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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