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9

[서소문 포럼] 대북정책 망칠 5가지 함정

[서소문 포럼] 대북정책 망칠 5가지 함정

[서소문 포럼] 대북정책 망칠 5가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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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문재인의 딜레마
햇볕정책 전철 안 밟으려면 ‘노무현 시즌2’ 벗어나
이영종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적(敵)’이라 지칭했다. 17일 국방부 방문 때 “
적의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응징’을 주문한 것이다. 대선 TV토론 당시 ‘북한을 주적으로 보느냐’는 보수후보 공세에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고 피했던 그의 태도에 비춰 뜻밖이다. 어쩌면 취임 나흘 만에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봉착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선 다른 선택이 없었을지 모른다. 집권 청사진 속 ‘북한’과 현실의 괴리는 그만큼 컸다.

대통령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는 건 봇물 같은 대북정책 민원이다. 남북 민간 교류와 인도 지원의 재개는 물론 개성공단 재가동, 제재 철폐 등의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정책 기조를 한번에 둘러엎을 기세다. 새 정부 대북라인에 발탁된 일부 인사까지 가세하면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6·15 공동선언 17주년인 다음달 15일엔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자칫 서두르거나 패착을 뒀다가는 초반 정책 추진동력을 갉아먹을 복병이 곳곳에 도사리기 때문이다.

첫째, 대북 햇볕정책 계승에 집착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과감한 교류·협력으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텄고 첫 정상회담에 국민은 환호했다. 하지만 4억5000만 달러 대북 비밀송금이 ‘정상회담 대가’란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사법부의 단죄를 받았다. ‘대북 퍼주기’ 논란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 접근방식은 한계를 맞았다. 그런 정책의 복사판으로는 여론을 되돌리기 어렵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햇볕에 외투를 벗어던질 대상으로 보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둘째, 10·4 선언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을 남북 관계 개선의 출발점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북한도 이행을 촉구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건설·보수 등에 천문학적 부담이 따른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는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을 불러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을 괴롭힌 민감한 이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 서둘러 합의했다는 비판을 받은 사안이다.

셋째,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북한 도발에 따른 제재 차원에서 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하며 정부는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임금이 핵 개발에 쓰였다고 낙인찍었다.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도 공감했다. 정권 교체에 따라 그 존폐가 오락가락하다가는 국제 공조는 물 건너간다.

넷째, 5·24 대북제재의 해제는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5·24 제재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로 장병 46명이 사망·실종된 데 대응한 조치다. 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에 북한은 “남조선 자작극” 운운하며 도발 수위를 높여 왔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제재 해제 쪽으로 나간다면 최전선에서 산화한 천안함 장병 유족들은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37년 전 광주에서 숨진 민간인 유족을 찾아 ‘발포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대통령이 불과 7년 전 북한 소행에는 눈감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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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남북 정상회담에 연연하는 건 금물이다. 최고위급 대화가 필요하지만 때가 있다. 더욱이 국가정보기관이 회담 테이블 마련에 나서고, 대북 송금을 위한 자금세탁과 불법 환전을 주도하는 건 볼썽사납다. 서훈 전 국정원 제3차장이 원장 내정 일성으로 정상회담 추진을 언급한 건 그래서 부적절했다. 33세의 북한 지도자를 64세의 대통령이 만나는 모양새도 이젠 중요해졌다. 대선후보 시절 “당선되면 평양을 제일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국민 비판이 쏟아졌던 걸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경색된 남북 관계와 대북제재 상황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전쟁 위협에 굴복하는 듯한 대화 국면 전환은 국민 여론의 비판을 살 수 있다. 김정은 이 추가 핵실험을 위협하고도 실행 못한 건 대화나 대북협상 때문이 아니다. 한·미의 대북 군사압박과 중국까지 가세한 제재 예고가 큰 몫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햇볕정책을 ‘시즌 2’ 형태로 답습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통일문화연구소장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대북정책 망칠 5가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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