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흥·눈치·명분.. 한국 근대화의 키워드" | Daum 뉴스
"恨·흥·눈치·명분.. 한국 근대화의 키워드"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7.07.19. 03:10 수정 2017.07.19. 13:15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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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학술서 3권 출간한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서구 사회 과학 이론으로 동아시아 근대화 설명 어려워"
유교·陰陽 사상 등에 기초한 대안적 이론 체계 모색
"서구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과학 이론으로 비(非)서구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과학자는 한국을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어 독자적 학문 체계를 세워야 한다."
사회학계 원로인 김경동(81) 서울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발전을 동양 사상을 이용하여 해석한 영문(英文) 학술서 세 권을 유명 학술 출판사인 폴그레이브 맥밀런에서 출간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술한 이 저서들은 각각 'Alternative Discourses on Modernization & Development'(근대화와 발전에 관한 대안 담론), 'Korean Modernization & Uneven Development'(한국의 근대화와 불균등 발전), 'Confucianism & Modernization in East Asia'(유교와 동아시아 근대화)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인터뷰 중인 김경동 교수. 김 교수는“젊은 후학들이 내 책을 뛰어넘는 저작을 내서 세계 학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김 교수가 동양 사상에 기초한 대안적 사회과학 이론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유교 본고장인 안동 출신인 그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뒤 1964년에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의 지원으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치 체계의 변화를 분석한 '한국 사회의 유교 가치 연구'란 논문을 발표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교와 도교에 대해 질문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자극받아 동양적 대안 이론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1977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에 몰두했고 그 결과들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 이번에 나온 저서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김경동 교수는 근대화가 서구에서 시작됐지만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서구 기술·문화의 전파와 그에 따른 공업화·서구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비서구 지역의 근대화는 일방적 수용이 아니라 전통에 바탕을 둔 정치적·문화적 '선택(selectivity)'이 큰 영향을 미치는 '적응적 변화(adaptive change)'이며 그래서 각 나라와 사회의 근대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동양 사상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주역(周易)에 들어 있는 음양(陰陽) 변증법이다. 한계(limit), 중용(moderation), 유연성(flexibility), 적응성(adaptability)을 중시하는 음양 사상은 직선적·단선적·극단적 변화를 추구하는 서양 사상보다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더 잘 설명해 준다. 또 사람은 인(仁)·의(義)·예(禮)·악(樂)·지(智)·신(信)의 육덕(六德)을 갖춰야 한다는 인성론(人性論),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우주론, 사회·자연 탐구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격물(格物)주의 등 유교는 인간과 사회를 부분으로 나눠 접근하는 실증주의와 달리 총체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동양적 관점에 서면 근대화와 발전을 동일시하는 입장에서 벗어나게 된다. 근대화가 주로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가리키는 데 비해 발전은 삶의 질, 기회의 균등, 행복 등 가치를 함축한 개념이다. 김 교수는 "발전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회의 현재 모습만 아니라 미래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의 일상용어를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사회과학적 개념으로 활용했다.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보통 사람의 생활 감각이 담긴 용어가 유용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시받아 온 데 대한 '집합적 한(恨)'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됐고, 한국인 특유의 '흥(興)'은 이를 가속화하는 추진력이 됐다. 노사 교섭 때 다른 노조 등의 '눈치'를 보고 협상의 실질적 성과보다 '명분'을 앞세우는 것은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서구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필생의 작업을 끝내 홀가분한 표정인 김경동 교수는 "서구 학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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