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가득찬 북한 6.25전쟁 교육 (80)
by 주성하기자 2016-06-27 11:31 am한국전쟁 시기 황해남도 신천 지역에 주둔한 미군이 만행을 저질렀다며 만든 신천박물관을 북한 국가책임일꾼들과 성, 중앙기관 당, 행정 일꾼들이 참관하고 있다.
마침 오늘이 6.25전쟁이 벌어진 지 6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벌써 66년이라니 정말 제가 자라면서 귀가 빠지게 배웠던 조국해방전쟁도 이젠 먼 옛날이야기가 돼 가는군요.
6.25전쟁 때 총을 잡고 싸웠을 20살쯤 되는 젊은이도 이제는 86세가 됩니다. 한 10년 뒤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웠던 세대는 거의 세상을 뜨게 됩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 세대가 가게 되면 과거를 잊은 후대 중에 또 전쟁도 불사하자는 사람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1950년은 북한에선 아직도 생생히 이어지는 현재형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학생들은 6.25전쟁의 영웅들을 배우면서 그들처럼 싸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6.25전쟁의 3대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북한이 내세우는 영웅들은 다 거짓말로 조작된 것입니다.
월미도 영웅들은 사실 미군을 딱 1명 부상시킨 것밖에 없고, 오히려 함포에 맞아 중대 절반이 죽고, 절반은 투항했습니다. 영웅과는 전혀 거리가 멀죠.
미국 중순양함 빨치모르를 격침시켰다는 해군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없는 거짓말입니다. 미 해군 빨치모르는 그때 미국에 있었고, 북한 어뢰에 맞아 격침된 미 함정도 없습니다.
신천학살사건은 신천에 미군이 주둔한 적도 없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외에도 거짓말을 찾아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북한엔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을 매복 습격해 죽였다는 영웅도 있지만, 워커 중장은 교통사고로 서울에서 죽었습니다.
북한이 내세운 6.25전쟁 때 나왔다는 533명의 영웅들은 대개 이런 조작의 결과입니다. 전쟁영웅이란 건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가공돼 등장하는 일이 많습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는 장군들이 그려준 지도 위의 선과 점을 따라 움직이는 전쟁물자와 비슷한 것입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수뇌부는 영웅을 만들어 따라 배우자고 선전하죠. 이건 어느 나라나 똑같습니다.
소련도 2차 대전 때 이런 조작된 영웅을 수없이 만들어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6.25전쟁 최고의 영웅이라고 내세우는 황계광도 사실 총을 일곱 번이나 맞고 화구를 막은 것이 아닙니다. 고지로 올라오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고 황계광 시신 사진도 다 있습니다.
남쪽도 그때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군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수류탄 묶음을 들고 뛰어들었다던 군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도망을 친 사람이던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래도 나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자유로워서 이런 사실들이 뒤늦게라도 수정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거짓을 진실처럼 알고 배우고 있고, 진실을 캐려는 어떠한 노력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6.25를 남쪽에서 먼저 밀고 올라왔다는 거짓말도 그렇고, 전쟁을 김일성의 지휘 아래 북한군이 주도적으로 치른 것처럼 묘사한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낙동강까지 왔다 후퇴한 뒤에 북한군은 사실상 괴멸돼서 병력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이 6.25전쟁 이야기를 들으면 주구장창 1211고지 전투, 351고지 전투 이야기만 듣게 되는데, 전쟁이 과연 두 곳에서만 진행됐을까요.
북한군이 워낙 인원이 적고 전투경험이 없으니 동쪽 강원도 촌구석 고지 몇 개만 지키게 한 것입니다. 진짜 치열한 전투는 서부 평야 지역에서 미군과 중국군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김일성이 전쟁을 지휘한 것도 아닙니다. 중국군을 어떻게 김일성이 지휘합니까. 오히려 중국군 총사령관이던 팽덕회는 김일성을 철저히 업신여겼습니다.
자기가 중국 내전 때 몇 백만 명을 지휘하던 사람이지만, 김일성은 산속에서 고작 몇 십 명을 데리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김일성이가 현대전, 정규전 이런 것에 알짜 무식하니 중국이 미국이 곧 인천에 상륙할 것이란 정보를 말해줘도 대비를 안 하고 있다가 밀려버린 거죠. 중국이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니 이후 우리 민족은 수백만 명이 더 죽게 됩니다.
공개된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1951년 11월에 벌써 유엔에 “유엔 측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산하에 부대도 없지, 미군과 중국군이 들어와 싸우는 바람에 나라만 잿더미가 되지 하니 빨리 손 털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김일성이 뭔 힘이 있습니까. 전쟁이 이후에도 2년이나 더 계속되며 참혹한 상처를 남긴 것은 스탈린의 결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계속 싸우면 두 강국의 힘이 소진될 것이고, 그러면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휴전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년 동안 북한 땅만 죽어라고 폭격을 받았죠.
스탈린이 1953년 3월에 심장마비로 급사해서야 비로써 정전협정 체결이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안 그럼 몇 년을 더 서로 죽여야 했을지 모릅니다.
스탈린에 대해 여전히 북한에선 미화하고 칭찬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민족에겐 악마 같은 인간입니다.
권력을 잡은 몇몇 인간의 결정에 민족의 운명이 휘둘렸습니다. 중국지원군을 총지휘했던 팽덕회조차 한갓 부속품이었습니다.
국방장관까지 하던 그는 말년에 문화대혁명 때 새파란 젊은이들에게 수없이 얻어맞고 대중 앞에서 반동딱지 붙이고 행진해야 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다 겪었습니다.
8년이나 감옥 생활하다가 매 맞은 후유증으로 1974년에 죽었습니다. 북한에서 무력부장이니 보위부장이니 하는 자리도 결국 나중에 돌아보면 부속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장성택이 가장 대표적 사례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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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비극을 되풀이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고 거짓으로 점철된 역사조작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으로 2016년 6월 25일 방송분입니다.
남한 독자들이 아닌 북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임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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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필수)
북한만 나무랄 수도 없지요.
종북 어용학자들이 남한 역사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소련의 괴뢰이자 수백만 동족을 죽인 6.25 전범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역사 교과서까지 북한 책을 표절하는 판이니…
리플작성2016-06-27 12:50:06
사신
북한이란 곳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쓸데없는 일에만 지나치게 힘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놀라움을 넘어서 짜증이 날 정도 입니다.
리플작성2016-06-27 12:51:31
새벽종이울렸네
스탈린이 고의적으로 동북아에서 일어난 6.25전쟁의 휴전을 방해하면서 미군과 중공군이 소모전을 벌이도록 막후에서 조종한 이유는 동유럽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소련의 지도 하에 통치기반을 굳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2차대전 직후 당시 동유럽에는 사회주의자들만 있었던 게 아니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나치독일에 저항했던 세력이 무시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그건 처칠이 전쟁 중 SOE라는 대외연락처를 중심으로 레지스탕스 전술을 구사한 결과입니다. 특히 폴란드 체코는 영국에 망명정부 조직까지 두어 전후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헝가리 역시 오스트리아처럼 전후에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재출발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높았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스탈린은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안정에 소련의 정치외교군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6.25 전쟁 초기 소련군 공군이 참전해 미공군과 제법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는데, 두 나라 모두 3차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확전을 우려해 교전 사실 자체를 비밀에 붙였죠. 나중에 모택동이 순망치한의 논리로 중공군 병력을 참전시키되, 그 조건으로 내 건 것이 중국엔 공군력이 없으니 소련이 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스탈린은 처음부터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다가 중공군 참전 후에는 3차대전을 우려하며 공군력 지원 은 불가라고 나와 그렇지않아도 앙앙불락하던 모택동과 스탈린 사이가 더욱 벌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러니 스탈린이 김일성과 모택동 머리꼭대기에 도사리고 앉아 한반도를 소련의 이익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겁니다.
리플작성2016-06-27 01:16:54
달래강
맞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스탈린이 동유럽을 먹고 또 중국의 힘을 소진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참전시키고 미국을 한반도에 잡아놓은 것이죠. 민주자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공산주의의 야욕을 확인하고 최초로 공산주의를 상대로 저지 전쟁을 했던 경우입니다.
아울러 전쟁의 효과도 살펴봐야 하는데, 6.25로 이익을 본 나라는 우선 대만과 일본을 들 수 있습니다. 중공군이 대만에 상륙하려고 했다가 6.25 참전으로 무산되는 바람에 대만이 살았구요. 일본은 전쟁특수로 경제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최초 대결이었던 6.25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공산주의가 멸망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승리한 셈이 되었구요.
리플작성2016-06-27 07:11:31
새벽종이울렸네
오늘의 남북한은 이승만 노선과 김일성 노선의 대결에서 전자가 압승한 것을 웅변으로 입증하는 세계사적 사례입니다. 민족주의 주체사상 떠드는데, 도대체 무엇을,누구를 위한 주체이며 민족주의라는 겁니까. 민족주의 그 자체에 침을 뱉는 한국 사람은 없죠. 이민족에게 무시당하면서 살고싶지 않는 게 사람의 본성이니까요. 그러나 민족주의가 자유로운 개인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을 베이스로 하는 정치이념이죠. 국가의 존재 이유는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김일성식의 자폐적 자뻑적 경향으로 고착되면, 찌질한 용두질로 전락한다는 것을 오늘의 북한이 보여줍니다. 김일성 우상화와는 길이 다르지만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 있어요. 한민족참역사라나 하는 사이비 역사사기꾼들. 환단고기 규원사화같은 위서를 근거로 딸딸이나 치는 작자들. 1980년대에 장사 잘해먹었죠. 저는 통일에 편승해 그런 자들이 준동하게 될까 걱정하며,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이에 대해 단단한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리플작성2016-06-27 01:28:46
아이디(필수)
올바른 역사를 빙자해서 이상한 단체들이 생겨나는군요.
http://news.joins.com/article/20223930
“식민사학 규탄” 재야사학계 대규모 연합체 발족
리플작성2016-06-27 02:00:37
아이디(필수)
강단 사학계는 좌파들이 장악해서 종북사관으로 물들여 놓고, 재야학계는 식민사학 비판한다며 환단고기 류나 들고 나오고….
역사학계 수준이란 게 박창화의 소설 화랑세기를 김대문의 진본 화랑세기라고 우기는 정도니….
리플작성2016-06-27 02:10:35
Garry
북한 주민들이 가진 대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인식과 대의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은 상당부분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지요.
리플작성2016-06-27 02:55:48
Garry
북은 탈북이 일어나는 이유가 사상이 변질되어서라 보던데, 실제 탈북자 중에 사상을 이유로 탈북한 사람은 아마 백명 중의 한명도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주로 경제적 이유 등이 탈북 원인이지.
한국에는 1백만명의 제3세계에서 온 노동자들이 들어와 한국 사람들도 꺼리는 힘든 일 하면서 삽니다. 몇년 돈 바짝 벌어서 소득이 낮은 만큼 물가도 싼 자국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중산층으로 살 그날의 꿈을 위해서 말입니다.
탈북자 중의 다수가 남한 사회에 들어와 처음에는 최하층에 편입되어 정부 보조로 근근히 살아가더라도, 탈북이 줄어들 이유가 안되는 겁니다.
자기 하나 희생해서 돈 벌어 북의 가족에게 송금해 주고, 언제인가 물가 싼 북에 돌아가 잘 살 희망이 있으니까요.
결국 대량 탈북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못 막습니다.
어차피 그럴 바에는 ‘갈 사람은 가라’는 쿠바식 해법을 선택하는게 현실적입니다.
리플작성2016-06-27 03:07:15
새벽종이울렸네
허면 탈북하는 북한사람들은 3D 일을 감당한 체력이 있는 사람에 국한된다는 얘기가 되네? 그럼 좋은 거지. 남한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왜 나쁜 일이겠나. 나도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길 기대하고 있네. 북한 사람들이 아마 세계에서 가장 손재주가 있고 목공과 삽질에 능할 걸. 어지간한 집수리 정도는 일도 아닐 거다. 더군다나 한국은 오죽 자재와 관련 장비가 좋아. 자연스럽게 조선족 아저씨 아줌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셔야지. 서남아시아에서 온 이슬람들도 고향 앞으로! 건강하지 못한 식구들을 남한으로 불러들여봐야 돈 안 남지. 대한민국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건강보험 고용보험 손해보험 앞으론 가입 자격이 강화되어 무임승차하는 경우를 철저히 차단할 거다. 그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마지막 보루니까.
리플작성2016-06-27 03:17:08
Garry
남에 오면 놀고 먹어도 개성공단 임금의 몇배를 기초생활보장비로 준다. 의료기술 수준도 높고 국민의료보험에서 부담해 주니 노인, 장애인들도 당연히 남에 많이 온다.
탈북이 너무 많아지면 그건 남의 큰 문제이므로, 탈북을 줄이기 위해 분계선을 회복시키고 북에 아주 많이 퍼줘야 된다.
리플작성2016-06-27 04:15:58
차크라바르틴
그 먹고 놀아도 돈 받는다는 생각부터 걷어치우지 않는 한, 개리 너는 인격파탄 대한민국 증오주의자의 오명을 씻지 못할 것이다. 북한의 인민들이 죄다 너같은 생각을 지닌 자들뿐이라면 독가스로 멸종을 시키는 것이, 차라리 인류 양심에 부합할 것이다.
2016-06-27 04:51:31
시나리오
중국이 고도성장 하는 동안에도 조선족의 입국은 계속 됬다며?..지금 부터 아무리 퍼줘도 북한을 개혁개방시켜서 제대로 경제발전 시키기도 힘들 뿐더러 그렇게 발전해도 역시 내려올수 있는 여건만 되면.조선족이 입국하듯 대량 탈북은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대량탈북을 막기 위해서 아무리 많이 퍼줘도 남북한 군대로 국경을 봉쇄하지 않는이상 대량 탈북은 역시 막을수 읎다~.
왜..중국처럼 정말 제대로 경제가 성장해도 조선족은 엄청나게 입국했다며~…
결론은 그렇게 수백만 탈북자가 대량탈북해서 휴전선이 해체될 정도면..이건 퍼주기 식의 사전 지원 사후지원 으로 대비할수 있는 문제가 아닌게 됨. 진짜 나라의 운명을 건 결단이 필요하게 되는 거란다.
2016-06-27 07:23:29
아이디(필수)
북한의 역사나 모든 것이 어느 하나 믿을 게 없는 거짓의 왕국이 된 것은 소련이 지도자 자격이 전혀 없는 자신들이 사육한 개 진지첸 대위를 억지로 지도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는 자를 지도자로 만들려다 보니 전설의 항일 영웅 김일성 장군을 사칭하게 됐고, 조작으로 시작하다 보니 새로운 조작이 더해지고…
거짓 위에 세워진 왕국을 유지하려다 보니 문 걸어 닫고 세습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개방하는 순간 모든 거짓이 탄로나고 체제를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택동이나 스탈린은 전제군주를 능가하는 독재자였지만 자신들 힘으로 권력을 잡았으니 엄청난 역사 조작까지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자격없는 무명의 진지첸 대위가 소련군 힘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 북한의 비극이다.
리플작성2016-06-27 04:39:41
Nijinsky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북한군은 한거 없죠. 아쉬운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는데 무승부로 끝난겁니다. 맥아더 같은 백전노장이 저런 말도 안되는 실책을 한건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공세종말점 같은 거 무시하고 무리하게 전선을 확대한 맥아더의 실책과 필요한 곳에서 수적 우위를 확보하여 포위섬멸작전을 펼친 팽덕회의 용병술 둘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1951년 이전에 유엔군 승리로 끝났을겁니다. 중공군 참전 규모를 정확히 예상하고 평양-원산라인에서 우월한 화력과 제공권을 바탕으로 1차 저지한 다음 밀어버렸으면 지금까지 분단으로 남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리플작성2016-06-27 06:42:33
달래강
맥아더가 실수한건 맞는데요, 사실 맥아더는 중공군의 참전을 알았으면서도 무리하게 진군했다는 설, 즉 일부러 실수(또는 도박)를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맥아더의 속셈은 중공군과 격전을 하여(결과적으로 후퇴했지만) 중공군 배후인 만주를 폭격함으로써 중공과의 전면전을 유도하고, 결국 중국본토까지 수복하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더군요. 상식적으로도 중공군 참전에 대한 많은 정보가 올라왔는데도 맥아더가 무시했다는게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지요.
저는 잘 모르지만 더 아쉬운 점은 ‘밴 플리트’ 장군이 계획했던 강원도(원산인가?) 상륙작전이 미군 상부(리지웨이 장군인가?)에 의해 불허된 것입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장기적인 고지전에 돌입하자 쌍방간에 시체만 쌓여갔는데, 이런 교착상태를 타파하고자 밴 플리트는 원산상륙작전 계획을 올렸었죠.
그게 실행되어 성공했다면 여러 고지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중공군과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 후의 북한군처럼 허둥지둥 후퇴하고, 휴전선이 원산 쯤 되는 위도에서 결정되었지도 모릅니다.
리플작성2016-06-27 07:27:33
뚱뚜둥
맥아더 도박설은 흔한 음모론 입니다.
중공군 참전 직전에 맥아더 원수는 미국 대통령과 만나서 한국상황에 대해서 여러가지 대화를 합니다. 여기서 미국 대통령은 중공군 참전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맥아더는 그 위험성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맥아더 원수가 경질되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중국본토 수복설도 대만의 희망사항일 뿐이며, 실제 맥아더는 한-중 국경너머의 만주지역에 원자폭탄 수십발을 투하하여 방사능에 의한 안전지대를 구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중국군이 더이상 북한지역에 지원할수 없으므로 전쟁이 끝날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물론 트루먼 대통령은 미치지 않아서 이러한 계획을 거절합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원산 상륙작전에 대해서는 금시초문 이군요.
원래 맥아더 원수가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 강원도 방향으로 후퇴하는 인민군을 섬멸하기 위해서 원산 상륙작전을 구상하고 실행합니다. 문제는 인민군의 후퇴가 너무 빨라서 원산 앞바다에서 상륙부대가 왔을때는 이미 연합군 육군이 원산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일본의 기뢰제거 부대가 연합군 함대의 원활한 상륙을 위해서 원산앞바다의 기뢰를 제거하다 한척이 격침당합니다. 아직 해상 자위대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1950년의 맥아더 원수가 계획했던 원산 상륙작전은 이렇게 끝나게 됩니다. 그 이후에 미군이 원산 상륙작전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리플작성2016-06-28 02:59:58
달래강
밴 플리트가 지루한 고지전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 동해안 상륙작전을 계획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맥아더의 대중공 확전론은 반드시 음모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자료를 보시지요.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62879&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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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 이러한 맥아더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진통일이 성사되기 직전, 중공군의 남침을 예측, 대비하지 못한 책임은 맥아더에게 있다. 전역(戰域)의 최고 사령관이었고, 유엔군 사령부로 들어온 수많은 정보가 남침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1950년 10월 15일 태평양의 웨이크 섬까지 날아온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 약 30만명이 만주에 집결해 있지만 개입의 시기를 놓쳤다.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공군력으로 도륙하겠다”고 안심시켰다.
맥아더의 이 보고가 의도된 거짓말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참모총장 및 3군 총사령관을 지낸 고(故) 정일권(丁一權) 장군의 회고록이다. 정 장군은 1996년 1월 15일 《정일권 회고록》 304~307페이지에서 이런 비화(話)를 소개했다.
[(중공군의 출현 후) 노(老)대통령(이승만 대통령을 지칭)은 내 보고를 듣고 나서 “역시 나왔구먼. 이젠 겁쟁이 트루먼도 배꼽에 힘 좀 넣겠지” 하고 지극히 태평이었다. 전국(戰局)의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맥아더가 잘 알아서 할 것이오” 하고, “정 총장, 맥아더와 나는 중공군이 나온다고 보아 왔습니다. 장군, 그(맥아더를 지칭)는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겉으로는 부인했으나 북진 전략에 대한 트루먼의 잔소리를 막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맥아더, 그는 훨씬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원폭(原爆) 사용도 불사할 각오라고 내게 굳게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의 전략가로서의 심모(深謀)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하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정일권 총장에게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두 통의 편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 통은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이 대통령의 편지 사본(寫本)이었다. 정 총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 사본의 요지는 이러했다고 한다.
[북진이 순조롭게 진행됨에 따라 워싱턴과 영불(英佛)은 소련 및 중공의 군사개입을 겁내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본직(本職)은 소련은 몰라도 중공의 개입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는 바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이 가능성을 긍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귀하가 긍정함으로 해서 북진을 방해하는 작전상의 제한이 가중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은 거족적(擧族的)으로 북진통일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영매(英邁)하신 지도가 아니고서는 이 열망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간절한 심정을 살펴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보여준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는 맥아더가 이 대통령에게 보낸 답장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본직은 믿을 만한 정보통의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중공군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 이 가능성을 겉으로는 긍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압록강을 건널 것입니다. 조금도 모르는 것으로 할 것입니다.
중공은 그 방대한 군사력을 배경 삼아, 가까운 장래 아시아에 있어서 데모크라시의 최대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소련이 있습니다. 중공의 잠재적인 군사력을 때릴 만한 기회는 지금 아니고서는 없을 것입니다.
전략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워싱턴이 어디까지 본직의 전략을 뒷받침해 주느냐가 문제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센 반대에 부딪힐 것입니다. 하지만 불퇴전의 결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필요하다면 원폭도 불사할 것입니다…]
정일권은 회고록에서 이 맥아더의 편지 날짜까지 기억했다. 1950년 10월 13일이었다고 한다. 태평양 웨이크 섬에서 트루먼 대통령-맥아더 사령관의 회담이 있은 날이 이틀 뒤인 15일이었다. 정 장군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이 두 통의 사신(私信)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지 확실치 않다. 극비(極) 중의 극비였다. 사가(史家)들이나 비평가들이 이 극비를 알 까닭이 없었다. 맥아더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비판의 소리, 즉 “중공군 개입의 가능성을 오판하여 유엔군의 북조선 철수를 자초했다”는 책임 추궁에도 이 비밀 서한만큼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정일권이 본 편지가 맥아더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렇게 추리할 수 있다.
맥아더는 중공군의 개입을 예상하고도 트루먼 대통령에게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여 북진을 강행한다. 예상대로 중공군이 개입, 한국군을 공격하자 개입 규모를 실제의 10분의 1 정도로 축소 보고한다. 30만명이 들어왔다고 보고하면 11월 말로 예정된 유엔군의 총공세를 워싱턴에서 막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축소 보고한 것이다.
맥아더는 중공군과 미군이 본격적으로 붙어 싸우는 상황을 만들어야 중국으로 확전(擴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정일권이 보았다는 편지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았다.(이하 생략)
리플작성2016-06-28 07:10:41
달래강
밴 플리트의 상륙작전에 대한 자료도 찾았습니다.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67037&C_CC=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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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고지쟁탈전의 폐해를 절감한 美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고지쟁탈전을 지양하고, 중· 동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작전으로 北上하고 39도선 부근의 고저 혹은 元山(원산)에 미군이 상륙하는 작전도 병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계획은 워싱턴의 意中(의중)을 살핀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만약 그때, 밴플리트의 계획대로 대규모 北進(북진) 작전과 상륙작전을 병행해 원산을 점령했더라면 휴전선은 원산∼멸악산맥∼해주, 혹은 원산∼마식령산맥∼예성강 하구인 延安(연안)을 잇는 선으로 北上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 (하략) …
2016-06-28 07:32:11
뚱뚜둥
국군 최악의 패전 ‘현리전투’가 1951년 있었습니다. 전쟁의 주도권을 중국군이 가지고 있었지만 인민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사실 1950년 겨울에 미군이 무리한 공세를 가한것은 맞지만 중공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그대로 끝났을 전쟁입니다. 중공군의 참전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도 반신반의 하던 상태였습니다.
(연합군이 38선 넘어가면 참전하겠다는 북경의 선언이 있었지만 설마 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리플작성2016-06-28 03:09:09
뫼등바위
그렇지요.
한국군이 중공군에게 방태산 계방산에서 처절하게 결국 한국 3군단이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1950년 겨울 중공군은 시쳇말로 시껍 했습니다.
최근까지 순방치한론을 가지고 있던 중공의 태평양 방면 방파제 북조선이 녹아버릴 지경이었으니 말입니다.
가까스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었던 받는 장개석 국민당 군대를 대만으로 쫓아보내고 1949년 갓 건국한 중국으로서는 또 다시 힘에 부치는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전쟁의 성격을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는 항미원조전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인민들의 지원을 이끌어 내 전쟁을 수행했었지요.
모택동 아들도 이 전쟁에서 전사를 했고요.
그렇게 피를 흘려줄 정도로 혈맹의 관계를 맺었었는데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면서 굳건했던 조-중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네요.
중국이 미국과 한국에 반 협박을 해가며 사드 한반도 배치를 까까스로 저지하고 있는 와중에 북조선이 또 다시 3000~4000Km 사거리의 일명 ‘화성-10′ 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를 했으니 이제는 사드의 전진배치를 저지할 명분이 홀라당 날아가 버렸습니다.
‘시진핑 : 정은이 쟤 완전 또라이 쪼다 맞다. 그지. ‘
리플작성2016-06-28 08:12:45
차크라바르틴
중국이 희망하는 한반도의 미래는 또 다시 6.25때처럼 국력을 기울여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부담을 극소화하고 남북한 공히 중국의 영향권에 생존하면서 중국 정부에 충성을 경쟁하면서도, 서울과 평양이 시기질투하며 상호견제하게 히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퇴출되는 것이 선결조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에 중국 정부는 솔깃했을 겁니다. 제 2의 애치슨라인이라고나 할까요.
한반도는 중화 외교안보 정책의 완벽한 테스트 필드입니다. 김씨조선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중국이 장기로 하는 이이제이 전략에 딱 들어맞는 시스템이고요. 어제 뉴스 보니, 중국과 북한이 무역에 위안화로 결제하는 협정을 맺었다더군요. 사실이라면 올해 남북관계의 최고 뉴스입니다. 역사상 최초로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휴전선 이북에서요.
리플작성2016-06-28 08:32:24
뫼등바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크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버마, 라오스, 베트남, 북조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독립은 안 되었지만 티벳(서장), 신장위그루는 가장 골치 아픈 지역입니다.
국경을 직접 맞대지는 않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필리핀, 일본, 미국과 안팎으로 으르렁 거리는 사이입니다.
청나라 시절 그 판대를 최대로 확장했던 것을 그대로 물려 받아 지키려는데 어디 하나 녹록한 곳이 없습니다. 혈맹이라구 안심하던 북조선 마저 말 안듣고 개별행동에 나서서 골치 아프게 하네요.
중국이 물건을 싸게 만드는 재주로 경제력이 신장되고 막대한 돈을 들여 군대를 현대화하고 개량무기를 만들면서 그나마 어깨 힘 주는 형국인데 나중에 조금만 방심하면 중국이 제 것을 지키는 것도 버겁게 되는 때가 오게 될 겁니다. 오히려 강한게 더 잘 부러집니다.
2016-06-28 02:09:52
새벽종이울렸네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면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한족(중국어를 쓸뿐, 단일민족이라 할 수 없는) 내에서조차 극복하기 어려운 빈부격차, 한족보다 더 심하게 차별당하는 소수민족, 그 중에서도 티벳 신장 내몽골의 이반 가능성이죠. 몽골과 한반도는 그래서 특히 중요합니다. 중국은 몽골을 차하르(내몽골) 칼카(몽골공화국)로 분리시켜 서로 멸시하게 하여 일단 몽골의 민족정서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죠. 인구도 중국령인 내몽골이 압도적입니다. 남북한은 몽골과 완전히 상황이 다르죠. 하 너무 복잡합니다.
2016-06-28 02:48:40
시나리오
6.25 전쟁으로 인한 동족간의 참상의 주된 원인을 외세의 개입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틀린 표현임이.이젠 증명된 셈이죠.. “외세”의 개입이 아니라 “소련”의 개입 때문입니다. 전쟁이 2년 일찍 끝났다면..남북 모두의 희생은 줄었을 테닌깐요. 그리고 미국의 개입으로 희생을 더 당한건 “북한”인거고 그건 전쟁을 도발한 집단으로서 당연한 대가인거구요.
리플작성2016-06-27 07:03:56
달래강
옳으신 말씀!
리플작성2016-06-27 07:13:24
Nijinsky
근본적인 원인은 김일성의 무모함이죠. 소련은 2차대전때 2900만명이 희생된 다음이라 인명피해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때입니다. 사실 그 인구공백이 소련해체될 때까지 발목을 잡았고요. 좌우지간 미국과의 충돌을 우려한 스탈린이 전쟁은 안된다고 말렸지만 김일성이 48번이나 찾아가 전쟁하게 해달라고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준 것이고요.
리플작성2016-06-27 07:21:31
시나리오
그리고 이왕 일으킨거..미국과 서방의 시선을 동북아에 고정시켜 놓고 자기는 동구권 위성국가들 착착 접수하고 점령체제를 공고이 하는데 더 집중할수 있는거죠. 한마디로 김일성은 남 좋은일 많이 시켜준 셈입니다.
그리고 스탈린은 미국을 이렇게 무서워하는데 미국은 소련의 참전이 겁 이나서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입하는데도 만주로는 폭격도 못합니다. 맥아더 보고 38선 넘어 북진할때 왜 중공군의 개입을 미리 대비 못했냐고 따지는데..그럼..적군이 넘어와서 아군을 죽이는데 정작 그 적군의 보급기지와 본부를 폭격못하는 전쟁지휘는…동서고금에 어디 있습니까?
이때 만주를 조졌으면..지금의 중공은 없었을 것이고 그럼 공산 월맹도 활약하지 못하거나 소멸됬겠지요. . 중공은..소달구지로 식량보급하는 군대로 세계최강 미국을 상대했다는 전적을 남긴 덕분에 20세기 중후반 내내 제 3세계 반미국가들의 구심점이 되고..미국은 중공을 상대하느라 또 다시 천문학적인 비용을..냉전시대 쏟아 붇습니다.
어쨋든 중공이 계속 존속해준 덕분에 중국은 ..수십년간 그 큰 땅덩어리의 자원을..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 사이 한국은 고도성장 하구요.. 통일이 되었더라도 중국본토를 국민당이 장악했다면 오늘날 한국 경제가 있었을까..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분단을 찬양할수는 없지만 말이죠. 아뭏튼 역사는 어디로 튈지 모를 다양한 인과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이때 이러지만 않았어도”라고 철천지 원한을 가져 본들 시야만 좁아 집니다.
리플작성2016-06-27 07:31:57
Nijinsky
김일성이 여럿 살렸죠. 전쟁에서 진 일본은 625 전쟁으로 기사회생하고, 중공은 애치슨 라인 밖에 있는 대만 상륙하려고 했다가 전쟁 나서 미 해군 동원되는 바람에 나가리되고 그 정예병력 한반도에 다 꼬라박았죠.
그리고 스탈린은 미국을 무서워했지만 미국은 소련의 상황을 몰랐습니다. 미국도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었죠. 오키나와, 유황도에서 인명피해가 심해지니까 애초에 계획한 몰락작전 취소하고 소련군한테 일본군 뒤통수를 쳐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까요.
서로 확전을 피하는 상황이라 한반도라는 공간 안에서 재래식 무기로만 싸우는 제한전이 되었지만 맥아더 말대로 만주 폭격하고 핵을 썼다? 소련이 인명피해를 겁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유엔군이 판을 키웠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그 결과는 3차 대전이었을거고.. 소련도 핵이 없는게 아니었고요.
그렇게 해서 이겼다고 한들 이긴게 아니죠. 제한전 상황에서 별 피해없이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게 아쉬운겁니다. 맥아더가 싸지른 똥 후임인 리지웨이가 잘 수습한 것만 봐도 그 아쉬움은 더 커집니다.
리플작성2016-06-27 07:49:22
시나리오
그렇게 해서 이겼다고 한들 이긴게 아니게 될만큼 피해는 커지겠지요. 그런데 그 피해란…만주등 중국 영토가 되겠지요. 대만에서 국부군이 북진하면 역시 중국이고요. 중공이 해군 공군력이 그렇게 뛰어나나요? 그리고 중공은..공산 통일 했다고 바로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7개 군고 4개 관구로 해서 만주관구의 “갸오강”의 경우 스탈린과 자기 사진을 같이 걸어 놓고 지도자 행세를 하는 그런 지경입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모택동이 가오걍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주의 병력을 대거 희생시키기 위한 작전이라는 설도 있지요. 아뭏튼..50년 당시 중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집권적이고 강력한 중국이 아닙니다. 남경 일대에선 국부군 잔당들도 득실댔고요. 초기엔 공산당이 강력하지 않아서 우파들과도 공존합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직후에도 대기근이 겹쳐서 수많은 인구가 아사하기도 하고요. ….
미군이 만주를 친다고 해서 제 3차대전이 일어 난다기 보다는…제 2차 국공내전이 벌어진다고 봐야죠…중국대륙을 중심으로 쑥대밭이 펼쳐지겠지요.
그리고 소련이 한반도에 핵을 투하하면..미국도 중국 본토에 핵을 투하하겠지요. 서로 예민해지는 부분에서 누구도 안심할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국이 만주를 공격한다고 해서 꼭 핵이 수반되는 제 3차대전이라..글쎄요. 더 위험해지고 예민해지는건 중국이지 .그 반대쪽이 아니죠. 하지만 당시 트루먼 행정부의 안보 관리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소련의 기밀문서가 해제되고 나니..트루먼 정부 국무부 관리들 중에..친 사회주의 성향의 소련 간첩들이 꽤 있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영향을 끼쳤으리라 봅니다.
2016-06-27 08:19:45
차크라바르틴
미국인들이 맥아더를 패튼이나 브래들리와 비교해 비난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사람들은 맥아더를 비난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는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자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는 말 그대로 한국의 은인입니다. 맥아더는 밴플리트와 더불어 진심으로 한국을 인정하고 동정한 미국 군인이었습니다. 미국인은 천사가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같은 감정과 의식을 지닌 범인들입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한국 입장에서는 다르게 봐주고 평가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미국인입니다. 어찌 보면 하늘이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 맥아더를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겠나 합니다.
2016-06-27 09:08:34
Nijinsky
전쟁은 최소한의 피해를 내면서 이기는게 목적이고 그럴 기회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전 그걸 아쉽다고 한겁니다. 만약 확전되서 한반도에 핵떨어지고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칩시다. 우리가 바라는 길인가요? 전 국토가 핵맞고 인명피해가 났다면 우리가 이정도로 일어나지도 못했을거고 여기 글쓰는 분들 상당수가 죽거나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겁니다.
그리고 맥아더 고맙죠. 인천상륙작전까지는 두말할 나위 앖이 잘했고요. 그러나 결정적인 실책은 말하고 아쉬워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트루먼이 중공군 참전한다는데 괜찮냐고 물었을때 참전 없으니까 걱정 말라고 하면서 진군합니다. 일선 장교들이 중공군 대규모로 참전했다고 보고하니까 쿠리들에게 겁먹지마라.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 끝낸다고 하면서 전진명령 내립니다. 그때 유엔군은 포위당해 각개격파 당하는데 말이죠. 10군단이 지도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놀라서 만주폭격할테니 핵폭탄 50개만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맥아더는 본인 말대로 경계에 실패한 군인이었던겁니다. 그로 인해 전략목표 실패와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고요.
이 정도면 그나마 고마운 맥아더니까 이정도로 말하고 말지 객관적으로 평할 수 있는 인물이면 가루가 되도록 비판했을겁니다.
2016-06-27 09:36:38
시나리오
확전되면 일단 한반도에 핵이 떨어지는게 아니라 만주에 핵이 떨어지는 거고요. 3차대전이 아니라 제 2차 국공내전이 중공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3차대전으로 벌어질지 아닐지는 소련의 참전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거구요.
그런데 소련을 과대평가한 트루먼행정부의 오판. 그리고 미국의 관심이 동북아에 쏠리면서 유럽에서 바르샤바 군대의 약진을 두려워한 영국의 끊임없는 공작으로 ..결국 한반도 제한전쟁으로 전쟁양상이 흘러간 겁니다.
그 결과 사실상 우리 한반도만 타켓이 돼서 세계 제 3차대전이 일어난것과 다를바 없는 피해가 한반도 내에서만 벌어진거죠. 비록 북한영토지만 통일 되면 다 우리영토인데 .미군의 어마어마한 무차별 폭격이 북한 영토 전역에 벌어져서 원산 등 공업지역은 콩가루가 되고요. 미군도 15만명이 희생당합니다. 2차대전 통틀어서 미군 희생자는 30만 명인데요.
사실 북한 주민들은 핵폭탄 맞은거랑 뭐가 다르며. 남북한 군.민들은 세계 3차대전 겪은거랑 뭐가 다릅니까? 이 모든게 한반도 내 “제한전쟁”이라는 결과가 가져온 비극인거지요. 그러면서 통일은 통일대로 못하고….이 모든 피해를 한반도가 아닌 만주와 중국 영토가 겪을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겁니다.
만일 중공군 참전 초기부터 만주를 폭격 했으면. 압록강 넘어온 30만명의 중공군은..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요. 미군의 폭격 때문에 밥을 못짓는 중공군의 유일한 식량은 휴대가 간편한 미숫가루인데. 만주 동북3성지역의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미숫가루 생산에 올인하지요. 이 조차 생산 못한다몬 한반도에서 중공군의 활약은 불가능합니다.
단 여기서 만주폭격을 초기부터 핵공격으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네이팜탄 소이탄만으로도 2차대전 도쿄 공습때와 같이 완전 초토화 가능합니다. 실제 미국이 북한의 공업지역을 그렇게 만들었구요. 압록강 철교를 반으로 나누어서 그 밑으로 후방 8km까진 폭격을 못하게 합니다. 이를 두고 벤플리트 장군또한 회고록에서 “우리 아군을 공격하는 적군에게 식량과 연료를 보급하는 적의 보급기지를 바로 코 앞에 두고서도 폭격 못하는 현실” 이라고 황당해 하지요.
물론 군대는 그 이상의 통수권자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야 하지만..소련의 참전을 통한 3차대전 확전가능이라는 트루먼 행정부의 판단은 과연 옳았는지? . 이런 판단을 이끌어 내는데 가장큰 역할을 한것은 미국의 시선이 동북아에 쏠리느라 유럽이 소홀해지는걸 막기 위한 영국과 서유럽국가들의 치열한 외교전의 산물임도 드러나구 있고요.
2016-06-30 11:35:58
시나리오
그리고 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걸 막은건 맥아더의 과대망상을 제지한 트루먼 정부가 아니라…미국에 쫄아서 휴전을 먼저 제의한 스탈린 덕분입니다. 그 이전까지 핵공격 옵션은 맥아더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합참과 국방부.행정부 내에서도 충분이 선택가능한 옵션이었답니다.
[김형태의 노변한담]6.25 한국전쟁에서의 “만약”
한남대학교 총장
1953.7.27.은 한국전쟁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날이다. Oliver Stone과 Peter Kuznick가 쓴 ‘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엔 한국전쟁 때 미국의 원자탄 투하계획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1950.6.25.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맥아더를 비롯한 미국 정부 인사들은 원자탄 사용을 주장했다.
이미 1945.8.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로 단기간에 최소비용으로 미군이 피해 없이 승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0.7월 트루먼 대통령은 핵무기 탑재 폭격기를 영국과 괌으로 보냈다. 그러나 합참은 한반도의 도시들이 소규모라 재래식 폭격으로 충분하다고 봤다. 합참은 또 원폭을 투하할 경우 소련의 보복과 민중의 반발이 우려된다고 보았다.
1950.10.26. UN군은 압록강의 한·만 국경까지 진격하여 전쟁을 끝내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맥아더는 트루먼에게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요구대로 중국 접경지역엔 한국군만 전투에 투입하기로 동의했다. 합참은 한·중 국경 8㎞ 이내에선 폭격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1950.10.25. 평북 운산에서 중공군이 UN군을 공격했고, 트루먼과 합참은 마지못해 맥아더의 요구대로 11.24 대공세를 허락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공군 수십 만이 압록강을 건너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미국과 UN군은 정신 없이 한강 이남으로 퇴각했고 피해는 막대하였다. 맥아더는 “우리는 이제 전혀 새로운 전쟁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 애치슨 국무장관은 의회에 나와 “이제 미국엔 3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것 같다”고 했고 트루먼도 같은 의견이었다. 중공군 참전으로 미국은 다급해졌고 이제 중국은 원자탄 사용에 적합한 목표물이 되고 있었다.
1950.11.30. 트루먼은 원폭 투하를 포함해 모든 선택 가능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었다. 1950.12.9. 맥아더는 원폭 사용 재량권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12.24 맥아더는26개 목표지점 리스트를 제출하는 한편, 4발은 침략군에게, 4발은 적 공군력의 주요거점에 투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만주 나들목’에 원자탄 30∼50발만 투하하면 ‘방사성 코발트 벨트’가 형성돼 전쟁은 10일 이내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방사성 코발트 벨트는 ‘서해에서 동해까지’ 확산되어 ‘최소 60년 동안 북한이 육상으로 남한을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맥아더의 의견이었다. 1951.3.10. 맥아더는 ‘소련이 한반도와 만주에서 공군력을 증강하고 중공군이 한반도 접경에 신규로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며 결전의 날에 대비한 핵전력을 요청했다. 1951.3.14. 밴더버그 전략공군 사령관과 핀레터 공군 부차관과 리벳 국방부 부장관은 원폭투하 논의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고, 이제 결전만 남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이 원자탄을 보유한 것에 대해 위협을 느껴 휴전을 제의해 왔고, 트루먼은 스탈린의 휴전제의가 마음에 들어 원자탄 투하계획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1951.3.24. 트루먼이 휴전을 추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맥아더는 방송을 통해 자체적으로 중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그 친구(맥아더)한테 누가 상관인지 본때를 보여주겠어!”라며 크게 격노했지만, 그 이상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1951.4.11. 백악관은 UN군 사령관 맥아더를 해임했다. 맥아더는 원자탄 사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지만, 백악관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해임 1주일 전만 해도 합참은 중국이 다시 한반도에 대규모 파병을 할 경우 만주의 군사기지들에 대해 원폭을 투하하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만약(if) 그때 맥아더의 전략이 실행됐더라면 오늘날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1951.4.6. 트루먼은 이 명령을 재가하고 원자력 위원회 관할 원폭 9발을 괌과 오키나와 기지로 이관시켰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 간다”고 말한 맥아더의 후임으로 매슈 리지웨이 장군이 임명됐다. 리지웨이는 1951.5월 원자탄 38발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해 봄과 여름에 걸쳐 스탈린의 주선으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휴전협정을 시작했고, 1953.7.27. 북한과 중국과 미국이 마침내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협상을 시작한 지 2년 17일 만이었다. 그러나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1953.8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전략공군 사령관 르메이 장군에게 핵을 탑재한 B36 폭격기 20대를 일본 오키나와 섬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르메이는 기자들을 초청해 폭격기가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약(if) 트루먼이 원래 계획대로 원자탄을 투하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6.25가 핵전쟁…세계3차대전으로 번지지 않은건..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는 스탈린의 휴전 제스처가 가장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을 과대평가한..미국 그리고…유럽에서 서유럽 대륙이 바르샤바 국가들의 위협을 받는것 만으로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영국의 치열한 생존외교 덕분에….세계는 안전해지고….또 다시 쑥대밭이 될수 있었던 중국 대신 한반도가 쑥대밭이 됬지요.
2016-06-30 11:42:34
차크라바르틴
국공내전이 장개석의 승리로 끝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역을 영토로 삼고는 있겠지만 경제 수준은 아주 잘해봐야 말레이시아 정도일 겁니다. 잘 안 되면 필리핀 수준…중국으로 돈 벌러 일들 많이 가겠죠. 6.25가 한국의 봉건적 신분제를 일소하여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는 성과를 올렸고, 중국의 공산화는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번영의 막차 버스를 타게 하는 외부효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전쟁과 분단이 꼭 나쁜 쪽으로만 작용한 게 아니라는 것은 역사의 희작인가 봅니다. 물론 바보의 특징이 전쟁하고 분단만 되면 자동적으로 경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리플작성2016-06-27 08:49:42
재미한국인
차크라-님의 글을 읽으면서 애국가의 “하느님이 보우하사” 가 생각납니다. 분명 구부러진 길이었는데 구비구비 돌다보니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드러났습니다.
2016-06-28 11:58:18
사랑하며
예..맞아요.
6.25로 잃은것도 있지만, 서구 미국의 시스템이 들어왔고..일본이 메이지때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성공한 것처럼..
IMF 시련으로 낡은 관료적 금융시스템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갖출 수 있었죠.
위기 앞에 우리는 좌절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일어났죠.
북한의 핵 위협이.. 우리를 다시 강하게 만들겁니다.
2016-06-28 12:23:01
새벽종이울렸네
장개석 정권이 키운 중국 자본이 일찌감치 한반도를 장악했을 겁니다. 박정희가 추진한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열매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엘지화학이 일어날 수 없었죠.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굴러먹을 때 중국대륙에는 이미 공상희라는 금융자본가가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장개석과는 동서관계였죠. 국민당은 송가황조라 할만큼 장개석과 공상희를 앞세워 송자문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국의 정관계를 지배했습니다. 국공내전은 1945년 일본의 패전 때 국민당의 압승 분위기였는데, 이 때 그대로 모택동을 찍어눌러버렸다면 일제의 식민지에서 놓여난 한반도는 가장 만만한 공략처였을 겁니다.
2016-06-28 03:02:30
시나리오
그에 못지 않게 좋은 시나리오는 제가 생각하기에 장개석이 또 다시 중국 본토에 상륙해서 국공내전을 재발하고..남경정도 차지하고 중국은 분단되는 거지요. 그리고 한국은 통일되고..이러면 딱 고려시대 .송나라 금나라.요나라 남북조 시대 처럼…한민족의 외교적 위상도 더 커지면서. 경제적 기득권도 차지할수 있었을 꺼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분열되고 초토화되고 한국은 통일되고..
2016-06-30 11:53:35
차크라바르틴
만주가 소련 중공에 장악되어 있는 한,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될 가능성은 0%였습니다. 김구도 이걸 알고 남북협상에 임했던 거고요. 김구가 평양행을 결심했던 1948.6의 대륙의 정세는 아직은 국민당의 우세였습니다. 임표의 제 4야전군이 대반격해 국부군을 제압한 요심전역은 그해 가을에 일어났습니다. 이러니 만주가 중공의 손아귀로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김일성을 제거할 방안을 찾아봐야겠다는 게 김구의 입장이었습니다. 김구의 한독당은 사실상 장개석 정부의 한반도 지부였습니다. 김구는 귀국 후에도 계속 장개석과 연락을 유지했습니다. 장개석은 국공내전 승리를 위해 3.8선 이북의 땅을 자신과 잘 통하는 세력이 장악하기를 원했습니다.
1945년 8월 일본 관동군이 궤멸된 후 만주는 소련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만주는 19세기 말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스탈린은 러시아의 옛땅에 돌아온 기분이었겠죠. 그러나 만주를 삼키기에는 연합국과 중국의 눈치가 너무 보였습니다. 스탈린은 국공내전기간 의도적으로 장개석을 가까이하고 모택동을 멀리했는데 이는 중국을 분할해서 만주를 먹어보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공작이 잘 안 통하자 스탈린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세력에게 만주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국공내전에서 엄정중립을 지키겠다 이거였죠. 그러나 만주는 1945년 이후 남으로는 조선, 북으로는 몽골, 동으로는 소련이라는 공산국들에게 포위된 땅이 되었고 이 때문에 만주에 토착 우호 세력이 없는 장개석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학량이 있긴 했지만, 이미 만주국 건국과 함께 떨려난 처지였고요. 친소련파인 동북항일연군이 장학량 군벌보다는 더 잘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 동북항일연군을 1945.8 임표의 제 4야전군이 접수합니다.
장개석 군대가 만주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의 걸끄러운 틈새를 비집고 임표의 군대를 제압했다면 국공내전은 국부군의 승리로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적진아퇴(敵進我退) 적피아타(敵疲我打)를 기본전약으로 하는 임표에 비해 장개석 군대는 전략적으로 무능했고 난징의 국민당 정부는 전쟁 중에 절대로 해선 안 될 짓만 골라했습니다. 그게 패배의 원인이었습다만, 어쨌든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연합국의 승리로 귀결된 데 이어 여세를 몰아 중공의 본거지를 쓸어버렸다면 만주도 중화민국의 영토가 되어 한반도에 친소공산세력이 발붙일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었을 것이고 김일성이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6.25를 일으켰다 해도 만주라는 후방보급기지에서 지원을 기대할 수 없으니 싱겁게 유엔군의 승리로 끝났을 겁니다.
중국이 1949년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로 존재했다면, 지금쯤 중국의 사정은 엄청 달라졌을 겁니다. 티벳과 신장은 독립했겠지만 미소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냉전체제가 가져다주는 이득은 일본이나 한국이 아니라 자유중국이 흡수했을 것입니다. 자유중국은 6.25 전쟁을 기화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며 볼트 너트에서부터 항공기 로켓트까지 자체생산하고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은? 중화학공업은 국물도 구경하기 힘들 겁니다. 일본은 농업국으로 변신해서 중국에 쌀이나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을 겁니다. 중국 동부 해안의 인구가 폭발해 쌀 수요가 늘 테니까요.
2016-06-30 05:56:38
시나리오
그리고 한반도가 미국.중국 소련의 권력을 잡은 몇몇 인간들의 결정에 휘둘린게 아니고요..북한만 휘둘린거죠. 스탈린 때문에..전쟁을 오래 끄느라…전쟁 몇년 더하면 할수록 고지전에서 연합군의 우위는 더욱 확고해지고 휴전선은 더욱 남쪽에서 부터 넓어지는데 단지 남한도 무조건 손해라곤 볼순 없지요. 북한만 얻는거 하나 없이 미국 폭격에 온 나라가 콩가루가 되는거고요.
이걸 뭉떵거려서..”한반도” 전체의 손해라고 표현하는건 애매한 표현입니다.
북한만 손해인거죠. 그리고 서로 죽고 죽이는게 아니라 북한만 죽는거고요.
그리고 가정 결정적으로 북한이 아직도 저모양 저꼴인건 외세 때문이 아니라 김일성 때문입니다.
김일성 보다 더 동족상잔의 내전에서 희생한 연안파.등..김일성 파이외의 다른 북한 수뇌부들은. 50년대 중후반 부터. “개혁개방”으로 북한의 노선을 전환하고자 했습니다. 소련도 자국이 지원하는 물자가 북한식 계획경제에 의해서 낭비되자 ..기업소별 자율경영.소상공인.또 자작농의 토지소유등을 권고 했고요. 지금 김정은 시대 일어날 변화가 ..김일성만 연안파와 소련파가 제거 했다면 50년대 후반부터 일어 나고도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외세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손해 본게 아니라..김일성 때문에 남한이 고통받은것이며 외세 때문에는 북한만 고통 받은 겁니다.
그리고 아직도 북한이 저모양인건 남북한의 권력자들? 외세의 권력?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권력자들 때문이고요.
리플작성2016-06-27 07:10:21
뚱뚜둥
스탈린 때문에 전쟁을 오래 끌었던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길게 가면서 북한과 함께 중공군의 피해도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주력이 북쪽에는 중공군, 남쪽에는 미군이었으니 중공군도 정전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북한만의 손해라고 볼수 없는게, 1951년 여름이후로는 전쟁 양상이 고지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6.25 전쟁에서 국군이 입은 사상자의 대부분이 이때 발생합니다.
미군이 강력한 화력으로 전투를 진행하는데 비해서 국군을 장병들의 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
(고지를 점령할때 미군은 공군 + 포병지원이 당연, 국군은 보병의 감투정신뿐)
출생년도별 남녀 비율을 보면 이때 전쟁에 참여하신 세대가 유일하게 여자들이 많습니다.
북한만 손해인것이 아니라 남한의 손해도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젋은 남자들 많이 죽어갈수록 전쟁후에 그 여파가 커집니다. 1차대전 끝나고 영국, 프랑스가 난리났고, 2차대전 끝나고 소련, 독일이 난리납니다.)
리플작성2016-06-28 03:30:16
시나리오
고지전이 더 장기화 될수록 남한 영토는 더 늘어나더라도 젊은 군인들의 희생과 손.익 계산을 한다는건 비 인간적인 화법이죠. 하지만 후방폭격으로 북한이 입는 민간인 피해와 .전선에서 병력피해.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영토손실과 비교하면..남한의 손해는..비할 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북한은 남는것 하나 없이 손해만 보닌까요. 남한도 분명 손해입니다. 하지만 10만큼 손해본 사람과 100을 손해본 사람을 묶어서..우리모두다 손해다~ 이런 손해를 가져온 “외세” 에 함께 대응하자는 논리를 펴는게 요즘..xx 분들 논리닌깐요. 그런 부분에서 지적을 한번 해본겁니다.
리플작성2016-06-30 12:06:31
오뚜기
김일성의 허구 이런 내용을 자세히 적어 삐라로 만들어서 뿌리고 앱을 만들어서 뿌리고 소책자로 대량 만들어서 북한에 무료 유통시켜야 합니다
리플작성2016-06-27 07:13:00
뚱뚜둥
방법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빠라 – 기본적으로 한국에는 북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에서 날리는 삐라의 절반 이상이 남한에 떨어집니다. 휴전선에 경계근무하는 군인들 일과중의 하나가 남한 삐라 수거입니다.
앱 – 북한에 스마트폰 자체가 별로 없으며, 그동네 인터넷은 ‘광명성’이라고 따로 굴립니다.
소책자 – 유통이 될까요? 이런거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아오지’행 입니다.
리플작성2016-06-28 03:36:27
Garry
신천에서의 남북 주민들 간의 증오가 증오를 부르는 학살로 인한 피해를 미군에 의한 학살로 조작한데에는, 6.25 전쟁에 대한 김일성의 당혹감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은가 합니다.
자신이 주도해서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민족 내에 엄청난 피해와 증오가 만들어졌으니까 그걸 인정하고 싶어하질 않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려 했던 겁니다.
리플작성2016-06-27 09:29:14
재미한국인
김일성 주의를 바쳐주는 큰 기둥의 하나가 증오입니다. 모든 형태의 공산주의의 특징인데, 이 시회에서는 증오가 정의입니다. 어느 집단을 죽도록 증오하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북한이 남한을 점령해서 처음 한 것이 총살입니다. 가진자를 미워하되 총살할 지경까지 미워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는 지주 아버지를 총살로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었지요.
리플작성2016-06-28 06:56:16
차크라바르틴
악마의 종교가 있다면 가히 김일성교일 것입니다. 김일성을 숭배하기 위해 인민을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김씨왕족의 안전을 위해 한민족 개개인의 생명을 파리목숨으로 취급하는 증오의 교리.
한가지 다행인 것은 김일성교에는 내세관이 없다는 거죠. 김일성을 위해 죽으면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또 다시 태어날 때 귀한 사람이 되어 존경과 함께 호의호식한다는 선전은 안 합니다. 사실은 못하는 거겠죠.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에는 모두 내세관 내지 윤회사상으로 이승에 살아있을 때 남에게 잔혹한 짓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내세관이 없는 김일성교는 죽고나서 베풀 게 없어서인지 그저 미제와 남조선을 때려부수고 박살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증오를 혁명사상으로 포장해 배포합니다.
리플작성2016-06-28 07:48:48
zzz
남한? 내의 빵갱이들 절대 아니라고 박박 우기겠는데..
지령 아직 안 내려 왔나???
리플작성2016-06-27 10:42:41
아이디(필수)
6.25 남침의 전범으로 주범은 짝퉁 김일성 뿐만아니라, 서울만 점령하면 남한에서 남로당 잔당들의 봉기가 일어나 순식간에 남한 전역을 적화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박헌영도 그에 못지 않지요. 두 인간이 남침을 기도한 것은 다른 속셈이 있었을 겁니다.
혹부리는 아무 내세울 만한 항일투쟁 전과도 없이 소련군에 잘보여 스탈린의 발탁을 받은데다 짝퉁 김일성 장군 행세나 하던 주제니 다른 사람들이 지도자로 제대로 인정을 안 해주려 했을 겁니다. 그러니 남한 적화를 성공시켜 자신의 혁혁한 공로로 만들어 권력 기반을 다지려 했을 가능성이 크죠.
박헌영의 속셈은 남로당의 봉기로 남한 적화를 성공시키면 그 공으로 자신이 김일성을 능가하는 최고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걸로 계산했을 가능성이 크죠.
두 인간이 불X에 요령 소리가 나도록 뻔질나게 소련을 들락거리며 스탈린을 조른 것도 각자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것일테죠.
결국 남한적화 실패로 두 인간 다 책임을 져야했지만, 술퍼마시고 서로 싸우다 혹부리가 박헌영에게 “야, 이 새끼야, 너도 책임이 있어” 하며 잉크병 던지고 난리가 났었다던데..
결국 혹부리만 살아남고, 남로당 봉기를 호언장담했던 박헌영이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미제스파이로 몰려 죽은 거죠.
리플작성2016-06-28 07:20:15
차크라바르틴
뭐 지금도 남북의 빨갱이들은 김일성과 박헌영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고 봐야죠. 다만 스탈린같은 존재가 지금은 없으니까 각자 역사왜곡으로 대한민국 씹기, 대헌민국 털어먹기로 정신교육하면서 군자금 마련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적화연방제라도 실현되면 21세기의 김일성파와 박헌영파의 권력투쟁은 가히 우주를 뒤흔들 수준일 것입니다. 박헌영은 똑똑했고 김일성은 무식했습니다. 지금도 똑똑하기로 줄세우면 남한의 좌빨들이 북의 김일성파에 비하면 몇 걸음 앞일 것입니다. 그게 서울대와 김일성대의 수준차겠죠. 그러나 잔혹한 권모술수의 자질은 남한 좌빨들이 김일성파에 쨉도 안 되죠.
리플작성2016-06-28 07:58:58
아이디(필수)
박헌영의 사생아 아들이 남한에 있죠. 원경이라는 중인데 조계종 원로 스님이 되어 있더군요.
이 양반이 박원순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 만들고 박헌영 전집도 펴내고 했는데 종북 사관의 산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죠.
조계종도 김대중 정권의 비호로 좌파들이 조계종 종권을 장악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죠. 그러니 저런 중이 원로스님이 되어 있고요.
박헌영 아들 승려 원경도 김일성이 가짜가 맞다고 주장하는 모양이군요.
http://news.donga.com/List/3/70030000000088/20040530/8066803/1
원경 스님이 “아직 실증되지 않았으나 사실임이 분명하다”며 소개하는 얘기 몇 토막.
“이현상이 군사훈련을 위해 1947년 소련으로 떠나기 전 평양의 회식 자리에서 ‘가짜 김일성’론을 폈다는 거예요. 그의 항일무장투쟁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최소한 보천보사건(1937년)의 김일성만은 당시 북의 김일성이 아니라는 얘기였어요. 선친이 나서서 무마하고 함구령을 내린 뒤 이현상을 지리산으로 들여보냈다더군요.”
리플작성2016-06-28 08:22:30
아이디(필수)
이런 땡중에게는 자기 아버지가 김일성과 함께 수백만 동족을 죽인 6.25 최고 전범이라는 인식은 손톱만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리플작성2016-06-28 08:27:59
오뚜기
나무 관세음보살…()()() 이제 북쪽인민들의 업장이 끝나가고 있습니다…북녘의 인민들이 굴레를 벗고 다같이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2016-06-28 12:45:10
새벽종이울렸네
저 사람도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박정희의 민주세력 탄압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라고 요구를 했겠죠? 소위 시민단체 떨거지들과 섞여서?
리플작성2016-06-28 03:51:38
푸른명상
저놈들이 내세운 자주는 자폐입니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그걸 단번에 알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허구입니다. 아직도 정신적 장애에 걸려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썩어빠진 놈들이 있습니다. 저 배불뚝보다도 못한 놈들입니다.
리플작성2016-06-28 07:43:01
푸른명상
혹부리 보릿자루 배불뚝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참극에 한 몫하고 있는 것들이 저 북의 지식인들입니다. 오늘도 말도 안되는 논리를 재조하는라 대가리를 굴리고 있겠지요. 비겁한 놈들입니다. 통일해서 쓸어버려야 할 쓰레기들입니다.
리플작성2016-06-28 07:47:13
푸른명상
재조/ 제조 , 하는라/하느라
리플작성2016-06-28 07:48:26
클릭
출^장^어디든가~능
간단하게
5만원부터
김씨
26살
키165
몸무게49
http://thz31.com/
리플작성2016-06-28 07:59:24
예측
ㅉㅉ 가엾은 년놈들 젊은 몸뚱아리 가지고 먹고 살길이 그렇게 없더냐?
그저 편하게 벗은 몸둥아리 내굴려 돈을 쉽게 쥐어본들 그 돈이 사치와 방탕으로
금방 없어지는건 당연한 귀결이거늘 어차피 잠시 피었다가 지는 젊은 뒤에 이어지는
나이든 육신의 긴 삶이 그 댓가로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울지 모르는 새머리들 같으니라고.
리플작성2016-06-28 11:03:01
예측
위의 여러 논객들처럼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지난 역사의 수많은 기록들을 보고 오늘까지도
수많은 논평과 훈수들을 늘어놓건만 왜 역사는 무늬와 색깔만 다를뿐 거의 같은 패턴으로
항상 반복되는가?
그것은 머리로 역사를 이해하고 입으로만 요란하게 떠들뿐 행동으로는 전혀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특히 단순히 담론과 논쟁을 즐기는 힘 없는 민초보다는 힘을 가진
시대의 지도층들이 어리석은데다 현실의 과실 따먹기에만 급급한 좁은 시야와 탐욕에
갇혀 있으므로 인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과 땅과 인구의 규모는 항상 고대로부터 먼 미래에까지 주변의
강대국들의 강한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고 특히 역사적 변동기마다 휘둘리고 고통을
받을수 밖에 없는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수가 없다.
한반도에 태어나는 이들이 안고가야 하는 숙명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사의 1945년 해방도 결국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6.25도 김일성의
야욕만으로는 결코 발생할수가 없는, 강대국들의 즉 소련과 중공의 전세계 공산화를 위한
시도의 산물이었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한반도의 반쪽만이라도 미국이라는 자유 자본주의의 훌륭한 우방을
만난 행운에다 지난 반세기의 한민족 역사에 유래가 없는 민족 중흥을 주도한 훌륭한
영웅과 인물들의 시대를 만났던 천운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대한민국이 생길수 있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고 바람이 불면 구름이 흩어지거나 비바람을 몰고 오는 자연의
이치처럼 이제 용과 호랑이의 짧은 영웅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났으니 오직 하이에나와
이무기와 쥐새끼들만 날뛰는 춥고 어두운 길고 긴 고난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도다.
안타깝게도 난세를 구할 영웅의 시대는 어느 나라든 짧고도 귀한 법이나 한반도의 지세는
특히 영웅이 나기가 더 어려운 지세이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이제부터 한반도의 앞날은 테마 파크의 롤러 코스트를 탄거처럼 정점에서 열차가
내려가기 시작했으니 여기 저기에서 소리를 지르고 겁을 먹으나 단지 시작일 뿐이다.
달려 내려가야할 골이 깊고 깊도다.
지난 반세기 동안은 내부적으로 여러 사악하고 탐욕스런 세력들과 게으르고 불평 불만에
찬 자들의 방해와 준동에도 불구하고 영웅과 인물들의 밝은 기운과 노력이 더 강하여 온갖
난관을 이겨내면서, 마치 밑에 금이 간 항아리에 새는 물보다 붓는 물이 더 많아 독이 넘치는
형국이였으나 이제는 붓는 물보다 새는 물이 훨씬 많은 지경이 되었으니 바닥이 드러나는
깨진 독의 밑바닥을 모두가 이제는 보고 알게되리라.
깨지기 쉬운 거대하고 멋진 유리 건물 앞에서 도취되고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그 인위적인 것이 얼마나 허상이고 깨어지고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곧 알게 되리라.
나라 내부의 거짓된 가면으로 위장한 이무기들과 하이에나와 쥐새끼들이 뿜어대는
향내나는 독기로 모두 병 들어갈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강대국들이
또 다시 저 땅을 흔들어 뒤짚어 놓으리라.
귀 있는 이 들으며 지각있는 이 깨우치고 각자 대비하시라 !
리플작성2016-06-28 12:09:36
오뚜기
예전의 탄허스님은 한국의 통일과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예언했는데 님의 말과 탄허스님의 말이 누가 맞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리플작성2016-06-28 12:39:38
예측
일본 열도가 바다속으로 가라앉고도 한반도가 무사하고 미래가 밝다면 탄허 스님의
예언이 반드시 맞을 것이요
그러나 집밖에 도둑들이 설치는데 내집 담이 낮고 대문의 빗장이 풀려있어도 내가 힘이
세니 걱정할거 없다는 오만한 자와 배속이 더부룩 하고 방귀가 잦은데도 화장실 갈 일이
한동안 없을거라 믿는 어리석은 자는 반드시 황당한 일을 겪게 되리니.
리플작성2016-06-28 01:48:06
도미노
대비는 뭘로 대비합니까?ㅎㅎㅎㅎ
아예 이 땅에서 도망가서 국적까지 바꾸고 다른 나라사람이 되는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대비책도 없는데 차라리 ‘영웅이 되어 하이에나의 목을 치시라.’ 라고 하는게 나을 뻔했습니다. 어차피 둘 다 가망없는 소리이니 그나마 이쪽이 더 적극적이고 보기좋잖아요
리플작성2016-06-28 01:39:25
새벽종이울렸네
디스토피아를 설파하는 이들의 최종적 목적이 신도의 재산 갈취.
나는 그래서 구체적인 증거도 대안도 없이 무턱대고 지옥도를 그리는 이들을 불신 배척한다.
대한민국이 건국의 영웅과 중화학건설입국의 지도자를 낳아 발전한 게 사실이지만 영웅중심 역사관의 문제점은 민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어떤 역사건 영웅만 있고, 민은 있으나마나 한 발전이 어디 있나?
리플작성2016-06-28 03:49:42
예측
새벽종을 울리는 부지런한 이여, 이말을 기억하라.
경제를 분석하는 방법에도 미시 경제와 거시 경제가 있고 학문에도 개론과 각론이 있드시
국가의 전체적 운세를 관조하는데도, 묘자리나 명당을 보는 잡풍수와 달리, 지리 지세학이 있다.
한 국가의 지형 지세나 자연과 기후가 오랜 기간에 걸쳐서 그 땅의 문화와 관습과 역사와
국민성을 형성하고 그 땅의 지력으로 생겨나는 소산물이 거주민의 체질과 기질을 만들어내니
한반도는 웅대한 남성의 기상과 지세가 아니고 오밀 조밀한 이쁜 여인의 지세라.
따라서 그땅에 수만년 이상을 거주해온 사람들의 기질은 안으로는 다툼이 많고 시기와 질투와
말이 많으며 사치와 허영이 많은 사람들이 생겨날수 밖에 없고
영웅과 인물이 나기가 쉽지도 흔하지도 않은 지세이므로 바깥을 향해서는 유약하고
폐쇄적인 성향을 띨수 밖에 없다.
또한 치마를 펼치고 서있는 형상이니 훌륭한 서방을 만나면 삶이 평온하나 그 서방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 서쪽과 북쪽에서 대륙의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저고리가 뜯겨지고
남쪽에서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치마가 찢겨져 나가는 운명을 피할수가 없는 팔자 사나운
여인의 지세로다.
이것을 두고 지리 지정학적 숙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성은 언제나 힘없고 우매한 양떼와 같으니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좌우가 된다.
훌륭한 목자를 만나면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할 것이며 맹수로부터 자신의 양떼를
잘 지켜주리라.
그러나 좋은 목자보다 어리석거나 나태한 목자가 훨씬 많은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훌륭한
목자가 떠나면 중구난방으로 나대는 양떼들은 굶주리고 맹수에게 잡혀먹히기가 쉬운 법이라.
리플작성2016-06-28 10:18:49
새벽종이울렸네
한반도의 지형을 두고 토끼 모양이라 한 일본인도 있었고
대륙을 잡아먹으려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이라 한 한국인도 보았지만
치마를 펼친 여인의 형상이라 한 자는 오늘 처음 보는 것 같다.
예측은 걸그룹에 너무 빠져든 것인가? 박근혜가 여자라서 만만하냐?
한국하면 헤픈 여자의 속성부터 연상되냐?
정신차려라,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군사밀도가 높은 나라다.
군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유사시에는
군대만한 물리력을 소유한 집단은 없다.
한국은 북한 때문에라도 강력한 군사력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이며
그로 인해 지금 잠시 평화가 넘치고 여자들이 기를 세우는 것 같아도
결국은 질박강인한 군인의 속성 남자의 근성이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는 나라인 것이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 말투는 좀 지겹다. 삼가기 바란다.
대한민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스스로 맹신에 빠져 남에게 사기나 치는 자유까지 인정하는 건 아니다.
무려 3조원을 등쳐먹은 조희팔이 드디어 죽었다고 한다.
리플작성2016-06-29 02:22:36
오뚜기
저는 예언따위 믿지 않습니다..요한계시록도 유명한 동양 예언서도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식이라 의미 없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운명은 정해진것이 아니지요….그리고 불교의 수행승들도 인류의 업보와 과보를 알고 어떻게 될지를 아는것은 수행이 아라한의 경지를 넘어서 10지보살 이상이 되어야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10지보살이 누구냐하면 관세음보살입니다..관세음보살은 거의 신입니다..물질을 창조할수 있는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예언을 할수 있다는겁니다..그밑의 아라한도 인류의 업장과 과보를 보지는 못합니다..그런데 현재 살아계신 스님들 중 지구상에 아라한 이상의 불과를 증득한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손가락으로 꼽을겁니다…즉, 목숨걸고 수행정진해도 아라한 이상 얻기 어렵고 삼신통 사신통해도 예언은 못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중생들의 업장과 과보를 정확히 아는일입니다
2016-06-29 05:31:59
새벽종이울렸네
제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면서 남에게 해코지 안하고 선의 베풀어야 할 때 망설이지 않다가, 능력이 다하면 조용히 하직하는 것이 복 있는 인생. 중생 제도 떠드는 것들은 결국 남 등쳐서 저 혼자 영광 다 누리고 호의호식하겠다는 사기꾼들임. 난 종교 자체가 사기라고 생각하고 있음.
2016-06-29 10:06:23
dd
원래 집단으로서의 대중은 지독한, 그것도 아주 히스테릭한 여성의성향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래서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 지도자들이 선거나 정책 선전 경쟁할때 내부적으로 국민을 저학력 여성으로 상정해서 선거 문구를 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히틀러나 괴벨스도 대중의 이런 속성을 일치감치 파악해서 여성과 비유하기도 했구요.
한국인들의 집단 기질이 여성의 성향을 띄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과연 한국만의 기질인지는
좀 의문이군요.
국민성이나 민족성에 대한 연구는 요즘 많이들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민성이나 민족성이라는 기질이 지세에 영향을 받는지는 몰라도
각국마다 나름의 특성은 확실히 있어요.
그런데 그 특성이라는 것도 제도와 법규 그리고 사회의 암묵적인 룰에 훨씬 더 강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룰과 법은 해당국가의 통치 원리에 또한 영향을 받구요.
그 룰과 법을 만드는 것이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고 이 기질이 지세에 따라간다
라고하면 할말이 없지만..
현대국가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현대국가는 따로 입법기관이 1년내내 열리면서 끊임없이
홍수처럼 법안을 쏟아냅니다. 달리 말하면 제도와 법규의 신설과 폐기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는 겁니다. 뭔 말이냐 하면 국민성과 민족성도 법과 제도 사회의
변화 만큼이나 변화하고 있다는거죠.
국민성은 변합니다. 그것도 매우 빠르게요.
리플작성2016-07-04 04:55:07
아이디(필수)
중공군과 인민군이 유엔군과 맞서 싸우는 중에 혹부리가 인민군을 보존하기 위해 아무 상의도 없이 군대를 빼돌려 중공군이 지극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던 일이 있었다는 군요. 팽덕회가 머리 끝까지 화가나서 혹부리 뺨을 두어번 있는 힘껏 후려쳐서 뺨이 퉁퉁 부어올라 혹부리는 1주일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는군요. 이 일을 보도한 건 홍콩의 명보가 유일하다고 하는데,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것 높습니다.
어쨌던 팽덕회와 혹부리의 사이가 지극히 나빴던 건 사실인 것 같고, 혹부리가 모택동에게 여러 차례 팽덕회 손 좀 보라고 요청했다는데 팽덕회가 문혁 때 당한 것도 이 때문일 지 모릅니다.
http://cafe.naver.com/aniwith/25532
리플작성2016-06-28 02:49:58
새벽종이울렸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팽덕회와 김일성의 반목이 아주 상세히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팽덕회 역시 38선 유지론자였습니다.
리플작성2016-06-28 03:08:34
아이디(필수)
나라간에 전쟁 할수 있지요
나라가 잘못되어서 독재자 있을수 있지요
허나 북한이 잘못된건 세습을 한다는 점 입니다
이것 때문에 남북 문제를 해결할수 없는겁니다
지원을 해도 안되고 , 제재를 해도 해결할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세습의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답은 없습니다
김일성이 세습만 안했어도 오늘날 평가는 달라질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북한도 지금의 북한이 아니었겠지요
리플작성2016-06-29 12:11:52
아이디(필수)
다소 관계 없을수 있는 이런 댓글을 남긴건
주기자님의 결론이 중국 미국의 결정에 의한 비극을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글의 제목처럼 625를 조작하는것도 북한이고 북한책임이듯이
전쟁역시도 북한의 선택이 중요한것이지 외세는 그 다음입니다
지금은 누구 마음대로 전쟁하고 그럴 세상은 아니지요
중국 미국의 결정도 중요하겠습니다만 북한이 예를들면 핵이라든지 하는것에
어떤 결정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세습 고리를 끊어야 바른 결정을 하고 바른 나라가 될수 있겠지요
리플작성2016-06-29 12:20:48
새벽종이울렸네
김일성은 냉전시대 공산주의의 수괴 스탈린의 하수인 역할을 자청해 우리 민족을 동족상잔으로 몰아넣어 수백만의 생명을 죽인 꼭두각시였다는 게 6.25 연구의 결론이지만,
스탈린이 대마왕이라고 해서 그 자에게 속아넘어간 모택동이나 김일성이 악마가 아닌 것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김일성은 순박한 희생자가 절대 아닙니다. 마성을 타고난 놈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사회와 인민 전체의 퍼스낼리티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놈입니다. 김일성에게 학살당한 박헌영 등 남로당 빨갱이들도 존중받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현상이니 성시백이니 김달삼이니 하는 빨갱이들은 한민족의 절대적인 적이지 국가유공자가 될 어떤 이유도 없어요.
어제 뉴스를 보니 김일성의 애비와 에미에게 보훈처에서 공훈을 인정할 것이라던데, 국민 여론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리플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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